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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45)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이유 (역대하6:19-21)
솔로몬은 기도합니다. 두 손을 들고 자신이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기도를 가지고 말씀을 묵상하다보니, 이 말씀은 솔로몬처럼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솔로몬의 기도를 묵상해 가면서 드는 마음은, 우리의 생애 얼마나 안전하고 든든하고 행복한가 였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오늘 그 기도에 등장하는 아픔과 어려움과 고통에 친히 역사해주시는 하나님이신 까닭인 것이지요?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총 일곱 가지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는데요, 오늘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부분에 안심하고 염려를 붙들어매고 살아야할 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솔로몬을 통해 보여주시는 우리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 모두 만나시길, 오늘도 그분의 보호와 인도하심 속에 더욱 들어가 머무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억울하지 않게 하십니다(22~23절). 솔로몬이 드린 첫 번째 기도는 진실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실현되기를 원하는 기도입니다. 어떤 사람의 범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는 피해자일 때, 그리고 오늘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증거나 자료가 부족한 피고인이 되었을 때, 솔로몬은 이러한 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판단해주시고,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게 해주실 것을 기도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인간의 마음을 다 아시고 진실을 다 아시는 분, 실로 악한 자를 벌하시며 공의로운 자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바로 이러한 하나님 앞에 그분이 돌보심 속에 살아가고 계심에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억울한 사정, 억울한 눈물,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이기적이고 악한 사람들 때문에 우리 인생이 힘들고 어렵게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실망할 이유,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 앞에 오늘 솔로몬처럼 더욱 기도로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머리에 돌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이 사랑을 받는 우리가 누군가를 억울하게 하는 사람이어서는 아니되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순간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는 우리는 거룩한 입술과 진실한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늘 정직한 말과 행동으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라는 자비와 긍휼, 공의가 합당한 것이 될 수 있는 오늘 복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하십니다(24~27절). 솔로몬이 올린 두 번째와 세 번째 기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적에게 패하거나 기근이라는 하나님의 징벌을 당하고 있을 때, 그 어려운 상황을 상정하고 드렸던 기도입니다. 바로 그러한 지경에 처하여 있을지라도,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회개하고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용서와 회복을 주실 것을 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범죄하고 실패하고 넘어졌을 때, 그리고 그에 대한 징계로 우리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 결핍과 기근이 찾아올 때, 여러분, 그때에도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구원받은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죄로 인해 실패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죄를 짓고 형식적으로 뉘우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런 자신과 사람들을 보며 지쳐서 체념하고 낙심한 이들도 보게 됩니다. 이런 영적인 무기력과 악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참된 회개 밖에 없습니다. 죄를 미워하며 하나님께로 내 삶을 진정 돌이키는 참된 회개를 할 때, 하나님께 용서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영육 간의 모든 어려움이 죄로 말미암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겪는 어려움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해결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로 말미암은 것인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 주시는 그런 과정인 것인지 기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오늘 저와 여러분, 언제 어떤 상황, 어떠한 범죄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으로 가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받으시고 기회를 주시는, 참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이유, 그분은 우리를 치료하시고 고치시는 하나님이신 까닭입니다(28-31절). 솔로몬은 네 번째,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 자연적 재앙과 질병이 있을 때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 때에 주님의 백성이 각각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회개하며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사유하시되 행위대로 갚으소서, 두루 살펴 용서하시며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고 고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은 하나를 더 기도합니다. 무엇입니까?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하며 주의 길로 걸어가리이다”(대하6:31)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아 치료받고 회복된 이스라엘이 그 치료와 회복으로 끝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 되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곤경을 만날 때 우리는 회개하며 겸손한 기도로 긴급히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손을 기도의 손으로 붙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때 주시는 놀라운 기도의 응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응답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주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의 최종 목적은 응답을 받는 정도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을 기뻐하고 경외하며, 주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오늘 이 놀라운 우리를 안심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다시금 발견하고 만나고 관계를 회복, 닮아가는 데에 있습니다.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 땅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원하시는 목적대로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해지지요.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가장 큰 실패는 기도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평탄한 인생도, 기도하지 못할 만큼 실패한 인생도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 인해 승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저와 여러분, 오늘도 모든 순간, 모든 자리에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심으로 오늘도 놀라운 은혜에 접목되시어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네 번째, 우리 하나님은 차별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오늘 솔로몬이 어마어마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에게 대하여도 그들이 주의 큰 이름과 능한 손과 펴신 팔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모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대하6:32-33a) 오늘 이 기도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기억하고 있었다면, 헤롯성전, 이방인의 뜰이 짐승으로 가득 차, 그 환전상을 뒤엎으시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성전정화를 하시던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막11:17)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는 이스라엘의 편협한 편견을 깨뜨리시며, 오늘 우리에게 안심할 이유를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저들의 말과 같이 하나님은 저들만 복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 특별히 응답해 주시는 기도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높은 직분에 있는 사람, 힘이 있는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의 기도만 응답하고, 그들의 기도에만 빠르게 조치를 취해주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늘에서 들으시는 분, 모두의 기도를 동일하게 들으시고 들으신 대로, 그러나 더욱 주님의 사랑과 자비, 공의와 진리로 응답해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지 못할 사람은 없으며, 기도하지 못할 장소도 없습니다. 기도를 막는 장벽은 오직 하나 우리 마음 속에 있습니다. 편견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든지, 어디서 드리는 기도든지 그 기도에 귀를 열고 계십니다. 오늘도 인간적인 마음으로 못하겠다는 송구스러움, 죄송함, 반대로 기도가 필요없다는 교만함, 오만함 모두를 다 내려 놓으시고, 오늘도 하나님 앞에 당당히 말씀하시고 아뢰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다섯 번째,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이유, 하나님은 모든 전쟁의 상황 속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34-35). 우리의 생애는 한 마디로 목숨을 건 싸움의 연속, 영적이고 물리적인 전쟁의 상황으로 보셔도 무방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한시도 안심하고 평강할 수가 없는 삶을, 시시각각 정말 우리를 쥐고 흔드는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위기, 어떤 절박한 상황 중에서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임을 오늘 솔로몬은 고백하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놀라운 구원과 복음전도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있게 자기에게 허락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백했던 것이지요? 뭐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5) 사도바울이 그러했다면 예수님은 더욱 직접 제자들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밤새도록 괴로이 노릇 젓던 제자들, 예수님께 부르짖었다는 기록도 없는데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그것도 물 위를 걸어 찾아오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뭐라구요?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14:27)
여러분,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도는 어두운 상황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는 손전등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무릎만 비틀거리지 않고 있으면, 여러분 모든 풍랑, 전쟁의 상황은 우리를 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임재하심 앞에 고요하고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기를 이겨내는 승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 우리를 보호하시는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능력을, 이 은혜를 저와 여러분 모든 전쟁의 상황 속, 평강을 누리는 은총으로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하일 깁보르, 큰 용사, 기드온이 고백했던 여호와 샬롬, 기드온이 하나님을 만나서 하고 싶은 말 다하고, 다시말해 하나님께 한참을 따지듯 기도하고 마침내 고백했던 평강이 아닙니까? 오늘도 숨어서 밥 한 그릇 잘 먹어 누리는 평강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기도를 들으심으로 고백되는 평강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 더욱 누려지는, 감사한 삶, 건강한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솔로몬은 그의 일곱 번째 기도에서 고백합니다. 우리가 포로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말입니다(36~39). 보십시오. 우리가 안심할 이유, 우리를 언제나 자유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매임, 우리의 고통을 그냥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이스라엘의 시작이 무엇입니까? 노예의 생활에서 해방시키시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백성으로 다시금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고통을 볼 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출6:5)
예수님이 오신 이유, 풀어 자유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누가복음 4장에서 한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거라사 지방에 예수님이 풍랑을 뚫고 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군대 귀신에 매여 살던 한 영혼을 구해주시기 위해서 가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쇠사슬에 매어 공동묘지에 던져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돼지 2,000마리 보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겨주시며 구해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기억하시지요? 귀신들린 아이, 변화산 아래 예수님을 찾아온, 제자들의 능력없음에 ‘할 수 있거든’을 이야기하던 아비 앞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시며 귀신을 쫓아주셨던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셨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어찌하여 자신들은 귀신이 쫓겨가질 않았냐고, 그 포로된 이를 왜 우리는 자유케 할 수 없었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뭐라구요?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9:29)
여러분,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평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모든 결박과 매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실 능력의 통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다 이루어주시겠노라고 받은 줄 믿으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요16:23, 막11:24). 그러니 기도하는 성도에게 있어 절망적인 상황은, 힘들고 어려운 시험의 상황은, 오히려 살아 계시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경이롭고 친밀한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 가장 절망적인 때는 그를 건지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고난의 삶이 아니라, 기도 없이 평안한 삶이 위험합니다. 기도의 실패는 곧 인생의 실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항상 돌보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진정 승리하는 인생입니다. 저와 여러분, 오늘 솔로몬이 기도합니다. 왕이 기도하는데 백성은 더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예수님이 늘 기도하셨습니다.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인생의 주인이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가장 닮아가야 할 분이 기도하십니다. 그러니 저와 여러분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욱 기도의 종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하시면서 우리 하나님을 뵈옵고 더욱 담대하시고 안심하시고 감사하시며 하루 하루 우리 인생들을 만나 축복해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일교회 성도님들, 솔로몬을 통해서 오늘 이 삶을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기도하십시다. 기도하심으로, 기도하시면서, 기도하는 성전,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는 성전이 되시어, 모든 순간 두려움 내려놓고 담대함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자리에 축복의 통로로 서시는 복된 분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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