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스가랴서 9~14장까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스가랴서 9장부터 마지막 14장까지는 스가랴가 한 예언이 아니고, 그 제자들이 쓴 글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덧붙인 것입니다. 내용도 일관성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을 구원하겠다는 예언과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겠다는 예언이 뒤섞여 성서학자들조차 당황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9장 이하의 글들은,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글이 덕지덕지 덧붙여진 것이라고 혹평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모음에는 신약성서 기자들이 인용한 본문이 담겨있습니다. 먼저, 스가랴서 9장 9~10절을 보겠습니다.
9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공의로우신 왕,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나귀 곧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10 "내가 에브라임에서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며, 전쟁할 때에 쓰는 활도 꺾으려 한다. 그 왕은 이방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할 것이며, 그의 다스림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유프라테스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를 것이다.
메시야가 오실 것인데, 그는 겸손해서 군마가 아니라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답니다. 정복자의 모습이 아니라 평화의 왕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전쟁에 지친 유대 민족이 얼마나 평화를 갈망하는지를 잘 드러낸 본문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신약성서 기자들에 의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에게 적용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9절을 보겠습니다.
1 예수와 그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러, 올리브 산에 있는 벳바게 마을에 들어섰다. 그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가서 보면,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고, 그 곁에 새끼가 있을 것이다. 풀어서, 나에게로 끌고 오너라.
3 누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거든, '주님께서 쓰려고 하십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리하면 곧 내어줄 것이다."
4 이것은, 예언자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5 "시온의 딸에게 말하여라. 보아라, 네 임금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온유하시어, 나귀를 타셨으니, 어린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다."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대로,
7 어미 나귀와 새끼 나귀를 끌어다가, 그 위에 겉옷을 얹으니, 예수께서 올라타셨다.
8 큰 무리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가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
9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무리와 뒤따라오는 무리가 외쳤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더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이 본문은 마가복음 11장과 누가복음 19장, 그리고 요한복음 12장에도 거의 같은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가랴서 13장에도 신약성서 기자들이 인용한 본문이 있습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7 "칼아, 깨어 일어나서, 내 목자를 쳐라. 나와 사이가 가까운 그 사람을 쳐라. 나 만군의 주가 하는 말이다. 목자를 쳐라. 그러면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나 또한 그 어린 것들을 칠 것이다.
아마도 이 본문은, 서기전 2세기의 어떤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서기전 2세기에 마카비우스 가문 사람들이 시리아제국에 맞서 게릴라전을 펼쳤는데, 그때 유력한 장수 하나가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과 관련된 글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도 신약성서 기자들이 예수님께 적용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1절을 보겠습니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하였다.
스가랴서 9장과 13장의 본문을 수백 년 후에 태어나실 예수님에게 적용한 신약성서 기자들의 해석은,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임을 입증하려는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열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운명론적인 해석은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데 합리적이지 않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장래의 일을 점치는 것은 예언이 아니라 운명론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언자들이 선포한 것은, 미래의 일을 점치는 운명이 아니라,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대언자의 역할이었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