요양(療養)
요즘은 백세 시대라고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백 세까지 사는 것이 꿈인지라 모두가 소망하는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인간은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일진데 누구에게도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는 개인의 희망이 마냥 억지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과거보다는 영양섭취나 의료시설,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기대 수명이 현저하게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만 할 수 없는 것이 수명 연장에 따른 부작용도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고려장(高麗葬)을 갈 나이에 해외로 여행을 즐기는 세상이지만 결국에는 대부분이 요양시설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그런데 이 역시도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 구조적인 모순이 지배하는 현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중지되었던 요양시설의 면회가 부분적으로 재개되었다. 따라서 아내를 따라 요양 중이신 장모님을 뵙고 왔다. 직접 대면은 상당 기간이 지났는데 다행히 별다른 변화 없이 지내시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주로 소소한 집안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그중에서도 손자와 손녀들의 근황이 화제의 중심이 된다. 아직은 기억력, 청력이나 시력 등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다. 더구나 신문 구독과 독서에도 열중하시니 사리분별(事理分別)이 명확하시다.
최근에 전국 곳곳에 노인 요양을 전문으로 하는 각종 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물론 요양시설에도 상당한 등급이 있다. 의료 및 편의 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곳일수록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신체가 건강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먼저 「실버타운」에 들어간다. 마치 자기 집에 거주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생활을 한다.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고 지내면서 각종 편의 시설 활용이 가능하며 별도의 식당을 이용한다. 부부가 들어와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본인의 활동력이 저하되면 다음 단계로 「요양병원」으로 들어간다. 지정된 요양보호사의 보호를 받으며 여럿이 공동으로 함께 거주한다. 마치 학교생활을 하는 것처럼 정해진 일과표를 준수해야 하고, 틈틈이 체력 단련과 레크레이션 활동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서 24시간을 관리하는 의사와 간호사도 상주하므로 상당히 신뢰가 가는 시설이다. 이 단계를 넘어서 건강 악화로 24시간 내내 근접 보호가 필요하게 되면 「요양원」을 이용하게 된다. 앞으로는 대부분이 회피할 수 없는 황혼길의 여정이다.
장모님은 슬하에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셨다. 공무원으로 봉직하신 장인께서는 지병으로 일찍 타계하신 후 홀로 자식 교육에 매진하셨다. 다행히도 3명의 아들이 반듯하게 성장하여 모두 전문직으로 근무하였다. 8명의 손자와 손녀들도 나름대로 잘 적응하여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잘 기르고 있다. 아주 어려서부터 주기적으로 가족 모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정의 소중함을 체득한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장손자와 외손녀는 미국의 MIT 출신의 박사로 서울대와 미국의 대학에 봉직하고 있고, 중손과 외손은 회계사 겸 변호사로 나란히 우리나라 최고의 법무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른 손자/손녀들도 다양한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어 비교적 부모들이 크게 걱정하지 않고 지내는 편이다. 주변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자식 복을 받은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 가족이 모여 해마다 몇 차례씩 장모님을 방문했으나 이마저도 코로나로 인해 함께 모인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나마 자녀들이 동시 혹은 순서에 따라 주기적인 면회를 통해 문안 인사를 드리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공급하고, 대면이 어려우면 전화통화로 대신하고 있다.
그동안 장모님은 소도시에서 큰아들과 사시다가 상경하여 작은아들과 함께 거주하셨다. 사실 나이가 들면 오랫동안 정분을 나눈 이웃들과 어울려 살고 싶은데 큰아들마저 서울로 이사하니 별수 없이 동반하여 이후 작은아들과 생활을 하셨다. 그러다가 사단(事端)이 일어나고 말았다. 겨울철 임에도 수시로 인근 성당에서 후손들을 위해 기도하러 왕래하시다가 넘어져 대퇴부 고관절이 부서지고 말았다. 이후 한동안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완쾌가 되었는데 더는 자식들의 신세를 지지 않겠다고 아예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겨 거주하게 된 것이다. 원래 총명하신 분인지라 본인께서 평생 모아둔 소정의 현금으로 모든 비용을 충당하도록 하여 자식들의 부담도 일체 덜도록 하셨다.
그러고 보니 한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사실 언제 다시 본인이 머무시던 방에 갈 수 있겠으며, 사용하시던 물품들도 언제 다시 만져나 볼 수 있을 것인가. 수년 전에 이미 패물이나 옷가지 등을 정리하여 딸과 며느리, 손녀딸과 손자며느리 등에게 분배를 마쳤지만 그래도 평생 손때가 묻은 소품들이 그립지 않겠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인생살이가 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이니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슬프고 아쉬운 이별을 기약하면서 살아가는 부평초(浮萍草)같은 신세인 듯싶다. 정작 나의 어머니께서는 잠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다가 떠나셨지만, 아버지는 약 7개월 동안을 요양병원에 머물다 떠나셨다. 어머니가 가신 후 훌훌 집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 하시면서 거처를 옮겼는데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다. 생각할수록 어떻게 해서라도 집안에 모시지 못한 죄책감이 아직도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뜻하지 않은 치주암으로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셨는데, 홀로 고독과 몸부림치며 괴로워하시던 모습이 일기장에 남아 있어 자식으로서 여간 마음이 괴롭고 쓰린지 모른다.
앞으로 노년들이 요양시설을 이용하는 것은 대세라고 본다.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사회의 추세가 되었다. 물론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하는 자식들도 있기는 하지만 무조건 자식들에게 의무로서 강요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자식들도 생업에 종사하고 아이들을 교육해야 하는데 노부모까지 신경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가 요망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준비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편안하게 말년을 지내다가 저 세상으로 표표(漂漂)히 떠나는 기본 준비는 나의 몫이라고 확신한다. 적어도 일정 시간이 흐르면 어떤 종류가 되었건 자신을 의탁할 장소를 선택하고 결정해야만 한다. 종교시설에 들어갈 수 있지만 수용할 공간이 적으니 요양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우선 무엇보다도 소정의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부담하는 비례에 따라 시설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부분은 점진적으로 국가가 노년의 복지 향상 차원에서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여건이 미흡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아가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릴 수 있는 신앙생활도 꼭 필요하다. 물론 대부분이 신앙생활을 중시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보다 차분한 안정과 평화로운 마음가짐을 위해서는 아예 일찍이 종교에 귀의하는 것도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아울러 부부가 함께 요양시설에서도 지내면서 해로(偕老)를 하는 것도 모두가 바라는 소망일 것이다. 그러자면 부부의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이래저래 부부는 일심동체가 되어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소박한 꿈을 안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2021. 6. 22작성, 9.22발표)
첫댓글 추석연휴 손주들이 아들한테로 가서 우리 부부만 한가로이 산장에 기거하며 가을걷이를 하고 있었는데, "요양"이란 글을 읽고 나니 앞으로 다가올 과제를 생각하게 하네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말년을 보내게 되겠지만, 어차피 떠나는 인생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고 수용하면서 보내는 수밖에 없지요. 그런 점에서 장모님은 본인의 노력과 자식들의 효도 덕분에 행복한 만년을 보내시고 계셔서 보기가 좋습니다. 보름달같이 풍요로운 연휴가 되도시기를......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나의 모친은 5년간 뇌졸증 투병후
작고하셨고, 선친은 모친 작고후
50일만에 타계하셨어요.
노후에는 건강관리ᆞ노후자금ᆞ
노후취미가 필요한것 같아요.
나역시 혼자다보니 애들에게
부담을 안줄여고 24시간 간병
인 보험을 조치했어요.
나는 오늘 만보걷기는 올들어
250번째 입니다.
우리 모두 건강합시다.
좋은 글을 주셨군요.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네요. 또 사후에라도 분란이 생기지 않게 이것저것 정리도 해야하고, 하고 싶은 말 미리 해두고 ㅡ 정신 줄 좋을 때 하고 싶은 것이 많네요.
우리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 바로 생노병사일진데,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부모님이 모든 걸 준비해 주시나, 나머지는 자신과 더러는 배우자가 서로 또는 스스로 준비해야 할 몫들이지요~! 남당 선생의 장모님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3년 전에 작고하신 장모님 생각이 납니다. 저희 장모님께서도 장인 어른께서 타계하신 후, 혼자 지내시다가 자식들에게 의존하지 않으시고 그간 자신이 마련하여 보관하셨던 비자금으로 요양병원에서 3년여 지내시다가 돌아가셨네요~! 저희들에게 노약하여 병들면 어찌 살아야 할지를 손수 보여주셨지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장담할 수 없는 미래, 누구나가 두고두고 고민하고 또 언젠가 닥칠지 모르는 우리네 삶의 문제.....
두 편의 영화가 생각납니다. 모두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작품인데요.
2015년 쥴리앤 무어가 여우주연상을 받은《스틸 앨리스》, 교수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해놓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이르러 이를 결행하지 못하고 알츠하이머의 상태에 드는 주인공, 가족과의 불가피한 격리를 겪지 않으면 안되는 안타까운 상황, 이제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올 아커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더 파더》. 자신만만한 노후생활을 즐기던 주인공은 점차 치매상태로 진전이 되연서 드디어 요양원 신세를 지게되고, 결국 인생의 최후는 가까이에 있던 모든 사람들로부터도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마치 자신이 태어날 때와 같은 아기의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걸 보여주지요. 나의 미래도 그런게 아닐까 두려움이 느껴지기기도 했습니다.
내 앞의 삶에 올바른 정답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살아가는 동안 어떤게 최선인지를 내 스스로가 선택해 나가면서 살아야 하겠죠~
남당친구의 글,잘 읽었어요.'실버 타운,황혼 길의 여정'이란 언어 부터가 왠지 서글픔과 막막한 심정이 드네요.저의 조부모님과 아버님
모두 아버님의 품에서 돌아가셨으니,저도 결심한게 있지요.그 3분을 위해 27년의 긴 긴 세월을 병간호를 하신 어머님을 절대로 요양원에 보내지않고,거동을 못하시면 제가 귀농해서 제 연금을 반 투자하여 어머님을 모실 결심을 하였었지요.다행히 바로 밑에 동생이
귀농하여 모시고 있고,아직은 건강하시어 걱정은 덜었으나 언제 닥쳐올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지침서>가 될 글이네요.
남당친구의 장모님은 결단력과 총명함이 대단하신 분이시네요.오래 오래 건강하시어 그래도 저승보다는 이승이니,사랑하는 자식들.손주들 오래 보셨으면 좋겠네요.좋은 글,감사해요.
언젠가 한 번은 거쳐 가야할 운명. 오늘 이 순간도 잘 알 수 없는데 어찌 내일 후를 알겠느뇨. 그저 주어진 운명이라 생각하고 살아야지요. 왕후장상이나 일반 평민이나 죽음 앞에선 도리가 없습니다. 잘 준비한다는 것도 뭔지 모르겠어요. 실버타운도 막상 처음엔 괜찮아도 나이가 들면 결국 별 재미를 못 느끼고 더욱이 반려자를 잃고 혼자가 되면 더 쓸쓸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아무 준비 없이 그냥 조용히 떠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