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당근 월급날이다.
10일은 남편의 월급날, 솔직히 남편보다 내가 더 기다리는 날이다.
통장에 입금된 급여를 찍어보고 연례행사로 하는 일이 있다.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다.
한 달 열심히 일한 노고에 감사하고, 단 돈 30원으로 남편의 기(氣)를 살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 달 열심히 일해줘서 고마워. 수고했어. 아껴서 잘 쓸게. 알라뷰. 신랑 파이팅!!
곧장 답장이 왔다.
"여보 사랑해. 고생이 많지? 힘내고. 오빠 한 번 믿어봐~~"
내게 고생이 많다고 하는 것은 늘 하는 말이다.
맞벌이 부부인 내가 집안일, 직장일 하느라 힘든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 고마움과 수고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직장맘의 일상은 힘들다.
퇴근시간이 되면 뭘 해서 저녁을 먹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처리해야 할 집안일도 만만치 않다.
퇴근 후 집에 가면 전쟁이 난 것처럼 난리다. 싱크대엔 설거지가 수북!
출근 때 애들 밥 먹은 설거지랑 청소를 불이 나게 해 놓고 오지만, 퇴근 후 집에 가면 도루묵이다.
학교에서 오자마자 나가 노느라 벗어놓고 나간 아이들 옷가지들이 파편처럼 이 방 저 방 흩어져 있고,
설거지통엔 음식 찌꺼기가 남은 그릇이 한가득이다.
흐트러진 것을 넘기지 못하는 성미다 보니, 집에 들어서자마자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저녁 먹고 나면
몸은 파김치가 된다. 솔직히 퇴근하면 누가 밥 좀 차려놓고 기다려줬으며 하는 마음이 들 때도 많다.
맞벌이 직장맘의 고달픔과 노고이다.
'오빠 한 번 믿어봐'라는 남편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 몇 달 후 진급발표가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을 담아 보낸 것이다. 진급에 대해선 일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당사자인 남편이 더 부담을 느낄까 봐!!
"열심히만 해.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 있겠지? 잘 될 거야.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오래도록 당신이 우리 곁에 있어주는 것이 더 소중해."
진급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기에.. 굳이 나까지 그 스트레스에 힘을 보탤 이유가
없기에 부담되는 말은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의외로 월급날, 남편에게 감사 문자 보내는 아내가 적다는 사실에 놀랐다.
통장으로 입금되는 액수에만 관심 있지, 문자 보낼 엄두를 못 내는 것일까?
한 번도 해 보지 않아 쑥스러워서 못한다는 아내도 있다.
예전엔 월급봉투에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넣어서 아내에게 내미는 남편에겐 당당함이 있었다.
(오래된 드라마에서 봐도 그렇고, 내 아버지도 월급날엔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것 같고..)
그러나. 요즘처럼 바로 통장으로 입금되니 월급날이라고 특별히 생색낼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저녁 밥상이 조금 근사해지고 반찬 가짓수가 늘어나는 것이 그나마 호사일까?
남편은 월급날 문자메시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깜빡하고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오늘 월급날인데 왜 문자 안 보냈어? 그런다.
수고했다는 그 한마디가 듣고 싶고, 내게 으스대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것이다.
이럴 때 보면 남자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ㅋㅋ) 나도 월급 받는데..
내 월급날은 언제인지? 얼마인지? 모르면서..
대한민국 남편들 氣를 살려주자!
남편 퇴직하면 아내가 곰국 한 솥 끓여놓고 여행 간다는 둥, 이사 갈 때 가족들이 자신을 떼어놓고
갈까 봐 가장 먼저 차에 올라타 있는 것이 남편이라는 둥 그런 우스갯소리가 회자되는 걸 보면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평생 고생하며 돈 버는 기계처럼 살아온 남편들의 최후 모습치곤
좀 서글픈 것 같다. 물론 평생 아내를 부리며 큰소리치는 남편도 있긴 하지만.
남편 氣 살리는 것, 작은 것에서 찾자.
월급날 수고했다는 문자 한 통 날리는 것! 몇 십만 원짜리 보약보다도 훨씬 효과가 있다.
쑥스러워 못한다고 생각 말고, 지금 당장 문자 한 통 날리자! 남편 氣 살린다고 엉뚱한 데 돈 쓰지 말고.
오래전(남편이 직업군인이던) 썼던 글을 읽어보니 어제 일인 듯 새롭다.
남편이 전역 후 새 직장에서 받는 월급의 정확한 금액은 아직도 모른다. 10년도 넘었지만.
남편 통장으로 바로 입금되고 직접 관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자금도 필요한 나이(?)니 인정하고 적당히 눈 감아주고 싶어서다.
(허투루 돈 쓰는 타입이 아니라는 믿음? 도 있다.)
대신 매달 일정금액은 이체를 해준다. 재정담당 총책임자(?)인 내게.
남편의 월급을 잊고 있었다. 오래된 습성처럼.
월급날 수고했다는 문자 보낸 지도 오래되었고...
남편의 월급은 당연한 듯, 남자의 운명이고 의무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건 같다.
지금 내 곁에는
오빠, 한번 믿어보라며 패기 넘치던 그 젊은 오빠는 사라지고
주름과 흰머리가 늘어가는 중년의 오빠가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오빠는 지금도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온다. 감사하게도..
남편 월급날에는 기(氣) 한번 살려줘야겠다.
"오빵~~ 수고했어. 오빠만 믿을게." (하트 뿅뿅 발사도 함께)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은 것처럼, 사이좋은 부부가 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큰돈 들이지 않고 간단한 문자 한 통으로도 족하다.
상대(남편이든 아내든)의 수고에 감사하는 진심을 전할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