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하구에는 먹을거리가 많았다. 바다와 강이 만나면서 영양염류가 풍부해 해산물이 자라기에 좋았다. 생명의 젖줄, 낙동강 하구에 이은 해안을 따라 제철 음식들을 만들어 낸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갈미조개가 제맛을 낸다. 포구에서 조개 손질하는 아낙네들의 손놀림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색깔 좋고 맛 좋은 명지 김도 본격적인 수확을 앞두고 있다. 올해는 김 채취가 다소 늦어지고 있다는 게 이곳 어민들의 얘기다. 명지 김이 채취되면 꼬시래기 회도 제맛을 낸다. 명지 김과 꼬시래기의 절묘한 만남은 명지포구만의 별미다.
부드러운 육질 사이로 아삭아삭 씹히는 뼈… '별미'로세
영광미소네집 '꼬시래기 회 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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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시래기 회 무침'은 약간 매콤하면서도 아삭아삭한 맛이 별미다. 이제 출하 시기를 맞은 명지 김의 향이 더해져 입맛을 당긴다. |
꼬시래기는 경상도 지방에서 문절망둑이나 풀망둑을 일컫는 말이다. 먹성이 좋아 동족의 살을 베어줘도 앞뒤를 가리지 않고 한입에 덥석 물다 잡힌다. 그런 모습을 보고 눈앞의 이익을 좇다 더 큰 손해를 보는 한심한 행동을 할 때 '꼬시래기 제 살 뜯기'라는 말을 한다. 한때 하구에 지천으로 보이던 물고기가 꼬시래기다.
예로부터 명지에서는 꼬시래기를 명지 김에 싸 먹거나 초고추장에 무쳐서 먹었다. 지금은 좀처럼 먹기 힘든 별미가 되었다. 명지동 중리 포구에 가면 옛 방식 그대로 꼬시래기 요리를 해서 파는 할머니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허름한 슬레이트 단층 건물로 된 작은 횟집이다. '영광미소네집'이란 간판을 달아 놓았다.
"인제, 나도 나이가 들어서 힘들어요. 꼬시래기 요리는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귀찮기도 하고, 우리집에 왔으니 일단 맛은 한번 보고 가이소." 김옥선(71) 할머니다. 명지 중리 포구에서 '꼬시래기 할매집'으로 잘 알려졌다. 같은 장소에서 40년 이상을 꼬시래기 요리를 팔아왔다고 한다. 뜰채로 꼬시래기 몇 마리를 건져 올리더니 그물망에 넣어 빨래하듯 사정없이 빡빡 비벼댔다. 꼬시래기의 비늘과 특유의 끈적끈적한 점액질을 없애기 위해서란다. 깨끗하게 손질한 꼬시래기를 먹기 좋게 썰어서는 무와 배, 고추, 설탕,식초 등을 넣은 다음, 그 유명한 명지 김까지 넣어 조물조물 손으로 비빈다. 할머니 손맛이 느껴진다.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김국까지 차려지니 군침이 돈다. 약간 매콤하다.
부드러운 육질 사이로 뼈가 아삭아삭 씹힌다. 할머니 표 초고추장 양념이 밴 꼬시래기 본연의 구수한 맛과 김 향이 어우러져 별미를 자아낸다. 자꾸 손길이 간다. 먹다 보니 약간 매운 탓에 어느새 콧등에 땀이 맺힌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 서울에서도 어떻게 아는지 찾아와요. 땀을 흘려 가면서 먹지요. 밑반찬도 맛있다고 좀 달라는 손님도 있지요." 할머니는 된장, 고추장 등 모든 재료와 밑반찬을 직접 만들어서 내어 놓는다. 큰 아들(46)이 하구에서 캐서 가져오는 백합 요리도 맛볼 수 있다.
※부산 강서구 영강길 15번길(어민복지회관에서 50m 거리). 연중무휴, 오전 11시~오후 9시. 꼬시래기 회무침 접시당 3만~5만 원.백합탕 2만 원부터, 백합회 3만 원부터. 011-1757-1582.
칼칼하고 개운한 육수에 빠진 갈미조개… 30초면 '딱'이네
만호횟집 '갈미조개 샤부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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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미조개 샤부샤부'는 특제 육수에 살짝 익혀 시원한 국물과 함께 먹는다. 선홍빛의 갈미조개를 보는 것만으로 먹음직스럽다. |
갈미조개는 속살이 갈매기의 부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명지 갈미조개는 특히,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해 인기가 높다. 우려서 나오는 국물 맛은 시원하고 깔끔하기로 정평 나 있다.
명지 사람들은 예전에는 갈미조개를 말려서 먹었다. 집에서 탕으로 끓여 먹거나 삶아서 수육으로 먹기도 했다. 한때 일본에 말린 갈미조개를 수출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샤부샤부식이나 삼겹살과 함께 먹는 방식은 6~7년 전부터라고 한다. 만호횟집 김영옥(69)사장은 "식당에서 수육으로 팔다가 시원한 조개 육수를 찾는 손님들이 많다보니 샤부샤부 요리가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전국에서 많은 손님들이 찾아 오지만 명지산 갈미조개 맛이 다른 지방의 갈미조개에 비해 육질이나 국물 맛에서 뛰어나다는 평을 한다"고 소개했다. 명지의 갈미조개는 선홍빛을 낸다.
갈미조개를 샤부샤부해서 먹을 때는 주의점이 있다. 물론 취향에 따르면 된다. 갈미조개를 육수에 너무 오래 담가 두면 육질이 질겨져서 먹기 어려울 수도 있다. 30초가량이 가장 적당하다는 게 김 사장의 설명이다. 갈미조개가 육수를 만나니 처음에는 사각사각한 맛이 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쫀득해지고 질겨진다. 육수에 살짝 담갔다가 소스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 아예 회처럼 초고추장과 함께 먹는 사람도 더러 있다.
국물 맛은 약간 매우면서도 시원하다. 질리지 않고 뭔가 뒷맛이 감기면서 개운하고 잡내도 없다. 명지에는 갈미조개를 샤부샤부 메뉴로 만들어 파는 횟집이 여럿 있다. 하지만 횟집마다 육수 맛이 다르다. 만호횟집은 비법으로 만들어진 육수가 특별하다는 평가이다. 김 사장의 아내(67)가 매일 새벽마다 육수를 직접 만들어 낸다고 한다. 다시마와 송이버섯, 대파 등 10여 가지의 재료를 넣고 푹 삶아서 우려낸다고 한다. 직접 만들어 내놓는다는 밑반찬도 맛깔스럽다.
만호횟집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하구의 파노라마같은 경치도 인상적이다. 을숙도 일원에 이어 강 건너 승학산도 한눈에 들어 온다.
※부산 강서구 르노삼성대로 602(명지선창회타운 2층). 연중 무휴, 낮 12시~오후 9시 30분. 갈미조개 샤부샤부 3만~ 5만 원. 051-271-4389.
삼겹살 섞어 구워낸 조갯살… 이런 '환상 조합' 처음이야
명물횟집 '갈삼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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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삼구이'는 갈미조개와 삼겹살의 절묘한 만남으로 독특한 맛을 낸다. 새콤달콤한 '무새코미'에 싸서 먹으면 더 맛이 있다. |
"낙동강으로부터 이어지는 풍요로운 바다에서 갈미조개와 같은 명물이 나온다는 의미로 명물이라는 이름을 지었지요. 갈미조개는 명지의 명물입니다." 명지 토박이 배귀분(56)씨는 명물횟집을 운영하고 있다. 명물횟집은 갈미조개와 삼겹살을 함께 구워내는 갈삼구이로 유명하다.
갈미조개를 탕이나 수육으로 먹다가 어느 날 삼겹살과 버터를 넣어 구워 먹었더니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좋아 갈삼구이를 내놓게 됐다는 게 배 사장의 말이다. 매일 배 사장의 남편이 하구에서 채취해 온 갈미조개를 내놓다 보니 싱싱한 맛 그대로다. 실제 명물횟집 옆 바닷가로 가면 오전부터 갓 캔 갈미조개를 손질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갈삼구이는 삼겹살과 갈미조개의 바다 향이 어우러져 절묘한 맛을 자아낸다. 일반 삼겹살 맛하고는 구별된다.
명물횟집 특유의 '무새코미'에 잘 구워낸 삼겹살과 갈미조개를 얹어 먹으면 별미다. 무새코미는 깻잎과 무를 함께 4~5일간 숙성시켜 만든 쌈이다. 부산에서는 좀처럼 먹기 어려운 음식이다. 새콤달콤한 맛을 내면서 삼겹살의 느끼한 맛을 줄여준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갈미조개 조림은 자꾸 손길이 갈 정도로 맛이 있다. 갈미조개를 산적처럼 간장에 조려서 만든 것으로 쫀득하고 달작지근하면서도 담백하다. 씹을수록 조개향이 배어나온다.
밑반찬들이 전반적으로 깔끔하면서 푸짐하다. 제철에 따라 음식을 내놓는데, 최대한 가정식단으로 차린다는 게 배사장의 설명이다. 조미료는 최대한 자제하면서 매일 신선한 재료들을 사용해 조리해서 내놓는다고 한다. 갈미조개와 삼겹살을 다 먹고 나면 밥을 볶아 먹는다. 김치와 김가루,콩나물 등을 넣고 갖은 양념을 사용해 밥을 볶아낸다. 갈미조개로 만든 탕도 나온다.
다 먹고 나면 제법 배가 부르다. 슬그머니 밖에 나가 낙동강 하구를 둘러보자. 잔잔한 하구 바다를 감상하는 것은 입이 아닌 눈으로 느끼는 행복감이 아닐까? "다른 지방에서 소문을 듣고 가족 단위나 단체로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음식이 깔끔하고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명지에서 제철 음식을 먹으면 도심에서 못 느끼는 특별한 입맛을 보게 된다고 배 사장은 강조했다.
※부산 강서구 르노삼성대로 602(명지 선창회타운 1층). 연중무휴(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제외), 오전 10시~오후 10시. 갈삼구이·갈오(오리)구이 각 4만~5만 원. 051-271-3339.
송대성 선임기자 sds@busan.com
사진=김병집 기자 bjk@
영상취재=김병집 기자
영상편집=이상봉 대학생인턴
http://youtu.be/2KR0MX2mk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