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태양이 높은 데서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루카 1,78-79)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은 공통의 테마, 곧 하느님께서 선택한 두 인물의 탄생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우선 오늘 독서는 구약의 판관 삼손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복음은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며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독서와 복음의 두 인물의 탄생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탄생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는 구약의 인물 삼손이 하느님의 약속으로부터 태어나게 되었다는 사실과 신약의 시작을 알리는 인물 세례자 요한은 연대기적으로 또 성경의 의미적으로 새로운 계약의 완성을 의미하는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은 한 목소리로 성탄, 곧 예수님의 거룩한 탄생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 탄생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해 다시금 깨닫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두 탄생 이야기 모두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삼손과 세례자 요한을 낳게 되는 그 어머니들, 곧 마노아의 아내와 즈카리야의 아내 엘리사벳의 모습입니다. 두 여인은 모두 임신할 수 없는 몸이었다고 성경의 저자들은 우리에게 전합니다. 그 가운데 루카 복음사가는 엘리사벳의 그 같은 처지를 전하면서 그녀의 나이마저도 많아 아이를 갖게 될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였음을 덧붙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으로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던 그들은 오직 단 한 가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아픔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이 아픔은 당시 유다인의 상황 속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의미가 그 가문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축복이자 은총이었다는 사실, 곧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후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며 그 후손을 많이 갖으면 갖게 될수록 그 집안에 베풀어진 하느님의 축복이 커다랗다고 믿고 있던 유다인들의 믿음관을 살펴보았을 때, 마노아의 아내와 즈카리야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로 인해 겪었을 고통과 상심, 그리고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과 아픔이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그녀들의 가족, 곧 마노아와 즈카리야가 겪었을 고통 역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이 보낸 천사가 다가와 다음과 같이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판관 13,3)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리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루카 1,13)
천사의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그들 모두 어안이 벙벙하고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인줄 알아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천사의 방문 자체도 놀랍지만 천사가 전하는 그 소식이 그들로서는 더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독서의 판관기의 저자는 그 놀라움의 정도에 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루카 복음사가가 천사의 방문을 받는 즈카리야의 모습과 그의 반응을 묘사하는 부분을 살펴보면, 즈카리야가 그 소식을 듣고 느꼈을 놀라움의 정도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즈카리야는 천사가 전하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유다인의 사제로서 하느님 앞에서 사제의 직무를 수행하던 사제 즈카리야, 누구보다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며 하느님 앞에 의로운 사람,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없이 살던 즈카리야였지만 막상 주님의 천사가 자신의 앞에 다가왔을 때 두렵고 무서웠을 것입니다. 감히 주님의 천사를 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던 그가 천사를 마주하게 되고 또 천사가 전하는 소식을 듣고 자신 스스로가 하느님으로부터 불리움을 받은 사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으로 두려움과 의구심과 의혹의 마음이 들어 천사의 말에 반박을 제기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아이를 갖게 되는 순간까지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지만, 그 소식을 들은 후부터 말을 하지 못한 채 자신이 천사를 만나 그 순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 홀로 그 순간을 곱씹고 곱씹으며 그 모든 의미를 되짚어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됨으로서 자신에게 전해진 천사의 말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천사의 말의 의미는 보다 분명히 느껴지며 그 천사의 말은 자신에게 이루 말할 수 기쁨과 환희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즈카리야의 아내 엘리사벳의 다음의 말에서 그들이 느꼈을 기쁨과 환희가 어느 정도였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루카 1,25)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이 겪어야 했을 고통과 슬픔, 그리고 그토록 하느님을 간절히 믿고 하느님의 계명과 규정에 따라 한 점 흠 없이 살며 그들이 바라는 오직 한 가지 소원, 아이를 갖게 해 달라는 소원을 그토록 간절히 청했음에도 그 청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들이 느꼈을 하느님께 대한 원망과 그를 넘어서는 배신감 그리고 그 분께 대한 믿음의 의혹은 아무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믿음의 끊을 놓지 않는 그들은 결국 하느님으로부터 그간의 모든 슬픔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큼의 기쁨과 환희를 맛보게 됩니다. 그들의 이 기쁨의 환호를 루카 복음을 인용한 오늘 영성체송의 말씀 안에서 다시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영성체송은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합니다.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 데서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루카 1,78-79)
사랑하는 여러분, 매일 매일의 태양이 떠오르듯, 그리고 그 태양이 세상을 비출 때, 온 세상이 어둠에서 빛으로 밝혀지듯 이제 곧 오실 예수님은 빛으로서 우리에게 오시어 태양 빛이 온 세상을 비추듯 죄의 어둠 속에 있는 우리들을 당신 사랑의 빛으로 밝혀주십니다. 그리고 영성체송의 말씀이 전하듯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만일 여러분의 지금의 삶 속에서 풀지 못하는,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과 난관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워하고 계시다면 오늘 우리에게 들려진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느님 그 분은 태양이 온 대지를 비추듯, 고통과 슬픔이라는 어둠 속에 있는 우리들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빛으로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기쁨과 환희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의 사랑을 믿고 그 분께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오늘 말씀이 전하는 마누아의 아내와 즈카리야의 아내 엘리사벳이 느낀 기쁨과 환희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전해 주시는 이 희망의 메시지를 듣고 그것을 마음에 깊이 새겨 그것을 여러분의 희망의 원천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여러분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전하듯 여러분 모두가 메시아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대림의 시기를 보내며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당신의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을 믿고 또 믿으며 그 분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충실하여 마침내 오실 그 분 예수님과 함께 참 기쁨과 환희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 데서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루카 1,7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