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방불패>로 국내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배우 임청하는 중국 산동에서
출생했으나, 어린 시절 부모님이 대만으로 이주해 거기서
성장하였다.
대만에서 여고 졸업 후 길거리에서 캐스팅되어 송호수 감독의 1973년<임청하의
여고시절>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때 많은 인기를 끌며 대만에서 다수의 문예물과멜로드라마에 출연하다 70년대
말 멜로 영화가 퇴조하자 변화를 위해 미국유학을 떠
나 휴지기를 가진다.
다시 배우로 활동한 임청하의 제 2의 전성기는 역시 서극 감독의 1991년 작품인
<동방불패>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임청하는 <동방불패>에서 원래는 남자이지만, 무림의 비기인 규화보전을
익혀 여인으로 변해가는 무림의 고수로 분해 카리스마와 특유
의 중성적 매력으로 동남아 일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이후 계속하여 그녀의
카리스마와 특유의 중성적 매력을 가지고 홍콩 SF
무협물의 주연으로 캐스팅하여 다수 양산해낸다.
SF 무협물이 아닌 작품중에 유명한 작품으로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끝으로 임청하는 결혼과 더불어스크린에서 은퇴했다.
데뷔시기
임청하, 홍콩의 관객과 영화인들이 가장 이지적인 배우로 꼽는 이름, 그녀는 20여년
동안 배우로서의 기질과 근성으로 오늘의 모습을
가꾸어 왔다. 1973년 임청하는 열일곱의 나이에 영화 <창외>로 데뷔하였다.
경요의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송존수가 감독한 영화이다.
이영화에서 임청하는 주연으로 여고생 강안용 역을 맡았다.
강안용은 가정에서 원만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 사춘기의 불안정한 감정에 소외감까지
겹쳐 현실보다는 환상에 몰입하면서 국어 선생
인 강남을 짝사랑한다. 이 영화에서 임청하는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아왔던 이상형의
남자 진한과 함께 출연하면서 연모의 정을 느끼
나 그사랑은 아직 꽃필 시기가 아니었다. 대만에서 촬영된 이영화는 원작자 경요가
판권문제로 '80년대전영공사'에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함으로써 대만에서 상영되 못하고 홍콩에서 상영되었다.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임청하는 강안용 역을 잘 소화해냈는데 이는 자신의 성격과
이미지가 주인공과 잘 맞아서였다. 임청하는 <홍진
와사>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강안용의 여고시절을 내 여고시절로
생각했으면 그래서 연기하는기쁨보다는 실제 여고시절 생화대
로 자연스럽게 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강안용의 친구 역으로 출연한 장리인은 실제로 임청하의 여고동창이다.
-93년 황기성사단애 실렸던 글中-
1980년 미국으로 더났던 임청하는 활동을 중단하고 여동생 집에서 살면서 샌프란시스코
조병민 교수의 도움으로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종합예술을 연구하면서 지낸다.
이 해에<백혈황화로> 제18회 금마장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랏으나 수상은
그녀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미국에서 거주하는 동안 미국 캘리포니아주 강워계 여사는 임청하의 영화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그녀에게 캘리포니아주 영예
공민증을 주었다.
임청하는 81년 귀국하여 대만영화사에서 처음으로 여군을 다룬 영화 <중국여병>에
출연하면서 활동을 재개한다. <연소파! 화조>,<홍분
병단> 등에도 출연하였는데 <홍분병단>은 1983년 대만에서 최고의 흥행수입을
올린 작품으로 문예에 정영화에서 나약하게만 다루어지
던 여자 상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작품이다.
영화 촬영 외에 제10회 미스홍콩선발대회 심사위원으로 초정되었는데 이때 무대
위에서 춤과 노래솜시도 선보여 또다른 그녀의 재능을
과시했다. 이날 임청하의 새화장법은 홍콩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1984년에도 중국시보에 고정칼럼 [임청하 시간, Fax란] 을 연재하였는데 임청하는
'나의 첫 원고'에서 "금년 초부터 난 지난 내 연기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그 성과에도 회의를 느끼게 됐다" 고 말하였다
이시기를 전후하여 임청하는 진상림과의 파혼, 진한과의 해우, 홍콩 <객루>
잡지에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게재되는 등 잇달은 스
캔들로 하여 대만에서 배우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고, 출연제의가 뜸해져<경찰고사>,<몽중인>,<도마단>등
홍콩영화에 출연하다.
임청하는 <몽중인>에서 대담한 연기를 하였는데 결국 이영화는 신문국심의에
걸려 미성년자는 관람할 수 없는 영화로 지정되었다.
1987년 귀국하여 생활하기로 결심하고 대만으로 돌아왔으나 대만에서 반
년간 출연요청이 없자 임청하는 다시 홍콩영화<금야성광찬란
>에 출연하였는데, 이영화로 제26회 금마장 취우수 여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대륙 감독인 사진의 <취우의 귀족>에 출현하려다 대만에서 대륙영화에
출연할 경우 그녀의 배우자격을 박탈하겠다고 하여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 이듬해인 1989년은 그녀의 18년 배우생애에 최고의 영과을
안겨준 해이다. 데뷔한 지 18년만에 임청하가 드디어<곤
곤홍진>의 여정작가 심소화역으로 제27회 금마장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곤곤홍진>은 동시에 최우수 감독상 등 8개 부문에
서 수상을 하였다.
-93년
황기성사단애 실렸던 글中-
은퇴 하다
1955년 11월 23일 대만에서 태어났다. <창외>(73)로 데뷔 한 이후 <도마단>(86),
<몽중인>(86), <홍진>(90), <동방불패>(92), <신용문
객잔>(92),<절대쌍교>(93), <백발마녀전>(93), <동사서독>(94),
<중경삼림>(94)등 9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94년 <중경삼림>을
마지막 작품으로 결혼과 함께 영화계를 떠났다.
우선,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연호하는 수많은 '팬'들에게. 당신들은 그녀를 이제
만날 수 없다
임청하는 바람과 침묵과 애상의 동의어이다. 또 한 그녀는 비밀스럽고 쓸쓸한
스타이며, 유머를 낯선 손짓으로 되돌려보 내는 정색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경삼림>은 영화에 대한 임 청하의 짧은 마지막 인사말인 셈이다.
하지만 그녀의 침묵과 미소의 비밀 을 오래도록 사랑해온 영화광만이 <중경삼림>의
점프 프레임과 함께 흘 러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구
별하고 불러 세울 수 있으며, 눅눅한 아열대의 공기 속에 트렌치 코트 허리끈을
졸라맨 블론드 가발과 선글라스의 '그녀 '가 홍콩영화
산업 시스템 속에서 '영화'을 찾아 헤맨 20여년의 지친 발걸음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만일 수다스러운 극장 문을 닫아 걸고 그녀의 이름을 나직히 불러낸다면,
그녀는 마치 그림자처럼 도착한다. 하지만 가공된 스
릴과 전설의 무협영웅과 하늘을 나는 백발마녀와 남장여인을 둘러 싼 에로티시즘의
이름으로 임청하를 원한다면 그녀는 예의 그 미소
와 함 께 곤두선 시선으로 당신의 정체를 심문할 것이다. 적어도 영화에 있어서,
임청하는 신기루와 같다.
최근 5년간, 적어도 아시아권에서, 임청하는 모 든 남자들과 수많은 소녀들이
사랑했던 단 하나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10 년도 전에,
그녀가 땅에 발을 붙이고 서서 영화를 찍었을 때, 사람들은 단 지 그녀의 이목구비와
사생활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녀가 덧칠한 마스
크 를 쓰고 동작공간의 환타지를 빌어 하늘을 날기 시작하자 모두들 비로소 환호하기
시작했다.
사실, 비뚤어진 헐리우드 같은 홍콩영화 시스템에서 '올 라운드 엔터테인먼트'배우가
아니었던 그녀의 상품가치는 적어도 세 차례는
바뀌었던 셈이다. 푸른 아이섀도우에 비키니를 입고, 이미지와 연기 사이를 갈팡질팡했던
20년이 넘는 배우생활에서 그녀의 '거리두기
'와 아름다움은 끈질기게 평가절하되어 왔으며, 홍콩영화는 마치 연기자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듯 임청하를 중년여인 취급했었다
.
그러나 서극과 정소동의 SFX 무협 환타지는 <금옥랑녹홍누몽>(78) 이후
92년에 <동방 불패>의 남장여인 역할로 그녀를 복귀시켰고, 냉
소적인 카리스마를 업고 임청하는 단숨에 홍콩 스타 시스템의 정상에 올라서버렸다.
마흔을 바라 보는 나이에 부활한 여배우는 도대체
어디를 통과해야 할 것인가? <동방 불패>의 성공 속에서 임청하는 거의
비슷한 몇 편의 '역할'에 출현했다. 그녀는 이제 비스듬히 서
서 노려보는 것으로도 모든 이를 매혹시켰고, 몸 을 잠시 비틀기만 해도 사람들은
자지러지며 그녀에게 경배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멀찍이 도망치며, 만인의 연인이 된 셈이다.
세트와 사막의 바람, 무술감독과 특수장비들에 몸을 맡기고 연기 아닌 프로세스
테크놀로지로 무협활극 영화를 찍으면서, 임청하는 또
다른 '영화'와의 담판 승을 결심한 듯하다. 설욕전과 은퇴, 그녀는 왕가위와 <동사서독>과
<중 경삼림>을 택했고 결혼과 함께 은퇴했
다.
그녀는 이제 우스꽝스러운 가장 무도회의 히로인에서 '영화'로 돌아와 잠시 입맞춤하고
떠나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수다와 허풍과 아우성에서 벗어나 임청하라는 무거운 '이름 '을
벗어던진 말없는 '금발여인'을 다시 불러보자. 그녀는
홍콩의 침사추이 거리 뒷골목에서 불법 노동자들과 마약을 거래하고 총격전을
벌이고, 초조하게 구두굽을 또각거리며 줄담배를 태워대
다, 짧은 인사말을 남긴 채 떠난다.
영화와의 마지막 근접조우, 임청하는 1997년 홍콩을 바라보는 영 화적 시선의
교집합을 온몸으로 받으며, 그녀의 사랑을 선글라스로
가리 고 신기루처럼, 도시 한 복판의 섬처럼 서 있다.
-키노 95.6 신혜은 기자 키노에 실렸던 글-
主題曲:笑紅塵
紅塵多可笑,痴情最無聊,
目空一切也好,
此生未了,心?已無所擾,
只想換得半世逍遙,
醒時對人笑,夢中全忘掉,
嘆天黑得太早,
來生難料,愛恨一筆勾消,
對酒當歌我只願開心到老,
風再冷不想逃,花再美也不想要,
任我飄搖,
天越高心越小,不問因果有多少,
獨自醉倒,
今天哭明天笑,不求有人能明瞭,
一身驕傲,
歌在唱舞在跳,長夜漫漫不覺曉,將快樂尋?。
唱:陳淑樺 詞:?曼? 曲:李宗盛
인간세상은 웃을 일도 많고 치정은 가장 무료한 것 무관심이 제일일세
이 생명이 끝나지 않지만 마음은 비운지 오래야 다만 생각하는 것은
남은 인생을 소요하는 것일뿐.. 깨어 있을 때는 사람을 향해 웃고
꿈속에서는 모두 잊어 버리고 아직 새벽이 밝아오지 않은 것을 한탄한다
생은 예측할수 없는 것 애환은 말끔히 씻어 버리자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단지 나이 들기만 기다린다
바람은 다시 차가워져 갈 생각을 않고 꽃은 아름다움을 펼치며 바람에
몸을 맡긴다 하늘은 높아만 가고 마음은 작아진다 인과를 묻지 않고
홀로 취해 버린다 오늘은 울고 내일은 웃으리 인간은 분명한 것
구할 수 없으니 홀로 오만하다...
노래하고 춤춘 긴 밤은 아득하며,
새벽을 깨지 못해 즐거움만 찾을 뿐이다..
커피 마시면서 노래 따라부르는 엔디 ~~~~~(-,.-);;
오늘 몇잔 째야.. 커피 너무 마셔셔 배불러 ㅠ,.ㅠ
인간세상은 잼난 일도 많공 ^_^ 치정은 가장 무료한 것 모 신경쓰지 않는것이
제일일세~~~~
이 생명이 끝나지 않지만 마음은 비운지 오래야
다만 생각하는 것은 남은 인생을 소요하는 것일 뿐일세~~~~
첫댓글 저드 저드 임청하 억스러 저아했능뎈...^ㅡ^ 지금드 저아훀...버림받은 엔디님...따뜻한 우유랑...하르를 보내세효^ㅡ^ 저는 우유를 못 먹능 체질인지라...>.<으읔...그럼 즐건 일요일...놀러가그 싶닼...날이 왜케 좋아훀?
음 엔디는 설랜드(서울랜드) 가고 싶다요. ... 꿈과 낭만이 넘치는 설랜드!~~~ 엔디가 무서버 하는 놀이기구 청롱열차.. 우글글 -,.-;;
ㅎㅎㅎ 보라님 팬이 많아 좋겠다. ... 앤디님도 넘 낭만적인 분이군요,....ㅋㅋㅋ
에거에거 이제샤 보게되네요... 좋은 추억을 간직하는것도 좋은것이지요.. 힘. 그라고,, 연필 조오타... 앤디님 연필 당첨.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