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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사랑 여행 스크랩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역사마을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101 14.08.10 09: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안녕하세요. 문화재청 블로그 기자 3기 구지영입니다. 저는 지난 4월 2일~3일 동안 문화재보호재단이 주최한 세계유산 체험프로그램인 '한국의 보물, 마음에 담다' 에 참가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서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안동하회마을과 경주양동마을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34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Historic Villages of Korea : Hahoe and Yangdong)'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확정했었죠. 때문에 우리나라는 10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한국의 역사마을의 가치를 인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화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선 완전성, 진정성을 만족시켜야하고 OUV(뛰어난 보편적 가치)의 기준 중 한 가지를 만족시켜야합니다. 

▲문화유산의 기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세계유산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등재기준 -

Ⅲ)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Ⅳ)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에 해당되었습니다. 등재기준 뿐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근대화에 따른 변화가 적었고 문화재급 가옥과 과거 상민들의 모습과 토속적인 주거건축을 잘 보여주는 초가들까지 잘 보전되어있기 때문에 유네스코에서 한국의 역사마을의 가치를 인정하였습니다.

 

 

 

 

경주 양동마을은 전통민속마을 중 대표적인 반촌으로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종가가 500여년 동안 서로 협조하며 이어온 마을입니다. (★반촌이란? 班村, 양반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는 뜻입니다) 양동마을은 한국 최대 규모의 조선시대 동성취락으로 54호의 고와가(古瓦家)와 110여호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낮은 지대에는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고지대에 있는 고와가(古瓦家)와 저지대에 있는 초가

 

 

양동마을의 진입로 쪽은 경사가 급한 산에서 시선이 차단되고, 골짜기 밖에서는 마을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 마을 입구에서는 그 규모를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의외의 규모에 놀라게 됩니다. 괜히 우리나라 최고 규모의 전통민속마을이 아니었습니다.^^

 

경주양동마을에는 통감속편(국보 제283호), 무첨당, 향단, 관가정, 손소영정(보물 제1216호)을 비롯하여 서백당 등 중요민속자료12점과  손소선생분재기(경북유형문화재 제14호)등 도지정문화재 7점이 있습니다.

 

양동마을을 둘러보면서 꼭 봐야할 문화재들 소개해드리겠습니다^^

 

 

① 경주 양동 무첨당 (慶州 良洞 無?堂, 보물 제411호)

 

 무첨당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회재 이언적(1491~1553)선생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운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별당 건물로 손님접대, 쉼터, 책읽기를 즐기는 여러 용도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무첨당의 오른쪽 벽에는 대원군이 집권 전에 이곳을 방문해 썼다는 죽필(竹筆)인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이는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라는 뜻입니다.

 

② 경주 양동 향단(慶州 良洞 香壇, 보물 제412호)

 

 향단은 낮은 구릉 위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 초입에서 볼 수 있습니다. 향단은 조선중기 건물로 조선시대의 성리학자인 이언적 선생이 경상감사로 재직할 때 지은것이라고 합니다. 향단의 사랑채는 두 개의 나란히 지붕을 연결하여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외관 상 굉장히 화려한 느낌입니다.

 

③ 경주 양동 관가정(慶州 良洞 觀稼亭, 보물 제 442호)

 

 관가정(觀稼亭)이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건물입니다. 조선 전기에 활동했던 관리였던 우재 손중돈(1463~1529)의 옛집입니다. 관가정에서는 형상강과 경주를 품어 안은 경관이 보이는데 그 경관이 일품입니다. 

 

④ 양동 서백당(良洞 書百堂, 중요민속자료 제23호)

 

 서백당은 경주 손씨 큰 종가로 이 마을에서 시조가 된 양민공 손소(1433~1484)가 조선 성종15년(1484)에 지은 집이라고 합니다. 양민공의 아들 손중돈 선생과 외손인 이언적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요. 사랑 대청에 걸린 편액인 '서백당(書百堂)'은 참을 인(忍)을 100번 쓴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종손으로서 인내심을 기르라'는 가르침을 당호로 나타낸 것이라 합니다. 서백당의 마당에는 큰 향나무가 있는데요. 향나무는 500년이 넘었다고 추정된답니다.

 

양동마을 지도

 

양동마을 홈페이지에서 추천하는 코스는 6가지가 있습니다. 코스를 따라 마을을 돌아다닐 때에도 위 문화재는 잊지 말고 꼭 보시길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 : 경주 양동마을 홈페이지 (http://yangdong.invil.org/)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인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년 간 대대로 지켜온 마을입니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입니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안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마을을 감싸는 낙동강 ?하회마을 홈페이지

 

안동하회마을의 유명한 이유 중에 하나는 마을을 감싸는 S자의 낙동강의 모습입니다. 안동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고 조선시대부터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현재 마을에는 문화재지정가옥 12호, 일반 가옥 115호가 있습니다. 보물로 지정된 양진당과 충효당, 사적으로 지정된 병산서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화경당, 원지정사, 빈연정사, 작천고택, 옥연정사, 겸암정사, 염행당(남촌), 양오당(주일재), 하동고택이 하회마을의 가치를 더  높여주고 있습니다.

 

하회탈 및 병산탈(국보 제121호)

 

가옥 뿐 아니라 하회마을의 가치를 높여주는 문화재가 있는데요. 그건 바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바로 그것입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우리나라 가면극의 발생이나 기원을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탈놀이를 할 때 쓰이던 탈도 국보로 지정되었는데요. 제작연대가 고려시대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마을의 유서 깊은 역사를 알려줍니다.

 

안동하회마을을 구경하시면서 보셔야할 문화재를 알려드리겠습니다.^^

 

 

① 안동 하회 양진당(安東 河回 養眞堂, 보물 제306호)

 

양진당은 겸암 류운룡(1539~1601)의 집으로 매우 오래된 풍산 류씨 종가입니다. 류운룡의 아버지 입암 류중영(1515~1573)의 호를 빌어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양진당은 류운룡의 6대손 유영(1687~1761)의 어릴 때 이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양진당은 규모가 큰 조선시대 별당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양진당은 풍산 류씨가 13세기 입향 당시에 처음 자리 잡은 곳에 지어진 건물로 전해집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 된 것을 17세기에 중수하였는데요. 때문에 고려 말 건축양식과 조선중기 건축양식이 섞여있다고 하네요. 하회마을에서는 드물게 정남향의 집이며 99칸으로 전해오지만, 지금은 53칸이 남아있습니다.

 

 

 

② 안동 하회 충효당(安東 河回 忠孝堂, 보물 제414호)

 

충효당은 조선 중기 이름난 문신이었던 서애 류성룡(1542~1607)선생의 집입니다. 류성룡 선생은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임진왜란 때는 영의정으로 전쟁의 어려운 상활을 이겨내는데 많은 공헌을 하시 분입니다. 사랑채 대청에 걸려있는 '충효당'이라고 쓴 현판은 명필가였던 허목(1595~1682)이 쓴것이라고 하네요. 충효당은 비교적 지을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있어 조선시대 민가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1999년 당시 방한했던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의 방문기념식수가 충효당 바깥마당에 심어져있답니다.

 

 

 

③ 병산서원(屛山書院, 사적 제260호)

 

서애 류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입니다. 병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해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남아있었던 47개 서원 중 하나입니다. 병산서원의 전신(前身)은 고려 말부터 이어져온 풍산 류씨 가문의 서당인 풍악서당을 선조 5년(1572년) 서애 유성룡선생이 31세 때에 후학 양성을 위해 풍산에서 병산으로 자리를 옮겨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안동하회마을에 오시면 하회별신굿은 꼭 보시고가세요~^^

 

안동하회마을 홈페이지(http://www.hahoe.or.kr/)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두 역사마을이 제 모습을 잘 유지하여 오늘날까지 이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주민들이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양동마을과 하회마을은 출입을 제한하는 안내판이 많습니다. 주민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생활공간이기 때문이죠.

 

 

 

201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양동마을, 하회마을에 다녀갔습니다. 방문자가 늘어남에 따라 관광객들이 주민들의 집에 들어가는 등 사생활 침해 문제와 같은 주민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역사마을은 주민들이 있기에 그 가치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세계유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양동, 하회마을 주민들의 생활에 대한 배려를 가져야하지 않을까요?

 

 

 

 

▲제3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구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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