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일 : 2024년 7월 13일
33번째 성지순례는 1.광암 이벽 요한 세레자 진묘와 생가 터 → 2.포천 순교 성지 → 3.성 남종삼 요한과 가족 묘소 → 4.황사영 알렉시오 순교자 묘 → 5.의정부 주교좌 성당 입니다.
순례를 떠나면서 바치는 기도
† 자비로운신 주님
약속의 땅을 향하여 떠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친척 엘리사벳을 돕기 위하여 길을 나선
겸손 과 순명의 여인 마리아의 발걸음을 인도하셨듯이
지금 길을 떠나는 저희(신 다빗, 김 소화데레사, 신 미카엘)를 돌보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시어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또한 주님께서 언제나 저희(신 다빗, 김 소화데레사, 신 미카엘)와
함께 계심을 깨닫게 하시고
길에서 얻는 기쁨과 어려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게 하시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과 믿음, 사랑의 생활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나이다.
아멘.
" 한국 천주교 창설 주역으로
포천에서 태어나고
포천에서 순교하고
포천에 잠든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 하느님의 종 요한 세레자 광암 이벽 "
광암 이벽 요한 세레자 진묘와 생가 터
화현 이벽 성지
[춘천교구]
이벽(李檗, 요한 세례자, 1754-1785)은 1754년 포천 화현리에서 태어났다.
이벽의 집안은 본래 무반(武班)이었으나, 이벽은 학문에 더 뜻을 두고 정약전, 정약용과 가깝게 지내면서 학문을 닦았다. 이벽이 언제, 어떠한 경로로 천주교 서적을 접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1779년 겨울 천진암에서 강학이 있을 때 이벽이 한밤중에 도착하여 촛불을 밝혀 들고 경서를 담론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1779년 이전에 천주교 서적을 접한 것으로 보이나, 지식에 머물렀던 천학(天學)을 신앙으로 승화시킨 계기는 천진암에서의 강학이었다. 이후 고향을 떠나 서울 수표교 인근으로 이주한 이벽은, 1783년 말에 이승훈이 북경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를 찾아가 서양 선교사들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천주교 서적들을 얻어올 것을 부탁하였다. 북경에 간 이승훈이 예수회의 그라몽(J.J. de Grammont)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고 1784년 봄에 귀국하자, 이벽은 그가 가져온 새 천주교 서적들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러면서 천주학이 진리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고, 이후 스승과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천주학을 설명하는 데 열중하였다.
1784년 겨울, 이승훈을 비롯하여 권철신, 권일신, 정약전, 정약용 등이 수표교 인근에 있는 이벽의 집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이승훈은 자신이 북경에서 경험한 세례를 동료들에게 시행했으니, 이것이 조선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세례식이었다. 이때 받은 이벽의 세례명은 요한 세례자였다.
1785년 봄, 김범우의 집에서 이벽의 주도 아래 신자들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었다. 그때 이곳을 지나던 형조(刑曹)의 금리(禁吏)들이 이상한 모임이 열리고 있다고 여기고 집안으로 들이닥쳐 성물과 서적을 압수한 뒤, 신자들을 모두 체포하여 형조로 압송하였다. 이 사건 이후 평소 천주교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유림들이 반발하였고, 이벽 역시 가족들에 의해서 배교를 강요당했다. 이벽의 부친은 그를 고향으로 불러 집안에 가두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천주교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으로도 그의 신앙을 꺾을 수 없었고, 자신이 선택한 천주 신앙과 부모에 대한 효(孝) 사이에서 갈등하던 이벽은 결국 신앙을 증거하며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니, 당시 그의 나이 31세였다.
이벽의 묘는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산 289-1번지 공동묘지 갓등산 낮은봉에서 1979년 2월 15일 발견되었고, 이벽의 유해와 지석은 1979년 6월 24일 천진암으로 이장되었다. 현재 진묘 터에는 이장 이후 조성된 봉분과 묘비가 있으며, 본래 있던 묘의 진토(塵土)는 남아있다.
춘천교구장 김주영 시몬 주교는 2023년 5월 20일, “우리 교구 관할인 광암 이벽 요한 세례자 진묘터 및 생가터는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의 빛나는 신앙과 하느님을 향한 사랑, 그리고 초기 교회의 신자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과 희생이 깃들여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시간이 흘러도 이벽 요한 세례자의 지상 여정의 시작과 끝이었던 이 장소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올바른 신앙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훌륭한 표지요 장소가 될 것입니다. 이에 춘천교구 교구장 주교인 나 김주영 시몬은 이곳에 모인 많은 신자들 앞에서 광암 이벽 요한 세례자 진묘터 및 생가터를 기념하는 춘천교구 [화현 이벽 성지]로 공식 선포합니다.”라고 하였다.
화현 이벽 성지 내에는 하늘만 보이는 높은 돌벽이 둘러쳐진 안마당이 성전과 함께 자리한 독특한 형태의 기념성당이 있다. 벽으로 둘러싸여 하늘만 보이는 안마당은 이벽의 이름 그 자체를 의미하는 동시에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만을 바라봤던 이벽의 정신을 의미한다.
이벽 생가터에 자리한 성지 옆에는 포천시에서 조성한 광암 이벽 유적지가 있다. 유적지 내에는 이벽 생가터 재현관과 기념관, 해설사 안내소,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교구에서 지정한 성지와 지자체에서 조성한 유적지가 공존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은 한국 천주교 평신도 지도자로서 이벽의 천주 신앙뿐만 아니라 실학자로서의 이벽의 삶에 대해서도 살필 수 있다.
광암이벽 기념성당 입구에 순례도장 있습니다.
성지 정기미사는 수.목.금.토.일 오후 2시
순례자미사는 언제나 신청 가는 합니다.(인원, 시간 관계없이 '순례자 미사' 신청 가능)
성지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150m 정도, 광암 이벽 진묘터 가는 길,
이곳까지 차 진입 가능하나 길이 좁습니다. 여기서부터 100m 오르기.
이벽 진묘 터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레자께서는
195년 동안 아무도 찿는 이 없는 여기에 묻혀 계셨습니다.
1979년 6월 21일 유골을 수습하여 천진암으로 이장하였지만,
이벽의 유해는 진토되어 이곳에 그대로 남아 계십니다.
'화현 이벽 성지' 주차장은 엄청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