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의 의무
빌 3:17 –4:1
사도 바울은 당시에 로마의 시민권자였다. 그러나 그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인 것을 훨씬 더 자랑스러워했다.
본문 가운데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3:20)고 말했다.
우리의 시민권이란 말씀이 무엇인가. 성도된 우리, 하나님의 아들딸인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말씀이다.
오늘 날 하늘의 시민권자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일원인 성도들도 성도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성경을 읽고 배우고 따르고 실천하며 서로를 향하여 중보하며 간구하는 기도 생활과 더불어 땀과 눈물과 피를 흘려 가면서 순교자의 반열에 서서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봉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소득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선한 천국 사업에 헌신하고 충성하며 섬기고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의 무리들을 대적하여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하늘나라 군대답게 성령의 충만함과 천군천사의 도우심 가운데서 복음을 모르는 이웃들에게 끊임없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며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와 같은 하늘나라 시민권자다운 의무를 기쁜 마음으로 다 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특권과 혜택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의 시민권자답게 살아가노라면 온갖 하늘의 풍성하신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은혜와 감사와 즐거움과 온유함과 겸손함의 은총과 축복이 폭포수와 같이 나의 삶에 공급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말씀하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이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다.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천국 백성이 되는 특권 말이다.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신분, 어떤 신체조건, 어떤 생활환경, 어떤 가정 여건, 어떤 가족 관계, 어떤 경제 여건, 어떤 국가의 어떤 국민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든지 상관없이 하늘나라의 시민권자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성도된 우리들이 하늘나라의 시민권자가 된 자들로서 어떤 모습과 태도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는가.
첫째 : 나를 본받으라.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17절)
사도 바울은 엄격한 사도의 권위를 갖고 17절에서 명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어떻게 사도 바울이 감히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사도 바울의 신앙관, 인생관, 가치관, 복음관, 선교관, 종말관이 과연 어떠하였기에 감히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와 같이 권면할 수 있었을까.
그 구체적인 내용은 빌립보서의 그리 길지 않은 편지 가운데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도 바울은 사도이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한 신앙인으로서 은혜와 평강의 사람이었다.
감사와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가시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는 사도요 선교사요 목자로서 성도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랑의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빌1:8)을 가진 열정의 사람이요 복음의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는 성도 각 사람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중보기도의 사람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 속에서 삶으로 점점 더 잘 알아가던 지식의 사람이었다.
하늘의 사람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기를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 구원을 기다리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20절)
사도 바울의 편지를 읽다가 보면 숙연한 감동이 전해져 온다. 사도 바울이 알기에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 가운데 이름만 교인이지 엉터리 신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여러 번 권면할 기회를 가졌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노라고 했다.
감옥에 갇혀 지내는 사도 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이 전달되는 장면이다.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8하-19)고 안타깝게 편지하였다.
성도인 것 같은데 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가. 누가 그 마침이 멸망인 줄 알면서도 배를 신처럼 섬기면서 살아가는가.
누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땅의 일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가. 누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면서 살아가는가 하고 말이다.
당시나 오늘 날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빌립보라는 도시에는 막 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2절에서 “개들을 삼가고”라고 하였다. 여기서 개들이란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회개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며 거짓과 위선과 탐심과 타락한 양심과 더러움을 더러움으로 모르고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린 채로 세상을 되는 대로 막 살아가는 이들을 말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당시에 유대인들 중에서 율법을 준수한다고 가장하면서 죄와 악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범하는 타락하고 불행한 무리들을 통틀어서 언급한 말씀이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겉으로는 율법에 철저한 척하면서 악을 행하고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지내며 거짓 교훈을 전파하며 말썽만 일으키며 몸의 할례 정도로 만족하는 자들을 지적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15절에서도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한다고 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자기들끼리 당을 짓고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비방하면서 대적하거나 공연히 사도 바울을 미워하고 시기하던 무리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분명히 강조하였다. “시민권을 하늘에 두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기다리라” 그렇다. 이 세상에 아무리 좋아도 영원한 나라는 아니다.
우리 성도들의 마음의 처소는 하늘에 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의 소속은 천국이라는 강조이다. 빌립보서 3장 20절의 ‘기다림’이란 사도 바울의 분명한 신앙이었다.
이는 성도된 우리들도 분명하게 본받아야만 할 신앙인 것이다. 당신의 기다림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다 나름대로의 기다림을 갖고 살아간다.
기다림은 우리 각 사람들에게 있어서 형편과 살아가는 여건에 따라서 서로 다 다르다.
셋째 : 주 안에 서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4:1절)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는 말씀을 하는데 이는 군사용어이다.
여기서 ‘이와 같이’라는 말씀은 이미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연합하고 단합해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고 굳게 서서 신앙 승리의 삶을 살아오고 있는 것을 칭찬하는 말씀이다.
‘서라'는 헬라어로 ‘스테코’(sthvkw)라는 말인데 이는 전쟁에 임하는 군인의 임전태세(臨戰態勢)를 말하는 것이다.
즉 사도 바울은 그 동안도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로 인한 영적인 유혹이나 배를 신처럼 섬기는 이들이 행악하며 살고 육체의 할례만을 자랑하며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본받으며 살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이와 같이 편지한 것이다.
본문을 읽다가 보면 사도 바울의 눈물과 따뜻하고 훈훈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다. 17절에 “형제들아”라고 하였다.
4장 1절에서는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이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주 안에서 형제된 성도들은 그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본을 보여 주시기 원하셨던 사랑이 이런 사랑이 아닌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인가를 비유로 말씀하신 교훈 뒤에 교훈하시는 바가 그러하지 않는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 제사장이나 레위인인 것을 자랑하지 말고 강도 만나 죽어 가던 사람을 진실한 마음과 정성으로 돌보았던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주 안에 서는 신자의 모습이며 하늘나라 시민의 모습이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라는 문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높임 받아 만유를 통치하는 주권을 받으심(빌 2:9-11)에 초점을 맞춘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구는 “예수의 주권의 영역에서, 그의 주권에 힘입어, 그의 주권에 순종하여”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 서라’는 그의 권고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세상의 핍박이 있지만 그들을 사주하는 사단의 세력을 꺾고 만유를 다스리시며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의 주권의 영역에 굳건히 서 있으라.
그의 주권을 힘입어 굳건히 서 있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므로’의 신앙을 가지고 주 안에 서는 것입니다. 그분의 주권에 기꺼이 순종하며, 그분의 주권에 힘입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