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과 천태산의 추억/양산 원동
아침부터 가슴이 설렜다.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던 날이다. 양산시 원동면, 그곳은 젊은 시절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예전 비들기호를 타고 푸른 낙동강변을 보며 그곳을 거쳐 삼량진으로 향해갔고, 좋아하는 산을 찾아 혼자 천태산(730m)을 올랐었다.
요즘은 가까운 사람들끼리 물맑고 공기좋은 영남알프스의 쉴만한 물가인 배내골을 찾아드는 초입이다. 나이드니 이젠 그런 곳은 스스로 낯설어지는건 무엇 때문일까?
구포역에서 기차를 탔다 기차, 너 참으로 오랫만이다. 시내 지하철이야 사흘이 멀다하고 만나고 또 마주치지만, 국철은 타본지가 까마득하다. 젊은시절 많이도 이용했던 기차여행엔 셀레임과 애환이 뒤섞였었다.
완행열차, 그것엔 속성이 있다. 지정좌석이 있어도 일단 가까운 거리이니 남의 자리에 앉는다. 앞좌석 여자는 미안하다며 비켜주면 될텐데 구시렁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며칠전 어느 동영상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버스 타는 습관이 있었다. 선진국에선 먼저 탄사람이 가방을 안고 창쪽 좌석에 앉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통로쪽에 앉고 옆좌석에 가방을 두었다.
기차 안에서 시내 종심으로부터 타고온 그리운 친구들을 만났다. 왠지 오늘의 모임도 마음 설레는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선입감이 들었다.
기차를 내려 친구들과 함께 걷는 지류인 작은 강변길, 깊고 푸른 물줄기 뚝방은 녹음 우거졌고, 줄이어 핀 노란 금계국이 자유분방 자연에 동화된듯 걷는 우리들을 격하게 환영하는것 같았다.
눈을 들어 굽은 강줄기를 막아선 산을 올려다 보았다. 천태산이었다. 내가 혼자 교외의 산을 올랐던 시발점이고, 가슴조였던 앗찔한 추억이 깃든 산이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직장동료의 조카와 맞선을 본후, 그녀에게 부모님 몰래 다음날 천태산 등산을 가자고 제의했다. 흔쾌히 따라나선 그녀, 호젓한 산속 둘만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죽인다였다. 그러나 점심 취사를 하고 돌아오는 하산길엔 점차 힘들어했다.
기차시간 맞추려 부득히 신체 접촉이 잦아졌고, 달콤한 분위기 그런거 느낄 계를이 없었다. 드디어 하산, 그러나 기차 출발시간이 지나갔다. 기차 외엔 다른 교통수단이 전혀 없었던 시절, 기대하는건 제발 기차의 연착뿐...
어쩐다? 그녀를 책임 지는게 문제가 아니었다. 파렴치한이 되는 것이다. 이때 저멀리 역쪽에서 다가오는 작은 불빛, 오토바이 탄 청년이었다.
앞을 막아서서 나는 안탈테니 이 아가씨 가차역까지 태워달라고... 심리전을 폈다. 묘한 상황에 힐끗거리던 청년은 고맙게 나까지 태웠다. 그날따라 기차는 행운의 불시착으로 필연적 관계는 면했고, 나와의 인연은 당분간 지속되다 끝났다.
그 기차는 언젠가 잠시 사겼던 아가씨와 삼량진 데이트를 다녀오다 기차안에서 시골에서 큰아들네 다니려 오시던 우리 어머니에게 들켜 버리게 했던 얄굿은 인연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낚시 채비하는 강태공 더러 무슨 고기가 잡히냐?고 물으니, 외래종인 베스와 불루킬, 토종인 붕어, 그리고 꺽지도 잡힌단다. 문제는 세월만 낚는 강태공이 되는게 아닐까? 요즘은 고기들도 인간 접근 네비게이션을 장착한듯 약삭빠르기 그지없다.
산높고 물맑은 곳, 이런 곳에 살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리라. 그렇게 기대하며 다가간 우리는 친구네 식당에 마주 앉았다.
모두가 건강한 모습, 건강한 친구들만 따로 연락했나? 숨길것, 표정관리 따로할 필요없는 이런 자리가 참 좋다. 코흘리개 어릴적부터 보아왔으니 감춘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골밥상' 자연산 100% 장어고기, 체면 차리던 젓가락이 혀끝을 자극한 후 그 속도가 빨라졌다. 실컷 배를 채우고, 식후 금강산 유람이라 했것다. 차를 나누어 타고 강변공원으로 향했다.
넓은 정자에 모여 앉았다. 강변공원을 산책하려던 우리들은 오랫만의 자유토론에 빠졌다.
시내에서의 모임, 식사가 끝나면 행해지는 요식행위 회비걷기, 그다음은 산만해지고 저마다 갈길 따라 시간을 체크했다.
건강을 지켜가며 활동의 폭을 넓히잔다. 아니! 이 나이대엔 모임의 횟수를 줄이고, 폐지하는 단체도 있었더니...친구들이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구나! 아직은 한참 더한 미래를 바라보며...흐뭇했다.
허나 100세 인생을 실현하자면, 아직도 까마득 하고 고뇌해야할 시간이 필요하다..홀로 사는 인생이 아니니 슬기로운 노후생활의 지혜도 있어야 하겠다.
다시 해가 밝았다. 아침 심심풀이 동영상, 어느 알만한 신부의 강연이 재미가 솔솔했다. 오랫 옛날엔 평균수명이 40대였으니, 장남은 부모 죽으면 줄사탕 형제들을 자신이 책임져야 했다. 그러니 제발 장수 하시라고, 손가락 깨물어 피를 수혈하고, 회갑 진갑연를 크게 베풀었단다
그런데 100세인생(그럴 또 넘어 120까지?), 자식들이 노인되어 함께 늘어간다. 그 귀한 손손주와 증조할배의 생존이 많아졌다. 같이 늙어 갈건데 누굴 위하냐고?(그러면 후레자식이지 ㅋㅋ)
신부의 말, 어느 여행사에서 고난도 프로그램 여행인을 모집했는데, 90대 노인이 신청 했더라나. 혼자는 안된다고 하니, 든든한 아들과 같이 왔다고 하는데, 그 든든한 아들은 70대였더라고.
우리 모두는 원죄를 안고 태어나 힘든 세상 살다가 마지막 심판 받으며 돌아가야할 운명이다. 우리에게 삶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인생의 원형적 시간에서 행복은 비온 뒤의 무지개처럼 찰나이다. 그러나 그 찰나를 꿈꾸고 또 꾸면 행복은 연장될 것 아니겠는가? 모두에게 건강한 삶과 신체의 자유가 이어지길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