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U·S·A)의 약사(略史)
미국 전도(全圖) / 성조기(星條旗:미국 국기)
◆ 미국 개관(槪觀)>
미국은 북아메리카 광활한 대륙을 거의 1/2을 차지하는 광대한 국토를 자랑하는데 면적이 980만 ㎢로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약 100배이고, 인구는 약 3억 3천만 명으로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이다.
수도는 워싱턴(Washington)이고 인종은 백인 80%, 흑인 12.8%, 기타 히스패닉(중남미) 및 아시아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래전부터 빚어온 흑백(黑白) 갈등은 미국의 큰 고민거리이다.
종교는 기독교(개신교) 52%, 가톨릭 24%, 모르몬 등 기타 24%라고 하며 1인당 국민소득은 76,000 달러정도이다.
미국이 독립을 쟁취한 것은 1776년이니 역사는 250년 정도로 짧지만 무진장한 지하자원,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과 막강한 군사력 등으로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능력을 과시하게 되는데 그 이후 동서 냉전시대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1931년 소련(Soviet Union)이 붕괴하자 미국은 명실 공히 세계 제1위의 나라로,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 미국의 지형(地形)
미국의 지형을 살펴보면 동쪽에는 애팔래치아 산맥이, 서쪽은 로키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고 그 가운데 부분은 드넓은 평원(Prairie)이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캐나다와의 접경에는 거대한 오대호(五大湖:Great Lakes/미시간, 휴런, 온타리오, 이리, 슈피리어)가 있는데 오대호의 총면적이 75만 ㎢가 넘는다고 하니 우리나라 면적의 8배정도이다. 동남부는 삐죽 내민 플로리다 반도가 있는데 매년 대서양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Hurricane)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는 한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유럽 각지에서 종교박해를 피해 많은 사람들(청교도:Puritan/Pilgrim)이 이주해 와서 미국 대륙 동부의 애팔래치아(Appalachia) 산맥 동쪽에 거주하기 시작하는데 1600년대 초 영국의 식민정치가 시작되어 13개의 식민주(植民州)가 만들어진다.
미국 국기인 성조기(星條旗)에는 처음 시작된 동부의 13개 주를 상징하는 13개의 별(星)과 줄(條)이 그려있었는데 주(州)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줄은 그대로 있고 별이 하나씩 증가하여 현재는 50개이다.
1. 미(America) 대륙의 발견
15세기 말까지도 아메리카(America) 대륙은 서양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었다.
동양에서는 중국(中國:漢族)이 수많은 주변 작은 나라들을 괴롭히며 천하제일이라 뽐냈고 인도(印度)도 조금 알려지는 정도였는데 유럽은 영국(UK), 스페인(Spain), 포르투갈(Portugal), 이탈리아(Italia)등 몇몇 나라가 항해술(航海術)이 발달하면서 세계로 눈을 돌려 점차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던 시기이다.
이때를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라 부르는데 중국의 항해술도 발달하여 주로 태평양 연안과 인도양을 휩쓸었는데 더 이상 눈을 넓히지는 못했지만 그 규모면에서는 세계 최대를 자랑했다. 서양에서는 콜럼버스, 바스쿠다가마, 마젤란 등.....
당시 유럽(Europe)에서 보면 서쪽은 망망한 대해(大海:大西洋)로 막혀있어 탐험가들은 동쪽으로, 동쪽으로 눈을 돌려 처음으로 인도(India)와 중국(China)이 알려지게 되는데 이탈리아의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쓴 여행기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이 나오면서 비로소 아시아에 대헤서 눈을 뜨게 된다.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에 인도는 황금이 무진장인 나라고, 중국 또한 무진장한 자원이 있는 부자(富者) 나라로 알려지자 탐험가들은 너도나도 황금을 구하려 동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당시 유럽에서 인도로 향하려면 배로는 어렵고 오로지 사막(아라비아 반도)을 거치고 산맥(히말라야)을 넘어야 갈 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서 엄청난 모험이 필요했다. 훗날 바스쿠다가마는 아프리카 서안을 따라 한없이 내려가다가 대륙의 맨 끝부분을 돌아 인도로 갈수 있는 항로를 발견하는데 그 맨 끝부분을 희망봉(Cape of Good Hope )이라 했다.
당시 유럽의 학자들은 ‘우주(宇宙)의 중심은 지구(地球)이고 하늘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天動說)을 믿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현재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쿠스(Copernicus)가 ‘태양이 중심에 있고 지구(地球)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地動說)을 내놓자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그 학설이 분명히 맞는 학설이라고 동조했지만 모든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지구는 평평하고, 땅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멀리 나가면 폭포처럼 공중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서 근해(近海)에서만 고기를 잡거나 항해를 하고 먼 바다는 두려워서 나가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중국에서는 커다란 지각판(地殼板)을 네 마리의 거북이 받치고 있는데 이따금 거북이들이 꿈틀거리면 지진(地震)이 일어난다는... ㅎㅎ
그런데 이탈리아의 탐험가였던 콜럼버스(Columbus)는 지동설(地動說-지구는 둥글고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 태양이 중심이라는 학설)을 굳게 믿고 ‘지구는 둥글게 생겼으니 그 어려운 사막과 산맥을 넘지 않고 서쪽 바다(대서양)로 나아가면 바로 일본, 중국과 인도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굳게 믿었다.
동쪽 육로(陸路)로 가면 1년 이상이 걸린다지만 배로 가면 2~3개월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역설하면서....
콜럼버스는 수많은 왕들과 제후들을 찾아가서 배와 선원을 대어주면 인도에 가서 황금을 실어와 바치겠다고 설득해 보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콜럼버스는 마지막으로 스페인의 이사벨(Isabel)여왕을 찾아가서 설명하자 모험심이 강했던 여왕은 콜럼버스에게 배 세척과 선원을 대어준다.
이때 콜럼버스와 이사벨 여왕이 맺은 조약(산타페<Santa Fe> 협약)을 보면,
①콜럼버스에게 스페인 여왕이 작위(爵位)를 부여하고,
②앞으로 발견되는 지역의 대제독과 식민지 총독(總督)으로 인정하며,
③이러한 직위(職位)들은 그의 자손들에게 영구히 상속되고,
④그 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귀금속의 10분의 1을 콜럼버스가 소유하는 것 등이었다고 한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지방의 도시 그라나다의 중앙 광장에는 산타페 협약의 모습이 세워져 있다.
콜럼버스는 1492년 첫 항해를 시작으로 3회에 걸쳐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가지만 죽을 때까지 인도(印度)인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메리카대륙 원주민을 인도인이라는 의미로 인디언(Indian), 스페인어로 인디오(Indio)라고 불렀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처럼 황금을 많이 가져오지 못하자 스페인에서는 콜럼버스를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이사벨 여왕은 죽는 날까지 콜럼버스를 지지했다고 한다.
스페인 귀족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은데 대한 서운함이었는지 콜럼버스는 죽으면서(1506) ‘나는 절대로 스페인 땅에 묻히지 않겠다. 내가 발견한 산토도밍고(Santo Domingo)에 묻어라’
산토도밍고는 카리브 해(Caribbean Sea)의 쿠바 옆에 있는 섬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인데 훗날 스페인은 이곳의 콜럼버스 묘가 너무 초라한 것을 발견하고 콜럼버스의 시신을 모셔와서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에 모셔지는데 ‘스페인 땅에는 묻히지 않겠다’는 유언에 따라 관을 땅에 묻지 못하고 네 명의 왕이 어깨에 둘러메고 있는 모습으로 공중에 붕 떠있다.
이사벨은 네 개의 소왕국이던 스페인을 통일하여 ‘통일의 어머니’, ‘가톨릭의 여왕’으로 추앙받는데 콜럼버스와의 계약에 찬성했던 소왕국의 두 왕은 앞에서 고개를 들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반대했던 두 왕은 뒤에서 머리를 푹 수그린 모습으로 콜럼버스의 관을 메고 있는 모습으로 설계되어 재미있다.
결론으로 말하면, 콜럼버스에 의해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콜럼버스가 저지른 만행도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이고, 또 한 가지는 만행을 저지른 콜럼버스는 이태리 출신의 콜럼버스가 아니고 유대계 스페인 사람이라는 설도 있으니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미궁(迷宮) 속에 답이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 콜럼버스의 관(棺) / 산타페 협약 / 콜럼버스
1502년에는 또 다른 스페인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풋치(Amerigo Vespucci)도 아메리카대륙을 탐험하는데 이곳은 인도가 아닌 새로운 대륙(New World) 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America)라고 명명하여 지금도 아메리카라고 부르니 선배인 콜럼버스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억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