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마라.”(루카 1,30)
34년 전 성모승천 대축일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신자가 아니셨던 아버지는 크게 노하시며 “앞으로 아버지라 부르지도 마라.”고 하셨습니다. 한동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저기요’라고 불러야 했습니다.
7년 뒤, 집안에 일이 생겨 “신학교를 그만둘까요?”라고 여쭈었더니 한참을 고민하시다가 “그간 다닌 게 어딘데, 그냥 다니라.” 하시더니 당신이 예비자 교리를 등록하시고, 그해 성탄에 ‘바오로’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작년 가을, 항암치료 후 힘들어하시던 아버지께 봉성체를 해 드리고 안수해 드렸더니 “감사합니다!” 하고 외치시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셨습니다. “주님 음성을 들었다”시며, “주님께서 ‘걱정하지 마라.’고 분명하고 또렷하게 말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임종 전날,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하느님께 여쭈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시더니 어찌 된 건가요, 주님?” 결국 아버지는 다음 날인 12월 24일, 하느님 품으로 떠나셨습니다. ‘걱정하지 마라’시던 하느님 말씀은, 이 지상 삶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한 말씀이셨을까요?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한 뒤 이렇게 예고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분의 나라를 끝이 없을 것이다.” 성모님께서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셨다면, 과연 누가 믿어주었을까요? 아드님께서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나서셨을 때, 십자가 위에서 조롱당하고 계신 아드님을 보셨을 때, 돌아가신 아드님의 시신을 품에 안으셨을 때, ‘내가 천사의 말이라고 믿었던 그 말이, 정말 하느님 말씀이었나?’라는 의심이 전혀 들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나 의심과 두려움의 순간에도 성모님은 되뇌셨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전한 이 인사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다(마태 28,20).”
이제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세상에 오시는 주님을 찬미하며,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함께 노래합니다. “걱정을 말라, 두려워 말라. 하느님 모신 이는 그 무엇도 원치 않으니. 걱정을 말라, 두려워 말라. 하느님만으로 족하도다.”
https://youtu.be/go1-BoDD7CI?si=tjDsRFoSo5Iku3hW
떼제 성가 ‘두려워 말라’(Nada te turbe)
Nada te turbe, nada te espante (걱정을 말라, 두려워 말라)
Quien a Dios tiene, nada le falta (하느님을 가진 이는 그 무엇도 원치 않으니)
Nada te turbe, nada te espante (걱정을 말라, 두려워 말라)
Solo Dios basta (하느님만으로 족하도다.)
첫댓글 주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