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범근

박지성 선수의 국위선양이 정말 가슴 뿌듯하죠.
요즘은 새벽에 맥주 한캔과 박지성이 출전하는 경기 중계방송 이보다 좋은 궁합은 없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이 가끔 박지성과 차범근을 비교하는 사례가 있더군요. 이 부분은 그냥 웃고 넘어가겠습니다.
솔직히 차범근 감독은 따로 설명을 하는 자체가 우습죠.
한국을 잘 모르던 70~80의 유럽 특히 독일에서 한국사람들이 입국절차를 밟을때
한국이라는 나라보다도 차붐의 나라라고 해야 입국절차가 더 수월하게 이루어졌다고 했을 정도이니(경험자들이 말 토대로)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겠죠
기타 참고자료
http://cafe.daum.net/truth.com/1u06/26?docid=1E0js|1u06|26|20080924033109
허재

허재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선수죠
그러나 실력만큼은 자타공인 최고의 선수였죠
프로농구 출범 초창기에 한국에서 용병드래프트에 참가했던 많은 미국 선수들이
한국 농구는 잘 모르지만 허재는 들어봤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허재가 중앙대를 선택했을때 연,고대는 정말 초상집 분위기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연,고대는 서로를 라이벌로 삼고 다른 대학에는 져본 기억이 거의 없는 팀인데
허재를 영입한 후 중앙대는 그야말로 연,고대를 계속해서 초상집으로 만들어버리는
저력을 발휘하죠
허재가 기아자동차에 입단하고 90년대 초 중반 아시아 농구 클럽대항전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팀에는 미국 러시아등 농구강국의 용병들이 포진되어 있었지만 기아자동차는 용병이 없었죠.
그래서 기아자동차의 성적은 예선탈락 정도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좋게 빛나가고
준 우승까지 차지합니다.
88년 서울 올림픽때 세계 최강급의 유고와의 경기도 전설로 남아있죠.
유고 선수들이 다른 선수는 모두 차단하는데 성공했지만 유독 허재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고 했죠.
그때 유고선수들의 표정이 "뭐 저런녀석이 다있냐?"라는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대부분 NBA선수들로 팀을 이룬 유고는 이 날 전반전 내내 한국팀에 끌려가다가
후반부에 유고팀 선수 3명이 허재를 마크하는 진기한 장면이 나오고 그 후 결국 한국은 아쉽게 역전패를 했습니다.
2미터10센티가 넘는 선수를 앞에 두고도 더블클런치를 하던 허재
왼손잡이인 허재가 왼손을 부당을 당하고도 아시아 농구 최강 중국팀을 상대로
혼자서 또 35득점 ㅡㅡ; 중국 아나운서가 저런 동양선수는 처음본다며 혀를 내밀고
몇년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세계농구선수권 대회에서 리바운드를 제외하고 모든 랭킹에 5위안에 들어가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었죠.
프로농구 초창기때 삼성의 용병(맥도웰로 기억)이 인터뷰 도중 이런말을 했었죠
"저희 대학 감독님이 한국에 가면 허재라는 선수를 잘 지켜보라고 했었습니다"
선동렬

통산성적 146승(29완봉승) 40패 132세이브, 방어율 1.20
(참고로 선동렬 기록에 싸이영을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싸이영은 mlb에서 511승을 올렸으니 얼마나 대단한지 아시겠죠)
선동렬 보다 최동원 김병현이 아마추어때는 더 대단했다는 전문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아마추어때는 최동원 김병현이 더 대한한 선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 최고 투수는 자타공인 선동렬이죠.
제가 어렸을때 저희 아버지께서 야구 중계방송을 보시면 늘 말씀 하셨던게
모든팀에 선동렬 같은 투수가 있어야 정정당당하다고 말씀 하신 기억이 납니다.
그 만큼 야구를 잘 모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ㅋ 개인적으로 선동렬 같은 투수는 절때로 한 시대에 두명 이상 나오기 힘들기때문이죠.
선동렬이 해태타이거즈에 입단하기 전 미국 메이져리그의 몇몇팀은 선동렬을 스카웃 하기위해서 한국에 자주 드나들었죠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는 아주 노골적으로 접근하기도 했었습니다.
미국의 야구 전문가들이 작성한 리포트에 선동렬이 당장 빅리그에서 뛰어도 10승은 무난하게 할 수 있다고 했었죠.
10승을 꾸준히 5년 이상만 해도 메이져리그 최고 투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데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야구가 그때당시 아마랭킹은 쿠바의 뒤를 이어 대만과 2위자리를 타툴만큼 그때도 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져리그가 아무리 대단하고 실력차가 우리아 많이 난다고 해도 결코 어설픈 예상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초의 한 일 슈퍼게임에서 일본 타자에게 계속 안타를 허용하던 우리나라 투수들의 표정이 일그러질때
선동렬이 등판을 합니다. 원래 부상이 있었던 선동렬은 한일 올스타(일본은 1.5군)대회성격상 등판을 하고
감독이 1이닝만 소화하게 했었는데 이때 3명 모두 탈삼진 시키고 일본 관중석을 조용하게 만들고 내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선동렬에게 쥐약인 선수가 한명 있었는데 최 약체 태평양돌핀스의 김동기 라는 포수였죠.
선동렬 기록에 거의 없는 역전패를 두번이나 안겨준 타자가 김동기였습니다. 그것도 역전 홈런으로..ㅋ
선동렬의 기록(펌)
▲MVP 수상 3회(86, 89, 90)
▲골든글러브 6회(86, 88, 89, 90, 91, 93)
▲3년연속 투수 3관왕(89, 90, 91)
▲0점대 방어율은 3번(86, 87, 95)
▲노히트 노런-삼성전 89. 7. 6 광주구장
▲한경기 최다 투구수-232개 사직구장, 롯데전 87. 5. 16.(상대투수 최동원)
▲한시즌 최다 완봉승-8회, 86년
▲연속 경기 완봉승-3경기, 86. 8. 31∼9. 11
▲특정팀 상대 연승-20연승, 롯데전 88. 8. 11∼95. 9. 26
▲연속 경기 무패-44경기, 91. 8. 20∼93. 7. 14 (규정 이닝 투구)
▲연속 경기 세이브 포인트-18경기, 92. 7. 7(vs 빙그레)∼93. 5. 15(vs LG)
▲최다 타석 상대 연속 무피홈런-1186타석 상대, 89. 5. 9∼90. 9. 25
▲최다 투구 이닝 무피홈런-319이닝, 89. 5. 9∼90. 9. 25
▲한경기 최다 탈삼진-18탈삼진, 91. 6. 19(vs 빙그레) 광주(13회)
▲매 이닝 선발 전원 탈삼진-92. 4. 11 (vs OB) 잠실
▲연속이닝 무실점-49.2이닝, 86. 8. 27∼87. 4. 12
▲특정팀 연속이닝 무실점-42이닝, 삼성전 86. 5. 25∼88. 4. 2
▲한시즌 최고 방어율(규정 투구이닝 이상)-0.78(93년
윤경신




윤경신은 독일 분데스리가 핸드볼리그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합니다.
독일은 핸드볼리그가 축구 만큼이나 유명하고 리그에 진출해 있는 한국 선수들
대부분이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받을 정도로 금전적으로도 한국 프로야구나 축구 이상으로 활성화된 좋은 리그입니다.
독일 분데스리가 핸드볼리그는 1부리그에서 5부리그까지 3천여개의 팀이 있습니다.
윤경신 선수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경희대 출신으로 1997년 독일로 진출합니다.
12시즌을 소화하는 동안 6시즌 연속득점왕과 총 8차례나 득점왕에 오르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기죠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하냐?고 하면 간단하게 말씀드려서
지금가지 독일 분데스릭에서 3년 이상 득점왕에 오른 선수가 단 한명에 불과했었습니다.
그런데 윤경신이라는 작자가 나타나서 8시즌 득점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을 한것이죠
이 기록은 독일 분데스리가 전문가들이 다시는 나오기 힘든 기록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독일 선수들이 가지고 있던 한 시즌 최다 득점과 통산 최다 득점을 가리치웠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역대 통산 최다 득점자 10걸의 선수들 중에 윤경신 선수의 출전 횟수가 가장 적다는 겁니다.
이런 윤경신 선수를 보고 유럽 언론들 특히 핸드볼에대해서는 축구 만큼이나 자존심이 쎈 독일에서는 핸드볼의 차범근 이라며 그를 사실상 분데스리가 핸드볼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인정을 할 수 밖에 없게됩니다.
독일 핸드볼리그는 보통 매 경기 5천여명의 관중이 몰리지만
윤경신이 속해있는 함부르크는 매 경기 7천여명의 관중이 입장을 합니다. 그의 인기가 어느정도인지 실감이 가죠.
2004 아테네 올림픽 득점왕
95,07 세계선수권 득점왕
아시안게임 4차례 연속 득점왕
2002 세계 핸드볼 올해의 선수
유명우

제 기억으로는 30전을 치루는 동안 패배가 단 한차례도 없었던 선수는 유명우 밖에 보질 못했습니다.
원래 히로끼 선수와 대전을 하고 은퇴를 할 예정이라고 알고있었는데 아쉽게도 프로생활 유일한 패배를
히로끼 선수에게 당하고 말죠. 그리고 곳바로 히로끼와 복수전을 펼치고 다시 타이틀을 되찬고
더이상 상대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은퇴를 결심했지만 히로끼의 복수를 자처한 유이찌 선수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승리를 하고 끝까지 타이틀을 지키며 은퇴를 했습니다.
전 적 : 39전 38승 1패 (14KO)
타이틀 : OPBF JR플라이급(85년) / WBA JR플라이급(85년, 92년)
최병범 4R판정 1982. 3/28 청주 (데뷔)
조이.올리보(미국) 15R판정 1985. 12/8 대구 (WBA JR플라이급)
호세.데헤수스(푸에르토리코) 15R판정 1986. 3/9 수원 (1방)
도모히로.기유나(일본) 12RKO(1/53) 6/14 인천 (2방)
마리오.데마르코(아르헨티나) 15R판정 11/30 서울 (3방)
에드왈도.투논(파나마) 1RTKO(2/46) 1987. 3/1 서울 (4방)
베네딕토.무리요(파나마) 15RTKO(1/26) 6/7 부산 (5방)
로돌포.블랑코(콜롬비아) 8RKO(2/18) 9/20 인천 (6방)
윌리.살라자르(멕시코) 12R판정 1988. 2/7 서울 (7방)
호세.데헤수스(푸에르토리코) 12R판정 6/12 대전 (8방)
푸트.오유타나콘(태국) 6RKO(2/58) 8/28 부산 (9방)
바하르.우딘(인도네시아) 7RTKO(2/40) 11/6 서울 (10방)
고미야마.가쓰미(일본) 10RTKO(1/18) 1989. 2/12 청주 (11방)
마리오.데마르코(아르헨티나) 12R판정 6/11 천안 (12방)
다이호.겐분(일본) 11RKO(0/48) 9/24 수안보 (13방)
도꾸시마.히사시(일본) 7RTKO(1/30) 1990. 1/14 인천 (14방)
레오"토리토"가메스(베네수엘라) 12R판정 4/29 서울 (15방)
레오"토리토"가메스(베네수엘라) 12R판정 11/10 포항 (16방)
가즈콩.단푼타이(태국) 10RTKO(2/06) 1991. 4/28 마산 (17방)
이오까.히로끼(일본) 12R판정패 12/17 오사카 (18방)
이오까.히로끼(일본) 12R판정 1992. 11/18 오사카 (WBA JR플라이급)
호소노.유이찌(일본) 12R판정 1993. 7/25 경주 (1방)
이만기

이만기의 기록은 찾아보기 힘드네요
이만기는 프로씨름 최초로 한라급에서 천하장사에 등재했던 선수죠.
승률이 90%가 넘었던걸로 기억하고 강호종이 나타나서 천하장사를 뺏기고 이듬해 다시 강호동을 누르고
천하장사를 재 탈환 하죠 그리고 은퇴.
80년대 초반 3대 인기 스포츠 중계가 바로 해태vs롯데 야구중계와 프로복싱(유명우,문성길) 그리고 씨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남자애들에게 인기있는 스포츠인을 꼽으라면 선동렬 김성한등과 함께 이만기가 항상 1~2위를 차지하곤 했었죠.
옛 기억이 별로 없어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