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는 기나긴 수천년에 달하며, 무수하게 많은 나라와 수많은 영웅호걸이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신은 그런 중국 역사상 최고 중의 최고로 손꼽히는 명장이다. 모든 지휘관들은 각자 상황이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니 일괄적인 비교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가장 뛰어난 명장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수없이 손꼽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한신은 단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시작하여 여섯개의 나라를 무너뜨렸으며, 두 명의 왕을 사로잡았고, 한명의 왕을 참살했다. 그 기간은 불과 몇년에 불과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기동전, 배수진, 우회공격, 전면전 등 온갖 방식의 전투 방법을 총동원 했고, 다 이겼다.
물론 이렇게 한신이 상대한 적들이 비록 국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해도, 실상을 보자면 이후 출현하는 중앙집권형 국가들처럼 그 체제나 동원력이 어마어마한 경우와는 백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즉 상대한 군사의 질이나 적의 수준이 아주 높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배수진의 일화에서 보듯이, 병력 질이 막장이기는 한신도 마찬가지였다. 즉 한신이 특별히 정예군을 이끌고 상대적으로 만만한 적을 두들겨 팬 것도 아니었고, 똑같은 조건에서 시작했지만 한쪽은 추풍낙엽으로 당하는 역할이었던것에 비해, 한쪽은 무패의 군단이 되어 있었다. 이는 지휘관 능력의 차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재밌는 부분은 한신이라는 사람의 개성이다. 한신은 젊은 시절에는 그야말로 찌질이 그 자체로 평가받았고, 항우의 군단에 있을때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었다. 즉 그전에는 제대로 군사 한번 다뤄본적이 없었던 사람인데, 그러나 유방의 밑에서 한번 기회를 잡자,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완벽한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내보였다. 병법으로 말하자면 거의 타고난 명장이라고 밖에는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지휘관으로서 활약만 엄청난게 아니라, 이좌거의 이야기를 듣고 연나라를 항복시키는 등 기본적인 식견도 충분했다.
그러나 그런 지휘관으로서 엄청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이 간다는게 대체적인 평가. 특히 처세술에 관해서는 거의 빵점이나 다름 없다.
이미 전쟁 중에 유방을 수없이 자극했지만, 정작 괴철이 독립을 권했을 때는 "유방이 그래도 나에게 잘 대했는데, 그럴 수는 없지." 라고 거절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한신 본인의 인간적인 의리가 돈독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게 역이기 사망과 유방이 위급해졌을때 왕 시켜주라고 하기 이후에 나온 말이라는게 문제다. 즉, 감정적, 정치적으로 어그로는 수없이 끌어놓고, 정작 본인이 자립할 수 있을 때는 딱히 정치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목적이 아니라 그냥 인간적인 감정으로 판단했다는 부분이다. 당장 항우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도 무슨 상황에 대한 정치적인 고려가 아니라 "너는 나 형편없이 대했는데, 유방은 인간적으로 나 잘 대해주던데?" 같은 감정적인 이유였다. 이런 모습으로 보면, 한신은 자신이 유방의 어그로를 끌었다고 생각조차 못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유방에 당하는 부분을 보면 황당함을 넘어 괴이할 정도인데, 사실 한신같은 전쟁 영웅은 군주로서는 언제나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신은 너무나도 싱겁게 유방에게 당해버렸는데, 잠 자다가 털리기 라던지, 제나라 왕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기습에 한번 걸려 반항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잡혀서 초나라 왕이 되었으며, 초나라 왕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내가 죄가 없는데 어쩌기야 하겠어?"같은 안일한 판단 때문에 역시 칼 한번 써보지 못하고 회음후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사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전쟁터에서는 그렇게 귀신같은 능력을 보여준 한신이 이토록 정세 판단에 어둡다는게 사람들을 답답하게 하는 부분.
이렇게 되어, 정작 가장 유리한 시점이었던 제왕 - 초왕 시절에는 손도 못 써보다가, 회음후가 되고 나서야 손을 쓰다가 당해버리는 황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마천은 이에 대해 "천하가 다 평정 되고 나서,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라고 황당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런 점 때문에 간혹 한신에 대해
"영웅의 모습과 찌질이의 모습이 섞였다." 라는 식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시바 료타로는 자신의 소설
항우와 유방에서 한신의 이런 모습을 부각시켰는데, 작중 괴철이 한신에 대해 "무인으로서는 걸출한 재능의 소유자지만
다른 면에서는 백치 같은 인물" 이라고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여담이지만 한신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유방은 "한편으로는 기뻐하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했다."<del>뭐야 이게</del> 아무래도 그런 인물이 사라져서 부담이 덜해진 부분은 기쁘지만,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공을 세운 사람이 허망하게 죽어버린 일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느꼈던것으로 보인다.
사마천은 다음과 같은 평론을 남겼다.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우고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여 자기를 공을 과시하지 않고, 자기의 재능을 과신하지 않았다면, 그가 세운 공은 아마도 주나라 천 년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주공(周公), 소공(召公), 태공(太公)에 세운 공훈에 비견되어 후세들로부터 혈식(血食)을 받아먹으며 받들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의 정세가 이미 정해진 뒤에야 반역을 꾀했으니, 일족이 멸망한 것은 역시 당연한 일이 아닌가?"
첫댓글 역시 한신.....토사구팽...이니 아쉽지만....저런 인물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런지...ㅎ
항우를 이겼지만 한때 항우에게 붙잡혀있던 여후에게 죽은자 어떻게보면 한신은 군사쪽에선 천재일지는 몰라도 정치에선 문외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ㅠㅠ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이 너무 재미납니다~ +_+
잘 봤습니다^^
한신도 한신이지만 별볼일 없는 직위의 장수를 느닷없이 대장군으로 발탁한 유방의 선택은 진짜 미스테리입니다. 역사상 그런예가 있을수 있을까요? 유방휘하의 역전의 맹장들은 죄다 멘붕이었을듯
한신은 장군의 대범함과 소시민의 찌질함은 동시에 가지고 있는 영웅이네요. 장군으로서 전략, 전술은 누구보다 밝은면서 정치에는 아이와도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