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에 이르러 문화콘텐츠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우선 생소하기만 하던 '콘텐츠'라는
말이 어느새 익숙한 단어가 되었고, 문화콘텐츠계를 벗어나 일반인들, 심지어 어린이들까지도
콘텐츠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방송이나 인터넷, 책, 교육 등 다양한 곳에서 콘텐츠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제 콘텐츠는 기존의 문화산업적 영역을 벗어나 일상적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예컨대 요즘 사람들은 "네가 가진 콘텐츠가 뭐야? (너의 가치가 뭐야?)"라고 말하곤 한다.
콘텐츠가 '작품'이라는 개념을 넘어 일종의 '꺼리' 정도로 의미가 확대된 것이다.
요즘 문화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용이해졌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편의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그만큼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단적인 예로 방송 매체의
경우만 해도 지상파 방송사, 케이블TV업체, 위성방송업체, OTT업체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게다가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턴 글로벌 플랫폼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가
잇따라 출현하여 콘텐츠의 생태계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2016년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것을 필두로 해서 2021년엔 디즈니플러스,
애플티브이플러스가 한국에 진출했다. 국내 플랫폼 회사도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 플레이,
카카오 티브이 등 무려 10여 개가 진출하여 총력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하나의 매체를 선택하여 주어진 콘텐츠를 소비하기보다 플랫폼을 선택하여
그 속에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형식으로 문화소비의 패턴이 변하고 있다. 또 플랫폼
사용자가 일정 기간 구독료를 내고 콘텐츠를 이용하는 이른바 '구독경제' 형태가 등장했다.
콘텐츠의 생산도 기존의 방송사 소속 연예인이나 PD, 작가, 제작진이 아닌 여러
독립제작사들이 폴랫폼업체의 지원을 받아 콘텐츠를 제작해서 납품하는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에 따라 영화계의 경우, 기존 영화관은 쇠퇴하고 다양한 플랫폼이 잠식하고 있다. 사람들이
몇 달에 한 번씩 영화관에 가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 속 플랫폼에서
영화를 보는 현대적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극장의 개인화’가이루어졌다.
드라마의 경우도 글로벌 플랫폼업체의 가세로 콘텐츠의 생산이 용이해짐에 따라 문화콘텐츠의
개별 맞춤화 시대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즉, 개인의 취향과 욕망에 맞게 세분화된 콘텐츠가
확산되고 있다.
콘텐츠 자체도 무거움을 벗고 물리적·심리적으로 부담이 적은 짤막하고 가벼운 콘텐츠가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10초 내외의 숏폼 콘텐츠나 10분 내외 웹드라마의 확산이 그것이다.
2010년 말부터 웹툰이나 웹소설 등의 콘텐츠가 득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그와 함께 콘텐츠의 탈문자화 · 탈이차원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MZ세대(1980~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Z세대를 아울러
'MZ세대'라고 함)의 가장 큰 특징은 정보의 수용방식이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활자나 문자 같은 텍스트로 세계를 인식하던 이전 세대와 달리, 이미 인터넷이 존재하는 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정보를 3차원적으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맞는
콘텐츠는 영상이 문자보다 훨씬 방대한 양을 차지한다.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인데, 그에 따라 문화콘텐츠계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MZ 세대의
문화콘텐츠 업계로의 진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3차원적 이미지나 감각적
영상을 이전 세대가 못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요즘 유행하는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서사성이 떨어지고, 감각성이나 신체성 등 다른
측면이 훨씬 밀도 있게 다뤄지고 있다. 서사성이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서사는 다양한 요소중의 하나로 다뤄지고 있다. 어쩌면 요즘 문화콘텐츠계에서 스토리텔링의
주목성이 떨어지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또 근래에 보이는 신세대들의
독해력 · 문해력의 퇴화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나타나는 부수적 현상인 듯하다.
- 정창권 저, '문회콘텐츠 스토리텔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