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21:1/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이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오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헵시바더라
'므낫세'(Manasseh)란 이름의 뜻은 '망각케 하는 자'이다. 유다 제 14대 왕(B.C.697-642)으로 등극한 그는 그 이름에 걸맞게 아비 히스기야의 선행(善行)을 잊어버리고서 악정(惡政)을 일삼았다.
므낫세 (Manasseh)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12세였다. 따라서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15년간의 생명을 연장받게 된 때로부터 제3년째에 태어난 셈이다(20:6).
본절에 기록된 므낫세의 통치 연수 55년(B.C 697-642)는 연대기 계산에 큰 어려움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므낫세부터 예루살렘 멸망(B.C.586)까지 유다왕들의 총 통치 연수는 대략 110년 6개월인바 B.C. 697년부터 계산할 경우 약 20년 정도가 더 초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딜리(Thiele)는 므낫세와 그의 부친 히스기야 간에 공동 통치(섭정)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섭정 이론은 매우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많은 주석가들이 그의 주장을 따르고 있다.
그 모친의 이름은 헵시바였다. 헵시바'(Hephzibah)라는 이름의 뜻은 '나는 그녀 안에서 기쁨을 누린다' 또는 '나의 기쁨은 그녀에게 있다'이다. 그러나 그녀의 행적에 대하여선 성경 그 어디에서도 채아볼 수 없다. 다만 유대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선지자가 이사야의 딸이라고도 하나 분명치 않다. 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12세였다. 따라서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15년간의 생명을연장받게 된 때로부터 제3년째에 태어난 셈이다(20:6).
•므낫세의 죄악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 족속들의 석상과우상 그리고 산당을 모두 훼파하라고 명령하셨다(7:5).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를 본받게 될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했던 왕에 대해서 엄한 징계를 내리셨다(왕상 13:34;21:17-26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는 아하스와 같이(16:3) 이방인들의 각종 우상을 섬겼다(4-9절). 이러한 므낫세의 행위는 통치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역사 의식과 주체 의식이 없었음을 증거한다. 따라서 위기에 처한 백성들에게 비젼(Vision)을 제시해 줄 목자가 없었던 유다는,결국 바벨론의 침략에 맥없이 무너져 버리고 고통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대하 33장).
1) 산당을 다시 세우다 므낫세가 과거 히스기야에 의해 척결되었던 산당을 다시 세우므로써 히스기야가 이루어놓은 종교개혁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18:4). 그리고 예루살렘 중앙 성전으로 집중된 유다 백성들의 마음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버리게 되었다. 한편 당시 므낫세가 그토록 부패한 정책을 편 것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여 앗수르를 물리치자고 주장했던 히스기야 때의 거짓선지자들과 다른 불신앙의 세력들이(사 28:7, 14;30:9) 어리고 경험없는 므낫세의 배후에서 그에게 우상 숭배를 하도록 부추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외에도 막강한 통치력을 가졌던 히스기야와 당대의 신앙의 거성(巨星)이었던 선지자 이사야의 죽음이 백성들 사이에 신앙의 큰 공백을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2)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았다 유다에서 바알(Baal)을 숭배한 것은 아달랴이후로(11장) 아하스(대하 28:2)에 이어 므낫세가 세 번째이다. 그러나 므낫세는 실제로 아하스보다 더 공개적으로 바알 숭배를 허용한 듯하다. 왜냐하면 역대기 기자와는 달리 열왕기 기자는 아하스가 바알 숭배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16:3,4). 한편 본서 기자는 므낫세의 이러한 행위를 가리켜 '아합의 소위를' 본받은 것이라고 말한다(왕상 16:31-34). 그런데 본장에 의거할 때 므낫세는 오히려 아합보다 더 극심하게 바알 및 이방신들을 숭배했음이 분명하다.
3) 일월 성신(日月 星辰)을 숭배하다 북왕국에서는 이러한 천체(天體) 숭배가 널리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17:16). 아마 그것은아합 때부터 시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에서 일윌 성신 숭배가 처음 소개된 것은 아하스 때이며(23:12)므낫세 때에 비로서 널리유행되었던 것 같다. 한편 습 1:5과 렘 8:2 에세도 이러한 일윌 성신(日月星辰) 숭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모세 율법은 일찍부터 이러한 일들을 분명히 금하였다(신 4:19;17:2-7).
4) 여호와의 전의 단들을 쌓다 므낫세는 여호와의 전에 바알의 단들을 세웠다. 이러한 행위는 여호와의 주권적인 권위에대한 도전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배타적으로 오직 여호와만을 섬겨야 한다는 사실(신 5:7)에대한 반항이라고도 볼 수 있다.
5) 그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다 이는 곧 몰록(Moloch)과 관계된 인신 제사(人身祭祀) 행위를 가리킨다. 한편 모세율법은 이와 같은 제의(祭儀)에 관해서도(신 18:10) 분명히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신 18:14)고 금기의 말씀으로 못박고 있다. 점치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넨'은 '구름이 끼게 하다'라는 뜻의 '아난'에서 변형된 것으로서 본래는 천체의 어떤 변화들을 가리킨다(창 9:14). 그러나 여기서는 그러한 천체의 변를 보고선 길일(吉日)과 흉일(凶日)을 판단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6) 사술을 행하다 여기서 사술(邪術)이란 각양 각색의 마술 뿐 아니라 사람을 미혹시키는 모든 미신적 행위를 다 일컫는 말이다. 그는 또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였다. '신접자'란 접신술(接神術)을 하는 사람, 곧 죽은 자와 교통한다는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박수' 란 남자 무당을 가리킨다.모세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이러한 자들을 용납치 말라고 하였다(신 18:11-14). 그런데도 므낫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저들을 가까이 한 것이다.
7)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섬기다 우가릿(Ugarit) 문서에 따르면 아세라(Asherah)는 바다의 여신이며 엘(El)신의 배우자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이 여신은 바알을 포함한 몇몇 다른 신을 낳은 신으로 묘사되었는데 성경에는 종종 바알과 함께 언급되었다(삿 3:7;6:26-30);왕상 18:19등). 또한 아세라는 분향 제단(사 17:8),단(렘 17:2) 산당(대하 17:6), 다른 우상 (대하 34:3)과도 관련되어 언급되었다. 한편 아세라는 '통나무'나 '기둥', 그리고 조각된 상(像)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각 번역본들에서는 다양하게 번역되었다(출34:13;신7:5;12:3;사17:8렘17:2;미5:14 등). 이 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윈히 둘지라 - 솔로몬이나 다른 열왕들이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에도 예루살렘 성전 안에까지 우상을 들여오는 일은 없었다. 단지 그들은 예루살렘 앞 맞은편 언덕에 그 우상들을 세우곤 했다(왕상11:7).
그러나 므낫세와 그의 조부 아하스(16:11-14)는 하나님의 이름을 둔 성전(4절)에까지 우상을 들여와 섬기는 불경을 범했다. 한편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을모독함 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선 므낫세에 대해 어떠한 징벌이 가해졌다는 기록은 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의한 것이었을 뿐(말 3:1-6) 므낫세의 행위는 궁극적으로 심판 날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짓이었다(롬 2:4,5). 그러므로 후에 므낫세가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징계를 받은 것도 이러한 죄의 축적에 의한 결과로 볼 수 있다(대하 33:11).
•므낫세, 사악한 왕이 만든 결과 *왕하 21:16/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유다로 범하게한 그 죄 외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므낫세는 왕이다. 그는 백성을 하나님의 계명아래 비르게 살도록 모범을 보이며 가르쳐야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백성들이 사악한 일에 빠지도록 꾀는 일을 했다. 므낫세는 백성들이 길을 잘못 가도록 만들었다. 다시 말해 이것은 므낫세가 우상 숭배의 주동자가 되어 백성들에게 우상숭배의 죄악을 강요했다(11절).
므낫세의 행위는 그의 부친 히스기야의 행위와 완전히 정반대로 나타난다. 따라서 히스기야를 다윗에 비긴다면(18:3)므낫세는 아합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3절).
므낫세 통치기간에 예루살렘은 포학한 도시로 변했고, 의로운 도시였으나 부르짖음이 가득한 도시로 변하고 말았다(사 5:7). 므낫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극악한 죄를 범하므로써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23 : 26, 27 ; 24 : 3, 4). 물론 므낫세 자신은 비록 회개하여 구원받았을지라도 그의 죄악으로 인해 유다 왕국 전체가 멸망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죄의 결과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일깨워 준다(롬 5 :12, 19). 한편 역대기에 따르면 므낫세는 앗수르에 의해 바벨론으로 잡혀 갔다가 하나님께 회개하므로 구원받았음을 알 수 있다(대하 33 : 10-13). 그런데 앗수르가 므낫세를 자기 나라로 끌고 가지 아니하고 바벨론으로 끌고 갔던 것은 당시 앗수르가 흔히 쓰던 정책이기도 하거니와(McKay) 본국이 반란자(사마스 숨 우킨, Shamash-shum-ukin)에 의해 소란스러웠기 때문이다(Bright). 그리고 당시에 바벨론은 여전히 앗수로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Josephus).
• 므낫세의 통치 기간때의 선지자 므낫세의 통치기간(B.C. 697-642) 동안에 어떤 선지자가 활동했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이사야와 선지자 미가는 히스기야가 죽기 이전에 예언 활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예레미야와 스바냐의 사역은 요시야(Josiah, B.C. 640-609)왕 때에 시작되었다. 따라서 므낫세의 통치 기간 55년 동안에 성경상으로 알려진 선지자들은 아무도 없는 셈이 된다. 그러나 성경의 여러 증언들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또는 익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선포되었음이 분명하다(대하 33:10).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므낫세의 행적에 대한 평가가 전승(傳承)되었음에도 분명하다. 렘 15:1-4에 기록된 말씀은 바로 그러한 점을 입증해 준다.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므낫세는 당시 선지자들의 입을 봉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매일 그들 중 몇 사람을 살해하였다고 한다.(Josephus).그리고 선지자 이사야도 이때 톱에 켜이어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Matthew Henry, Keil).
• 므낫세 웃사 동산에 죽어 묻히다(왕하 21:18) 웃사의 동산 - '웃사'(Uzza)는 유대인 중에 매우 흔한 이름이다(삼하 6 : 8; 대상 8 : 7; 스 2 : 49; 느 7 : 51). 그러므로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사의 동산' 을 웃사가 만든 동산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의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므낫세가 가나안의 성신(星神)인 아타르멜렉(Attarmelek)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동산이라는 새로운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만일 이 견해가 옳다면 요시야가 종교 개혁할 때(23장) 이 동산을 제거했다는 언급이 분명히 나올법한데 그러한 기록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한편 이동산의 위치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혹자는 다웠 성이 있는 언덕(Ophel) 남쪽 끝에 있었다고도 하며, 또 시온 산 위에 있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카일(Keil) 같은 학자는 그 동안이 므낫세가 거하던 별궁 안에 있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