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독서일지(2024.07.04~07.25)*
<7월 6일 토요일>
문학의 역설
당신의 생명은 타인 속에 존재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다른 사람들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지바고》
1
봄·4
-소강석
별이 피아노를 치고
달이 하모니카를 불고
꽃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봄밤
나의 이름을 별이 부르고
너의 그리움을 달이 노래할 때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쓴 시가
꽃으로 피어날 줄 몰랐다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고
색이 없는 그림을 그리며
순간이 영원이 되는
숨 막힐 듯한 꽃향기를 느낄 때
별과 달과 꽃이
내 곁을 지켜줄지는 몰랐다
*소강석 詩集,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에 수록된 시.
<斷想> 바람과 별과 꽃, 자연을 새벽의 맑은 기운처럼 사랑한 윤동주 시인. 그 시인의 문학을 기리는 ‘윤동주 문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이 시인이 고른 시어들과 심상들은 윤동주 시인과 흡사하다.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고/색이 없는 그림을 그리며/순간이 영원이 되는/숨 막힐 듯한 꽃향기를 느낄 때’와 같은 이상향을 지향하는 듯 하면서도 삶에 좀 더 가까운 현실주의자가 되고자 했던, 그래서 ‘별과 달과 꽃이/ 내 곁을 지켜줄지는 몰랐다’라며 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는 것도, 일본의 차디찬 감옥 안에서 죽어가면서도 삶을 사랑했던 윤동주 시인의 사상과도 일면 닮아 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부조리한 삶 곳곳에서 빛처럼 밝게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문학의 역설이기도 하다.
2
천안의 동성중학교 재학생들의 글쓰기 동아리 모임인 ‘삼다(三多)’가 해마다 회원들의 문학작품을 모아 책으로 발간하는 모양인데, 올해도 변함없이 교내 동아리에 모인 소설들만 모아 《상상력이 빛나는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집을 출간했다.
우선 그들의 글쓰기라는 지난한 작업을 통해 발표된 모든 작품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글쓰기의 목적은 회원들마다 다 다르다. 장차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글쓰기라는 작업을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찾고자 하는 학생도 있었고, 글쓰기 자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글쓰기를 하면서 자신의 삶을 가꾸고 내면을 키우는 즉, 성장하고자 하는 등 무척이나 다양하다.
세상에 대한 경험이나 지성적인 면에서 아직 시기적으로 많이 부족하다 보니 문체나 작품의 흐름이 기성세대 작품들의 겉핥기식의 모방이 많고, 줄거리 면에서도 전개나 짜임새에 있어서 구성이 전반적으로 약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타고 있는 마법과 판타지(영화나, 게임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인 듯)형태의 장르 소설들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시기라 연애에도 관심이 많아 그들만의 연애(상상이 그들 나이에 허락하는 정도에서)를 예쁘게 꾸며서 작품화한 것도 흥미롭다. 그런가 하면 그들이 학교에서 받는 교육에 대한 불만과 중압감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시험이 모든 것이 되는 학교생활에 대해서 그들 나름의 비판의 날을 세워 창작하기도 했다. 이 모든 어리지만 활발한 열정에 감동을 받지 않는다면 이 시대 이제 우리는 어디서 이런 순수함을 만날 수 있을까.
게임 안으로 들어가 가상 세계에서 활약하는 주인공의 모험을 그린 어떤 학생의 작품은 기성세대 못지않은 구성이 돋보여 놀라울 정도였다. 그들 또래의 학생들이 읽으면 무척 재미있어 할 것 같았다. 지난 날 그들의 나이였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책을 읽었는지 잠시 추억 속으로 돌아가 보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작품을 출품한 모든 학생들의 건투를 빌고 그들의 건강한 열정에 다시 한 번 응원을 보낸다.
-아름다운 청춘들, 파이팅!
3
-당신이란 무엇일까요? (중략) 당신은 무엇을 통해 자신을 기억하십니까? 신체의 어느 부분을 의식해서요? 신장입니까, 간입니까, 아니면 혈관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당신이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해도, 당신의 존재는 항상 밖으로 드러난 당신의 활동상, 즉 당신이 했던 일에서, 당신의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죠. 인간의 영혼은 다른 사람들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며, (중략) 그리고 당신의 생명은 타인 속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고요? 당신은 타인 속에 존재했고 타인 속에 남게 됩니다. 이것을 훗날 기억이라고 부른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당신의 미래 구성원들 속에 바로 이렇게 존재하게 되는 겁니다.
(《닥터 지바고·1》, 제3장 <스벤티츠키 집에서의 크리스마스 축제> 중)
닥터 지바고가 되기 전 의대생이었던 ‘유라’가 그를 양육시켜주는 부인 안나가 몹쓸 병에 걸려 심란해하는 것을 보고 그녀를 안정시키기 위해 삶과 죽음에 관한 그의 지식을 설파하고 있는 장면이다.
얼마 전 읽었던 오르한 파묵의 《검은책》이라는 작품에서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과 ‘나’ 자신으로 온전히 살기라는 존재론적 철학문제에 천착했다면, 여기에서는 생명의 존재방식과 삶과 죽음의 본질에 대해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주인공 유라의 입장을 빌려 설명하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작품 중에서 ‘유라’는 의학을 전공하는 과학자적인 입장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하고 사색한 결과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문학작품이 재미있고 흥미로운 부분은 주로 이런 부분이다. 물론 줄거리가 작품을 끌고 가야 하는 부분이 문학작품의 본령이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이 되겠지만, 문학 안에서 다양한 작중 인물들을 통해 역사, 철학, 정치, 예술, 사회, 문화 등 우리가 몸담은 세계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제반 문제에 대한 의견을 작가의 명민하고 날카로운 지성을 통해서 개성적인 의견을 들어본다는 점은 그 어느 곳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작품을 통해 다양한 세계에 대한 관심과 지식의 폭을 확장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그래서 문학을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전 세계가 격찬하는 모든 문학작품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와 세상에 대한 제반 문제에 대해 이런 격조 있는 고급적 사색이나 사상을 내부에 품지 않고는 결코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의 반열에 들 수가 없는 법이다.
이제 4장 중반으로 들어간 《닥터 지바고》는 계속해서 이런 삶과 죽음의 문제 외에도 인간적 고뇌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줄 장면들을 계속 쏟아낼 것으로 기대한다.
하여서 나는 훌륭한 문학 작품이 내뿜는 아름다운 향기에 취해서 꿈과 현실 사이를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오갈 테지만, 삶에 가장 가까운 현실자리가 어딘지는 결코 놓치지 않도록 또한 부단히 감각을 곧추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