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욕심으로 지원대학 실패하는 학생들
July 25, 2021 이강렬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 한 장면. 자녀에게 과도한 기대를 쏟는 이 땅의 아버지들이 꼭 봐야 할 영화다. <사진=터치스톤픽쳐스>
[아시아엔=이강렬 미래교육연구소장] 필자는 최근 많은 부모님들과 미국대학 진학 및 학자금보조 받기 등과 관련해 코로나로 줌 상담을 주로 한다. 자녀가 대학을 선택하고, 혼자서 원서작성을 하도록 하는 방임형 부모가 있는 반면 “내가 도와주니 따라오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들도 있다. 때로는 엄마 입김이 너무 커서 아이가 주눅이 들어있는 경우도 많이 본다.
얼마 전 상담을 한 아버지는 의욕이 넘쳤다. 아버지 생각은 ‘우리 딸은 반드시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해야 한다’였다. 그는 ‘아이가 00대학에 합격하면 좋겠다’는 게 아니라 ‘내 아이는 그 대학에 반드시 합격한다’는 강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필자가 강의를 통해 자주 말하지만 ‘가고 싶은 대학’과 ‘갈 수 있는 대학’은 분명 다르다. ‘가고 싶은 대학’은 희망사항이고 ‘갈 수 있는 대학’은 현실이다.
그런데 많은 학부모들은 ‘가고 싶은 대학’을 ‘갈 수 있는 대학’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적으로 ‘가고 싶은 대학’은 상향(Reach)인 경우가 많다. ‘갈 수 있는 대학’은 적정 혹은 안정권 대학이다.
필자가 위에 언급한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 자녀는 학교 내신성적이 가중치로 3.4 정도 됐다. 금년에 미국 대학들의 상당수가 SAT/ACT 점수를 내지 않아도 되는 옵셔널 대학이지만 하여간 이 학생이 확보한 ACT 점수는 32점이었다.
그런데 이 학생의 아버지가 선택한 대학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앰허스트 △스와츠모어 △카네기멜론 △피처 △클러어몬트 매케나 △콜게이트 △해밀턴 △옥시덴털 △오버린 등이었다.
더구나 집안 사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미국 대학에서 재정보조까지 반드시 받아야 하고, 아이는 지난해 대학 지원에서 모두 떨어지고 재수를 하는 상황이었다.
이 학생은 서울 강남의 모 유학원에서 미국 대학입시 컨설팅을 받고 있었다. 필자에게 ‘미국 대학 학자금 보조’를 받기 위해 상담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러나 재정보조 컨설팅을 할 때는 학생이 어느 대학에 지원할 것인가를 보고 거기에 맞춰 전략을 짜야 하기 때문에 학생이 어느 정도 프로파일을 갖고 있고, 어느 대학을 지원하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독자들이 한번 판단해 보면 좋겠다. 이 학생의 프로필 GPA 3.4, 그리고 ACT 32점으로 아버지가 보내고 싶어 하는 위에 열거한 대학에 합격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필자가 보기에 합격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 학부모는 이 가운데 상당수 대학에 합격할 것으로 믿고 있었고, 자녀의 컨설팅을 진행하는 유학원도 여러 대학에 합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아버지가 전했다.
필자는 이 학생이 합격도 하고, 학자금 보조까지 받아야 한다면, 위에 열거한 대학 가운데 2-3곳을 쓰고 나머지는 모두 새로운 대학으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필자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 유학원은 아버지가 선택한 대학 가운데 아이가 “적어도 몇 개 대학에 합격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고무돼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긍정적인 말을 듣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필자는 이 학생이 지원한 대학의 합격 가능성을 계산해 보았다.
△하버드 0.14% △스탠퍼드 0.37% △스와츠모어 2% △콜게이트 7.91% △옥시덴털 37% △핏처 칼리지 5.16%
어드미션 계산기로 합격 가능성을 예측했더니 ‘적정’ 및 ‘안정권’ 대학은 하나도 없다. 모두 상향이고 그 가운데서도 ‘높은 상향’이었다. 그런데도 이 아버지는 “우리 아이는 합격한다”고 우기고, 이 아이 입시를 도와주는 학원도 “몇 개는 될 것”이라고 말하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 가정은 재정보조를 받지 않으면 미국 대학에 자녀를 보낼 수 없는 형편이니 미리 계산해본 합격 가능성보다 합격률이 훨씬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이 학생의 부모뿐 아니라 현실을 도외시한 채 지원 대학을 선택하는 이들을 본다. 물론 상향 대학에 지원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희망대학을 지원하지만 이렇게 높은 곳만 지원하고, 거기에 재정보조까지 요청하면 그 결과는 당초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쁠 수 있다.
‘꿈은 그 꿈을 꾸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꿈이 꿈이 아닌’ 망상일 경우도 있다. 이 학생이 금년에도 모두 떨어지고 삼수를 할까 걱정이 된다.
이강렬 미래교육연구소 소장, 국민일보 편집국장·대기자·논설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