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4, 2000. Written by C. J. Lee
<부활절이었다. 그 Resurrection이라는 사건이 화학적, 생물학적 심지어 심증 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는 헐렁이에게 인상을 팍! 써주었다. 짜아식! 그러니까 ‘신앙의 신비’ 아니냐? 또 그래서 미사 때마다 소리 높여 ‘신앙의 신비’를 노래하지 않느냐.. 하지만 그만한 나이에는 이마저 이해가 안 되리라..
부활성야미사보다 부활절 낮 미사는 조용해서 좋다. 사람들은 역시 밤을 좋아 한다. 성탄 때도 그렇고.. 오랜만에 향냄새도 좋다고 느꼈다. 간만에 차분한 미사를 즐기고 있는데, 또 나의 뚜껑이 열리는 사건이 생겼다. 마지막 파견성가 (퇴장성가) 때, 성가대가 특송을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우리 성가대의 수준을 알기 때문에 내심 불안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부활절인데 신경 좀 썼겠지.. 하였다. 노래의 시작을 들으니 불안했다. 모르는 노래였다. 무척 구석에서 골랐구만… 첫 소절이 끝나기 전에 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테너가 끽끽대는 노래는 들어보았지만 소프라노가 갈라지는 노래라니.. 도대체 저 젊은 지휘자 ㄴ은 악보뭉치 집어 던져서 노래를 고르나.. 아니면 우리 성가대를 ‘대우합창단’인줄 아나.. 내 인상이 변하는 것을 알아차린 아내에 끌려 성당을 나왔다. 또 아내에게 한소리 들었다. 아내말로는 내가 요즘 잔소리가 점점 심해진단다. 돌아가신 선생님 닮아간단다. 어찌 감히 내가..
하여간 못마땅하다. 수준에 맞춰 선곡하고, 그랬으면 열심히 연습해서 감동을 주어야지.. 저 아줌마/아저씨성가대는 이번에도 나의 부활절을 망쳤다.>
내가 미아리고개를 넘어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을 때였다. 그 학교의 환경이 묘했다. 생긴지 얼마 안 되는 학교이니 당연히 시설이야 새것이지만 그것이 당시 우리 수준에는 조금 지나쳤다. 당시의 이사장이 ‘한국의 Eton school’을 만든다고 의욕적으로 투자를 하셨다는데, 우선 모든 바닥이 인조대리석이었다. 실내화를 갈아 신지 않고, 신던 신 그대로 드나들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수업이 끝나면 청소도 용역회사에서 했다. (그래서, 중고 6년을 청소를 해보지 못해서 요즘도 못한다. 아내는 그것도 모르고…) 시설 가운데 충격적인 것은 화장실이었다. 각 층에는 양끝으로 두개의 화장실이 있었고, 각 화장실에는 ‘큰일’ 용으로 열 칸씩이 있었다. 문제는 그 열 칸 중 다섯 칸이 걸터앉는 양변기라는 것이었다. Culture Shock..
내가 중학교 가던 해. 언젠가도 언급하였지만 ‘김신조’로 시작해서 국민교육헌장으로 끝난 해. 1968년. 그 때는 일반가정에서는 수세식화장실을 구경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국민학생들이 엘리베이터 타 본다고 화신백화점(지금은 구멍이 뻥 뚫린 이상한 건물이 되었지만.. 어떤 때보면 건축가는 음치와 비슷하다. 보고 듣는 우리는 황당한데, 짓고 부르는 그들은 즐거워한다.) 으로 놀러가던 시절이었다. 그 때만 해도 아파트라곤 마포아파트뿐이 없었으니 쪼그려 앉는 한국식 수세식도 못 본 애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이었다. 잘산다는 집이 그저 타이루 많이 붙인(마당까지..) 큰 기와집, 또는 괴기한 분위기 풍기는 적산 가옥정도이고 뻘건 벽돌로 지은 양옥집이 조금 윗질이던 시절이었다. 화장실이라는 말보다 변소가 일반적이었고.. 장관아들이라던 우리 반 N도 수세식 화장실을 못 봤다고 했으니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양변기 칸은 큰 인기를 끌지 못하였다. 문제는 아이들의 호기심이다. 한번씩은 들어가 보는데 제대로 사용할 줄 몰랐으니, 가끔씩 토론회가 벌어지곤 하였다. 가장 큰 주제는 어디가 앞이냐는 것이었다. 레바가 뒤에 있으니 뒤를 향해야 한다는 아이와 그럼 스텐파이프를 안고 앉아야 되는데 말이 되느냐는 아이… 다음 주제는 변기 위로 올라가야 하느냐 아니냐 였다. 이 역시 미끄러져서 ‘쪼인트’를 뭉갠 아이들을 보면서도 결론이 나질 않았다. 나서기 좋아하는 아이들도 이 토론회에는 과묵하였다. 아마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쪼그려식’으로 충분히 급한 불을 끌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억지로라도 그 양변기를 썼어야 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적응이 되었을 것이다.
어느 대학교가 관악산 중턱의 골프장에 새 건물을 짓고 학생을 받아들이던 해. 아마 1975년이던가.. 그 시절의 이야기. 그 때는 나의 중학교 입학시절 보다 많이 civilized 되어서 변기의 사용문제로 곤란을 겪는 일들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휴지였다. 급히 화장실에 뛰어 들어갔는데 휴지가 없는 난감한 경우가 빈발한 것이다. 학교당국에서는 열심히 갖다 놓는데 금방 금방 없어지더란다. 대신 학생들의 엉덩이는 날로 빵빵해지더란다. 학생들은 화장실에서 휴지만 보면 둘둘 말아서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더라는 것이다. 그 누런 휴지를.. 아마 다른 곳에 휴지가 없을 때를 대비하느라 그랬을 것이다. (남학생만 그랬겠나.. 여학생들은 뒷주머니 대신 가방에 넣었겠지..) 게다가 물 내리는 것을 모르는 일부학생들(원래 그 학교는 깡촌 출신이 많은 학교다.)까지 가세해 학교는 악취마저 진동하더란다. 학교에서는 대책회의를 거듭한 결과 휴지의 공급을 없애기로 하였단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데 그 당시의 총장은 그 건의를 무시하고 휴지를 무제한 공급하라고 하였단다. 그래서 ‘화장실에는 언제나 휴지가 있다’는 인식이 심어져야 해결이 된다는 것이었다. 참 현명한 판단이었다. 이제는 그런 인식이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도 많이 퍼져있다. 어쨌든 그 후로 그 학교학생들의 엉덩이가 작아졌다고 한다.
TV 드라마에도 나오는 모 학교의 S교수는 효자로 소문이 났었다. 이 교수는 전라도 무지한 깡촌 출신이었단다. 가끔 시골에서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오시면 다른 무엇보다 화장실이 문제였단다. 이 시골노인네는 양변기는 말할 것도 없고 ‘쪼그려수세식’도 적응을 못하셨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이 광명천지에 거꾸로 ‘쪼그려재래식’은 어디 흔한가? 아버지의 원활한 circulation을 위한 S교수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겨운 것이었단다. 결국 이 교수의 효심에 하늘도 감동하여서 어느 비 오는 밤에 꽈르릉… 하더니 ‘쪼그려 재래식변소’를 하나 내려 주었단다. 그것이 바로 동대문 옆, 무슨 교회 아래쪽에 있는 공중변소라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아침마다 그 S교수는 아버님을 모시고 동대문까지 가서 아버님이 일을 보실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서 민박을 하게 되면 화장실이 문제다. 수세식화장실이 있는 집은 웃돈을 달라고 한다. 아이들 때문에 숙박비를2 0% 더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화장실 간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초등학생 이야기도 심심치 않다. 아마 그 애들이 군대 갈 때는 문제가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전쟁터에도 수세식 화장실이 있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중간에 ‘낀 세대’는 시골의 아버님을 위해, 또 어린자식들을 위해 화장실마저 다양하게 확보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주 드문, 이른바 ‘반체제’인 어느 할머니 운동가의 이야기가 참 흥미로웠다. 그분은 태평양전쟁시절에 반정부운동을 하였을 정도로 대가 강한 분이다. 그런데 그분이 그런 반독재운동에 뛰어든 동기가 똥에 얽혀 있다. 그분이 어릴 때 그분의 시골동네에 천황이 온 적이 있었단다. 천황이 그 마을을 지나고 있을 때, 천황이 타고 가던 말이 똥을 쌌단다. 소나 말은 참 편리하다. 걸어가면서도 일을 치를 수 있으니.. 그리고 아마 그 말은 교육을덜 받은 모양이었다. 감히 천황을 태우고 일을 보다니..
천황이 지나가고 나서 동네사람 하나가 그 말똥을 치워버렸는데 그것이 사단이 되었단다. 감히 천황의 말이 ‘하사’한 糞을 함부로 건드렸다고 지소에 끌려가서 피떡이 되도록 맞고.. 천황 똥도 아니고 말똥 치운 것을 거의 반역죄로 다스리는 것을 본 이 여자아이는 이런 식의 우상화가 존재하는 체제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반체제 운동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살벌한 시절에 그녀가 겪었을 고초가 어떠했을까? 더구나 여자를 사람 취급 안하는(아직도 그런 것을 느낀다.) 그 나라에서..
(우리 ‘제3국인)가운데도 그런 진정한 ‘운동가’가 있어야 하는데..)
미국에서 처음으로 공원에 소풍을 갔을때, 아내가 화장실에 갔다가 질겁을 하고 돌아 나온 적이 있었다. 칸에 문이 없다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여자화장실에서 성폭행사건이 많이 일어나서 문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문을 안에서걸어 잠그면 설사 구조대가 오더라도 문을 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러다 보면 송아지는 물 건너간 뒤라나 어쨌다나...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이런 의견이 거론된 적이 있단다. 특히 지하철에.. 치한이 많아서 라던가..
이렇듯 糞은 존귀한 존재이기도 하고, 毒이기도 하다.
糞을 다루는 화장실은 문명의 척도이기도 세대의차이이기도 하다.
요즘 우리나라도 화장실에 대한 투자가 아주 대단하다. 피부로 느끼는 때도 많다. 그러나 더 시급한 것은 ‘건물 화장실 개방’이다. 음식점에서 화장실을 가려면 대부분 열쇠 들고 밖으로 나가 옆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열쇠도 그냥열쇠만 있는 경우는 드물다. 눈에 잘 띄라고 그랬는지 주먹만한 액세서리를 달아 놓기도 하고, 콜라 캔을 달아 놓기도 하고 심지어는 등 긁는 ‘효자손’ 막대기를 매달아 놓기도 한다. 물론 오죽하면 잠그겠냐만… 그래도 술 한잔 하고 밤길을 걸어 본 사람이라면 화장실 귀한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