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신1:29-33)
2019.8.11 김상수목사(안흥교회)
학교 다닐 때 부모님 몰래 성적표에 도장을 찍어가거나, 등수를 바꿔본 경험이 있는가? 전 경북대학교 총장이었고 국회의원이었던 박찬석 박사가 중학생 때 성적표를 부모님 몰래 고쳤던 경험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꼴찌였습니다!”
경남 산청에서 대구에 있는 중학교로 유학을 갔던 그는 놀기만 좋아하고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여름방학 때 집으로 가던 그는 아버지를 볼 일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성적표에 적힌 68이라는 숫자를 1로 고쳤다. 그것도 모르고 그의 아버지는 돼지를 잡고 동네잔치를 벌였다.
그때 아버지를 속였다는 죄책감으로 충격을 받은 아들은 크게 뉘우치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후에는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대학 교수가 된 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려 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됐다. 다 알고 있으니 고마해라”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 아버지는 다 알면서도 잔치를 벌였을까? 그것을 통해서 아들을 격려해 주고 싶었던 숨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때로 우리는 내가 몰래하는 행동이나 나의 상황을 하나님이 모르시거나 잊으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한 시도 잊지 않으신다.
꼴찌인 내 모습도,
끝없는 나락 속에서 헤매는 내 모습도,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그 이중적인 모습도,
잘나가는 친구들 앞에서 비교의식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는 나의 나약한 모습도,
때로는 죄책감에 기가 죽어 말 못하는 우리의 심정도,
자녀들의 어려운 일을 보면서 ‘충분히 뒷받침에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애틋하고 미안해하는 마음까지도 다 아신다.
그래서 이사야 49장 5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처럼 나(우리)를 그토록 잊지 못하실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위해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 논리로 이해되는 문제가 아니듯이,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은 단순히 논리나 계산으로 다 이해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복음은 본래가 사랑의 눈과 가슴으로 대할 때 비로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렇기에 누가 나를 무시한다 해도, 때로 그 어떤 비굴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그래도 여전히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의 눈에는 가장 귀한 “내 새끼”들이다.
지난 2017년에 미국의 “마음 아픈 아름다운 사진 공모전”에서 1위를 했던 사진이 있다. ‘라일리 고메지’(16살)라는 소녀가 운동하다가 폰으로 찍은 어느 아버지와 아들의 사진이다. 소녀는 석양에 아버지와 아들이 정답게 낚시질을 하는 너무 아름다워서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런데 평범해 보이는 이 사진이 왜 1위에 선정되었을까? 그것은 아들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이 찍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들은 실수로 호숫가에 빠졌고,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뛰어든 아버지는 아들은 구했지만 자신은 죽고 말았다. 소녀의 폰에 찍힌 그 모습이 아버지와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들 부자(父子)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교회 십자가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교회 종탑 위에나 예배당에 세워진 십자가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그것에는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희생시키셨던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메시지가 담겨있다.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저 십자가는 하늘의 문을 여는 비밀 열쇠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하나님의 사인이다.
물론 우리들이 때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맞을 짓을 할 때도 있다. 또 어떤 때는 우리들의 자녀들이 그럴 때도 있다. 그런데 만약 누가 내 새끼가 잘못했다고 해서 함부로 비웃거나 때리면 속에서 열불이 나는가 안 나는가? 분명히 열불이 난다. 왜? 내 자식이기 때문이다. 때려도 부모인 내가 때려야 한다. 그리고 때린 후에는 때린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싸매 준다. 왜? 내 자식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속상해도 음식을 준비해 놓고 “와서 밥 먹어!”라고 말한다. 왜? 내 자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래서 신명기 1장 31-33절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신1:31-33)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헤매게 된 이유는 가데스바네아에서의 정탐꾼 사건 때문이었다(민13-14장). 분명히 하나님은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그들을 광야로 내모셨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안는 것처럼 안아 주셨다. 하나님은 광야에 그들을 방치한 것이 아니라, 그들 앞서서 장막칠 곳을 찾으셨고, 불구름 구름기둥으로 갈 길을 지시해 주셨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훈련을 시키셨다. 이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여러분들 중에 지금 개인적으로 광야에 있는 것처럼 삶에 지친 분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만약 이 시간에 이 여름의 뜨거운 태양보다 더 뜨거운 심정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 것이 느껴지고 믿어진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이 내 앞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도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다. 비록 잘못된 세속 문화 속에서 빠져서 이 모든 고난들이 닥쳐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변함없이 사랑하신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하나님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전 세계적으로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에 성경이 이미 번역되어 있던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우리나라는 재헌 국회가 시작되면서, 이윤형목사님(초대 국회의원)의 기도로 시작된 나라다. 전 국민의 20%이상이 기독교인으로서 이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신 세계선교의 히든카드가 바로 우리나라다. 그렇기에 우리들이 회개하고 더욱 기도하고 신앙을 새롭게 한다면, 결국 하나님은 다시 싸매 주실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확신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랑하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그러므로 늘 우리를 잊지 않고 사랑해 주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굳게 신뢰하자.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복에 복을 더 하신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에게 우리들이 늘 1등이듯이, 우리들도 하나님을 늘 내 삶 속에서 1등으로 높여 드리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자(신6:5).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