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책소개
욕망의 충족에 미쳐 있는 바벨의 시민들
“‘바벨탑 멘털리티’의 두 얼굴”
강준만 교수가 ‘바벨탑 공화국’으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루었다. 욕망의 내재와 분출로 응축된 ‘바벨탑’은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한 각자도생형 투쟁을 상징한다. 그래서 수많은 바벨탑이 세워지며, 상호소통이 불가능해진 불통은 이 단계에서부터 나타난다. 이러한 바벨탑은 탐욕스럽게 질주하는 ‘서열 사회’의 심성과 행태, 서열이 소통을 대체한 불통사회를 가리키는 은유이자 상징이다.
우리 사회는 주거지만 서열화되어 있는 게 아니다. 대학 입시에서부터 취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다 서열화되어 있다. 서열 없는 나라는 없지만 심각한 건 서열 격차다. 서열 의식이 한국 못지않은 일본만 해도 중소기업의 연봉은 대기업의 80퍼센트를 넘지만, 한국은 겨우 절반 수준이다. 사회적 대접까지 돈으로 환산하자면 절반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의 임금은 최대 4.2배 차이가 난다. 이게 바로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일본의 2배가 넘는 결정적 이유다.
한국은 사회적 약자에게 매우 가혹하며,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누구에겐 천국이지만 누구에겐 지옥이 되어버렸다. 강준만 교수가 집중하는 의제도 탐욕이 빚어낸 병폐와 그늘이다. ‘왜 아파트와 서울은 성역이 되었나?’,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하는가?’, ‘불로소득 부자를 양산한 약탈 체제’,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 ‘강남에 집중되는 공공 인프라 건설사업’, ‘왜 지방민은 지방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가?’, ‘왜 한국은 야비하고 잔인한 갑질 공화국이 되었나?’ 등 작금의 주요 현안들을 총합한다.
강준만 교수는 이러한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기존의 수직지향적 삶을 수평지향적 삶으로 바꾸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오직 경쟁 일변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기존의 발상에 ‘협력’과 ‘공존’이라는 가치를 주입시켜야 한다고 제언한다.
저자 소개
저자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의 저자 300인’, 2014년에 『경향신문』 ‘올해의 저자’에 선정되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전33권)이 2007년 『한국일보』 ‘우리 시대의 명저 50권’에 선정되었고, 『미국사 산책』(전17권)이 2012년 한국출판인회의 ‘백책백강(百冊百講)’ 도서에 선정되었다. 2013년에 ‘증오 상업주의’와 ‘갑과 을의 나라’를 화두로 던졌고, 2014년에 ‘싸가지 없는 진보’ 논쟁을 촉발시켰으며, 2015년에 청년들에게 정당으로 쳐들어가라는 ‘청년 정치론’을 역설했고, 2016년에 정쟁(政爭)을 ‘종교전쟁’으로 몰고 가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일침을 가했고, 2017년에 신뢰받는 언론인인 손석희의 저널리즘을 분석했고, 2018년에 ‘나를 위한 삶’에 몰두하는 ‘평온의 기술’을 역설하며 한국 사회의 이슈를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글쓰기가 뭐라고』, 『교양 브런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평온의 기술』, 『사회 지식 프라임』, 『넛지 사용법』, 『감정 동물』, 『자기계발과 PR의 선구자들』, 『약탈 정치』(공저), 『소통의 무기』, 『손석희 현상』, 『박근혜의 권력 중독』, 『힐러리 클린턴』, 『생각과 착각』, 『도널드 트럼프』,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공저), 『미디어 숲에서 나를 돌아보다』(공저), 『전쟁이 만든 나라, 미국』,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 『흥행의 천재 바넘』,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독선 사회』,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생각의 문법』,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 『싸가지 없는 진보』, 『감정 독재』,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갑과 을의 나라』, 『증오 상업주의』, 『교양영어사전』(전2권),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책』(전23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10권), 『미국사 산책』(전17권) 외 다수가 있다.
목차
머리말 : 왜 한국은 ‘바벨탑 공화국’인가?
누구에겐 천국이지만 누구에겐 지옥인 한국 · 4 | 왜 ‘아파트’와 ‘서울’은 성역이 되었나? · 7 | 욕망의 충족에 미쳐 있는 바벨의 시민들 · 9 |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한 각자도생 투쟁 · 11 | ‘의자 뺏기 게임’과 ‘희망 고문’ · 13 | 6·25는 끝난 전쟁이 아니다 · 15 | 서울 초집중화와 서열 사회는 분리할 수 없다 · 18 | ‘바벨탑 멘털리티’의 두 얼굴 · 19
제1장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 초집중화
‘서울은 위대한 혁신의 집합소’ · 29 | “강남 재건축은 복마전” · 31 |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하는 고시원의 삶” · 33 | 왜 고시원의 80퍼센트가 수도권에 몰려 있을까? · 36 | 서울을 한국으로 간주한 서울만의 ‘신도시 잔치’ · 38 |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보다 못한 정부 · 41 | “서울이 곧 한국이다” · 43 | 한국 사회를 집어삼킨 소용돌이 · 45 | 서울 초집중화의 빨대로 악용되는 대학 · 48 | 지역 서열을 당연시하는 ‘기회균등 사기극’ · 49 | 군사독재 정권의 광기를 증폭시킨 민주화 세력 · 52 | 왜 정치는 늘 부유한 유권자들을 대변하는가? · 55 | 선거제도를 통한 ‘승자독식주의 체험 학습’ · 57 | “당신은 단추를 누를 때 이를 악물지 않는다” · 59
제2장 왜 ‘지주들의 소작농 수탈’은 여전히 건재한가? : 부드러운 약탈
폭력을 써서 빼앗는 것만 약탈이 아니다 · 65 | 불로소득 부자를 양산한 약탈 체제 · 67 | 0.1퍼센트 강남이 전체 땅값의 10퍼센트를 차지한 나라 · 70 | 부동산 약탈을 외면하는 ‘구조적 기억상실증’ · 71 | 상위 20퍼센트 아파트값이 하위 20퍼센트의 6배 · 74 |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 · 76 | 한국 엘리트의 필수 조건은 부동산 재테크 · 79 |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바벨탑 멘털리티’ · 82
제3장 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하는가? : 젠트리피케이션
배신당한 제인 제이컵스의 꿈 · 87 | 젠트리피케이션은 ‘구조적 폭력’ · 89 | ‘조물주 위에 건물주’는 비아냥이 아니다 · 91 | ‘불로소득은 성공한 투자, 자본주의의 꽃’ · 92 | “땅이 빈곤 문제의 핵심이다” · 94 | 헨리 조지마저 ‘빨갱이’로 모는 한국의 지주계급 · 96 | 시세를 따르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고 느끼는 심리 · 99
제4장 왜 ‘사회’는 없고 ‘내 집’만 있는가? : 게이티드 커뮤니티
“공동체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되었다” · 105 | “‘공’은 ‘사’에 점령당했다” · 108 | “‘아파트’가 문제가 아니라‘아파트 단지’가 문제다” · 110 | 속전속결이라는 알고리즘의 참담한 결과 · 112 | “공공 공간은 좁게, 사적 공간은 넓게” · 114 | 왜 한국인은 세계 최고의 노마드족이 되었는가? · 116 | 초고층 아파트와 대비되는 ‘고공 농성’ · 119 | “분리와 배제는 도시 전체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 · 122
제5장 왜 ‘휴거’라는 말이 생겨났는가? : 소셜 믹스
“임대아파트 애들이랑은 놀지 마라” · 127 | “여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만지지 마” · 129 | “임대 단지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다” · 131 | 분양동과 임대동 사이에 쳐진 1.5미터 높이의 철조망 · 133 | 소셜 믹스는 실현 불가능한 꿈인가? · 135 | 강남에 집중되는 공공 인프라 건설 사업 · 138 | ‘뒤섞임에 대한 공포증’에 사로잡힌 선량한 시민들 · 141 | 하향평준화를 두려워하는 진보 좌파 · 143 | 하향평준화라는 프레임의 함정 · 145 | 서울 초집중화가 지방의 희생 없이 이루어졌나? · 148
제6장 왜 한국은 야비하고 잔인한 ‘갑질 공화국’이 되었나? : 전위된 공격
‘한국 사회는 거대한 모욕의 피라미드’ · 153 | 지방대학은 ‘헬조선행 설국열차’ 5번째 칸인가? · 155 | 원숭이와 같은 영장류보다 못한 인간 · 157 | “수많은 ‘을’의 눈물로 가득 찬 ‘갑질민국’” · 159 | ‘월급은 한 달 동안 모멸을 견딘 대가’ · 161 |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이 만든 ‘서울 공화국’ · 163 | ‘불온서적’ 취급을 받은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 165 | “내가 누군지 알아” 멘털리티의 폭력 · 167
제7장 왜 ‘무릎 꿇리기’라는 ‘엽기 만행’이 유행하는가? : 학습된 무력감
“우리 사회가 미쳐가는가 봅니다” · 173 | ‘갑질’에 대해 언제까지 구조 탓만 해야 하는가? · 175 | 가정·학교·직장에서 이루어지는 “억울하면 출세하라” 교육 · 177 | “정규직 안 해도 좋다. 더이상 죽지만 않게 해달라” · 179 | “차라리 몇 명 죽는 게 더 싸게 먹힌다” · 182 |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 184 | 서울 초집중화 체제에서 교육개혁은 불가능하다 · 186 | “약자를 짓누르는 힘은 사실상 무한하다” · 189 | ‘서울=대한민국’을 당연시하는 ‘학습된 무력감’ · 191 | 지방을 지배하는 ‘인서울’ 이데올로기 · 194
제8장 왜 지방민은 지방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가? : 소용돌이 정치
모든 선거는 서울이 지방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 선거’ · 199 | ‘예산 확보 전쟁’으로 전락한 지방자치 · 202 | 서울 초집중화 문제가 선거 이슈가 되지 않는 이유 · 204 | “나 서울에 줄 있다”고 뻐기는 정치인들 · 206 | ‘내부 식민지’와 ‘줄서기 문화’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 · 208 | 서울 미디어가 증폭시키는 ‘소용돌이 정치’ · 210 | 서울 초집중화가 키우는 ‘제로섬게임’과 ‘내로남불’ · 213
제9장 왜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의 파멸’인가? : 지방 소멸론
‘지방의 소멸’, ‘국가의 파멸’이 임박했다 · 219 | 서울로만 몰려드는 전국의 청년들 · 221 | 마강래의 ‘압축도시’전략 · 224 | 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택하는 게 옳다 · 226 | 왜 지방은 도심 공동화 자해를 저지르나? · 228 | 전주에서 벌어진 대형 쇼핑몰 찬반 논쟁 · 230 | 왜 대형마트가 들어선 지역의 투표율은 하락하나? · 232 | 정치인들의 ‘거대건축 콤플렉스’ · 235 | 대학은 교육 산업이라기보다는 부동산 산업 · 237 | 지방자치단체들의 거대 청사 짓기 운동 · 240 | 지방이 지방을 죽이는 ‘구성의 오류’ · 242
제10장 왜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치는가? : 지방분권의 함정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발 · 249 | 서울 강남구민의 ‘강남구 독립’ 시위 사건 · 251 | 중앙 권력이 저지른 ‘지방분권 사기극’ · 253 | “헤비급과 라이트급 선수가 대결하는 상황” · 255 | ‘5+2 행정구역 개편안’의 현실성 · 257 | 재앙이 닥쳤을 때 뒤늦게 허둥댈 건가? · 260
주 · 263
출판사 서평
욕망의 충족에 미쳐 있는 바벨의 시민들
“‘바벨탑 멘털리티’의 두 얼굴”
강준만 교수가 ‘바벨탑 공화국’으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루었다. 욕망의 내재와 분출로 응축된 ‘바벨탑’은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한 각자도생형 투쟁을 상징한다. 그래서 수많은 바벨탑이 세워지며, 상호소통이 불가능해진 불통은 이 단계에서부터 나타난다. 이러한 바벨탑은 탐욕스럽게 질주하는 ‘서열 사회’의 심성과 행태, 서열이 소통을 대체한 불통사회를 가리키는 은유이자 상징이다.
우리 사회는 주거지만 서열화되어 있는 게 아니다. 대학 입시에서부터 취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다 서열화되어 있다. 서열 없는 나라는 없지만 심각한 건 서열 격차다. 서열 의식이 한국 못지않은 일본만 해도 중소기업의 연봉은 대기업의 80퍼센트를 넘지만, 한국은 겨우 절반 수준이다. 사회적 대접까지 돈으로 환산하자면 절반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의 임금은 최대 4.2배 차이가 난다. 이게 바로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일본의 2배가 넘는 결정적 이유다.
한국은 사회적 약자에게 매우 가혹하며,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누구에겐 천국이지만 누구에겐 지옥이 되어버렸다. 강준만 교수가 집중하는 의제도 탐욕이 빚어낸 병폐와 그늘이다. ‘왜 아파트와 서울은 성역이 되었나?’,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하는가?’, ‘불로소득 부자를 양산한 약탈 체제’,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 ‘강남에 집중되는 공공 인프라 건설사업’, ‘왜 지방민은 지방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가?’, ‘왜 한국은 야비하고 잔인한 갑질 공화국이 되었나?’ 등 작금의 주요 현안들을 총합한다.
강준만 교수는 이러한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기존의 수직지향적 삶을 수평지향적 삶으로 바꾸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오직 경쟁 일변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기존의 발상에 ‘협력’과 ‘공존’이라는 가치를 주입시켜야 한다고 제언한다.
부동산 공화국의 민낯
한국은 부동산이 주요 재산 축적 수단이 되어온 ‘부동산 공화국’이며, 이는 지방을 희생으로 한 사실상의 약탈이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사람들은 수도권 유주택자인 반면,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지방에서 올라간 수도권 무주택자였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에 분노하는 사람들마저 미소를 짓는 사람들의 행태를 고스란히 흉내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 비극은 바벨탑 공화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건 필연인데, 그로 인한 재앙을 유예하기 위해 거품을 지속시킨다고 붕괴를 피할 수 있을까? 한국의 엘리트 계급이 사적 삶에서 발휘하는 탁월한 시장 감각을 공적 정책에서도 발휘해 성공 확률을 높여주면 좋겠건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는 없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바벨탑 멘털리티’에 근본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상생을 거부하는 ‘탐욕’을 건전한 상식으로 만든 사회, 그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회, 이것이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바벨탑 공화국의 시민들은 선량할망정 자신의 서열과 그에 따른 이익을 지키려는 데는 악착같고 집요하다는 것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부자가 아닌 사람들마저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작은 바벨탑을 세우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을 동력 삼아 바벨탑 공화국이 건재한 동시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게 아닐까? 이 바벨탑 공화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학습된 무력감을 가져야만 무난하게 살 수 있다는 신념을 요구한다.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한양대학교 교수 함인선은 타워팰리스의 3.3제곱미터당 월세는 11만 6,000원이고 고시원은 13만 6,000원이라고 했다. 그는 고시원의 ‘존재 이유이자 경쟁력의 원천’을 이렇게 설명한다. “일자리, 정보, 문화, 교류에서 소외되지 않고 짧은 출퇴근 시간이 보장된다면 개인 공간이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에 있음은 문제가 아니다. 좋은 입지는 ‘강남’만큼 희소하고 저성장 및 1∼2인 가구 증가로 경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기에 고시원은 당분간 시장지배자일 것이다.”
고시원이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건 최장집이 말한 ‘초(超)집중화(hyper-centralization)’의 문제를 실감나게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초집중화란 정치적 권력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자원들이 지리적·공간적으로 서울이라고 하는 단일 공간 내로 집중됨을 의미한다. 이런 중앙 집중은 집중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중첩되면서 집적되는 형태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 초집중화의 문제는 청년들의 주거환경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서울의 1인 20∼34세 청년가구 중 주거 빈곤 가구(지옥고)의 비율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고시원의 80퍼센트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수도권의 일자리 집중도와 비슷하다는 게 우연일까?
국세청의 ‘연말정산 통계현황’에 따르면 2013년 억대 연봉자 70퍼센트는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으며,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2015년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기업들의 신규 채용공고 650만 9,703건을 근무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 전체 채용 공고의 73.3퍼센트가 수도권 지역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의 경제 집중을 해소하지 않고 그런 ‘신주거난민’의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서울 초집중화와 서열 사회는 분리할 수 없다
서울 초집중화는 ‘승자 독식 사회(Winner-Take-All Society)’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부와 권력이 서울에 몰려 있는 체제에서 그곳에 진입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성공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구조로 되풀이되는 구조”를 가리키는 ‘프랙털(fractal)’의 원리에 따라 서울 내부에서도 똑같은 승자독식의 게임이 벌어진다. 당연히 서울 초집중화와 서열 사회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서울은 사람들이 건너편에 펼쳐진 광범위한 기회에 도달하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비좁은 지점, 즉 ‘기회구조의 병목(bottleneck of opportunity structure)’이다. 이 병목을 유지하고 악화시키면서 외치는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슬로건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모순이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서울 초집중화는 지방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임박한 지방도시의 소멸이라는 재앙이 닥칠 경우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무사할 수 없는데, 서울의 존속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지방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지방 돈이 서울로 몰려 서울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부추긴다는 건 이미 수없이 입증되어왔다. 입시전쟁과 취업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최악의 주거 실태(고시원, 쪽방 등)와 교통지옥의 문제는 어떤가?
이런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기존의 수직지향적 삶을 수평지향적 삶으로 바꾸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확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바꿔도 달라진다. 서울 초집중화의 문제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강하게 우리의 일상적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누구에겐 천국이지만 누구에겐 지옥인 한국
한국은 음식 배달의 지상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그런데 입장을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면 ‘천국’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2011~2016년 23곳의 병원 응급실에서 집계한 교통사고는 총 26만 여 건인데, 이 중 배달 오토바이 사고 건수가 4,500건에 이르며 15~19세 사고자가 15퍼센트에 달한다. 또 싼 전기료의 뒤엔 최소한의 안전 대책도 없었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노동자 김용균이 있었다. 그거야 각자 알아서 조심할 일이며 그런 노동은 누가 강요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청해서 한 일인데, 소비자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써야 하느냐고 반문해야 할까?
우리가 세계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 밖의 모든 것이 그 이면을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누군가의 희생 또는 시장논리에 의한 사실상의 ‘수탈’이 숨어 있다. 우리는 한류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만, 이름 없는 영상 스태프 노동자들은 문자 그대로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 우리는 최종 생산물의 화려한 영상에만 취하고 다른 나라의 사람들까지 취해주는 것에 대해 뿌듯하게 생각하지만, 그 영상 뒤의 어두운 곳엔 애써 고개를 돌린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한국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감정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한 사회임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이렇듯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은 쉽게 뒤바뀐다. 이제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주요 경계선은 일자리다.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에 이어 ‘사포(삼포+취업 준비로 인한 인간관계 포기) 세대’, ‘오포(사포+내 집 마련 포기) 세대’라는 말까지 유행할 정도로 청년들의 삶은 어려워지고 있으며, 절망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 5가지를 모두 누리는 사람에게 한국은 천국일 수 있어도, 삼포?사포?오포 세대에게 한국은 얼마든지 ‘헬조선’일 수 있는 것이다.
왜 한국은 야비하고 잔인한 ‘갑질 공화국’이 되었나?
우리는 사람들의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들의 결과로 갑질이 창궐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다. 갑질은 우리가 옳거니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의해 생겨난다.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들도 그런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산물일 뿐이다. 이게 바로 ‘갑질 공화국’의 비밀이다. 그 비밀의 열쇠가 바로 서울 초집중화이며, 그 슬로건 중의 하나는 “개천에서 용 난다”이다.
우리는 개천에서 난 용을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꿈과 희망을 품는다.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보면서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마저 갖는다. 그런 확신은 충분한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국제사회에선 ‘개천에서 난 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대표선수 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선두를 달리며 맹활약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내부적으로도 수많은 용을 배출했고, 내 집안은 아닐망정 한두 다리만 건너면 ‘개천에서 난 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고성장의 시대가 끝나면서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거의 나오지 않을뿐더러 문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세계 무대의 선두에서 맹활약하는 재벌 기업들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혼자 잘 나서 그렇게 된 건 아니다. 그들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지금도 중소기업을 희생으로 한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다. 용의 반열에 속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보통 사람들의 고연봉도 다른 사람들의 저임금이라는 희생 위에서 가능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개천에서 난 용’은 자신을 배출한 개천을 돌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데에 앞장선다. 개천에 사는 미꾸라지들이 아니라 자신이 어울리는 용들의 문법에 충실해야만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한민국 건국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과 대부분의 주요 정책 결정자가 지방 출신임에도 지방을 희생으로 ‘서울 공화국’이 탄생한 것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랴
책 속으로
2015년 7월 30일 손석희는 이런 앵커 브리핑을 했다. “작가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란 단편을 펼쳐봤습니다. ‘그것은 방이라고 하기보다는 관이라고 불러야 할 크기의 공간……그 좁고 외롭고……정숙해야만 하는 방 안에서 나는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했고…….’ 비좁은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젊은 청춘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손석희는 앵커 브리핑을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한 것에 대한 보상은 있는 것인가”라는 말로 끝맺었다. 고시원 거주자의 희망은 고시원 탈출이겠지만, 누군가는 또 고시원을 찾는 끝없는 행렬이 이어질 것이다. 고시원과 쪽방, 만화방이나 찜질방 등 다중 이용업소와 같은 ‘집 아닌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많게는 228만 가구로 추정하지만, 그 수가 많건 적건 이는 우리 사회가 외면해선 안 될 인권 문제로 보는 게 옳다. 「제1장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본문 36쪽)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어떠한가? 서구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비해 악성이다. 서구의 젠트리피케이션은 거주민을 저소득층에서 중상류층으로 대체하는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인 반면,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주민들의 생존권과 주거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도시의 미래 성장 동력과 지속가능성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이 서구형에 비해 더 잔인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2009년 용산 참사 이후 널리 쓰이는 말이 되었다. 『한겨레』(2017년 11월 17일)에 따르면, “곳곳에서 쫓겨나는 세입자들의 비명이 끊이질 않고, 최근 5년간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책과 논문, 기사가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고 있으며, 국립국어원도 ‘둥지 내몰림’이라는 대체어를 내놓을 만큼 젠트리피케이션은 일상이 되었다”. 「제3장 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고 하는가?」(본문 89쪽)
1920년대 초, 미국에서 빈곤으로 인해 심화되는 사회문제의 치유책으로 시작되어 조닝(zoning) 규제를 적용시킨 소셜 믹스가 등장했다. 혼합 단지 아파트가 국내에 도입된 것은 1990년대 초였으며, 2005년 4월 25일 건설교통부 주도로 시행된 지속가능한 신도시 계획 기준을 통해 소셜 믹스를 위한 본격적인 관련 제도가 도입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소셜 믹스에 거는 기대는 크다. 사회적으로 혼합된 거주 지역은 사회집단 사이의 문화적 상호 교류를 통해 지적·문화적 진보를 촉진할 것이고, 이는 점차 더 큰 관용으로 이어질 것이며, 더 나아가 사회적 인프라 시설의 효율,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낳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에선 그 기대가 완전히 배신당한 것으로 보인다. 「제5장 왜 ‘휴거’라는 말이 생겨났는가?」(본문 129∼130쪽)
국가가 공모한 약탈 체제이니 하청 노동자들로선 체념할 수밖에 없다.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이 노동조건이 매우 열악한 어느 주물공장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내하는 직원에게 ‘여기 환경 측정 실시했습니까’라고 물어보았더니 ‘하청입니다’라고 답한다. ‘이 사람 특수건강진단은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하청이라니까요’라고 익숙하게 답하는데, 그 대답을 지금까지 여러 번 해봤다는 듯 매우 예사로운 말씨다.” 하청 노동자는 인간이 아닌가? 2018년 9월 11일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