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의 역사는 곧 부산의 역사
동래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가야문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복천동 고분군이 대표적이다. 복천동 고분군은 동래 중심가 북쪽에 반달모양으로 에워싸고 있는 마안산의 중앙부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다. 1969년 주택공사로 고분군의 일부가 파괴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이후 1995년까지 부산대박물관과 부산시립박물관을 중심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됐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구는 모두 169기에 달하며, 출토유물만도 1만여 점에 달한다. 경주지역과 같은 화려한 금은제 유물은 많지 않으나, 대신 철제유물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무구류(武具類)가 많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갑옷 연구 및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동래읍성은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과 읍민이 혼연일체가 돼 최후의 한사람까지 항전하다 모두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던 최대의 격전지였다. 1592년 왜적이 동래읍성으로 쳐들어와 송상현 동래부사에게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송공은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라는 글을 나무판에 써 적진으로 던지고, 왜적과 싸우다 순절했다. 고려말 우왕 13년(1387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동래읍성은 임진왜란 이후 나라의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감안해 동래부사 정언섭이 과거의 성보다 훨씬 규모를 크게 고쳐 쌓았다. 이 성이 현재 흔적으로 남아 있는 동래읍성의 기원이다.
일제 강점기 때 시가지 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평지의 성벽은 모두 철거됐다.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성벽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마안산을 중심으로 한 산지의 성곽을 빼고는 성벽은 자취를 감췄다. 동래구는 1979년부터 동래읍성 복원을 시작해 북문, 동장대, 서장대, 북장대 등과 성벽 634m를 복원·보수했다. 지난 2005년에는 인생문 및 주변 성곽을 복원하는 등 복원과 보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아직도 진행형이다.
충렬사는 동래부사 송상현을 모시기 위해 선조 38년(1605년) 동래부사 윤훤이 동래읍성 남문 근처의 농주산에 송공의 위패를 모신 송공사(宋公祠)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시초다. 그 후 인조 2년(1624년)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지면서 충렬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안락동 현재의 충렬사 자리로 이전하면서 사당을 창건하고 강당과 동·서재를 지어 안락서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제 때 민족정기를 북돋운다는 이유로 각종 방해를 받아 낡고 허물어져 갔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충렬사 정화공사를 실시, 현재의 규모로 정화한 후 임진왜란 때 부산에서 순절하거나 공을 세운 선열 92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가장 오래된 온천 ‘동래온천’
1960~70년대만 해도 동래는 국내 최고의 신혼여행지였다. 그 당시만 해도 해운대해수욕장과 광안리해수욕장, 범어사, 금정산 등이 모두 동래구에 속해있었다. 현재 동래구는 옛 동래읍이었던 지금의 수민·복산·명륜·안락동을 중심으로 한 전통문화 지역, 온천장 및 금강공원 일대를 중심으로 한 위락·관광레저 지역, 사직운동장일대의 스포츠·문화 지역으로 나뉜다.
동래온천은 우리나라 온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온천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 신문왕 2년(682년)에 충원공이라는 재상이 동래온천에서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동국여지승람 명승고적조에는 “동래온천은 병자들이 목욕을 하면 문득 나아 신라시대 때부터 왕들이 여러 차례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 또 그 표시를 남기고자 온천 주위의 네 귀퉁이에 구리 기둥을 세웠다. 온천의 수온은 계란을 익힐 수 있을 정도로 뜨겁다”라고 적고 있다.
동래온천의 수온은 평균 63도. 온천물을 식혀 사용하는 약알카리성 식염천이다. 온천수를 마시면 만성 위장병 및 위장근약증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류머티즘 질환, 운동장애, 신경통, 관절염, 피로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뿐만 아니라 말초혈액순환 장애 등에도 효험이 있는 건강온천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동래 온천장에는 동양 최대의 공중목욕탕으로 알려진 허심청을 비롯해 31개소의 목욕·숙박업소가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성업 중이다. 최근 온천장 일대를 정비하면서 꾸민 노천 족욕탕 등은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금강공원은 부산의 명산인 금정산 기슭에 위치한 근린공원. 작은 금강산을 보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소금강에서 공원이름을 따왔다. 울창한 숲과 기암절벽, 골짜기마다 흐르는 맑은 시냇물 등이 신선경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케이블카를 비롯해 각종 놀이시설이 설치돼 있고 식물원과 국내 최초의 해양자연사박물관 등이 들어서 있다. 또 공원 안에는 독진대아문, 임진동래의총 등 여러 문화유적지도 산재해 있어 역사교육장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옛날 전투 체험 ‘동래읍성 역사축제’, 최대 노래방 ‘사직야구장’
임진왜란 초기 최대 격전지의 하나인 동래읍성지를 이용한 ‘동래읍성 역사축제’는 부산시 최우수 축제로 5년 연속으로 선정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2010년부터 동래의 오래된 민속 전통행사였던 동래줄다리기가 복원돼 새로운 볼거리와 시민들의 참여 체험의 장으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동래줄다리기는 당시 동래부민 1만여 명이 매년 음력 1월 15일에 옛 대동병원 앞~동래시장~동래구청~명륜초등학교 앞에서 동군과 서군으로 나눠 이틀 또는 사흘 동안 줄을 당겼던 우리 민족의 대동놀이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노래방’인 사직야구장은 동래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프로야구가 시작되는 봄부터 가을까지 사직야구장은 야구팬의 응원열기가 식지 않는다. 사직야구장을 비롯해 인근에는 테니스장과 실내수영장이 있고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사이클과 인라인스케이트, 보드 등의 생활체육을 즐기고 있다.
동래구 곳곳이 명소
도심생태 하천인 온천천은 동래구와 금정·연제구를 관통해 흐르는 길이 14㎞ 하천(동래구 구간은 5.65㎞)이다. 90년대 초까지 도시화로 인해 생활하수가 하천을 오염시켜 악취를 내뿜는 거대한 하수구였다. 그러나 부산시와 동래구 등이 함께 힘을 모아 자연생태하천 살리기에 힘썼다. 현재는 계절에 관계없이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도심 휴식공간으로서 각광받고 있다. 특히 봄철에는 수십 년 된 벚꽃나무에서 피우는 벚꽃이 화사한 꽃터널을 연상케 한다. 이밖에 장영실 과학동산이 꾸며져 있고 세계적인 육종학자인 우장춘 박사의 기념관, 애국지사 박차정 의사 생가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