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이도와 문자이야기
한 나라의 문자가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고 성공적으로 그 나라의
문자로 정착한 예는 한글이 유일무이하고 한다. 그 만큼 한글창제는 인류문화사적인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매우 큰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관계로 한글의 세계문화
유산등록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문자는 그냥 문자가 아니다. 문자가 정치사회적으로 미치는
힘의 크기는 가늠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크다.
지구의 절반을 정복하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의 원나라는 원세조가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서 티베트출신의 승려를 시켜서 티베트 문자를 개량한 표음문자
파스파를 만들고 원의 국서로 선포했지만 한자에게 밀려서 정부의 공식문서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거의 사용이 되지 않았었다.
국민들이 사용하지 않는 문자는 문자로서의 힘이 지극히 제한되어서 몽골제국은 결국
중국대륙을 완전히 지배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따라서 파스파는 원제국의 멸망과 함께
자신의 조국인 몽골에서 조차 버림을 받고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어떤 문자를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권력의 지도가 달라진다. 원제국의 멸망 후에 몽골의
신흥세력은 구세력인 몰아내기 위해서 황제 테무진의 후예들이 사용하던 문자를 폐하고
위구르계통의 표음문자를 몽골문자로 채택하게 된다.
이처럼 문자는 권력지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왕으로 추대되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정도전과 사대부에 있었다.
태종이방원은 불안한 왕권을 사대부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 정도전과의 싸움을 벌였고
정도전을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조선은 여전히 사대부들의 힘이 막강하여 왕권과 신권은 세력균형을 유지한다.
이러한 사정을 왕자시절부터 겪어온 세종 이도는 백성들의 힘으로 사대부들을 견제하고자
백성들을 위한 글자를 창제하기에 이른다. 물론 백성들의 힘이 커지면 종국에는 왕권도
위협을 받을 수 있음을 생각했었겠지만 세종의 선택은 백성들의 힘을 키워주는 쪽을
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종이도의 이러한 생각이 500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데, 문자가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글자를 통해서 백성들이 힘을 가지고, 왕이 그 백성들을 직접
통치하는 것은 오늘날의 대통령제나 입헌군주제와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노비제도를 두고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확고히 하여 사대부의 나라를 영원히 이어가려고
했던 정도전의 노력은 결국 세종의 한글창제로 20세기에 이르러 완전히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왕조의 공식문자는 한글창제 후에도 상당기간 한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한자와 유학이라는 학문을 무기로 한 사대부들의 권력독점이 500년 이상 지속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자를 독점하고 있는 사대부들의 막강한 힘은 항상 왕권에게는 최대의 위협이 되는 요인
이기에 조선왕조 500년 동안 신권과 왕권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권력암투는 지속되었다.
조선왕조 말기에는 신권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면서 왕은 꼭두각시에 불과하게 되고 왕들의
잇따른 의문사는 신권에 의해서 치밀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세종이도가 조선의 문자 한글을 창제한 것은 백성의 힘을 길러주고 그 백성의 힘으로 사대부들이
누려온 독점적인 문자권력을 해체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종이 어떤 의도로 한글을 창제하였든 그것과는 별개로 분명한 것은 우리는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창제한 한글의 혜택으로 국민들이 정부에 대항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고,
전자산업이 비약적인 발전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된 근본적인 요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말은 세계에서 제일 배우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문자인 한글은 세계에서 제일 배우기
쉬운 문자다. 표음문자인 한글은 뜻을 모르더라도 문자로 표현하는 데는 하루나 이틀이면
가능하다.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들도 한글은 쉽게 읽는다.
이제 한글이라는 글자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자를 독자적으로 쓰는 자랑스러운 나라의 국민들이다.
세종대왕 이도가 만든 한글을 기념하는 한글날은 3.1절보다도 중요하고 제헌절이나
어린이날보다도 훨씬 중요한 날이다. 이러한 세계문화유산 한글이 창제되어 반포한 날이
국경일이 아니라는 것은 지나가는 강아지가 웃다가 배꼽이 빠질 일이다.
한글날의 국경일제정을 위한 국민적인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국민 여러분!
한글날은 반드시 국경일이 되어야 합니다.
<2011년 11월 27일 청너울의 넋두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