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
갑선이오름에 간다고 봉개동에 모였다. 구미에서도 온 열렬한 제주 찬양자가 있어 한껏 분위기가 좋고 생동감이 움튼다. 구미에 명산인 금오산이 있어서 구미시민의 휴식처로 좋은데 제주까지 뭔가를 찾아서 오니 참으로 제주가 대단한 모양이다. 동료가 소개하여 왔다지만 바다 건너오는 일이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그 정성에 보답하려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게 힘차게 출발한다. 뒷좌석에 4명의 엉덩이를 달싹 달싹 붙이고 차장으로 흘러 들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니 어색한 기운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차 안에서는 쪽파 철이라서 그런지 쪽파 이야기를 꺼낸다. 쪽파 크기가 얼마나 큰지 보통 쪽파의 3배나 되는 크기를 보았다면서 쪽파가 대파로 변했다고 놀라움을 토한다. 쪽파하면 쪽팔림을 연상한다. 갑이 을에게 윽박질 하면 쪽팔림을 우선 당한다. 물론 얼굴을 의미하는 쪽이 아니다. 하나의 비늘줄기를 심으면 여러 쪽으로 갈라져 나온다는 의미로 쪽을 사용했다. 하지만 연상작용을 떠올리면 얼굴이라는 쪽의 의미로 떠올릴 수 있기도 하다.
언론 보도를 통하여 갑질한다고 떠들썩한 요즘 세상이다. 을의 입장에서 윽박질 당하고 사는 사람이 오르면서 당하는 고통을 토로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마땅한 장소가 바로 갑선이오름이다. 갖가지 나무로 빽빽하게 들어찬 숲을 통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는 곳 이다. 안내판에는 매미 굼벵이처럼 생겼다고 하여 갑선(甲蟬)이오름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매미 굼벵이는 오히려 선갑(蟬甲)이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지명은 제쳐두고 일단 오름 초입에 들어서면 빽빽한 숲에서 나온 차원이 다른 공기를 선사한다. 민둥산이 숲으로 변화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노력은 무한하다. 정상에서는 숲이 우거져 남으로만 전경을 볼 수 있다. 표선 방향에서 보이는 눈이 쌓인 한라산 모습이 생생하다. 어제는 한라산 어리목에서 윗세오름까지 산행을 하였다. 눈이 아직 쌓여있어 반사되는 봄 볕에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 눈에 반사된 빛이 얼굴이 닿으면 확확 달구어지는 느낌이 결국 쪽을 변하게 만들었다. 쪽팔리게 되었다. 자외선차단제를 바르지 않고 눈과 싸웠기에 얼굴, 아니 쪽은 있는 대로 팔려서 까맣게 되었다.
봄의 기운이 갑자기 찾아와 나들이 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갑선이오름에서 내려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성읍민속 마을에 관광차가 들어차 초가집을 구경한다고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느닷없이 딸내미에게서 문자가 왔다. 다정(딸내미)이 마음에도 봄, 바라봄 느껴 봄. 아빠가 보고 싶나 봄. 아빠도 다정이가 보고 싶나 봄. 많이 사랑하나 봄. 유채가 노랗게 흐드러진 사진을 같이 보내면서 봄을 흥얼거렸다. 오름에 오니 봄소식을 알리는 바람이 일단 살랑거리고, 쏟아지는 햇살은 따스하기 그지없고, 오름에 같이 오르는 회원님이 있으니 봄이 왔음을 몸으로 실감하는데 딸내미의 문자가 봄이 왔다고 확정을 지어 주었다.
영주산에 오르는 일은 사방이 훤하게 보이는 곳이기에 싫증나지 않는다. 누런 잔디 사이 사이로 양지꽃이 노랗게 색을 자랑한다. 가시덤불이 곳곳에 있는 제주 오름의 특성으로 요리 조리 피해가면서 사방의 경치를 감상한다. 맑은 날씨에 불어오는 봄바람의 향연은 올라가는 내내 가슴을 틔게 한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 이어서 환경에 재빠르게 적응하려고 한다. 두툼한 점퍼를 한 겹 두 겹 벗어 던지고 시원한 차림으로 변화한다. 서러움의 뭉치도 한 순간에 같이 날려 버리는 오늘의 산행이다.
정상 부근에 계단이 놓여있다, 난간이 없이 나무 계단 만으로 정상가는 길을 닦아 놓았는데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하늘 끝으로 향한 계단은 끝을 모른 채 뻗어 있지만 인간의 발걸음은 그 종착에 이르고 만다. 정상에 산불감시초소가 있었다. 빙둘러 쳐진 오름군의 이름을 알 수 없어 감시원에게 물었다. 친절하게 설명한다. 모두 모두 고마운 사람이다. 산에서 살아 산을 아는 사람이다. 그 사람 말고도 출발할 때부터 노래로 흥얼거리는 회원이 있었다. 정상에 오른 기분을 노래로 표현해달라고 하였더니 쑥스럽고 쪽팔린 기운을 제쳐두고 한 가락 구성지게 읊었다. 이어서 리코더를 가지고 온 회원 한 사람이 자청해서 불어 본다고 한다. 고음으로 바람과 햇살을 뚫고 들리는 리코더 소리가 정상에 선 사람을 모두 환영하였다. 들어봄직한 정상에서의 향연이었다.
사건이 있어야 기억에 남는 일이 된다. 오름이나 산을 올랐다는 그 자체만으로는 기억에 오래남지 않는다. 오르는 과정에서 귀중한 사건이 있어야 오래 기억된다. 기억에 남기려고 사건을 만드는 법은 없다.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자연에 온몸을 맡기면 표출되는 행동이어야 한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하나가 되어 영주산 정상에서 벌인 향연은 두고 두고 남는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질 것 이다. 노래해 봄, 들어봄, 느껴봄, 새겨봄, 봄 봄 봄 봄의 축제였다. 봄을 맞이하여 올랐던 갑선이오름과 영주산!
결코 쪽팔리는 않는 봄의 향연이었다.
2015년 3월15일(일)
제주흥사단 산악회 등산기
갑선이오름, 영주산
오멍가멍 임영훈
첫댓글 ㅎㅎ~
쪽파애기 부터 봄~봄~~
갑선이오름 영주산 애기 ~
쪽파애기는 읽으면서 웃음이 절로 나오고 ㅋㅋ
평소 가고 싶었던 영주산 ~!~
좋으신분들과
함께 해서 넘 좋았던 하루였습니다.
오멍가멍님 후편으로
결코 쪽팔리지 않는 봄의 향연이야기
시간 있는 데로 후편으로 후기 올리겠습니다.~
그냥 좋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