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초 처음 거래했던 카자흐스탄의 따냐 집사는 전문결혼업체가 아니였을 뿐 아니라
침켄트 지역은 인구가 적어 우선 결혼대상 여성이 금방 바닥이 났다.
그래서 나는 우즈벡의 에이젼트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런데 우즈벡의 김00사장도 처음 기대와는 달리 이상한 행동,
즉 한국에서 느닷없이 주피터 홈페이지를 도용해서 한강로에 우즈벡 전문이라고 인터넷에 그대로
홈페이지 광고를 해서 내가 전화했더니,받지도 않고 슬쩍 광고를 내려버렸다.
내가 당시 1년전에 만났던 김00 사장은 신사적이었고,사업관도 뚜렸했고,
교포사회의 일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등 활동적이었다.
그래서 그가 귀국하자 군자역 8번 출구앞 메카참치에서 참치회도 대접하는 등 나름대로 잘 해주었는데
어이없게도 주피터 홈페이지 도용이라는 상식에 없는 일을 당하고서는 크게 실망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그의 아내 이리나씨가 여성사진과 프로필을 몽땅 가져가서 사업을 5:5로 하자고 제의해서
이혼했고, 귀국해서 한국에서의 우즈벡 전문결혼을 하려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렴 부부 사이도 돈 앞에서는 그렇게 쉽게 남이되는가?
혹 이혼전 아내가 그런 제의를 했더라도 타협을 했으면하는데 타협을 하려해도 안되었을까?
어떻든 나는 2002년 초부터 우즈벡 박실장(박실장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우즈벡 국적의 다마라씨를 전면에 내세우고 실제 일은 박실장이 다했다.
또 그는 아주 독실한 기독교신자이기도 했다)과 꾸준히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난 8월에야 첫고객을 보낼 수 있었다.
박실장은 메일 하나하나에 아주 성실하고 세심하고 빈틈이 없었다.그래서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보낸 첫 고객은 부산에서 회사에 다니는 김군(28세)로 외모단정하고 진실성이 보였다.
나는 우즈벡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었으므로 혼자 보내도 무리가 없었다.
우즈벡을 가려면 아시아나 직항으로 7박 8일의 일정이었다.
우즈벡으로 간 김군은 모든 일정을 나와 박실장이 협의한 대로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었다.
그 매일로 보고가 왔다.공항 마중,숙소예약,맞선진행
그리고 성혼합의서와 결혼,신혼 여행에 이르기까지 빈틈없이 보고해왔다.
7박 8일의 일정을 마치고 공항환송도 빠짐없이 보고해왔다.
나는 박실장의 수고에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김군이 귀국한 후 사흘쯤 지난 어느날 오후에 불쑥 찾아왔다.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는 의자에 털석 주저앉더니, 자초지종을 말했다.
처음 맞선을 보고 결혼식.데이트 까지는 너무나 좋았고 행복했다.
그런데 문제는 첫날밤을 보내는데 마치 허공에 찌르는 것 같았읍니다.
그래서 더이상 결혼을 진행을 할 수 없습니다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아니!여자 구멍이라는 게 다 똑같지,뭐가 달라?"했더니,
"사장님'제가 결혼비용으로1,500만원이상 들었고,우즈벡까지 갔다 왔는데 놀러갔겠습니까?
바람 피우러 갔겠습니까?저도 하도 답답해서 큰 누나에게 자세히 말했더니.
이해한다면서 파혼하라고 했습니다"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여자 구멍도 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소위 속궁합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하고 생각했다.
이 사실을 우즈벡 박실장에게 알렸더니.큰일 났다면서 여성측과 협의한 후 알려주겠다더니,2,000만원을 요구했다.
여러번 협의끝에 천만원으로 합의하고 김군에게서 받아서 송금해서 어떻든 일단락되었다.
이렇게 박실장과 우즈벡 첫결혼은 이상하게 끝났다.
그렇지만 박실장의 성실성과 진실성으로 우즈벡에는 매월 3-4명보내다가 나중에는 7-8명씩 보냈다.
그래도 한치의 착오도 없이 깔끔하게 처리했다.특히 모든 서류는 단계 단계 만들어 확인서
또는 합의서 혹은 각서를 받으면서 진행했다.
별도로 남성이 요청해서 박실장에게 돈을 빌리고서 한국에 와서는 "박실장이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서 쓰게 되었다"는 등 고객이 뒤집는 말도 확실한 증거 앞에서
법원 ,즉 검찰. 판사 그리고 경찰에게 받아질 리가 없었다.
이 또한 내가 감사원에서 채증하고 배운 결과들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