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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래 240101 나는 누구인가? 2
새날이다 이런 거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날이 그날인가 보다 이렇게. 새날이 따로 있냐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오늘이 신년 첫째 날이란게 굉장히 의미가 있네요.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날, 우리에게는 늘 새로운 날, 너무너무 실감나고 생생하고 그렇습니다.
물론 어제도 새날이지만 청산할 수 있는 날도 있고 맞이할 수 있는 날도 있다는 거, 이런 것이 늘 새롭다니까요? 어제 것이 항상 기억돼 있다면 우리는 그 많은 기억들을 가지고 살자면 힘들거든요. 기억들이 사라지고 또 새것이 오고, 사라지고 새것이 오니까 살맛이 나잖아요. 그렇죠?
나도 오늘 신년 초하루라는 날이 굉장히 의미가 있네요. 지금까지 왔던 날들도 다 좋았어요. 안 좋은 날도 물론 있지만 좋은 날이 많았죠. 그러면 이렇게 아주 또렷하게 좋은 날, 그런 날은 없었단 말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지금까지 해온 말이 새삼스러운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늘 해온 말이에요. 단지 뭐가 틀리냐. 희미했던 것이 밝아지는 겁니다. 그 점이 다른 겁니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갑자기 아닙니다. 말씀을 잘 들어보신 분은 알겠지마는 십자가의 복음도 옛날부터 해왔습니다.
근데 지금 하는 말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죠. 차이가 있는 겁니다. 차이. 밝고 어두운 차이... 창세기의 2장에 보면 그래요.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을 보고 심히 만족하셔서 안식하셨다. 그런데 땅은 경작할 사람이 없어서 안개만 자욱이 올라와 있었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꼭 그때 상황입니다. 옛날은 있기는 있는데, 안개만 끼어있는 그런 상황...
그런데 새날이 오니까 그게 확 밝아지잖아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서 동산에 두시고... 그러니까 딱 새 날이 밝아오잖아요.
자, 우리는 누굽니까?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위해서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자, 한번 같이 해볼까요? 우리는, 우리는, 따라 해보세요. 우리는, 크게, 우리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로 지어진 피조물이다. 안 해본 것보다 해본 것이 훨씬 나아요.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로, 지어진 피조물이다.
자, 조금 더 가깝게... 나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로, 지어진 피조물이다. 아, 잘 해봐요. 그래도 잘 안 들려, 여기서는...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로, 지어진 피조물이다. 한번 더 해봅시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로, 지어진 기조물이다. 아까보다 훨씬 낫죠?. 일부러 하는 것이 훨씬 나아요.
이런 것이 선포하는 겁니다. 선포가 다른게 아니고...
요번 주제는 나는 누군인가? 나는 누구인가? 너무 쉽고도 딱 한 질문이잖아요. 나는 누구인가? 사람이 지금 어디까지 왔냐? 과학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없어도 될 만한 그런 세상까지 왔다고요. 그렇게 왔어요. 그건 자기가 누군지는 모르는 거예요.
“아담아, 네가 어디냐?” “두려워서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그때 하고 만 말이 아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는 말입니다. 나무밖에 보여줄 게 없어요. 자기 얼굴은 보일 수 없단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누군가 없기 때문에, 누구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최초로 하나님 앞에 나선 사람들이 가인과 아벨입니다. 하나님 만난다고 나왔어요.
근데 자기 얼굴로 그냥 못 나가고, 가인은 농사짓는 자이므로 곡식의 열매를 가지고 나갔고, 아벨은 양 치는 자이므로 양의 새끼를 가지고 나갔다. 이렇게 돼 있잖아요. 왜 그걸 가지고 왔겠습니까? 자기 얼굴은 보일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이 대속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대신, 나 대신 받아주세요. 나 대신 이걸 받아주세요.
그런데 하나님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양이 필요하겠습니까? 곡식이 필요하겠습니까? 사람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나무, 나를 가리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그 나무 뒤에 숨어 있는 내가 필요한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은 내가 필요한 분이에요.
근데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많이 배울수록, 경험이 많을수록, 느낌이 많을수록, 이게 다 나무가 돼버려요. 그래 나는 누군가? 나무는 내놓을 수 있는데, 나는 내놓을 게 없단 말입니다.
이거 참 중요한 문제예요. 심각한 문제 아닙니까? 내가 어떤 사람에게 “뭐 하시는 분입니까?” 그러면 대답할 말이 다 있죠. 여기에 대해서 대답 못한 사람은 상당히 자기가 비참하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자기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근데 있는 사람들은 당당하게 말해요. 나는 대통령입니다. 당당하게 말할 거 아니겠어요. 나는 국회의원입니다. 당당하게 말하잖아요.
근데 그걸 물어본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건 그걸 물어본 게 아니고, 너 위치가 뭐냐? 어디냐? 너는 누구냐? 이 말이란 말입니다. 이 말을 대답 못 한 거예요. 다른 걸 다 대답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름이 높을수록, 배운 게 많을수록, 경험이 많을수록 자기는 없어지고 그것들만 남아 있는 겁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세상에는 그것이 없으면 비참하게 생각해요. 대답할 말도 없고 이러면, 요즘에 이제 노인정에 가면 남자들은 무슨 얘기를 하냐면 아들 자랑, 손자, 과거 역사 자랑.. 그런 거 하면 안되는, 듣거나 말거나 자기는 하는 재미로 나가는 거예요.
근데 할 말이 없는 사람은 못 나간단 말이야. 거기도 노인당에서 못 나가는 거예요. 세상이 뭐 돈이 없어서 불공평하고... OOOOOOOOOOOOO 공평할라면 그 나무 대신에 내 얼굴이 있어야 한단 말이야. 얼굴과 얼굴을 보면은 다 그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남다르지 않는데 얼굴이 없어. 그래 다르지요.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냥 교회에 왔다는 것이 누가 오라고 해서 왔다 그것도 물론 있지요. 억지로 온 거 같아요. 억지로 온 게 아니죠. 자기를 찾는 자리로 온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과연 나를 어디로 찾냐? 하나님이 보시고 심히 좋다 했던 그 나를 어디서 찾냐는 겁니다. 우리는 그걸 찾을 길이 없어요.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낳을 줄 알았습니까? 모르잖아요. 그러면 100세에는 아들을 낳는다 이렇게 믿었으면 참 훌륭한 사람이지요. 놀라운 사람이지요.
100세에 와서 내년 이맘때에 사라에게서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하니까,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그럼 믿음의 조상입니까? 아니잖아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의 조상이죠. 믿음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사람의 조상이죠.
그냥 우리는 다 그런 사람입니다. 알아보면.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이 오면은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근데 여러분들이 하나님 말씀에 듣고 있다는 건, 이건 놀라운 일입니다. 놀라운 일이에요. 아니 아브라함도 못 믿은 것을 지금 우리가 믿고 있잖아요. 아브라함 못 믿은 것을... 모세가 못 믿던 것을 지금 우리가 믿고 있잖아요. 다윗도 못 믿던 것을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요. 여기 앉아있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한번 입으로 말한 것이 보통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냥 시부렁거린 말이 아니고 그냥 고 외치는 말이 아니란 말입니다. 한 번도 못 해본 말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겁니다. 한 번도 못 해본 말을... 나는 누구다, 이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여기 온 사람들은 뭐 별거 아닌 사람들인데 다 나는 누구다. 그렇게 대답할 수 있잖아요. 이게 보통 일입니까? 여러분. 보통 일로 생각한다는 게 어쩌면 좋은 일이 좋은 수지요.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다 보편적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해갖고 안 되요. 확실하게 알아야 된단 말입니다. 안개 속처럼 알아갖고는 어디 가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말을 해보세요. 내가 누구라는 얘기를 해보세요. 그럼 알게 돼요. 내가 지금 얼마만큼 나를 알고 있는가 말해 보세요. 그러면 알게 된다고요. 내가 나를 말해보려면 옹색해지잖아요.
그래서 내가 요번에 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분명해졌으면 더 분명해지게끔 말해봐야 된단 말입니다. 그럼 더 분명히 말하자면,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피차를 위해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그렇게 돼야 된단 말입니다.
어디 가서 내가 그 사람을 만날까? 하나님이 심히 좋다고 한 사람,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로 지어진 사람, 그 사람 나를 어디 가서 만날 것인가? 여러분,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 처녀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은 사람이다. 나하고 너무 생소하지 않습니까? 처녀로 잉태되어 난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우리가.
그런데 그걸 믿고 있단 말입니다. 그냥 맹목적으로 믿는 거예요. 그냥 그거 안 믿으면 이단이고 그거 믿으면 정통이고요. 그러니 자기를 몰라도 한없이 모르는 거예요. 알고보면... 예수 믿는 사람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하고 나간 사람이 있고, 그걸 안 믿다니 그건 이단이다 하는 사람이 또 나왔단 말입니다.
왜 그걸 안 믿냐 믿어야지... 왜, 성경의 말씀이니까. 성경 말씀이니까 믿어야 된답니다. 한쪽에서는... 그럼 한쪽에서는 성경에 있을지라도 그건 사실이 아니지 않냐 이래서 나간 겁니다. 또 누가 정통입니까? 누가 정통입니까? 믿는 사람이 정통입니까? 안 믿는 사람이 정통입니까?
세상은 믿는 사람을 정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예 안 믿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 저런 생각 없어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이 정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믿는 사람은 이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말로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야, 그러니까 우리가 안다는 것이 참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 봐보세요. 잘난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어요. 급한 사람들만 왔어. 어디 부러진 사람들, 깨진 사람들, 이런 사람들만 왔단 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냥 병 고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에요.
특별히 예수 알고 온 사람들이 없고, 그냥 병 고쳐 준다니까 온 사람들이에요. 우리나라도 그렇잖아요. 병 고쳐준다니까 사람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단일 교회로서 신자가 50만이다. 이거는 역사상 없는 교회입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가... 근데 거기 가면 환자가 고쳐진다 이겁니다. 네 영혼이 잘 된 것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구하노라. 그 강건하다, 이걸 병 고치는 걸로 생각해요. 그러니까 인류 역사상 50만 성도가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처음 생긴 겁니다. 그만큼 그 교회가 유명한 교회예요.
근데 그렇다고 우리가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는 건가요? 잃어버린 나는 없어요. 병 고쳐주는 나는 있어. 병 고침받은 나는 있지만 잃어버린 나는 없다고요. 그래도 우리가 예수를 살아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유태인들만 그런 게 아니고요. 3년이나 따라다니는 제자들도 예수를 모르는 거예요. 전혀.
그러니까 나는 모른다고 했지 베드로가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어. 보고 같이 잠도 자고 밥도 먹고 걸어 다니고 했는데도 모른단 말입니다. 그거 난 줄은 몰라요. 난 줄은 몰라 너무 다른 사람이니까.
죽은 후에야 알게 된 건데 그것마저도 이름을 다른 말로 바꿔버렸어요.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었다. 그렇게 바꿔버렸어. 죄를 짊어지고 죽었단 말은 이미 세례 요한이 한 말입니다. 세상 죄를 짊어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봐라. 아무도 이의를 제출하는 사람 없잖아요. 누가 우리 죄를 짊어지고 가? 그런 사람 아무도 없었으니까.
근데 십자가에 죽은 사람을 놓고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었다. 그럴싸하죠. 사실이 아니란 말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려다가 아니니까 죽인 거잖아요. 하나님이 아들이면 내려봐. 그럼 우리가 믿을 거야. 근데 못 내려왔잖아요. 우리 생각 같았으면 거기서 딱 내려와 버렸으면 다 엎드려 경배할 거 아닙니까?
근데 못 내려와. 제자들도 아무도 안 돼서 예수를 버리고 갔던 겁니다. 3년 전에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 버렸습니다. 배운 건 많을 것 같은데, 배운 게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는 예수님에서 뭘 배울 생각에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예수 잃어버리면 배운 게 아무 소용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그러는데 그 사람 떠나서 어떻게 길을 알겠어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요. 내가 곧 길이다. 내가 곧 진리다. 내가 곧 생명이다. 이런 사람은 예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이 사람 없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다. 안다는 것이 다 거짓말이에요. 안다는 것이 모르는 거잖아요. 안다는 것이. 이 사람을 알아야 인제 비로소 아는 것이 뭔지를 알게 된단 말입니다. 나도 그랬어요. 나도 희미했다고요. 희미했어. 따라온다고 열심히 따라왔는데 희미했어. 희미했어.
편하기도 하고, 자유롭기도 하고, 좋았잖아요. 우리 교회처럼 자유롭고 편안한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나도 그만큼 평안하고 좋았던 거예요. 듣는 사람 좋은 게 아니고... 왜냐면, 내가 그렇게 좋으니까 얘기를 했던 거니까요. 듣는 사람 또 더 좋았죠 내가 내 나쁜 건 얘기 안 했거든요. 내 나쁜 건 얘기 안 했어요. 왜냐면 내 나쁜 거 얘기해 봤자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얘기 안 했죠.
그러니까 일부러 감춘 것도 있죠. 그렇게 살았어요. 그러니까 그래도 만족했어. 좋은 것들 때문에 만족했단 말입니다. 난 예수도 안다, 남보다 더 확실히 안다, 이렇게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누가 나보고 묻길래 그랬지요. 서슴없이. 무엇이 다른 사람하고 다릅니까? 예수 아는 것이 좀 다르죠. 그렇죠. 뭐요? 예수 아는 게 달라요. 그러길래 그렇죠. 예수하는 게 좀 다르죠. 당당히 이렇게 말했어요. 그게 사실은 꼬치꼬치 물었더라면 나 아주 곤란할 뻔했어요. 어찌꼬치 물었으면. 정말로 사람이 예수를 알고 싶어서 물었으면 아주 곤란할 뻔했습니다.
근데 4대째 선교사 집안 사람입니다. 그래 내 말을 듣고선 속으로 웃고 가버리더라고요. 천만다행이었지요. 그만한게 천만다행이었어. 4대째 선교사 집안 아들인데, 내가 그 사람 앞에서 내가 예수를 더 안다고 했으니까, 얼마나 내가 어이없는 사람입니까? 잘못하면 어이없는 사람 돼버린다니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다. 다른 말 하다 그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예수에게 적중한 말이 됐어요. 죽기 전에는 몰라. 예수도 그걸 자기 자신이 누구란 걸 계속 얘기했지만, 우리가 그걸 알 수 없어요. 아무리 들어도 몰라요. 아무리 들어도...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모르고, 신학을 아무리 공부해도 모르고, 몰라요.
그가 죽은 것을 보니까, 나하고 다른 사람, 같은 사람인데 나하고 다른 사람, 같은 사람인데... 그래서 거기서 우리는 잃어버렸던 나를 발견한 겁니다. 그 사람이었구나. 그 사람이 원래 하나님이 나를 지어놓고 심히 좋다 했던 그 사람이구나. 참 이상한 일이잖아요. 멀쩡한 사람 놓고 말입니다.
저 사람이 원래 나구나. 본래 나구나. 내가 잃어버린 나구나. 아담이 잃어버렸던 나구나. 그게 우리가 발견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존재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새로운 존재 안으로, 내가 모르던 나로 들어간단 말입니다. 내가 전혀 모르던 나로... 이걸 우리가 새 사람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새 사람이죠. 내가 모르던 나니까... 이 사람을 거듭났다고 합니다. 모르던 사람이니까. 다시 난 사람이니까.
자, 이렇게 알고 나면 성경 말씀이 확연히 밝아져요. 안개 속에 있는 게 아니고 아주 명백하고 밝아져요. 그거 참 성경 말씀이 신기하잖아요. 예수 말씀이 신기하단 말입니다. 그때야 이제 알아듣게 해야 돼요. 우리가. 예수님 살았을 때 하던 말을 우리가 알아듣게 된다고요. 그때야.
그러니까 그분은 평소에 충분히 자기를 말해 왔어요. 우리가 못 알아들은 거죠. 전혀 다른 사람이 말하니까... 다른 사람의 말 어떻게 알아듣겠어요. 토끼의 말을 용왕께서 어떻게 알아듣겠어요. 알아들을 방법이 없어요. 종의 용왕이라고 했는데, 아니 용왕님께서도 토끼 말을 못 알아듣는다니까요?
별주부 잘하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참 재미있는 우화요. 그게 알고 보면. 우리는 다른 세계에 있다는 거, 다른 세계 말은 그 세계에서 모른다는 거. 왜 지금 이 복음을 모르냐? 다른 세계에서 들었어. 다른 세계에서... 그러니까 벽이 높다 문턱을 낮춰라 이런 소리 하고 있단 말이에요. 이보다 문턱 없는 말씀이 없고 이보다 벽이 없는 말씀이 없는데 자기가 벽이 있으면서 자기 벽이 두껍게 있는 거예요. 자기 문턱이 있고요.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이 예수도 문턱이 너무 높다. 문턱이 너무 높다. 문턱을 낮춰라 이러고 있어요. 어떻게 낮추면 되겠습니까? 큰 구덩이 있는 거 같애 사이에 큰 구덩이 가고자 해도 갈 수가 없고 오고자 해도 올 수 없는 곳이다. 그런 것이 사이에 끼어 있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다.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이다. 이런 것이 그 안에 끼어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있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고 거의 사실입니다.
나사로가 있는 것과 딴 사람이 있는 것이 달랐잖아요. 나사로를 좀 나에게 보내주시오. 그러니까 거기도 너한테 말해준 사람이 많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힌 말입니다. 판이 달라서 모르는 겁니다. 학문이 없어 모르는 것도 아니고요. 지식이 없어 모르는 게 아니고 경험이 없어 모르는 게 아닙니다. 판이 달라서 모르는 거예요. 육지에 살았으면 토끼마을 다 알아듣지요. 근데 물속에만 살았으니까, 토끼마을 어떻게 알아듣겠어요.
예수는 누군가? 예수는 누군가? 우리가 알던 예수가 아니고 우리가 전혀 모르던 사람입니다. 숨어있는 사람 같은 사람, 그 사람입니다. 근데 그것이 예수가 아니고 또 나란말입니다. 그게. 나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내가 좋으나 싫으나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나니까.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 좀 나도 몇 년 동안 하나님을 찾는다고 헤맸는데요. 내가 내일도 모르는 사람이 그냥 알고 나니까 생각이 다 없어져 버려요. 싹 없어져 버려. 아니 내가 내일 일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아냐? 하나님 또 알면 뭐하냐? 아주 간단해져 버리더라니까. 내일 일을 모르게 되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만나면요, 하나님이 아는 게 아니고 나를 아는 겁니다. 나를. 예수 만나면 뭐하냐? 나를 발견한다니까요? 공자님 만나면 뭐하냐? 천리가 있다. 천리. 하늘의 이치가 있다. 이걸 공부해야 된데 공부해야되요. 배워야 된대요. 석가모님 만나면 뭐가 있냐?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찾아보니 아무것도 없더라. 다만 내가 인식하고 있는 그것만 존재한다. 이거 유아독존이라는 뜻입니다. 그것만 존재하고 나머지는 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근데 그것이 우리한테 만족한 대답이 됩니까? 안 되잖아요. 싫어도, 싫어도 나라고 발견돼야, 그래야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발견되고 나니까 너무 쉬워져 버렸어. 그게 발견되기가 너무 쉬워져 버렸어.
요번에 내가 한 기도를 놓고도 여러 가지 웃긴 사람들 많았다는데요. 난 진심이었습니다. 죽어도 살려주세요. 이 말은 안 했어요. 내가 죽고 살려주면 뭐합니까? 같이 살자고 지금 살려달라는 건데... 그렇잖아요. 같이 살라니까 살려달라는 거지, 내가 죽어뿌면 살아나면 뭐하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걸음을 못 걷고 지금 1년입니다. 1년이... 일 년 3개월. 근데 고관절 수술해갖고 이런 사람도 또 드문가 봐요. 아주 드물어. 지금 우리 교회도 계시지만 김희영 형제님은 나보다 더 많이 다쳤다고요. 그런데 다친 자리가 아팠대. 결국 다친 자리 안 아파지니까 걸어서 교회 나오시잖아요. 나는 다친 자리가 안 아퍼요. 전혀 다른 자리가 아프다고요.
그러니까 병원에 가면 의사들은 수술에 이상이 없습니다. OO문제일 겁니다. 이랬다 야 이런 힘 대책이 없잖아요. 대책이... 이렇게 살지라도 같이 살게 해주세요. 이 말입니다. 내가 그동안 잘못한 게 너무 많으니까. 내가 좀 같이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집사람이 저렇게 갑자기 듣지도 못했던 병으로 죽을 줄은 누구도 모르잖아요.
저 병도 있는 병이 아니고 아주 드문 병입니다. 아주 드문 병. 드물게 있는지 없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하여간 난 처음 들은 병이고, 학계에서도 아마 그런가 봐요. 자주 있는 병이 아니에요. 이게. 이게 나도 이렇게 되는 데까지 크게 일조를 안 했겠습니까? 오직 속에 썩었으면 혈관이 부풀어 올라가지고 네 조각으로 갈라져 나오겠습니까?
병명이 그것입니다. 대동맥 박리. 혈관이 터지면 안 되니까 네 겹으로 돼있어. 네 겹으로. 근데 그것이 다 따로따 일어나 버렸단 말입니다. 그러면 아무 힘이 없는 거잖아요. 나왕(합판)이 왜 힘이 있습니까? 얇은 거 갖다 좌우로 겹쳐서 놓으니까. 힘이 있는 거잖아요. 근데 다 물에 담궈 보세요. 다 녹아서 부풀어지면은 아니 그냥 종이조각처럼 다 일어나버리고 망할 거 아닙니까? 그런 병이라니까요? 겉에까지 터져뿌면 그냥 즉사하는 건데요. 겉에가 남아 있어서 숨을 쉬고 있었던 겁니다.
온몸이 다 아프다고 그래. 아프다. 아프다고... 그래서 왜 그렇게 아픈 줄을 몰랐거든. 근데 병이 그렇다네. 온몸이 다 아프다. 왜? 가야할 피가 못 가니까. 그 대동맥에서 인자 작은 동맥들이 나와 가지고. 전신에 보급이 되는데 그게 보급이 안 된대요. 그게 안 되는 데만 다 아픈 거예요. 그 아픈 거 좀 못 견뎌. 아픈 거. 좀 일어나 보라니까 허리가 아파서 못 일어난대.
그런 병이 자주 있는 병이 아닌 거 아닌 거 같애.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 속을 많이 썩였어. 많이 썩였어. 자기는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서 왔다 해도 그래도 여자잖아요. 주부잖아요. 그런 입장에 조금이라도 서기를 원했던 겁니다. 나는 그걸 아예 무시하고 나를 좀 도와주면, 동역자가 됐으면, 왜 나를 전적으로 못 도와주나, 이렇게만 생각했단 말입니다. 그래 내가 얼마나 많이 잘못한 겁니까?
좀 고쳐서 다시 살아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좀 살려주세요. 정당한 말 아닙니까? 근데... 못 살고 죽었잖아요. 내가 일생에 이런 기도를 해본 건 처음이에요. 한 번도 안 해봤잖아요. 나를 왜 만들어 놨습니까? 난 지금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합니다. 그렇게 했지만, 이렇게 내가 간절하게 기도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근데 그것이 안 들어주잖아요.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신 분이 아니구나. 내 기도를 들어주신 분이 아니고 독생자를 주신 분이구나. 독생자를 주신 분이구나. 그것이 답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을 봐라. 그게 답이에요. 그게 답이, 다른 게 아니고, 더 답이 없지요.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해서 뭘 받을 수 있다고 그래요. 근데 그건 참 특별한 인물들이죠. 특별한 인물들이에요.
옛날 어떤 자매가 그래요. 얼마나 신통한 은혜를 받았는지요. 하나님, (손가락 다 펴고) 이거 아시죠? 이러면 5만 원, 딱. 하나님, (손가락 2개 펴고) 이거 아시지요. 그럼 딱 2만 원, 딱 돈이 들어온답니다. 야, 참 놀라운 일 아닙니까? 그런데 나는 내 일생을 걸고 기도했는데도 안 들어주잖아요.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더 어려워요. 더 어렵다고요. 아니 기도하면 되는데... 오히려 이목사 만나가지고 기도빨도 다 죽어버렸다고. 전에는 말이야 (손가락 다 펴고) 이라면 알았는데, 이제는요 엎드려 땅을 쳐도 안 되는 거야. 그러면 기도빨 다 잃어버린 거잖아요. 나 만나가지고. 그러니 나 만나가지고 만일 이 예수를 못 만나면 손해예요. 손해. 그런 사람들은 손해입니다. 차라리 거기서 있었더라면 그냥 (손가락 다 펴고) 이러고 살 건데... 안 그래요?
근데 빛을 봤다는 사람, 이 사람 참 어려워요. 빛을 봤다. 자기는 좋았지요. 근데 이 빛 본 것 때문에 안 돼요. 이걸 가지고 있어. 만일에 그 사람 따라가면 이 빛 본 거 없어지지 않나요? 그 두 가지 다 가지려니까 안 되잖아요. 음성 들었다는 사람도 있어요. 이 사람도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거 무슨 신령한 은혜를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 더 안 된다니까요? 더 안 돼요. 누가 옳은지 모르겠어. 누가 옳은지 몰라. 그런데 나는 내 운명을 발견한 거잖아요. 내 운명을. 잃어버린 날 찾은 거잖아요. 은사도 없고 모든 걸고 구한 기도도 응답이 안 돼.
그런데 답은 예수 그리스도라고요.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시는 분이에요. 그게 정상 통로입니다. 원래 사람을 하나님을 통해서 태어날라고 지어놨잖아요. 원래 그렇게 지어 놓은 거예요. 은사를 통해서 오실라고 지어 놓은 게 아니란 말입니다. 심지어 바울 같은 사람도요, 다메섹에 가다가 “사울아, 어찌하여 날 핍박하느냐.” 하는 소릴 들었다잖아요. 옆에 사람 못 들었어. 우뢰소리가 나고 벽력이 친다 이렇게만 들었지. “사울아, 사울아.” 하는 말을 못 들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도 한계가 있어. 하나님 만난 게 그렇게 만났단 말이야. 우리한테 말할 때는 항상 거의 배경에 깔고 있잖아요. 자기는 하나님 만난 사람, 음성으로 만난 사람. 그래서 지금도 이 땅에는 그렇게 예수 만났다는 사람이 또 많이 있어요. 음성을 직접 들었다는 사람들. 그러니 누구 말도 안 들어요. 사람 말은 안 들려요. 음성이 들리면 되니까, 사람 말은 안 들린다고. 안 그렇겠어요? 신의 말을 직접 들었는데 사람 말이 들리겠습니까? 이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죠.
원래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도록 지어진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서 만나도록 그렇게 지어졌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만이 진짜 정상통로 오신 정통 하나님입니다. 정통. 그게 정통입니다. 교리 통해서. 신학 통해서. 이건 정통이 아니죠. 그러니까. 그러잖아요. 꼭 사람을 통해서 와야 되는 분이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이 복음을 알게 되면 하나님 생각이 안 나. 하나님 생각이 안 나요. 나 이번에 다급해서 한번 기도해 봤는데 허탕이요. 정 다급하니까 내가 그렇게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안 되잖아요.
그래서 내가 더욱더 확실해진 것은, “아 하나님은 나에게 독생자를 주었구나. 독생자를 주었구나.” 내 기도의 응답보다도 독생자를 준 것이 더 크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생각과 하나님 생각은 너무너무 달라요. 너무 달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다르다. 그러니 사람이 하나님 찾는다는 것은 허탕이죠. 허탕. 찾았다는 하나님은 다 우상이에요. 우상. 너희는 나를 위해서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아라 했는데 뭘 만들어 버렸잖아요. 그럼 우상이죠.
내가 정의할 수 있는 하나님 만났다. 그럼 하나님이 아니죠. 내가 정의할 수 있는 하나님인데 어떻게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정의하겠어요. 정의를 못하지요. 나는 하나님 만났는데, 하나님은 모른다고 그러잖아요.
너무너무 확실하게 만났어요. 왜냐면, 판이 바꿔진 후에 내가 꼭 안 될 일은 꼭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배치해 놨어요. 그래 해결할 사람을 딱 배치해 놨다고요. 몇 년 후에 있을 일을 위해서도 그 사람을 배치해 놨어요.
그래서 내가 뭐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까? 미리 알아서 다 하시는데... 그렇게나 역력하게 하나님이 일하신 걸 봤습니다. 그렇지만 모르는 분이라니까요? 어제 하나님이 오늘 그대로냐? 그렇지 않아요. 오늘 하나님이 내일 또 그대로냐? 그렇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모르죠. 그러니까 모르죠. 영원히 나는 하나님을 모를 사람이에요. 모르는...
근데 이 복음을 알게 되면 하나님 알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잖아요. 예레미어 31장이 그러잖아. 하나님을 알라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요. 어린 나이로부터 어른까지 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보편화된단 말 아닙니까? 보편화. 특별한 사람들만 알던 하나님이 이제는 누구나 알 수 있는 하나님이 됐다 그 말이거든요. 특별한 사람이면 안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별종인가 봐, 별종, 별종이야 별종. 그런 사람이 없다 할 수는 없고 있는데, 그런 사람 특별한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가 바울의 말을 들어도 알쏭달쏭하게 애매한 이유가 바로 거기 있습니다. 그래도 한마디를 들어도 복음서에 있는 예수의 말을 들어야 그래야 뭐 좀 건질 게 있어요. 증인의 말이니까. 하나님 증인이잖아요. 하나님 증인.
희한한 세계를 보고 있네요. 내가. 너무너무 놀라운 세계예요. 아니 어쩌면 그렇게 납니까? 그게. 어쩌면 사람이 나냐고요. 옛날의 예수는 내가 아니었단 말입니다. 분명히. 그런데 내가 안다 했잖아요. 근데 지금은 진짜 그 사람이 예수라니까요? 내가 진짜 아는 사람이 예수예요. 진짜로 아는 사람. 그 한 사람을 아는데 모든 사람이 알아지네요.
그리고 나도 사람 너도 사람, 이렇게 된단 말입니다.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고, 우리 MZ세대에서 나온 말이요. 나도 사람 너도 사람... 그 사람들이 신학의 지식이 있어서 그런 소리 하겠어요? 그러니까 이거 딴 세계죠. 딴 세계.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세상 기준에서 생각하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전혀 다른 기준이니까.
어린 양이 통치하는 나라 어디가 있겠습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왜 가능하겠습니까? 어린 양의 왕이 되는 나라가 세상에 있겠습니까? 양은 그렇다데. 그게 얼마나 멍청한지요. 한 번 넘어지면 일어나지도 못한대요. 그렇게 멍청하다네요. 그 양이 어떻게 나라를 가지고 있겠냐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 상식을 가지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돼요. 아무리 상식적이고 올바르고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걸로는 우리가 그분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전혀 다른 세계. 여러분이 교회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는데, 이 말이 전혀 다른 나라 말입니다.
같은 말 같잖아요. 어휘는 같지만 다른 나라 말입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있다. 보좌란 말은 왕좌라는 뜻입니다. 왕좌. 하나님과 어린 양이니까. 하나님은 안 보이니까 실제로는 어린 양뿐이죠. 근데 그게 생명수의 강이 흐르더라. 생명 수의 강이 흐르더라. 강물이 흘러. 살리는 강물이 흘러.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더라 이겁니다.
야,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생명나무를 여기서 또 찾는 거 아니겠어요. 에덴동산이 분명히 생명나무가 있었어. 근데 안 먹고 선악과를 먹었잖아요. 근데 여기 오니까 이제 생명나무밖에 없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없어. 그래서 다시는 어둠이 없고. 밤이 없고 어둠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슬퍼하는 것이 없고...
그러니까 부정적인 모든 것이 다 없어졌다는 거예요. 부정적인 모든 것. 왜 부정적인 게 있었던가? 우리가 부정적인 데 있으니까. 거꾸로 앉아있으니까. 항상 해가 뒤에서 비칠 것 아니겠어요. 해를 보지 못하죠. 그림자밖에 못 보죠. 뒤로 돌아앉았으면. 그 사람은 항상 그럴 거예요. 내 그림자가 여기 있네. 그러면 그림자 없는 데는 앉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 아닙니까? 상식이 그렇게 다르다니까요?
우리가 요번 기회에 일반 상식, 아담 때의 상식, 그 상식을 깨끗이 깨끗이... 좀 버린다고 버리겠어요. 알면 버려지지. 알면 저절로 버려져. 하기야 버리라고 한다고 버려지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알기는 알아두세요. 알긴 알아도 안 될지라도 알긴 알아두세요. 그건 아니다 그건 알아야지. 버리란 말을 내가 못하겠드만.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알면 버려져 저절로. 알면 저절로 버려져. 나도 그걸 그냥 OOOOOOO 뭔가 따져봐야 될 것도 아니고, 그냥 좋다. 어린 양이 통치하는 나라가 좋다. 이렇게만 생각했지 과연 어린 양이 통치할 수 있겠냐는 의심을 안 가져봤단 말이야. 그래 요한계시록 그냥 그렇게 읽었죠.
그러니까 이것도 희미하게 안 거지요. 알긴 알았는데 희미하게... 이제 그게 확실해져요. 아하, 어린 양이 통치하는 세계가 있구나. 호랑이도 안 되고 사자도 안 되고 늑대도 안 되는 세상, 거기서 찢기고 물리고 하던 세상이 아니고 이제는 법이 없어도 살던 세상, 우리말로 하면 법이 없어서 산다 이 말이야. 그게 단지 율법이 없어진다, 그 말한 게 아닙니다.
새로운 세계,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의 은혜가. 독생자만 받은, 독생자인 그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다. 그래, 자연히 아멘이 안 됩니까? 저절로 아멘이 돼. 이야 성경 말씀은 정말 정말 진짜배기네. 정말 진짜배기요. 이것이 어떻게 사람이 좋다 하겠어요. 사람이 이런 말 했다 하겠어요.
아멘. 아멘. 아멘. 참 이거 이상한 얘기죠. 어떻게 이거 아멘이 되냐 이겁니다. 그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야... 우리는 아멘 하면 돼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아니라함이 없고 오직 예만 되었느니라 그럽니다. 오직 예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것도 성경 말씀입니다잉.
어떻게 예스만 있냐? 예스만... 어떻게 예만 될 수 있냐?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모든 일이 다 예만 되겠어. 좋을 때는 예가 되지만 안 좋을 때는 예가 안 된단 말입니다. 잘... 예가 안 돼. 기도해서 안 들어주니까 예가 안 된단 말입니다. 안 그러겠어요. 얼른 예가 안 돼요. 그러더니 생각해보니까, 이 사람을 나에게 줬구나 이 사람을 줬구나. 이것이 답이구나. 그렇게 알아지니까 예가 되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검은 넥타이를 버리고 밝은 넥타이를 메고 왔어. 검은 넥타이를 메고 있으니까 뭐가 됩니까? 그래도 이것만은 노야. 그렇게 되는 것 같단 말이야. 그래도 이것만은. 그래도 이것만 들어줘야지. 그래도... 근데 그게 아니고 예스가 아닌거 없단 말입니다. 이 사람을 만나니까 예스가 아닌 것이 없어지는 거예요. 예스가 아닌 거 없어져 버려. 부정적인 모든 게 다 없어져 버려.
그러므로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돼. 그냥. 너무 쉽잖아요. 이 한 사람을 옳게 알면 모든 게 예스가 된다니까요? 모두 다 예스. 근데 안 그러면 아무리 믿음 좋고 신앙생활 잘하고 은사가 있고 해도요 노가 더 많아. 노가... 예스보다 노가 더 많아. 그래도 그렇지. 그래도 그렇지, 그것이 남아 있단 말이야.
근데 이제는 그래도란게 우리한테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린다 아멘하면 그냥 영광이 되는 거예요. 아멘하면. 그대로 예. 아니 그러니까 세상이 너무 단순하고 쉬워져 버리잖아. 그냥 아멘으로 끝나버리니까 세상이 너무너무 간단해.
김혜순 아버지가 마지막에 그랬어요. 자기 관 위에다가 아멘이라고 써달라고... 죽은 박기민 형제가 끈질기게 찾아갔어요. 계속 찾아가서 말씀을 전했거든요. 그랬더니, 부정으로 꽉 차 있던 분이, 아멘, 인생은 아멘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내가 죽거든 관 위에다가 아멘이라고 써달라. 관 위에다 아멘이라고 썼잖아요.
아멘. 이거 끝이에요. 아멘이 완성이란 말입니다. 완성. 다 이루었다 이 말이고요. 다 이루었다. 그렇습니다. 이 말이에요.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그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이의가 없다 이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아멘 하면 인생은 완성되는 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아멘 안 할 것이 아무것도 없게 돼 있어요. 원래가 다 아멘 하도록 돼 있어. 근데 이거 무엇이 잘못 돼갖고 다 아멘이 안 되는 거예요. 다 아멘이 안 되니까 문제가 끝없이 나오지요. 끝없이 나와. 근데 이제 예수를 만나니까 아멘 안 될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러면 인생이 행복한 거예요. 그래도 하면 인생이 행복하지 않단 말입니다. 덜 행복해도 덜 행복해도 아멘 하면 완전하잖아요. 아멘 하면...
예,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어디 있냐? 김 아무개야 어디냐? 내가 여기 있습니다. 아니 당당하잖아요. 여기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잖아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더라. 그래야 연합이 된다고요. 안 그러면 연합이 안 되죠. 창세기 2장 마지막은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이 될지니라고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연합이 될라면 아멘이 먼저 있어야 연합이 되거든요.
아멘하고 노멘하고는 연합이 안 된단 말이요. 연합이 안 돼. 그러니까 아멘을 만나면 다 연합이 돼. 아멘을 만나면 다 이유가 없어. 연합이 없으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안 됩니다. 우주 질서를 보세요. 미물 하나라도 연합이 없이는 생육하고 번성이 안 되잖아요. 그러면 다 없어져 버린 거야. 그냥. 만일에 남자 여자 결혼 안 한다. 오늘부터 전 인류가 다 결혼 안 한다. 그러면 100년 내에 다 끝나버리고 말아. 애 안 나니까. 더 안 나니까 끝나버리는 거지. 그런데 이렇게 지지부진하고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살아있는 것은 남자와 여자와 결혼하기 때문입니다. 결혼하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다 멸망할 때는 모르지만, 그러기 전까지는 하여간 결혼하는 일이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지구에 사람이 있는 거죠. 우리 한국에는 지금 문제가 인구가 줄어드는 게 문제잖아요. 애기를 안 낳으니까. 그게 지금 큰 문제가 돼 있어요. 인구가 줄어지는 게. 그럼 외국에서 수입을 해야 되요. 그러면 단일 민족, 백의 민족 다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월남 사람 들어오죠. 중국 사람 들어오죠. 우즈백한에 들어오죠. 우즈백한에서도... 뭐 다 돈 주면 다 오니까. 수입에다가 자식을 낳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인류의 멸망을 방지하는 것도 돼. 지구의 멸망을 방지하는... 우리가 크게 공헌하는 거예요. 그게. 크게 공헌해. 연합이니까. 연합이니까. 육신도 그렇게 아는데 하물며 사람,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지은 사람, 이 사람이 안 되면 되겠습니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려.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음입니다잉. 생육하고 번성하는... 야,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너무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 중요한 위치에.
연합이 있으면 살고 연합이 없으면 죽잖아요. 결혼이 있으면 인류가 살아있을 거고. 결혼이 없으면 인류가 없어져 버리잖아요. 마찬가지로 연합이 없으면 연합이 없으면 인류는 살아있어도 죽은 거예요. 연합이 있으면 살아있는 거고...
자, 우리가 그렇게 싫게 보이는 내 운명이 너도 있고 나도 있으니까 만나면 연합이 되잖아요. 연합하자에 연합됩니까? 만나면 그냥 연합이 되잖아. 그래서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데도 불구하고, 또 만나면 하나예요. 완전히 개인적인데도. 이런 건 세상에 없습니다.
개인적이면 개인적인 고, 단체적이면 단체적인 거지. 지극히 아주 완벽하게 개인적이면서 완벽하게 하나인 세계는 없습니다. 완벽하게 하나의 세계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 만나면 연합체고 헤어지면 각자예요. 각자. 개인이에요. 개인. 옛날에는 내가 있어야 교회가 됐어요. 근데 지금은 내가 있으면 교회가 더 좋고, 내가 없어도 교회가 그냥 있어요.
그러니까 더 좋을 나가 있는 거예요. 내가. 나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그렇지 않아요? 만나면 하나니까, 만나면 하나니까 아주 넓은 세상이 펼쳐집니다. 옹졸하게 살 필요가 전혀 없어져요. 너무너무 넓어지니까. 너무너무 공평해져. 너무너무 자유로워져.
그렇게 말해도 설마, 설마 그렇게 되겠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 설마가 사람 죽인다. 사람 죽여. 설마 그렇게 될 거다. 설마 그렇게 될 거다. 설마 그렇게 되겠냐가 설마 그렇게 될 거다. 뜻밖에 그렇게 될 거다 이겁니다. 야. 요번에 확실하게 좀 굽이 갈라졌으면 좋겠습니다잉.
교회 갈라진 것도요 그냥 잘못된 것만은 아닙니다. 일단 갈라져 봐야 되거든요. 그러나 언제든지 오면 돼. 언제든지. 갈라져도 영원히 못 올 데가 아닙니다. 언제든지 오면 하나잖아요. 이 복음 안으로 오면 하나잖아요. 왜 넌 집 나갔다 왔어? 이럴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어요. 나는 저기다 하는데요. 아니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근데 거기 가서 연합이 안 되면 연합되는 데로 또 올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누가 왜 갔다 왔냐고 할 사람이 있어요? 어쩌면 갔다 온 사람이 더 좋을 수도 있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는 열린교회. 열린교회. 언제든지 오면 돼. 언제든지 오면 돼. 언제든지 오면 돼. 10년 이상 있다와도 도로 그 사람이 돼. 그냥. 이상해 우리 교회는. 10년 동안 놀다 와서도 도로 사람이라니까요?
어제 충주에서 온 자매 하나 있었지요. 수옥이라고...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우리 교회 안 왔어. 초등학교 교장이거든요. 근데 한 번 왔다 가더니, 사람이 언제 내가 갔다 왔냐고 할 정도로 그렇다니까요? 전혀 뭐... 화장만 좀 진득했지, 다른 건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이게 고향이에요. 고향. 우리 인류의 고향이에요. 고향에 오니까 뭐 도로 마찬가지 아닙니까? 옛날 친구도 그냥 그대로 있고, OOO인 친구 다 그대로 있고, 옛날 친구 다 그대로 있어. 그러니까 탕자가 돌아왔는데 더 잔치가 좋았다는... 이런 거 보고 한 말이죠. 갔다 오면 더 좋아져요. 갔다 오면 더 좋아졌다는...
그러니까 정신차리세요잉. 갔다 온 사람이 더 좋아지면 할 말 없이 되니까. 정신 차리고 있어야 돼. 아멘하고 마칩시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