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자산(중바위산) 정상은 1801년에 순교한 유항검(柳恒儉)의 가족들을 합장한 묘소가 있는 곳으로 동정부부 유 요한과 이 루갈다를 추앙하는 사람들은 ‘루갈다 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주 시내를 굽어보는 중바위는 전주 8경 중 손꼽히는 기린봉 능선에 위치해 호남의 넓은 평야를 내려다보고 있다.
1984년 9월 2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된 치명자산 유항검 일가 합장묘에는 호남의 첫 사도요 순교자였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부인 신희(申喜), 둘째 아들 유문석(柳文碩) 요한과 조카 유중성(柳重誠) 마태오, 제수 이육희(李六喜) 그리고 동정부부로 유명한 유중철(柳重哲) 요한과 이순이(李順伊) 루갈다 등 7명의 순교자 유해가 모셔져 있다.
순례자성당
미사내 합창후 점심먹으러 이동중
평화의전당
전주 평화음악제 리허설후 ㅎㅎ사진찍기놀이
제178호(사제관)
전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한 풍남문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이를 기념해 마당 한편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전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尹持忠, 1759-1791년)와 권상연 야고보(權尙然, 1751-1791년)가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성당으로 순교지를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요람이다.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8호로 지정된 전동 성당은 순교지를 알리는 머릿돌과 순교자 권상연과 윤지충, 유중철 · 이순이 동정 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풍남문을 배경으로 세워진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의 기념 동상도 볼 수 있다. 한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윤지헌 프란치스코,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는 다른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대성전공사로 소성당서 미사를 드린후
완산구 태조로 51
서천교 밑에 살던 거지들을 시켜 목을 졸라 죽이는 잔혹한 방법으로 순교한 조윤호 성인의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화.이곳은 성 조윤호 요셉(趙~, 1848-1866년)이 1866년 12월 23일 치명한 곳이다. 18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한 조윤호는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나 돈독한 신앙 생활을 어려서부터 익혔다. 1864년 부친을 따라 전주 근처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한 후 이 루치아와 결혼한 그는 1866년 12월 5일 부친 조화서 베드로(趙~, 1815-1866년), 정원지 베드로(鄭~, 1846-1866년), 이명서 베드로(李~, 1821-1866년) 등과 함께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전주 감영에서 부친과 여러 차례에 걸친 신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순교 기념 모자이크 벽화 뒷면에는 성 남종삼의 아들과 홍봉주의 아들이 순교하는 장면을 그려 놓았다.결국 서울 인근에서 체포되어 의금부로 연행된 남종삼 성인은 홍봉주, 이선이, 성 최형 베드로, 성 정의배 마르코, 성 전장운 요한 및 성 베르뇌 주교, 성 다블뤼 부주교 등과 함께 문초를 당하고 그 해 3월 7일(음력 1월 21일) 홍봉주와 함께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되었다.
이어서 남종삼의 부친 남상교 아우구스티노는 공주 진영으로, 장자인 남명희는 전주 진영으로 잡혀가 공주와 전주에서 각각 순교했고, 처 이조이(李召史) 필로메나와 막내아들 남규희 그리고 두 딸은 경상도 창녕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 창녕에서 노비 생활을 하던 이조이 역시 9년 후 옥리에게 목 졸려 치명하고, 당시 14세의 어린 나이에 붙잡혀 갔던 명희는 전주 감옥에 수감한 뒤 나이가 차기를 기다려 1867년 가을 이곳 초록바위에서 전주천에 밀어 넣어 수장시킨 것이다
전주옥터는 3월까지는 전동성당에 스탬프가 있었는데
7월에가보니 중앙성당으로 옮겨져있었어요
전주 숲정이와 치명자산
'전주 숲정이'(전주시 진북동 1034-1번지)는 조선 시대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장소로, 일찍부터 중죄인들의 형장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박해가 시작되면서 이곳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 터로 변모하였다. 1801년에 이순이와 류항검의 가족이 순교한 이후 1839년 기해박해 때는 충청도 출신의 김대권(베드로), 이태권(베드로), 이일언(욥), 정태봉(바오로)과 경기도 출신의 신태보(베드로) 등 5명이 5월 29일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또 1866년 병인박해 때는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손선지(베드로), 한재권(요셉), 조화서(베드로), 이명서(베드로), 정원지(베드로) 등 6명이 12월 13일 이곳에서 순교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랐다.
전주 숲정이 성지 전경. 가운데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져 있다.숲정이는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전라도 지방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탄생시킨 사적지였다. 이곳은 신앙 선조들의 순교 열정과 함께 천상의 영복을 얻은 기쁨, 피로 적셔진 진토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박해 시대 내내 신자들은 그 자리를 잊을 수 없었고, 신앙의 자유를 찾은 뒤에도 자주 이곳을 순례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이 숲정이 형장이 교회 사적지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초에 이명서 성인의 손자 이준명(아나돌)이 숲정이 순교 터를 매입하면서였다. 이후 1935년에는 전동 본당의 이학수(바오로) 회장이 그 자리에 십자가비를 건립하였으며, 1960년에는 이곳 이웃에서 해성 중고등학교가 개교하였고, 1968년에는 순교 복자 현양탑이 건립되었다. 또 1984년에는 숲정이 순교 터가 지방 기념물 71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도시화의 물결로 1989년에 해성학교가 이전되고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본래의 순교 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본래의 장소에서 150m 정도 떨어진 아파트 단지 내(진북동 1034-13번지)에 새로 사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전주시로 들어와 전주천 변에 있는 진북 초등학교를 찾으면 된다.
숲정이 처형장이 교회 사적지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초에 이명서 성인의 손자 이준명이 숲정이 순교터를 매입하면서였다. 그 후 1935년 전동 본당의 이학수 회장이 그 자리에 십자가 순교비를 세웠고, 1968년 순교복자 현양탑이 건립되었다.
본래의 장소에서 150m 정도 떨어진 아파트 단지 내에 새로 성지를 조성하고, 본래의 순교터에서 옮겨 온 토사를 그 위에 덮고 십자가와 순교자 현양탑을 세워 순교의 영광을 기리고 있다. 현재 숲정이 성지는 해성 중고등학교 체육관으로 사용하던 윤호관 앞에 조성되었는데, 윤호관 내에는 1997년 전주교구 설정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된 전주가톨릭신학원이 자리하고 있다. 2004년 6월에는 성모자상과 십자가의 길 14처를 마련해 축복식을 가졌다.
숲정이는 일찍이 유항검 일가가 순교한 이래 1839년의 기해박해, 1866년의 병인박해 때에도 수많은 신앙인들의 피흘림이 있었다. 1839년 5월 29일(음력 4월 17일)에는 1827년 정해박해 때 체포되어 12년간 옥고를 치른 신태보 베드로, 이태권 베드로, 이일언 욥, 정태봉 바오로, 김대권 베드로 등 5명이 참수됐다. 이곳에서 신유박해 때 순교한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성 마태오, 그리고 기해박해 때 순교한 5위 모두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숲정이 마침 해설해주신분이 경희엘리사벳언니의 학교대선배 참 인연이라는건 오디서나 연결이 되어 있네요
마지막 오두재교우촌을 마지막으로
합창공연과 전주의 성지순례를 마치면서 날씨또한 우리가 가는길에는 비를 조금만 내리게 하시여
무사하게 마칠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