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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월 27일 월요일
[(녹) 연중 제3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녀 안젤라 메리치 동정
말씀의 초대
구약에서는 죄를 용서받고자 대사제가 동물의 피를 성소에서 봉헌하였지만, 이는 신약의 예표일 뿐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몸소 제물로 삼아 참된 성소인 하늘에 바로 봉헌하신 것이다(제1독서).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 마귀 우두머리의 힘이라고 중상모략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이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더 이상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9,15.24-28
형제 여러분,
15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24 그리스도께서는, 참성소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곳에,
곧 사람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25 대사제가 해마다 다른 생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듯이,
당신 자신을 여러 번 바치시려고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26 만일 그렇다면 세상 창조 때부터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 죄를 없애시려고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27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지듯이,
28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죄와는 상관없이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사탄은 끝장이 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2-30
그때에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를 치유하시고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십니다. 이를 본 율법 학자들이 말합니다.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마르 3,22). 무엇 때문입니까? 시기심과 적대감 때문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제 두 눈으로 은혜로움과 기적을 보고도 마음이 불편해지고 꼬여서 진실을 외면하며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시고는 그들이 퍼뜨리는 거짓이 얼마나 허황되고 억지스러운지를 깨닫도록 차근히 설명하십니다. 그들을 모두 구원하시고 싶은 것이지요.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3,23-25). 마귀(악마)는 존재할까요? 네, 존재합니다. 악마는 하느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거스르게 하는 유혹자 또는 허공을 떠도는 공중의 악한 세력입니다.
마음이 완고하거나, 그와 반대로 위축되고 나약한 이들의 마음을 병들고 악한 생각으로 꼬드겨 그들의 몸과 입을 빌려 힘을 행사하는 것이 주된 수법입니다. 그렇게 그들을 장악하여 불쏘시개처럼 한바탕 사용하고는 버리지요. 그 악마의 힘이 대단해 보여도 빛이신 예수님께 그들의 꼬임이 통할 리 없습니다. 그래서 그 힘센 자를 묶어 놓고 그에게 사로잡힌 이를 구출해 내실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랑은 누군가를 장악하여 지배하고 조종하지 않습니다. 그가 참으로 자기 모습대로 살게 해 줍니다. 시기심과 거짓말에 자신을 맡길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하느님께 향하고, 또 기쁨과 감사와 기도에 맞추어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김동희 모세 신부)
의인들의 존재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주님을 드러내는 명확한 표지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요즘 자주 듣는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평소 늘 젊잖고 예의 바르던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불리던 사람들 입에서조차 깜짝 놀랄 정도의 욕이 튀어나와 깜짝 놀란답니다. 하도 어이없는 일,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일, 그야말로 웃픈 일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니 벌어지는 에피소드 같습니다.
뿐만아니라 많은분들의 생활 리듬이 깨진 관계로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습니다. 열이 받쳐 새벽 두시 세시까지 잠이 않오니, 자연스레 관련 뉴스를 지속적으로 접하고, 겨우 겨우 아침이 일어나고를 반복한답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만든 장본인들은 저리 실실 웃으며, 말을 돌리고, 별의 별 해괴망측한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상황을 즐기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애꿎은 사람들이 받으니, 이 또한 얼마나 억울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귀,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사탄이란 노골적으로 하느님 반대편에 서서 인간을 악으로 빠져들게 하는 사악한 무리들입니다.
이 시국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사탄 같은 존재들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실감합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거짓말이 청산유수처럼 줄줄 흘러나옵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천박한지 듣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름 확고한 의지와 강한 충성심으로 무장해있지만, 그 끝이 죽음이요 멸망인지 모르고 불나방처럼 불속으로 달려드는 사람들이 참으로 가련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라는 말이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옵니다.
하도 답답해 이렇게나마 정말이지 지극히 소극적이고 정제된 표현을 시도해보는 저를 보고 사탄의 자식,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마귀라고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토록 나라 전체와 국민 전체를 사분오열 갈기갈기 찣어놓는 사탄의 무리들이 조속히 무대 뒤로 사라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위안이 되는 측면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위기 상황 앞에서 옥석이 가려진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부각되었고, 일제강점기때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등등 의인이 출몰했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참담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마냥 죽어라 죽어라 하지 않습니다. 아무 개념 없는 사람들만 윗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와중에 용기있게 진실을 말하는 의인들이 등장합니다. 중차대한 위기 상황이 극적으로 타개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상황을 반전시키는 애국자들이 등장합니다.
저는 요즘 참으로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지내면서도, 이 비참한 우리나라의 현실 안에서도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제 두눈으로 똑똑히 확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군가의 양심을 건드리십니다. 용기를 내게 하십니다. 진리를 선포하게 하십니다. 그들의 존재 자체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주님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중요한 표지라고 확신합니다.
오늘 우리의 하루도 사탄의 존재를 드러내는 하루가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을 명명백백하게 만천하에 드러내는 의인의 삶으로 엮어가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592년은 ‘임진왜란’이 시작된 해입니다. 임진왜란이 있기 전에 율곡 이이는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습니다. 오랜 내전을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무신정권이 조선을 침략할 수 있다는 예견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태평성대’에 십만의 군사를 모집하는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율곡 이이의 의견을 듣고 십만 명의 군사를 양성했다면 임진왜란은 발발하지 않았을 겁니다. 설사 임진왜란이 있었다고 해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평가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선을 침략하고, 명나라까지 침략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야망가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선을 침략할 만큼 야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조선 정부는 일본에 통신사를 직접 보냈습니다.
그런데 통신사로 다녀온 두 사람의 의견이 달랐습니다. 일본을 다녀온 황윤길(黃允吉)과 김성일(金誠一)이 선조에게 보고했습니다. “황윤길은 보고하기를,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김성일은 아뢰기를 "그러한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되게 하니 사의에 매우 어긋납니다.”라고 했습니다. 선조가 ‘수길(히데요시)이 어떻게 생겼던가?’라고 물었습니다. 황윤길이 아뢰기를,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듯하였습니다"라고 했고,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때 통신사의 의견이 같았다면 선조는 임진왜란을 대비했을 겁니다. 이때 선조가 황윤길의 의견을 들었어도 임진왜란을 대비했을 겁니다.
한국의 신학교, 성지, 수도원을 생각합니다. 아직은 젊은이가 많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젊은이는 줄고 있습니다. 원인을 알면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원인을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은 어떤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음식이 맛있으면 사람들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교회가 잃어버린 맛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말씀’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중풍 병자, 소경, 나병 환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치유되었습니다. 다락방에 숨어서 떨고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풍요와 발전을 위해서 마르타의 삶에 충실했지만,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한 마리아의 기도가 부족했습니다. 가족이 모여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주한 중에도 늘 기도하셨습니다.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얻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몸을 위한 여행과 휴가도 좋지만, 영혼을 위한 피정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교부들의 가르침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서적을 가까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영혼의 빈 창고에 세상의 것들이 들어왔습니다. 우리의 판단과 행동의 기준에 세상의 가치와 세상의 욕망이 함께 했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서적과 신문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넷째는 ‘미사’입니다. 주일미사 참례 자가 줄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만찬을 하시기 전에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빵을 떼어 나눠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것을 받아먹으십시오. 이는 여러분을 위해 내어 줄 내 몸입니다.” 미사는 예수님의 희생과 나눔의 재현입니다. 미사를 통해서 주어지는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다섯째는 ‘나눔과 친교’입니다. 나눔과 친교가 적어지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가진 걸 기꺼이 나누었습니다. 가난한 이, 과부, 고아, 병든 이, 노예, 이방인도 친교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이미 천국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을 함께 묵상하면서 새로운 한 주간을 지냈으면 합니다. “아무도 다른 이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오히려 언제나 상호 간에 또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려고 애쓰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너와 더불어 나>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마르 3,22)
너와 더불어 나
너를 높다 하니
더불어
나도 높고
너를 낮다 하니
더불어
나도 낮네
너와 더불어 나
너를 크다 하니
더불어
나도 크고
너를 작다 하니
더불어
나도 작네
너와 더불어 나
너를 귀하다 하니
더불어
나도 귀하고
너를 천하다 하니
더불어
나도 천하네
너와 더불어 나
너를 선하다 하니
더불어
나도 선하고
너를 악하다 하니
더불어
나도 악하네
너와 더불어 나
너를 깨끗하다 하니
더불어
나도 깨끗하고
너를 더럽다 하니
더불어
나도 더럽네
너와 더불어 나
너를 있다 하니
더불어
나도 있고
너를 없다 하니
더불어
나도 없네
너와 더불어 나
오늘의 성인
성녀 안젤라 메리치(Angela Merici)
신분 : 동정녀, 3회원, 설립자
활동지역 : 브레시아(Brescia)
활동연도 : 1470/1474-1540년
같은이름 : 앤젤라, 엔젤라
성녀 안젤라 메리치는 이탈리아 북부의 가르다(Garda) 호수 남쪽 데센자노(Desenzano)에서 태어나 경건한 신앙인으로 교육받았다. 어려서부터 성인전을 즐겨 읽었고, 성인들의 금욕 생활에 감명을 받아 금욕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13세 때 첫영성체를 한 후 평생 동안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는데, 쌍둥이같이 자라던 15세의 언니와 브레시아 시민이라는 귀족 작위와 넓은 땅을 가진 영주였던 아버지 조반니(Giovanni Merici)와 어머니를 연달아 여의고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5년간 휴양지로 유명한 살로(Salo)에서 살게 되었다.
그 후 성녀 안젤라는 작은 형제회 재속회(3회)에 입회하여 기도와 가난, 극기의 생활을 철저히 실천하며 자신을 이웃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부모처럼 돌보아주던 외삼촌의 사망 후 고향 데센자노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았는데, 특히 주위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기도와 신앙생활을 지도하였다. 1516년 안젤라는 두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브레시아의 귀족 파텐골라(Patengola) 가족을 위로하러 브레시아에 갔다가 그들의 청으로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이곳에서 성녀 안젤라는 죄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속죄와 금욕생활을 하는 한편 고향에서와 같이 청소년들에게 종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1524년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다음 해 로마를 순례한 뒤 그녀는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에게 동정녀들의 모임을 시작하고자 하는 뜻이 있음을 밝히고 허가를 받아 브레시아로 돌아왔다. 카알 5세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1528년 브레시아가 점령당하자 크레모나(Cremona)로 피난을 간 그녀는 그곳에서 심한 병을 앓다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였다.
1530년 전쟁이 끝나 브레시아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뜻을 같이 하는 12명의 동정녀들과 함께 이듬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1535년 11월 25일 28명의 동정녀들은 브레시아의 성 아프라(Afra) 성당에서 영성체를 하고 성녀 안젤라가 만든 규칙에 따라 청빈, 정결, 순명을 지키는 회원이 될 것을 서명함으로써 '우르술라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고, 1537년 성녀 안젤라가 초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들은 특히 소녀들의 교육에 투신하고자 하였다. 가톨릭 여성 교육을 표방한 수녀회는 우르술라회가 첫 번째이다. 초기에 그들은 가족을 떠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수도복이 아닌 단순한 복장으로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에게 봉사하였다. 성녀 안젤라는 1540년 1월 27일 사망하여 성 아프라 성당에 묻혔고, 1768년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데보타 (Devota)
활동년도 : +303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코르시카(Corsica)
같은 이름 : 데보따
코르시카 처녀인 성녀 데보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신앙을 지키다가 찢겨 죽었다고 한다. 그녀는 지중해 코르시카 섬의 수호성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