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다 가는 여름 휴가를 '방콕'하며 참아낸 것은 나에겐 10월의 휴가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43년 된 전 직장 등산모임에선 해마다 8월 여름이면 가족휴가를 가는데, 몇 년 전부터 바캉스 대신 '늦캉스'로 10월에 부부동반 국내여행을 간다. 휴가지의 인파와 바가지를 피해서다.
금년엔 충남 서천에 있는 국립생태원 일원으로 부부동반 23명이 갔다.
세계는 지금 생태계의 무분별한 훼손으로 멸종 위기종이 급격하게 늘어나고,기후 변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생태계 건강성 회복을 위한 생태 조사·연구, 생태계 복원 및 기술개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인 국립생태원이 충남 서천에 설립되었다.
제인 구달 길
국립생태원은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이며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의 국립생태원 방문을 기념하여 그녀의 학문과 삶이 주는 교훈, 그리고 "생명 사랑"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산책길을 조성하였다.
국립생태원에는 두 개의 '생태학자의 길'이 조성돼 있다. '제인 구달 길'과 '다윈.그랜트 부부 길'이다.
세계적 생태학자인 이들의 업적을 기념해 2015년 당시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이던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만들었다.
(최재천 석좌교수는 경복 47회로 우리 37회 보다 10년 후배다)
제인 구달 길은 1㎞ 숲 속 구간으로, 국립생태원 내 생태학자의 길 시리즈 중 첫 번째로 마련됐다.
여행 첫날 국립생태원 에코리움 앞에서 우리 일행 23명기념 촬영
첫날 밤을 국립생태원 내 방문자 숙소에서 1박하고...
다음날 새벽 산책을 나섰다. 코끝이 시린 새벽 공기를 마시며 뒷짐을 쥔채 느릿느릿 발길이 가는대로 걷다가 뜻밖에도 '제인 구달 길'이란 안내판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길을 따라 들어갔다.
바로 눈길을 사로잡는 자그마한 돌.
구달 박사의 자그마한 발바닥 부조가 앙징맞다. 이 작은 발로 아프리카 밀림속을 거닐었을 박사님을 생각하며 점점 호기심에 깊숙히 걸어 들어갔다.
밀림을 연상케 하는 넝쿨길
이 길은 10개의 작은 테마로 이뤄졌다. 구달 박사의 아프리카 방문부터 동물을 찾아 나서는 과정, 동물을 초대하고 교감하는 과정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신 풀 까지도 신비롭고 묘한 느낌을 준다.
야트막한 오르막을 200m 가량 올라가자 공터가 나타나고 구달 박사가 1960년대 아프리카 탄자니아 곰베밀림에서 머물 때 사용하던 것과 같은 텐트와 캠핑장이 나타났다.
구달 박사는 침팬치 연구를 통해 '인간이 아닌 동물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
구달 박사는 길을 걸으며 “텐트를 보니 1960년대 탄자니아에 있던 때가 생각난다”며 “사람들이 나무와 자연을 느끼고 상상하며 이 길을 걷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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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원 방문 당시 제인 구달과 최재천 원장-(사진 자료)
능선을 따라 더 올라가자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쌓아 만든 둥지가 설치돼 있다. 침팬치의 둥지모양을 그대로 본따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자 나무로 만든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구달 박사가 침팬치에게 전달하기 위해 바나나를 올려 놓았던 상자와 똑같이 만들어 놨다.
이른 새벽이라 인적이 없는 숲속은 신비롭기 까지 하다.
끝까지 들어갔던 길을 되돌아 나오며 이곳을 다녀갔을 그녀를 잠시 생각한다.
제인 구달 길은 1km로 짧지만, 이 길은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길이고, 짧은 길이지만 자신을 희생한 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길이다."
국립생태원은 제인 구달, 다윈 그랜트 길에 이어 세번째 생태학자의 길로 '소로(Thoreau)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자연주의 철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