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요즘, 동네 가까운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잡스럽게 책을 대여해 읽어내고 있다.
그 첫걸음으로 과학에 문외한인 나를 반성하면서 뇌과학 관련 서적들을 대여했다.
이 책은 방대하다.
“인간 의식의 출현, 생각의 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봐야 하고, 생명이란 현상 속에서 뇌를 이해해야 하며, 그 생명을 가능케 한 우주 차원으로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결국 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1강. 우주의 대칭이 깨어지다’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빅뱅으로 생긴 우주의 온도 분포에서 10만분의 일도의 미세한 온도 불균일로 인해 물질들의 응집이 달라진다. 우주 내에서도 물질이 많이 모인 곳과 성긴 곳이 생기는 것이다. 많이 모인 곳이 중력 수축에 의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우주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다. 그로 인해 초신성들이 나타나고 폭발하면서 나온 중원소와 강력한 방사선에서 우주의 구성 요소들, 지구, 생명 탄생과 생각의 출현에 이르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137억년 전에서 출발하고 있으니 이 책의 방대함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방대함을 짐작케하는 목차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1부. 우주의 생명, 생각은 어디서 오는가
1강. 우주의 대칭이 깨어지다.
2강. 생명의 탄생
3강. 35억년 전의 지구 생명체
4강. 운동하는 신경세포
5강. 의식으로 가는 길
6강. 신경전달물질의 대이동
7강. 시냅스 막, 생각이 시작되다.
2부, 인간의 뇌, 생각은 어떻게 만드어지는가
8강. 뇌의 발생과 뇌의 구조
9강. 뇌, 상상하는 기계가 되다
10강. 척수, 세밀한 감각에서 정교한 운동까지
11강. 각성과 수면의 뇌간 시스템
12강. 소뇌, 운동 계획에서 실행까지
3부. 뇌와 감각, 생각이 인간을 움직인다
13강. 보다. 시각과 뇌
14강. 듣다, 청각과 뇌
15강. 느끼다, 감정의 뇌1
16강. 예측하다, 감정의 뇌2
17강. 움직인다는 것, 뇌와 운동
18강. 의식한다는 것, 뇌와 의식
19강. 꿈꾸다, 뇌와 꿈
20강. 현실 너머를 깨닫다. 뇌와 초월의식
21강. 창조적으로 생각하다, 뇌와 창의성
4부. 창조하는 뇌, 대칭이 깨어지고 생각이 확장되다.
22강. 대칭이 깨어진 세계에서
23강. 뷰티풀 마이크로코스모스
24강. 자발적 대칭 파괴로 생각이 진화하다.
목차에서 짐작하듯, 5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에 물리학, 화학, 뇌해부도, 뇌작동시스템 도표, 화학식, 물리식, 미생물학까지 여러 지식을 넘나들며 우주의 탄생부터 생명의 탄생과 진화과정, 신경세포의 출현과 뇌의 생김새, 뇌의 다양한 작동방식을 촘촘히 설명해내고 있다.
책의 시작도 끝도 대칭의 깨어짐이다. 이 지점에 저자가 이 방대한 저서를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주제의식이 놓여있다. .
“뇌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대칭을 알아야 합니다. 입자물리학의 가장 근본적인 현상은 대칭입니다. 1강에서 우주의 네 가지 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힘이 분화되어 나온 것 중 하나인 전자기 상호작용이 결국 생명현상의 기반을 이루게 됩니다.
물리학에서 대칭은 보존법칙입니다. 물리 실험이 시작에 무관하게 동일한 결과를 얻어야 법칙이 성립되죠. 즉 시간에 대한 대칭의 요구로 에너지 보존법칙이 존재하며, 공간의 균일성에서 선운동량 보존법칙이, 공간 방위의 균등성에서 각운동량 보존법칙이 생기죠.
자연현상을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역시 가장 근본에 대칭성이 존재합니다. 그 대칭성의 자발적 붕괴로 우주의 입자들이 질량을 획득하게 되었죠. 그다음에 우주의 네가지 힘이 분화되었고, 그중 전자기 상호작용에 의해서 화학적 현상과 생명현상이 출현했습니다. 생명현상에서는 단세포로부터 시작된 기억과 감각-운동의 작용들이 척추동물에 이르러 중추신경계의 머리 신경절에 집중되었죠. 포유류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한 1차 의식과 우리 인간에 와서 가능해진 언어로 촉발된 고차 의식으로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런 예측의 중심인 자아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된거죠.” - 서문 중에서
의식의 출현의 근원적 힘이 우주적 차원의 대칭의 깨어짐에 있었다면, 이제 의식이 어떻게 출현했는지를 알게 된, 즉 생각을 생각할 수 있게 된 인간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자발적으로 대칭을 깨뜨리는 일이다.
“우주라는 시공간에서 깨어진 대칭은 다시 대칭으로 돌아간다. 우주 생명체인 인간 역시 생각의 대칭을 깨고 다시 대칭으로 향하고 또다시 생각의 대칭을 깨고 대칭으로 돌아겸 바로 지금 이 순간보다 완전한 존재를 향해 움직인다.” -4부의 머리글에서.
“학습을 하면 기억 시스템이 바뀝니다. 그리고 학습 형태를 중심으로 학습 부재형, 학습 최소형, 학습 주도형으로 학습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죠.
오픈 시스템, 즉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기억을 보면 학습 기억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 세 가지 기억(절차 기억. 신념 기억, 학습 기억)의 비율이 생각의 유연성에 관한 인간형을 결정합니다. … 100명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한 특이한 형태가 학습 주도형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적극적으로 학습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독서를 통해서 배우죠. 오픈 시스템을 향해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의 학습 기억은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융통성과 판단력, 비전이 탁월해지죠. 학습 주도형의 사람에서는 신념 기억이 균형 잡힌 지식의 힘으로 제어되어 맹목성이 올바른 방향의 추진력이 되는 순기능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융통성, 판단력, 비전이 탁월한 학습 주도형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첫째, 지식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둘째, 질문을 품어서 성장시켜야 합니다.
세 번째, 학문에 미쳐야 합니다.
네 번째, 학습이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다섯 번째, 목표량이 중요합니다.
결국 생각의 출현으로 가는 길에는 융통성과 판단력, 비전이 탁월한 학습 주도형의 인간이 서 있습니다. 스스로 대칭을 깨뜨리고 다시 대칭으로 향하는 것이죠. 우주 초기의 대칭이 깨어져서 나타난 것이 뇌, 의식의 출현 아니었습니까.”
- 24강. 자발적 대칭 파괴로 생각이 진화하다. 중에서
과학치인 내가 완독할 수 있었던 건 중,고등학교 시절 그래도 100점을 놓치지 않으며 즐겁게 공부했던 생물 과목의 바탕이 있었던 덕이고 저자의 탐구열, 전달하고자 하는 열정에 탐복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그렇게도 전달하고자 했던 세부적 내용의 대부분을 다 이해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이 책 덕분에 다른 뇌과학 서적을 읽어내는 일이 만만해졌다. 크게 전체를 스캔했으니 말이다.
스스로를 토닥토닥.
저자의 말대로 나 역시 자발적으로 대칭을 깨뜨린건가?
마지막으로 서문에 있는 "4. 인간의 뇌"에 대한 소개글을 옮겨본다.
의식에 대한 현상학적 설명과 일치하여 재미있게 읽었다.
교육이나 학습이라는 건 결국 의식화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무의식적 영역을 의식화하는 작업이 예술이고 교육이고... 그렇지 않을까?
"우리의 뇌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은 운동, 뒤는 감각, 가운데는 기억! 감각, 운동, 기억 이것이야말로 생명현상을 떠받치는 세 개의 받침대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는 좌뇌 우뇌인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뇌의 앞쪽은 운동, 뒤쪽은 감각, 가운데는 기억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체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은 존재 바깥에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피해 갈 수 없는 공통점이죠. 결국 생명현상이 지속되려면 밖에 있는 것을 내 안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외부의 것을 내 안으로 가져오는 매커니즘은 두 가지입니다. 감각 메커니즘, 운동 메커니즘.
바깥에 먹이가 있다. 저기에 성 파트너가 있다. 그러면 일단 내가 그쪽으로 가야 하죠. 그것을 향해야 합니다. 집중하고, 의도적으로 그쪽으로 기울어야 하지요. 정신적으로 지향하든, 물리적으로 손을 뻗든 그것을 가져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동물 행동의 공통점인 목적 지향성이죠.
뇌는 신체 내부와 주위 세계를 연결하고 중계합니다. 외부 세계는 신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지만 그런 욕구에 냉담하죠. 뇌는 밖에 있는 것을 나에게로 가지고 오게 하는 것입니다. 뇌의 세 영역인 감각, 운동, 기억. 이것을 아루느는 낱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죠. 지향성입니다. 지향성이란 인식 작용은 항상 '무엇에 대한' 작용이라는 거죠. 지향성이 바로 의식입니다.
지향성은 세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통일성, 전체성, 목적성이죠. 이것이 의식의 정의일 수 있습니다.
먼저 통일성. 감각의 개별화된 모듈은 통일이 되는데, 워낙 순간적이라 우리는 깨닫지 못합니다. 빨간 사과가 굴러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색깔, 모양, 움직임을 순간적을로 통합하여 하나의 현상으로 지각하죠.
둘째, 전체성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죠. 생명현상 역시 역사성을 갖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목적성입니다. '무엇'에 대한 것이죠. 목적성은 척추동물의 척추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땅 위에서 먹잇감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 모든 감각기관이 앞쪽에 있는 것, 모든 척추동물의 입이 앞쪽에 있는 것 등이 목적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어떻게 척추동물의 행동이 목적 지향적일까요? 척추 그 자체가 방향을 결정해주기 때문이죠. 앞은 가야 할 방향이죠. 에너지, 먹이를 가장 먼저 만나도록 합니다.
이러한 통일성, 전체성, 목적성이 지향성의 본질이고 이 지향성이 의식인 것입니다.
마음, 의식, 생각, 언어,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죠. 잠시 정리하고 가야할 것 같습니다. 먼저 마음입니다. 마음은 엄밀히 말해서 과학 용어는 아닙니다. 마음은 과학 용어로 의식이죠. 의식에 감정, 느낌, 상징, 언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은 뭘까요? 의식이 언어보다 크다고 했죠. 생각은 대부분 언어에 의해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각이 주로 언어라는 상징체계로 구성되지요.
의식은 언어를 포함하고 있다고 했지요. 뇌의 작용에서 언어 아닌 부분도 있겠죠. 무의식이죠. 무의식이 뭘까요? 지금 의식화되지 않은 뇌의 작용입니다. 뇌의 활동 중 5%만이 의식화됩니다. 나머지 95%는 의식화되지 않는 뇌의 프로세스죠.
낮 동안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습관화된 자동적 무의식 행동입니다. 의식은 언제 출현할까요? 동일한 자극이 계속되면 우리는 그 자극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자극이 바뀌는 순간은 의식하죠. 그래서 움직임은 순간적으로 의식됩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친구를 어떻게 찾아요? 친구가 손 흔들면서 나 여기 있어 하잖아요. 많은 사람들 속에 금방 찾게 하는 건 움직임, 즉 운동입니다.
이렇게 뇌를 알게 되면 인간 정신 활동의 대부분을 스스로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됩니다. 뇌 공부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유익한 것은 '생각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