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공의에 도전할 자가 있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8:33-34).
본문에는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와, ㉡ “누가 정죄하리요?” 하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누가…송사하리요, 누가 정죄하리요” 한, “송사(訟事)와, 정죄”(定罪)는 한 법정(法廷)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다루는 것이 좋습니다.
사도는 이렇게 묻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의롭다고 여겨주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검사(檢事)가 되어서 송사하고, 누가 재판장(裁判長)이 되어서 유죄언도를 내릴 수가 있단 말이냐?” 이는 “하나님의 공의(公義)에 도전할 자가 있느냐” 하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신 것은 자기 아들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행해주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①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33상) 합니다.
㉠ 이 물음은 송사할 자가 없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송사를 당할 가능성(可能性)이 있기 때문에 말씀하는 것입니다. 송사를 한다 해도 그 송사가 받아드려지거나 성립될 리가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 성도들을 송사하는 자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10절에서는, “우리 형제들을 참소(讒訴)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합니다. 스가랴 3장에는 송사 당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슥 3:1)을 보여주십니다.
㉢ 왜 송사를 당하고 있는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3) 있기 때문입니다. 송사를 당할 만한 이유가 그에게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사탄을 책망하시면서 천사들에게 명하시기를,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罪過)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4) 하시는 것이 아닌가!
②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입혀주셨다는 “아름다운 옷”을, 본문에서는, “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고 말씀하면서, “누가 정죄하리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누가 송사히리요” 하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 형제도 송사를 당해 본 경험이 있으시겠지요. 사탄이 송사합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디에 근거하여 성도들을 송사하는가?
㉮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律法)이라”(고전 15:56), 율법에 근거하여 송사합니다. 이점을 7:11절에서는,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7:11) 합니다.
㉯ 하나님이 주신 율법까지도 악용을 하는 사탄은, 또한 우리에게 주신 “양심”(良心)을 이용해서 송사를 합니다.
③ 더 이상 “법 아래 있지 아니 한”(6:14)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양심을 통해서 오는 송사(訟事)와 정죄(定罪)감이 가장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성격적으로 내성적인 사람, 책임감(責任感)이 강한 사람, 그래도 잘 믿어 보려는 사람들에게 많습니다.
㉮ 사탄의 제 1차적인 작전은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실패하게 되면,
㉯ 두 번째 작전으로 믿는 자를 송사하고 정죄하여 무력(無力)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이 작전에 속지 말아야만 합니다. 실수하고 넘어졌을 때는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시 51:17)이 되어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5:20) 하고 선언하십시오.
④ 그래도 마음이 정죄감에서 자유 함을 얻지 못한다면,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33) 하고 외치십시오.
㉠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떤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택(擇)하신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호칭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로 작정하거나, 결심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택(擇)함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 “옆 집 순희 엄마는 예수 믿기로 결심 했대요” 하는 말과, “순희 엄마는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이래요” 하는 말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사도의 의중은 “택하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택하시고, 성취하심”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 것임을 드러냄으로 우리 구원의 확실성을 확고하게 세워주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하는 것입니다.
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33하) 하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미 의롭다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 그것은 이미 과거(過去)에 이루어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김선운 주석에서 지적한 대로 원문의 시제(時制)는 “의롭다 하신” 과거완료시제가 아니라, “의롭다 하시는” 현재시제(現在時制)입니다. 성도들이 송사를 당하고 정죄를 당할 때마다 지금도 계속적으로, “내가 너를 의롭다고 인정하노라” 하고 선언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⑥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여 주신 일은 하나님의 공의(公義)에 조금도 손상을 입으심이 없는, 합법적인 선언이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 사도는 3절에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즉 우리 대신 자기 아들에게 정죄하신 연후에 의롭다고 선언하여 주신 합법적인 절차를 밟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방면으로 다가오는데,
㉮ 첫째는 이렇게 행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셨다면, “송사와, 정죄”를 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 둘째는 이렇게 하시고야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셨는데, 어찌 죄 가운데 거할 수가 있단 말이냐 하고 정신 차리게 합니다.
⑦ 사도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34상) 하고, 정죄 할 수 없는 증거(證據)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4:25절에서도,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 하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하나님”께는 그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여겨주심을 가능케 하는 근거(根據)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시는 송사를 당하거나 정죄를 당하지 않는다는 보증(保證)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정죄 당하심이 아니었다면 주님께서 죽으셔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⑧ 다시 강조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 누가 정죄하리요”(33, 34),
㉠ 우리들은 대적(對敵)에게 송사를 당하고, 정죄를 당할 만한 실수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6:14) 하고 말씀합니다. 실수를 범했을 때에라도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나는 네가 송사하는 바를 인정한다. 그러나 듣거라. 나는 네 주관(主管) 하에 속해 있지 아니한 사람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왕 노릇 하시는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아시겠습니까?
㉡ 우리는 징계를 받아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받으며, 매를 맞아도 우리 아버지께 맞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요일 1:9) 것입니다.
형제여. 실수하고 넘어졌을 때 상한 심정으로 통회(痛悔)는 하되, 율법과 양심을 통해서 송사하고, 정죄하는 사탄의 궤계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한 의롭고 진실한 구원행사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