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와 컵스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재회했다. 두 팀은 작년에도 월드시리즈 진출을 걸고 같은 무대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당시 컵스가 2008년 디비전시리즈 싹쓸이 패배를 설욕했다(4승2패).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두 팀이 2년 연속 격돌한 것은 2008-09년 이후 처음. 다저스는 두 번 모두 필라델피아에 의해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아픈 기억이 있다.
2016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 컵스 8-4 다저스 (1-0)
2차전 컵스 0-1 다저스 (1-1)
3차전 컵스 0-6 다저스 (1-2)
4차전 컵스 10-2 다저스 (2-2)
5차전 컵스 8-4 다저스 (3-2)
6차전 컵스 5-0 다저스 (4-2)
후반기 부진은 모두를 속이기 위한 연막이었나. 디비전시리즈에서 다저스는 25경기 5승20패(8/27~9/21)로 주저앉은 팀이 아니었다. 51경기를 44승7패(6/8~8/7)로 지배한 공포의 팀으로 돌아와 있었다. 쉽지 않은 상대처럼 보였던 애리조나를 한 번의 패배 없이 제압했다.
득점력이 살아났다. 다저스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3경기만 치르고 20점을 넘긴 유일한 팀이다(1차전 9점, 2차전 8점, 3차전 3점). 다저스가 포스트시즌 단일 시리즈에서 8득점 이상 경기를 두 차례 선보인 것은 1947년 월드시리즈, 1955년 월드시리즈, 1981년 월드시리즈가 있었다. 재키 로빈슨이 등장한 1947년은 7차전 끝에 양키스에게 패배했고, 나머지 두 번은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다저스는 정규시즌 경기당 평균득점(4.75)을 디비전시리즈에서도 이어갔는데(6.67) 타선이 5점 이상 올린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50승14패(.781)에 이른다.
1차전 승리가 주효했다. 젊은 선수들이 주축인 다저스는 팀이 어떤 분위기에 놓여있고, 어떻게 출발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올해 연승과 연패가 잦아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비전시리즈 1차전은 저스틴 터너(.462 5타점)가 디비전시리즈 제왕의 면모를 보여줬다. 클레이튼 커쇼가 또 휘청거린 경기에서 터너는 3안타(홈런) 5타점을 독식했다. 만약 터너의 활약 없이 다저스가 1차전을 내줬다면, 시리즈는 쉽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터너는 디비전시리즈 통산 타율이 .449(15경기)로, 5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 역대 1위다(핸리 라미레스 .446).
즉 다저스는 챔피언십시리즈도 1차전 승리가 필요하다. 고무적인 현상은 타선을 이끄는 주인공들이 경기마다 달라졌다는 것. 1차전 터너에 이어 2차전은 12타수8안타 5타점을 합작한 하위타선(포사이드 반스 푸이그) 3차전은 포스트시즌 데뷔 홈런을 친 코디 벨린저였다. 선수층이 그만큼 두터워졌다는 증거로, 다저스는 특정 선수에게 책임을 넘기기 보다는 모든 선수가 책임을 함께 분담했다. 이러한 타선의 짜임새라면 어느 팀과 붙어도 승산이 있다.
야시엘 푸이그(.455 4타점)는 디비전시리즈 내내 사기를 끌어올렸다. 푸이그의 역동성은 양날의 검이다. 경기 흐름을 가져올 수도, 또 넘겨줄 수도 있다. 지난 디비전시리즈에서 푸이그는 전자에 해당했다. 다저스는 푸이그가 겨눈 칼끝이 계속 적군을 향해야 하는데, 달리 말하면 컵스는 오를대로 오른 푸이그의 기를 무조건 꺾어놓아야 한다.
변수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요소는 코리 시거(.273 3득점)의 몸상태다. 시거는 정규시즌 막판에 팔꿈치가 좋지 않았다. 8월말까지 넘어선 3할 타율이 붕괴된 것도 팔꿈치가 문제였다(마지막 28경기 .209 .277 .341). 시즌이 끝나면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 또한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는 슬라이딩 도중 허리를 살짝 삐끗해서 금요일 팀 훈련에 빠졌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 것을 보면 시리즈를 놓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거의 몸상태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공수에서 모두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시거가 만약 부진에 빠질 경우 다저스의 타격은 생각보다 클 것이다.
다저스 정규시즌 승리기여도 순위
5.7 - 코리 시거
5.5 - 저스틴 터너
4.7 - 크리스 테일러
4.6 - 클레이튼 커쇼
4.0 - 코디 벨린저
3.5 - 켄리 잰슨
3.4 - 알렉스 우드
2.9 - 야시엘 푸이그
2.6 - 리치 힐
2.5 - 야스마니 그랜달
2.5 - 오스틴 반스
다저스가 가뿐하게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한 반면 컵스는 5차전 혈투를 치르고 간신히 올라왔다. 5이닝 노히트를 두 번이나 이겨내고 승리한 최초의 팀이라는 (자랑스러워 해야 할지 부끄러워 해야 할지) 아리송한 기록도 세웠다. 컵스는 5차전에서도 초반 열세를 극복했고, 역전 위기를 힘들게 벗어났다. 돌이켜보면 작년 샌프란시스코와 맞붙은 디비전시리즈부터 순탄한 시리즈가 없었다. 다저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도 첫 3경기는 1승2패로 끌려갔고, 클리블랜드와의 월드시리즈 역시 첫 4경기 전적은 1승3패였다.
그런데 컵스는 항상 최후의 승자였다. 비 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고 했던가. 험난한 과정을 딛고 일어선 컵스는 선수들이 웬만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다른 팀들보다 포스트시즌에서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
컵스는 후반기 메이저리그 최다득점 팀(423)에 어울리지 않는 디비전시리즈를 보냈다. 5경기에서 겨우 17점을 뽑았다(평균 3.4득점). 팀 타율 .180는 클리블랜드(.171) 만큼이나 충격적인 기록(다저스 .298). 컵스 포스트시즌 역사상 이보다 팀 타율이 낮았던 시리즈는 강력한 마운드의 메츠를 상대한 2015년 챔피언십시리즈 뿐이다(4경기 .164). 시리즈 4할 타자가 넘쳤던 다저스와 다르게 컵스는 선발 출장한 선수 중 3할 타율을 넘긴 타자도 없다. 앤서니 리조(.200 6타점)와 애디슨 러셀(.222 4타점)이 그나마 산소 호흡기가 되어줬다. 크리스 브라이언트(.200)는 양키스 애런 저지(16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삼진을 당하는 중(10개). 리조와 함께 타선을 지탱해야 될 선수가 승부처에서 맥을 끊는 장면이 많아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가장 난감한 타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제이슨 헤이워드(5경기 .167)다. 헤이워드는 작년 포스트시즌 포함 21경기 성적이 .117 .185 .167다(커쇼 포스트시즌 통산 19경기 타격 .231 .310 .269). 컵스는 헤이워드 때문에 투수를 두 명 기용하는 기분인데, 다저스 하위타선과 맞서기 위해서는 헤이워드가 어느 정도 분발해줘야 한다.
그와중에 2사 후 득점 비율이 높은 것은 다저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컵스는 디비전시리즈 17점 중 13점을 2사 후에 마련했다. 실제로 정규시즌에서 휴스턴(361) 다음으로 2사 후 득점이 많은 팀이 바로 컵스(328)였다(콜로라도 317점, 다저스 311점). 아웃카운트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안심할 수 없게 만들었고, 기회가 왔을 때 몰아붙일 수 있는 응집력도 갖추고 있다.
올해 다저스는 홈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있다(포스트시즌 통산 홈 58승45패 .563). 정규시즌 다저스의 홈 승률(57승24패 .704)은 메이저리그 전체 1위(애리조나 .642). 연고지를 이전한 1958년 이후에도 팀 최고기록에 해당했다(종전 2015년 .679). 5월말 컵스와의 홈 3연전을 모두 승리한 것도 홈 어드밴티지에 힘을 실어준다. 흥미로운 사실은 컵스의 포스트시즌 원정 성적이 나쁘지 않다는 것. 컵스는 지난해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다저스 원정을 2승1패로 마쳤었다. 포스트시즌 최근 원정 9경기에서 패한 것도 지난해 월드시리즈 1차전과 올해 디비전시리즈 2차전 뿐이다(7승2패).
다저스의 홈 어드밴티지는 원정 낯가림이 덜한 컵스를 상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이 해답의 첫 번째 열쇠는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 선발로 나오는 클레이튼 커쇼가 쥐고 있다. 커쇼는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포스트시즌 부진을 탈출하지 못했다(6.1이닝 4실점). 피홈런 4방이 모두 솔로홈런인 것이 다행. 커쇼는 1~4회 평균자책점이 2.70인 데 반해 5회 이후 평균자책점은 8.22로 크게 치솟았다. 로버츠는 디비전시리즈 2차전 선발 리치 힐(4이닝)과 3차전 다르빗슈 유(5이닝)는 주저하지 않고 교체 시점을 잡았다. 과연 이 결정을 '기록상 5회 이후는 위험한' 커쇼에게도 내릴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참고로 커쇼는 컵스와 맞붙은 5월29일 등판에서도 4.1이닝 4실점(11안타)으로 난타 당했다(콘트레라스, 바에스, 리조 홈런).
다저스는 커쇼에 이어 힐과 다르빗슈, 그리고 알렉스 우드가 선발 로테이션을 구성한다. 우드는 다저스가 디비전시리즈를 3차전에서 끝내는 바람에 무려 3주를 쉬고 등판한다. 후반기 떨어졌던 구위가 이번 휴식으로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 지켜봐야 한다.
컵스는 당장 1차전에 올라올 선발투수가 미정이다. 디비전시리즈 4차전 제이크 아리에타(90구)에 이어 존 레스터가 3.2이닝을 소화(55구). 호세 퀸타나도 5차전이 총력전이 되면서 짧게나마 나와야 했다(0.2이닝 12구). 현재 아직 포스트시즌 등판을 하지 않은 선발투수로는 존 래키가 있다. 래키는 다저스의 천적(정규시즌 14경기 6승5패 2.15, 포스트시즌 2경기 1승 2.45). 1차전 깜짝 선발로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래키는 이번 시리즈 비밀무기가 될 수도 있다(퀸타나가 가능성이 높은 상황). 따져보면 한 경기지만, 컵스는 1차전 선발 고민을 충분히 해야 한다. 선발 로테이션이 꼬였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도미노 효과는 이미 모두가 확인했다.
지난해 컵스는 레스터가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2경기 1승 1.38). 하지만 다저스는 더이상 좌완에 약한 팀이 아니다. 좌완 상대 조정득점창조력(wRC+) 109는 리그 1위, ops .789는 콜로라도(.814)에 이은 리그 2위에 올랐다. 레스터도 5월29일 등판에서 달라진 다저스를 겪었다(3.1이닝 6실점). 디비전시리즈 애리조나 두 좌완(레이 체이핀)도 4.2이닝 5실점으로 무너졌다.
이번 포스트시즌은 각 팀들의 불펜 의존도가 한층 심해졌다. 현재까지 선발투수가 던진 이닝보다 불펜투수가 던진 이닝이 더 많다(선발 165.1이닝, 불펜 171.2이닝). 이러한 경향은 챔피언십시리즈에서도 달라지지 않을 전망. 그러면 무게 중심이 기울어지는 쪽은 다저스다.
다저스는 생각한대로 불펜이 돌아갔다. 켄리 잰슨(사진)은 마리아노 리베라 이후 가장 믿을만한 마무리 투수로 보인다(3.2이닝 비자책 1실점). 브랜든 모로(3.2이닝 1실점)도 준수했으며, 마에다 겐타(2이닝 0실점)의 불펜 전환은 대성공이었다. 다저스는 좌완 불펜 루이스 아빌란을 충원한다는 소문. 그런데 컵스 좌타자들은 좌투수를 상대로 그리 약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좌타자 vs 좌투수 ops .731 ML 7위).
컵스는 생각대로 불펜이 돌아가지 않았다. 디비전시리즈 17.1이닝 13자책은 10팀 중 가장 나빴다(다저스 11.2이닝 3자책). 디비전시리즈에 개근 등판한 칼 에드워즈(2.1이닝 6실점)의 난조가 매우 뼈아프다. 마이크 몽고메리(1이닝 3실점)도 고민. 특히 투런(하퍼) 스리런(짐머맨) 만루 홈런(테일러)을 골고루 내준 8회 평균자책점은 18.00(5이닝 10실점)에 달했다. 그러고 보니 다저스에는 정규시즌 8회 최다 홈런 타자가 있다.
정규시즌 8회 최다홈런 타자
9 - 코디 벨린저
9 - 라이언 짐머맨
8 - 제이디 마르티네스
7 - 저스틴 업튼
7 - 하비에르 바에스
"자, 들어보시오. 나는 그들을 상대하는 일이 정말 자신 있습니다. 그들과 붙는 것을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8월말, 매든이 다저스를 두고 한 말이다. 이제는 이 말을 증명해야 할 순간이 왔다. 그러나 지난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했다가는 되려 큰 코를 다칠 수 있다.
다저스는 최대한 시리즈를 빨리 끝내는 편이 유리하다. 시리즈가 장기전이 되면 이 환경에 더 익숙한 컵스가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 컵스는 다저스를 최대한 당황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경험을 앞세워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다. 가장 전력 차이가 크게 나는 불펜 운영이 관건. 경기 후반에 보다 여유를 안겨주기 위해서는 아직 잠들어있는 타선이 깨어나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