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sible Dream!-테너 김승일의 희망이 전하는 말
남구청 2017한마음 대학 종강에서 강연과 열창 선봬
지자체에서 주민들을 위한 행사에서 문화강좌가 특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사람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상에서의 절절한 체험을 같이 공유할 수 있어서이다. 북구청에서 열렸던 한비야의 강연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그의 책 제목처럼 여자의 몸으로 겁 없이 오지를 다니며 경험했던 온갖 이야기를 전했다.
그래서 고단한 일상에 지친 청중들에게 꿈꾸는 자유에 전함으로 도전하는 정신에 불을 놓고 갔다. 중구청에서 열렸던 SBS 김정택 예술단장의 강연은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힘이 있었고, 열정적으로 피아노건반을 두드리며 들려주는 선율은 예술의 힘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손톱 몇 개가 부러질 정도의 연주에 모두가 빠져들었다.
11월 10일 오후 2시 남구문화대학 종강에서 삶의 발자취와 고품격 레퍼토리의 성악을 들려준 테너 김승일은 ‘희망이 전하는 말’을 강연으로 펼쳤다. 그는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의 4형제의 막내로 자라나면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 잘하는 형들에게 묻혀 존재감이 미미했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다녔던 교회에서 성가대로 봉사하며 노래를 부르고 밴드활동도 활발히 했다.
입시를 한 달 남겨놓고 공부해서 한양대 음대에 들어간 그는 입대해서 해군 군악대 활동을 하며 러시아·홍콩·필리핀 등을 다니며 노래하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그런데 제대 후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해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가장 노릇을 해야 했던 그는 결국 음악을 포기하게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사업도 해봤지만 사기를 당하며 실패했고, 택배기사, 대리운전, 우유배달, 야식배달부 등 15가지를 전전했지만 통장에는 빚만 쌓여갔다. 그가 자살을 시도해 볼만큼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때 김승일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환경적인 처지와 어려운 형편보다도 꿈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5년, 7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서른 넘은 나이가 되니 ‘나는 이제 노래는 할 수 없는가보다. 친구들은 무대에 서며 활발히 활동하는데 나는 이제 노래는 접어야 하는가보다’ 하며 절망하고 있었다. 그때 김승일을 눈여겨보며 그의 재능을 아까와 했던 야식집 사장이 <SBS 스타킹>에 접수를 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방송에 나가게 됐다.
그게 김승일에게는 극적인 하이라이트요 골든타임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의 노래를 듣던 모든 사람들이 감동한 것은 물론 김인혜 교수는 나와 필적할 만한 멋진 테너를 만났다며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김승일은 분명 사람이다. 그러나 음악에 있어서만은 그의 재능은 천사나 다름없다. 그때 그 프로가 그에게 천사의 날개를 달아주는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음악의 날개를 달고 전국을 다녔고, 폴포츠와도 만나 같이 공연도 했고, 교과서에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실릴 만큼 화제만발을 몰고 다니며 유명하게 되었다. 그가 야식배달부를 하면서 세종문화회관을 합창단의 일원이라도 돼 같이 노래할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나다녔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는 김승일의 이름으로 단독 공연도 하면서 한 맺힌 소원을 풀 수 있었다. 수원 문화예술회관은 전석매진이 아주 어려운데 3일 만에 티켓은 매진됐다. 그는 ‘you raise me up’ 오페라 투란도트 중에서 ‘넬순도르마(Nessun dorma)’와 가곡 ‘그리운 금강산’ 등 강연 중간 중간 노래를 곁들이며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청중들의 공감을 사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김승일은 청중들에게 “Possible Dream! 희망이 전하는 말을 잘 듣고, 마지막까지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강조했다. “신의 도우심으로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그는 깊이 고개 숙여 인사를 남기고 총총히 떠나갔다.
굿뉴스울산 이금희 발행인, 박정관 기자
사진, 박정관 기자(소니카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