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엿보기
노루귀(도서출판 b)
나석중
1938년 전북 김제 출생. 2005년 시집 『숨소리』로 작품활동. 시집 『저녁이 슬그머니』, 『목마른 돌』, 『풀꽃 독경』, 『물의 혀』, 『촉감』, 『나는 그대를 쓰네』, 『숨소리』
나석중 시인은 들풀의 시인, 들꽃의 시인이다. 『풀꽃 독경』 시집에는 풀의 신령스러움, 풀의 신성성, 풀의 종교성을 얘기한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을 섬기듯 들풀과 들꽃을 섬긴다. 목사님이나 스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들풀과 들꽃을 올려놓는다. 성경과 불경의 구절을 들꽃과 들풀에게서 찾는다.
이것도 꽃이더냐
간신히 피었다는 생각이 든다
포기하지 않고
핀 꽃은 눈물이 난다
바늘귀만 한 작은 꽃이라 해서
작은 꽃이 아니다
잊지 말라고 눈에 틀어박혀서
작은 꽃은 아프다
-「작은 꽃」 전문
나석중 시인은 『저녁이 슬그머니』라는 시집에서 시집의 시를 대부분 ‘하늘, 구름, 풀꽃, 나비’ 등을 베낀 것이라고 고백한다. 시인은 자연대상물과 교감하면서 그들의 전언을 필사한다. 시인은 들풀과 들꽃을 매일 호명하는 삶을 살아간다.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서 야생화를 찍고 또 찍는다. 그리고 시를 쓴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야생화 사진과 글을 올린다. 아마도 수백가지 야생화 이름을 줄줄이 외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들풀, 들꽃과 대화를 나누는 시인이다. 아바타의 나비족들이 자연대상물과 교감신경을 연결해 서로 감정과 영혼을 교류하는 것처럼 나석중 시인도 아바타의 나비족인지 모를 일이다.
땅에 엎드려 숨어서 피는 작은 꽃을 찾아내고는 눈물을 흘린다. 작은 꽃이라고 해서 작은 꽃이 아니라는 큰 깨달음과 생명에의 외경을 얻는다. 나석중 시인의 눈망울에는 작은 꽃이 들어와 박혔다. 나석중 시인은 작은 꽃을 찾기 위해 굽어보고 또 굽어본다. 굽어보기 위해서는 허리와 무릎을 굽혀야 한다. 무릎 꿇는 자세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겸손한 자세다. 자연의 작은 생명체와 조우하고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겸손한 자세가 필수적이다. 스스로를 높이거나 대접받고자 하는 자는 결코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작은 꽃을 발견할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
너무 아득한 산속은 말고
너무 비탈진 장소도 말고
실낱같이라도 물소리 넘어오는 곳
간간이 인기척도 들려오는 곳
메마른 설움도 푹 적시기 좋은 곳
귀 하나는 저승에다 대고
귀 하나는 이승에다 대고
-「노루귀」 전문
노루귀꽃은 노루의 귀를 빼닮았다. 쫑긋! 솜털이 많은! 모양이 쏙 닮았다. 착한 나무꾼과 사냥꾼에게 쫓기는 노루 설화와 관련된 꽃이기도 하다. 목숨을 건진 노루가 나무꾼에게 명당자리를 알려주었고 나무꾼은 그곳에 부모님의 묘를 썼다. 이것을 알면 노루귀 시에 나오는 장소는 산골 외딴집에서 멀지 않은 양지바른 곳에 핀 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곳이 명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곳이 이승에 귀를 대고 저승에 귀를 댄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인수(시인), 시집해설 「풀에 미친, 꽃에 미친, 물에 미친, 돌에 미친 야생시인 그 이름은 나석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