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금융권, 인력 대폭 구조조정 '우울한 연말'
-삼성전자도 "인건비 부담" 고참 부장급들에 퇴사 요구
-은행, 최근 1000여명 내보내, 임금피크제 직원이 주 대상
-경기 악화까지 겹쳐 '된서리'
다음 달 1일 '정년 60세' 제도 시행을 앞두고 국내 대기업과 금융권 등에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일부 기업은 경기 악화 등을 이유로 20대까지 명퇴 대상에 올렸지만, 대부분 40.50대, 특히 50대 고참 직원들이 집중적으로 칼바람을 맞고 있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경기 악화에 대한 우려와 함께 2013년 4월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정년연장법(고용상 연령 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시행일이 목전에 닥치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실제 눈앞의 현실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칼바람 맞는 50대들
글로벌 삼성전자에선 50대 고참 부장급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각 사업부나 본사 경영 지원 파트마다 '1965년생 이상 또는 7~8년차 고참 부장급'에 대한 회사 측의 퇴사 요구가 집중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정년 60세가 시행되면 인건비 규모가 상당히 커져 경영 부담 요인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딱히 연령 기준을 정한 건 아니지만 올 연말까지 고참 부장급을 대상으로 퇴직을 강력하게 유도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신설 부서장을 맡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그 부서가 통째로 없어지면서 부서장을 맡은 부장급 간부가 졸지에 퇴사당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금융권에도 명퇴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55세 이상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고 있는 직원들이 주 대상이다. 지난 15일 SC제일은행은 만 40세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별퇴직 신청을 받아 전 직원(5128명)의 18.5%인 961명을 퇴직시켰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고 있는 50대 중반 이후 직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따. 시중 은행의 한 지점장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정년 연장에 따른 부담을 50대들이 떠맡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6월에 이어 이달에도 희망퇴직을 실시해 240명을 퇴직시켰다. '만55세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직원들이 9~28개월치 위로금과 자녀 교육비 등을 받고 회사를 떠났다. NH농협은행도 오는 31일 대부분 50대인 344명의 고참 직원에게 퇴직 확정 발령을 낼 예정이다. KB국민은행은 올해 5월 1122명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실시한 데 이어 다음달 또다시 희망퇴직을 계획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이미 도입한 대부분 금융권과 달리 내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신한은행도 올해 1월 311명에 이어 내년에도 희망퇴직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은행의 한 직원은 "임금피키제가 없는 상황에서도 300명 넘는 사람이 나갔는데, 내년부터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아무래도 50대 직원들의 퇴직률은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전 예고된 명퇴 칼바람
명퇴 칼바람은 2013년 4월 정년연장법이 통과되면서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국회는 300인 이상 대기업은 2016년 1월부터, 300명인 미만은 2017년 1월부터 '60세 정년'을 의무화했다. 사업주가 60세 미만으로 정년을 정할 경우에는 '60세 정년'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현재의 규정을 강제 조항으로 바꾼 것이다.
이 같은 정년 연장에 대비해 정부와 일부 기업들은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통해 부담을 사전에 더는 노력을 해왔지만 "막상 제도 시행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는 현실이 눈앞에 닥치자 기업들이 경쟁하듯 대규모 명퇴를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라고 노동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장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들이 표면적으로는 '경기 악화'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의 이유로 제시하지만 정년 연장에 따른 부담을 회피하려는 것이 진짜 이유일 것"이라면서 "내년부터 정년 60세를 법으로 의무화한 것은 향후 인력 운용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게 전개될 것을 누구보다 기업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직원들에 대한 해고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 연구위원은 "관련법 정년을 60세로 못박았기 때문에 해고를 둘러싼 소송에서 해고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하는 기업의 책임이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