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sokhochoe/220244643254
한중 교류와 한중 관광
2014년 7월 4일 국빈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중국 시진핑 주석은 서울대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한·중이 힘을 합쳐 미래를 개척하고 아시아의 진흥과 번영을 같이하자’(共创中韩合作未来 同襄亚洲振兴繁荣)라는 제목으로 초청 특강을 했다. 특강에서 수군 도독 진린(陳璘, 1543-1607)과 그 휘하 장수 등자룡(鄧子龍, 1531-1598) 그리고 중국 인민음악가 정율성(鄭律成, 1914-1976) 등을 언급하면서 양국의 선린우호관계를 강조했다. 중국 사람은 조선을 침략한 일본을 무찌르기 위해 정유재란에 참여하고 한국 사람은 중국혁명에 참여했던 한중 교류의 역사는 기원전 3세기 춘추전국시대 많은 중국인들이 조선반도로 넘어오면서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약 2,300년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에서 특강을 하고 있는 시진핑 총리
오랜 교류의 역사와 함께 잠시 단절되었던 관광 역시 최근 재개되어 점점 더 활발해 지고 있다. 특히 지난 1998년 중국 정부가 한국을 ‘중국인 단체여행 목적지 국가’(Approved Destination Status 국가)로 인정하면서 한중 관광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2013년 현재 한국은 중국인이 홍콩과 마카오 다음으로 많이 찾는 나라가 되었다
.
이는 중국으로 여행을 가는 한국인의 경우도 마찬가진데, 2013년 14,846,485명에 달하는 해외여행객 중 18.3%를 차지하는 2,716,907명이 중국을 찾고 있다. 한국을 찾고 있는 외래방문객 역시 중국인이 가장 많은데, 2013년에는 433만 명으로 건국 이후 최초로 일본인 방한객을 누르고 1위 송출국이 되었다
한국을 찾고 있는 중국인 및 일본인 관광객 추이
한중 관광교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관광교류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향후 더 크게 발전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한중 양국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방한 중국인 관광객에 꼭 맞는 관광자원을 개발해야 하겠고, 중국에서도 방중 한국인 관광객에 알맞은 관광자원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남도 중국관련 관광자원
전라남도에 있는 중국관련 관광자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몽고군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주자의 손자 주거의 셋째 아들 淸溪公 珠簪이 동천하여 정착한 화순군 朱子廟, 노량해전에서 왜구와 맞서 한중 연합작전을 펼쳤던 진린 도독과 이순신 장군을 배향하고 있는 해남 皇朝別廟 등 유형의 문화관광유산이 있다. 또한 목포 성옥기념관(聲玉記念館)과 진도 소전미술관(素筌美術館)에서는 독창적인 글씨체 추사체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와 소전체로 유명한 소전 손재형의 글씨를 각각 전시하고 있다. 추사는 청나라 翁方綱과 阮元에게 금석학과 고증학을 배웠고, 소전은 청나라 설당에게 붓글씨를 배웠다. 추사체와 소전체는 翁方綱과 阮元 그리고 雪堂으로부터 배움이라는 무형의 문화관광유산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1. 朱子廟와 珠簪墓
남송이 원에 멸망하자 비서각 직학사였던 주자(朱子, 1130-1200)의 증손자 청계 주잠(淸溪 朱潛, 1194-1260)은 제자 한림원 7학사를 데리고 동천하여 전라남도 나주를 거쳐 화순군 능주면 죽수부리에 정착하였다. 주자의 학문을 계승했던 아들 주야(朱埜)의 맏아들 충무공 주거(朱鉅)는 모두 네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 셋째가 청계 주잠이다. 주잠의 후손들은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으며, 산넘어 동네에 살고 있는 능주 구씨와 혼인하여 오늘에 이른다. 산 오른쪽과 왼쪽에 신안 朱氏와 능성 具氏 집성촌이 길게 이어져 있어서 주구장창이라는 말이 나왔다(주야장천의 와전이라는 설도 있다). 태조 이성계는 주자성리학을 국시로 1392년 조선을 건국하였으며, 주자의 후손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은 1367년 명나라를 건국한다. 이리하여 몽고의 침략으로 잠시 단절되었던 한·중 양국의 관계는 다시 회복된다
.
1902년(광무 6년) 원수부 기록국 총장으로 있던 주잠의 27대손 朱錫冕이 고종 황제에게 올린 상소에 따르면, 충무공 주거는 몽고군과 전투 중 사망하였으며, 그의 아들 주잠은 권신이 몽고와 강화를 체결하자 의기가 북받쳐 1212년 고려로 동천하였다. 고려로 동천한 이유는 ‘기자(箕子)가 봉한 땅으로서 본래 예의가 있는 나라이기에 가족들이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朝鮮王朝實錄』 46책 42권). 또한 당시 고려는 대몽결사항전을 계속 하고 있었고 주자의 손자이며 주잠의 부친인 충무공 주석면 장군이 몽고군과 전투 중 사망하였기에 더 더욱 고려는 최적의 동천지였다. 상소를 받은 고종 황제께서는 명을 내려 주자 후손들의 관향을 신안으로 회복했다
.
현재 전라남도 능주면 죽수부리에는 주자를 배향하는 사당(朱子廟)과 동천하여 정착한 증손자의 묘(珠簪墓)가 있다. 현재 국고를 들여서 성역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중국 신안 주씨 문중에서도 주자배향에 참여하고 있다.
주잠묘비(왼쪽), 주잠묘(중앙), 주자 사당과 동상(오른쪽)
2. 진린 장군과 이순신 장군을 배향하고 있는 해남 皇朝別廟
진린 장군은 정유재란 때 500척의 군선과 5,000명의 수군을 이끌고 조선으로 와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해전에 참여한 명나라 수군 도독이다. 명나라가 청나라에 망하자 진린 장군의 손자 진소가 동천하여 해남에 정착했다. 지금도 해남에는 약 2,000명 광동 진씨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으며, 매 2년 마다 한 번씩 중국 광동 진씨와 한국 광동 진씨가 황조별묘에 모여 합동으로 배향하고 있다.
황조별묘
3. 人民音樂家 정율성
정율성은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화순에서 능주초등학교를 다녔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힘쓰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모택동과 함께 혁명에 헌신했으며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를 작곡했다. 100인의 신중국 창건영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 중국 정부는 하얼빈에 정율성기념관을 건립하여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인민해방군가 악보, 정율성 기념관(중국 하얼빈), 정율성 동상(전라남도 화순 능주초등학교)
4. 목포 성옥기념관
난초를 잘 그렸던 조선 3대 화가를 꼽으면 석파 흥선대원군, 운미 민영익 대감 그리고 추사 김정희를 말한다. 각각 아호를 따서 석파란, 운미란, 추사란이라고 하는데, 특히 추사는 석파와 운미에게 난초 그림을 가르쳤고, 추사체라는 독특한 글씨체를 완성한 분으로 유명하다. 목포 성옥기념관에는 추사 김정희가 만년에 완성한 추사체 걸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추사의 스승은 청나라 금석학과 고증학의 대가 翁方綱(1733-1818)과 阮元(1764-1849)이다.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를 가서 위리안치되었을 때 추사가 그린 <歲寒圖>와 옹방강이 추사에게 써 준 글씨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추사란>, <추사 2곡병>, <세한도>, 옹방강이 추사에게 써 준 <2곡병>
5. 진도 소전미술관
진도 소전미술관에는 소전체로 유명한 소전 손재형의 글과 그림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소전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서예를 가르친 스승으로도 유명하고, 일본으로 팔려간 추사의 <歲寒圖>를 되찾아 온 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붓글씨를 書法이라 하고, 일본에서는 書道라 하는데, 한국에서는 書藝라 한다. 서예라는 말을 만들어 낸 분이 소전이다.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한국만의 고유한 글씨를 일컬어서 서예라고 부른 것이다. 소전은 청나라 雪堂 羅振玉(1866-1940)에게 사사하였다.
사진 설당 나진옥, 소전의 그림 <강산여화>
한중 맞춤형 관광자원개발
전라남도에서는 한중교류와 한중관광의 신기원을 이룩하기 위해서 전라남도가 보유하고 있는 중국관련 관광자원을 적극 개발하고자 한다. 중국 맞춤형 관광자원을 제공함으로써 모처럼 활기를 띄고 있는 한중 관광교류를 더욱 활성화함과 동시에 지난 2,300년간 이어온 한중 우호선린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
집안 고구려 벽화무덤, 상해 임시정부구지, 하얼빈 정율성기념관, 적산법화원 장보고박물관 등 중국 역시 많은 한국관련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한국관련 관광자원을 활용하여 한국 맞춤형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면 한중 관광교류와 한중 우호선린관계 증진에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