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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삼국지 265
(소설삼국지)
제2권 군웅쟁패
제27장 원소와 조조의 대립
5) 조조 토벌 격문
원소가 출정에 앞서 조조의 죄악을 규탄하는 격문을 지어 자기의 군대는 물론 전국의 모든 주와 군에 뿌렸다. 명분을 세워 군대의 기세를 높이고 여타 세력들에게 호응할 것을 촉구했다.
위씨춘추(魏氏春秋)에 실린 원소가 보낸 격문의 내용이 실려 있어 이를 여기에 옮겨 본다.
“대개 밝은 군주는 위험이 닥칠 것에 대비해 미리 계책을 세움으로써 변고가 일어나는 것을 막고,충신은 국난을 염려해 조정의 권력을 바로 세운다고 한다.
지난 날 진(秦)나라는 강했으나 군주는 약해 환관 조고(趙高)가 권력을 잡고 조정의 명령을 마음대로 처리해 위엄과 복이 다 그에게서 나왔었다. 그러나 종국에는 반군에게 멸망당하는 재난을 겪게 되었고 그 더러운 치욕이 오늘에까지 전하고 있다.
또 여후(呂后)에 이르러서는 여록(呂祿)과 여산(呂產)이 정무를 독점하고 모든 것을 제멋대로 결정했으며 관부에서 일을 결정하는 것을 금지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고 윗사람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니 나라 안이 모두 정도를 벗어나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강후(絳侯) 주발과 주허후(硃虛侯) 진평이 위엄을 갖추고 분발해 떨쳐 일어나 역적질하는 도적들을 주멸했다. 태종(太宗)을 받들어 제위에 올림으로써 나라의 근본이 융성해질 수 있었고 광명이 밝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바로 대신이 권력을 바로 세운 모범을 보인 것이다.
사공(司空) 조조(曹操)의 할아버지 조등(曹騰)은 전에 중상시(中常侍)로 있으면서 좌관(左悺), 서황(徐璜) 등과 함께 요사하고 흉악한 짓을 꾸며대었고 방자하게도 재물을 탐내 백성들을 모질게 학대하고 상하게 했다.
그의 아버지 조숭(曹嵩)은 환관에게 데려다가 키워줄 것을 애걸해 양자가 되고 나서 뇌물을 바치고 거짓으로 지위를 얻었다. 수레로 금을 나르고 가마로 옥을 실을 정도로 막대한 재화를 권문에 실어 보내 삼공의 벼슬을 도적질함으로써 국가의 중요한 직위를 모독하고 망쳐버렸다.
조조는 본시 환관의 양자의 자식으로 법도와 덕이 없어 경박하고 교활하고 칼이나 쓰고 호걸 흉내를 내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난리를 일으키는 것을 좋아해 재난을 보고 즐거워했다. 막부(幕府, 원소를 지칭함)께서 지난 날 매를 날려 사냥하는 것처럼 그를 거느리고 흉악한 역적들을 쫓아내고 제거하고자 했다.
동탁이 계속해서 국가와 관부를 난폭하게 침범했다. 이리하여 막부께서는 칼을 잡고 휘두르며 북을 울려 발해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산동에 명령을 내렸다. 천하의 영웅들을 두루 거두어들이면서 그들의 허물은 버리고 오직 능력만을 보고 썼다.
그런 이유로 조조가 책략을 세우는 일에 참여하고 자문하게 된 것이다. 이는 그에게 매와 개의 재능을 다하게 하고 발톱과 어금니의 임무를 맡긴 것이었다.
이렇게 되었건만 그는 어리석고 경박하고 생각이 짧아 가볍게 진격했다가 쉽게 격퇴 당하곤 했다. 상하고 죽고 꺾이고 쭈그러들어 여러 번 장수와 사졸들을 잃었다. 그때마다 막부께서는 병력을 나누어 주도록 신속히 명령을 내려 그에게 병력을 보태어 주거나 다시 병력을 모을 수 있게 해 주어 그의 군세를 완전히 보완해 주었다.
표를 올려 동군태수(東郡太守) 겸 연주자사(兗州刺史) 되게 해 그를 장수로 쓰고 같은 편으로 받아주었다. 위축된 세력을 회복시켜 진(秦)나라의 장수를 사로잡는 큰 공을 한 번 세울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조조는 막부의 도움에 편승해 발호하면서 방자하게도 가혹하고 포악하게 행동했다. 백성들의 것을 잘라 빼앗고 껍데기를 벗기는 일에는 으뜸이었고 현명한 사람을 잔인하게 해치는 일을 잘했다.
고 구강태수(九江太守) 변양(邊讓)은 뛰어난 재주를 지닌 걸출한 은사로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었다. 그러나 그는 정직한 낯빛으로 직언을 하고 말할 때 아첨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 그의 몸이 높이 매달려지는 횡액을 당했다. 그의 처도 역시 불에 타 죽는 재앙을 만났다.
이로 인해 사림(士林)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여기에 백성들의 원망이 두루 보태져서 일개 사내가 팔을 한 번 휘두르자 주 전체가 같은 목소리로 들고 일어났다. 이리하여 서주에서 패전하고 곤궁에 처했으며 연주 땅은 여포에게 빼앗겼다.
조조는 동쪽 변방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며 발 디디고 설 곳이 없어졌다. 막부께 오로지 강한 줄기로서 약한 곁가지를 도와주는 의리 때문에 그를 배반자의 무리로 여기지 않고 다시 군대를 지원해 주었다.
조조가 나아가 정벌하는 곳마다 석권하고 북소리와 징소리를 울려 여포의 병력을 깨뜨리고 부순 것은 다 이에 힘입은 것이다. 그를 사망의 재앙에서 건저 올려 다시 그곳의 방백의 임무를 맡게 해 주었다. 이는 곧 막부께서 연주의 백성들에게 베푼 덕이 없었기 때문이나 결과적으로 조조에게 크게 도움을 준 것이다,
후에 천자의 대가가 동쪽으로 다시 돌아올 때 여러 도적들이 조정을 어지럽혔다. 그 때 기주는 북쪽 변방에 긴급한 일이 있었다. 비적들이 황급히 흩어지는 판국이었다. 그러므로 종사중랑장 서훈(徐勛)을 곧바로 조조에게 파견해 교사와 사당을 수리하고 어린 군주를 호위하고 지키게 했다.
그러나 그는 곧 사사로운 뜻을 드러내어 제멋대로 행동했다. 천자를 협박해 허도로 천도하게 해 사실상 연금했다. 조정의 백관들을 멸시하고 모욕했다. 제멋대로 법을 폐지하고 기강을 문란하게 했으며 앉아서 삼공을 불러댔다.
조정을 제멋대로 다스리고 작위와 상을 탐냈으며 형벌과 살육을 목구멍에 들이댔다. 아끼는 자는 오대조까지 빛나게 하고 미워하는 자는 삼족을 멸했다. 여럿이 담론하는 사람들은 드러내놓고 죽이고 몰래 숨어 의논하는 자는 은밀히 죽였다.
이렇게 되니 사람들은 길에서 만나도 서로 눈짓만 교환하고 백관들은 입을 함구하게 되었다. 상서에게 조회 내용을 기록하게 하고 공경의 충원과 평가는 다 자기가 했다.
고 태위(太尉) 양표(楊彪)는 삼공의 직을 두루 역임하고 국가 최고의 지위를 누렸으나 아무런 죄가 없었음에도 단지 조조에게 흘겨보는 눈초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매질과 고문을 당했다. 오형을 모두 가하면서 감춘 것을 불고 진실을 털어놓게 하고자 했다. 법규는 전혀 돌아보지 않았다.
또 의랑 조언(趙彥)이 충간 직언하자 그의 의논이 받아들여졌다. 성조(聖朝)께서 그의 말을 들어주시어 용납하고 상을 하사했으나 조조가 기회를 보아 권력을 남용했다. 심문을 기다리지도 않고 제 맘대로 선채로 조언을 죽여 버리자 언로가 두절되었다.
양효왕(梁孝王)은 선제와 같은 어머니에게 태어난 동생이므로 능묘와 봉분을 높게 드러내고 소나무와 전나무,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심어 공손하고 엄숙하게 받들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조조가 장교와 군리와 병사들을 이끌고 친히 발굴에 임해 관곽을 깨뜨려 시신이 드러나게 했다. 무덤에서 금은보화를 약취하니 성조로 하여금 눈물 흘리며 울게 했다. 선비들과 백성들이 다 마음속으로 애통하게 여겼다.
또 발구중랑장과(發丘中郎將)과 모금교위(摸金校尉)를 설치하여 지나가는 곳마다 무덤을 파헤쳐 유해가 노출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몸은 삼공의 지위에 있으면서 하는 짓은 오랑캐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가를 멸망시키고 백성들을 학대해 그 해독이 사람과 귀신에게까지 미쳤다.
거기에다가 정사를 자잘하게 해 법령을 세밀하게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가혹하고 무자비하게 처벌한다. 손을 들어 빠짐없이 모두 거두어들이니 비단과 생사를 실어 나르는 수레가 좁은 길을 가득 채우고 구덩이와 함정을 파 변방의 길을 막으니 발을 내딛기만 해도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와 같이 하니 연주와 예주에 편안한 주민이 없고 황제의 도읍은 원망으로 탄식하고 부르짖는 소리가 가득하구나.
고금의 서적을 두루 살펴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가혹하고 사나운 도리를 모르는 신하에 관한 기사를 보아도 조조보다 심한 자는 없었다. 막부께서는 외방의 간적들을 다스리는 일로 바빠 그를 제대로 타이르지 못했다. 또 웬만하면 참고자 하는 뜻에서 잘못된 것이 있어도 미봉하고 넘어가고자 했었다.
그러나 조조는 이리와 승냥이와 같은 야심이 있어 화를 자초할 계책을 은밀히 품고 마침내 국가의 근간을 흔들어 꺾고자 했다. 한나라 황실을 약하고 외롭게 만들고 곧고 올바른 사람들을 조정에서 제거하고 효웅이 되어 제 맘대로 했다.
지난 해 북쪽을 정벌해 공손찬을 토벌했다. 흉악한 반역의 무리를 강하게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다. 일 년 동안이나 포위해 막고 지켰다. 그로 인해 조조를 아직 격파하지 못했다. 조조는 몰래 교서를 내려 임금을 돕는 군대라고 사칭하면서 북쪽을 엄습하고자 했다. 갑자기 병사를 이끌고 배를 타고 황하를 건너 북쪽으로 침범했다.
그가 자신의 인간성을 드러낼 때 마침 공손찬 역시 사납고 날랜 오랑캐라 막부의 군대가 물러나는 창피를 겪었다. 그러나 저 꼬리 짧은 개의 의도가 실현되지는 못했다. 저가 오창에 주둔해 황하를 막고 굳게 지키고자 하나 이는 사마귀가 앞다리를 들어 큰 수레가 가는 길을 막겠다는 것과 같다.
막부는 하늘의 신령을 두려워하며 한나라를 받들고 온 세상의 창끝을 들어 적을 치고자 하니 장극을 든 보병이 백만이요 오랑캐 출신의 기병이 천개 부대이다. 정예병 중에서 가려 뽑고 잘 훈련시킨 인재들을 떨쳐 일어나게 하고 훌륭하고 굳센 궁노수들을 기세 좋게 달려 내려가게 하고자 한다.
병주의 군대는 태행산맥을 넘어 내려오고 청주 군대는 제하(濟河)와 누하(漯河)를 건너고 막부의 대군은 경쟁적으로 두루 황하 전역으로 전진할 것이다. 형주의 군대는 완(宛)과 섭(葉) 땅으로 침입해 조조의 후방을 끊을 것이다. 진군하는 소리가 천둥과 벼락같이 진동하고 있다. 아울러 오랑캐의 군대까지 모여들고 있다. 불을 질러 불과 불꽃이 높이 날아오르게 하고 창해를 뒤집고 불똥 튀는 석탄을 들이 붓는다면,어찌 멸망하지 않을 자가 있으리오?
지금 한나라의 근본이 업신여겨진지 오래되어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 졌다. 조조가 정병 칠백으로 궁궐을 둘러막고 지키면서 곁으로는 호위한다하면서 속으로는 천자를 잡고 구류하고 있다. 그가 이것을 기화로 작란을 치고 찬역의 화를 저지를까 두렵다. 마침내 충신은 간뇌도지(肝腦塗地)할 때이고 열사는 공을 세울 기회이니 이 때를 놓치지 말지어다!”
조조가 이 격문을 받아들고 이를 갈았다. 그는 자신의 조상을 들먹이며 욕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평생 남들의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었던 그의 조부와 부친이 자신으로 인해 이름이 떳떳해 지는 것이 그의 필생의 소망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더욱 오명을 뒤집어쓰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이 조조의 각오였다.
“조상님께 까지 욕을 퍼부어 대다니! 대체 어느 놈이 이 글을 썼다더냐?”
“진림이라 하더이다.”
모시는 사람들이 모기 소리만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답했다.
조조는 격문을 땅에 내동댕이치며 부르짖었다.
“썩은 선비 놈이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다니! 내 이놈을 잡아서 가만 두지 않으리라!”
삼국지 위서에 보면 조조를 규탄하는 격문을 쓴 사람은 진림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 글이 진림의 글인지는 확실치 않다.
원소가 조조에게 선전포고한 것은 건안5년(200년) 여름이었다. 조조가 조인과 사환을 보내 황하를 건너 휴고를 친 것이 그해 4월의 일이었다. 조조는 사견을 함락시킨 후 오창으로 돌아와 진을 치고 있었다,
이때 원소가 이미 공손찬의 세력을 병합하여 네 개 주의 땅에 정병만 십여만이 넘었다. 장차 허도로 진공하고자 하니 여러 장수들이 다 맞아 싸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조정에서 원소를 당할 수 없다는 중론을 퍼트리는 자들이 있었다. 업성을 다녀왔던 공융이 대표적인 인사였다. 그는 건안3년(198년) 경부터 이런 의견을 유포하고 다녔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공융이 순욱에게 말했다.
“원소는 땅이 광대하고 병사가 강대하오. 전풍(田豐)과 허유(許攸)는 지혜와 계략이 뛰어난 선비들이 모사(謀士)가 계책을 세우고 있고,심배(審配)와 봉기(逢紀)와 같이 충성을 다하는 신하들이 그의 일을 맡고 있소. 안양(顏良)과 문추(文丑)는 그 용맹이 삼군에 으뜸으로 각각 원소의 군대를 통솔하고 있소. 이기기가 극히 어려울 것이오!”
순욱이 반박했다.
“원소가 비록 병사가 많다고는 하지만 법이 정돈되어 있지 않소이다. 전풍은 성정이 강직해 윗사람을 범하는 경향이 있고 허유는 탐욕스럽고 수양이 부족합니다. 심배는 외골수인데다가 지모가 없고 봉기는 과단성은 있으나 윗사람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남아 뒷일을 감당했을 때 만약 허유의 가족들이 법을 위반하게 된다면 이들은 반드시 내버려두지 못할 것이고 내버려두지 않는다면 허유는 반드시 변심할 것입니다. 안양이나 문추 따위야 필부의 용맹에 불과하니 한 번의 싸움으로 사로잡을 수 있소이다.”
순욱이 큰 소리 친 것은 나름의 정보에 의해 정확한 판단을 내린 것이지만 공융 등의 입막음을 위한 측면도 있었다.
급기야 조조까지 직접 나서 장수들의 불안을 떨쳐버릴 필요가 있었다. 조조가 말했다.
“나는 원소의 위인됨을 잘 알고 있소. 뜻은 크지만 지혜는 작고, 얼굴빛은 사나운 척해도 담력은 적으며, 시샘이 많고 남을 이기려고만 드니 위엄이 없소. 병력은 많으나 업무가 명확하게 분장되어 있지 않고, 장수들이 교만해 정령이 일치하지 않소. 토지는 넓고 양식이 풍부하다고 해도 내게는 나에게 바쳐진 제물로 밖에 여겨지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