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사도는 아무리 하여도 나를 위해 하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니,
그 핵심을 선악에서 보았고,
선악에서 보니,
자연 교수님의 악은 나를 생존하게 하고, 선은 우리를 공존하게 한다.에서 찾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대해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이 말씀에 담긴 뜻을 제가 살펴본 바로는, 누구라도 그러시겠지만,
첫 번째 담긴 뜻은, 선악이란 무엇인가? (선악의 체)
“나를 위한 것은 무조건 악이고, 남을 위한 것은 무조건 선이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조금이라도 나를 위해서 한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리 선이라도 악이다.
조금이라도 남을 위해 한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리 악이라도 선이다.' 란 말씀이지요,
두 번쩨 담긴 뜻은, 선악은 왜 선악인가? (선악의 용)
악은 나를 생존하게 하기에 악이지,
나(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의 생존을 벗어난 악은 좋은 악이 아니라 나쁜 악이라는 것이지요,
같은 이치로,
선은 우리를 공존하게 하기에 선이지,
우리의 공존을 벗어난 선은 좋은 선이 아니라 나쁜 선이라 할 것입니다.
다시 도출한 둘을 같이하여 말해보면,
악은 나를 위하는 것이고, 선은 남을 위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는 것이 나를 생존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좋은 악이 아니라 나쁜 악입니다.
유교식으로 말하면, 나를 생존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악을 중용이라 할 것입니다.
바로 중용의 악인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남을 위하는 것이 우리를 공존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좋은 선이 아니라 나쁜 선입니다.
역시 우리를 공존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을 중용이라 할 것입니다.
바로 중용의 선이라 할 것입니다.
(중용의 선은 좋은 선, 중용의 악은 좋은 악)
왜 선악을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요?
선악이 모두 연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이라하여도 더한 선에 비하면 악입니다.
악이라 하여도 더한 악에 비하면 선이라 할 것입니다.
다시 얘기하면,
선은 그보다 덜한 선으로 인해 선이고, 악은 그보다 덜한 악으로 인해 악이기 때문이지요,
엄밀히 말하면 구분이 없는 것입니다.
대충 말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속제입니다.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선악은 연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대충 말하여,
선이 있어 악이 있고, 악이 있어 선이 있다.
선이 없으면 악이 없고, 악이 없으면 선도 없다.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속제이지요,
사는 데는 속제로 살아야지 진제로 살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이걸 구분 못하면 18강에서 말씀한 일본의 그 학자처럼 되는 것입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써야 하는 것입니다.
악은 나(내지 우리)를 생존하게 하기 위해 쓰고, 선은 우리를 공존하게 하기 위해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선도 좋고 악도 좋게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악 좋은 선인 것이지요,
사례는 들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일상에 적용하면 바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지계와 보시에 적용해 보아도 어긋나지 않음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나아가 고금의 정치 사회 국가 세계의 상황에 적용하여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교수님의 “악은 나를 생존하게 하고, 선은 우리를 공존하게 한다.”는 것은 가히 진리(속제)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내재된 선악이란?
'나를 위한 것은 무조건 악이고, 남을 위한 것은 무조건 선이다.' 이고,
다시 그 쓰는 것으로 말하면?
좋은 악 좋은 선이 될 것입니다. 즉,
'나(때론우리)를 생존하게 하기 위해 나(때론우리)를 위하니 좋은 악이고,
우리를 공존하게 하기 위해 남을 위하니, 좋은 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의 속제인 하사도에서 행할 선악의 지침이지만,
유교의 중용의 참뜻을 드러낸 말씀도 되고,
선악의 참 의미뿐아니라, 그 쓰임까지 드러낸 대단한 말씀이라 할 것입니다.
교수님의 통찰과 사유는 이렇게 불교의 선악과 유교의 중용까지 다 담아내셨다고 보았습니다.
거칠지만 사유하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하여,
체계불학을 하시는 분들과 저의 이해를 나누고자 올려봅니다.
합장합니다._()_
ps) 사실,
체계불학의 대단함 2. “나혼자 산다.”
저는 아직 이 말씀의 참뜻을 알지 못합니다.
교수님의 글과 강의 말씀을 다시 보면서 통찰사유 해보지만,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아시는 분이나 이해하신 분께서 그 아시는 바나 이해하신 바를 올려 주시면,
저뿐아니라, 체계불학을 공부하시는 모든 분들께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학적으로 안다고 하여도, 실천이 없으면 다 죽은 지식이고, 썩은 지식입니다.
현학에 떨어져 청담이나 일삼는 그런 무리일 뿐입니다.
담론을 아무리 한들 죽은 지식일 따름입니다.
사실 제가 듣기로 진리는 너무나 단순하여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고, 대충보는 것입니다.
문사는 진리를 알고 실천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다른데 뜻이 없습니다.
잘 알고 실천하기 위해 연구하고 따져 보는 것입니다.
악은 나를 생존하게 하고, 선은 우리를 공존하게 합니다.
나를(우리를) 생존하게 하는 악도 아니고,
우리를 공존하게 하는 선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라 할까요?
말한마디 행동하나 마음씀하나 그것을 뭐라고 할까요?
저부터 반성이 됩니다.
교수님은 말한마디 행동하나 마음씀하나 여기에 어긋남이 없으셨으니,
참으로 이사겸학의 체계불학의 시원을 여신 분이십니다.
_()_
첫댓글 청정님 선악에대해 공부하신 내용을 공유해주셨네요.
공부하신 내용을 이렇게 자연스럽고도 풍부하게 열정적으로 표현하실 수 있다니 부럽습니다.
저도 교수님의 선악에대한 견해를 듣고 감탄을 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좌파 우파 보다는 이념가와 실리가로
구분하는 것이 낫다고 하셨을 때도 그랬습니다.)
교수님께서 ‘학문은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게 체계화하는 것이다.’라고 하신 기억이납니다.
‘나를 위한 행위는 악이고 공존을 위한 행위는 선이다.’라고 하신 것도 선악을 가장 단순화시켜 표현하신 듯합니다.
그리고 청정님 말씀처럼 ‘선악은 연기한 것이다.’가 가장 중요한 말씀 같습니다.
어떤 행위가 나에게는 선이지만 타인에게는 악이 될 수 있듯이요.
부처님께서 진리를 발견하셨고 진리의 요체가 연기법이니, 모든 현상은 연기적으로 해석 가능해야 한다고 교수님은 말씀하셨지요.
오늘도 청정님의 글로 행복한 날입니다.
유교의 중용도 공부해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청정님 감사합니다.
합장_((()))_
마도로스님, 감사합니다.
교수님께 배운대로 제 깜냥대로 사유해본 것이지요.
언제나 잘못된 점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잘 알고 계시니, 저보다 나으십니다.
합장합니다._((()))_
어휴 무슨 말씀을...ㅠ
저는 교수님 강의가 너무 좋아서 두서없이 기분내키는대로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강의에서 하신 말씀인지 잘 기억이 안나네요.ㅠㅠ
청정님처럼 한 강의를 여러번 듣고 그대로 정리까지 하시니 정말 체계적인 공부가 될 것 같아요.
청정님께서 올려주신 강의채록과 공부후기를 읽고, 다시 강의 들으니 더 이해가 잘 됩니다.
청정님께 많이 배우고 도움받고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
제가 쓴 댓글을 읽어보니 너무 주제넘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계셨다면 바로 지적하셨을 것 같습니다.
근거도 대지 못하면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고 하고 있었네요. 확실하지도 않은 말을 그저 자신의 기억만으로 말했네요.
회원님들 죄송합니다. 앞으로 좀더 신중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도로스님, 무슨 말씀을...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도로스님처럼 그렇게 하려면, 저도 글을 올리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이해한 바를 올리듯, 마도로스님도 이해하신 바를 올려주신 것이니,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셋이 나은 것이지요,
저는 참여하시는 마음을 내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의견까지 올려주시니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너무 감사하지요.
마도로스님, 감사합니다._()_
두분께서 올려주신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오대산님, 여행은 마치셨는지요?
벌써 푸르른 오월이로군요,
푸르른 오월에, 푸르른 날들로 수놓으시기를..._()_
막바지입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태현님, 잘 오셨습니다.
이곳은 교수님의 넷도량입니다. 반갑습니다._()_
오대산님 즐겁고 평안한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이태헌님 환영합니다.
저도 가입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