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장단구(長短句) 두 장(二章)」 자기 연민과 고독을 노래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에 소개하는 「유배지에서 장단구(長短句) 두 장(二章)을 짓다.(作長短句二章)」는 조선후기 문신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거제도 유배 작품이다. 그는 1689년 거제도로 유배 오면서 수발을 드는 집안 노비 한 쌍을 데리고 왔는데 그 자식들도 함께 따라왔다. 이 「장단구(長短句)」는 유배 생활 중인 주인(화자)이 자신의 처지와 대조되는 노비 가족의 단란함을 보면서 느끼는 자기 연민과 고독을 노래하고 있다. 고로 이 시문은 유배지 타향에서의 고달픈 삶 속에서도, 단란한 노비 가족을 보며 느끼는 화자의 깊은 외로움과 슬픔이 절절히 묻어난다. 작가의 처지와 대조되는 노비 가족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장단구(長短句)」 <서문(序文)>에서 “남쪽 거제도로 유배 오면서 노비 한 쌍을 데려왔는데 그들의 자식들도 따라왔다. 유랑하며 머무는 중에도 골육이 함께 단란하게 모여 사는 그들이 부러워, 장단구(長短句) 두 장을 짓는다.”고 밝혀 놓았다. 김진규(金鎭圭)의 배소는 現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반곡서원 일대이다.
이어 <본문(本文)> 2장(章)의 장단구(長短句)에서 유배지 거제섬에서 겪는 '이별의 한'을 노비 가족이라는 거울을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제1장에선 ‘남자 종(奴)에게’, 제2장에선 ‘아이 종(僮)에게’ 말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하인의 행복’과 ‘작가의 불행’을 강하게 대조했다.
1장(章) 남자 종(奴)의 처지를 언급한다. 너는 먼 길을 오느라 고생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곁에 있어 유배지에서도 가족의 결합과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이어 저자의 처지를 말한다. 나는 처자식과 강제로 이별하여 아무도 없이 철저하게 혼자(一身孤) 남겨진 가장 궁핍하고 고독한 처지다.
2장(章) 아이 종(僮)의 처지를 언급한다. 너는 섬에 갇혀 지내는 신세지만, 부모 곁에서 먹고 자며 동생들과 웃고 떠들 수 있는 따뜻한 가정 울타리가 유지되고 있다. 이어 작가의 처지를 말한다. 나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형님을 그리워하며 온갖 근심(百憂叢)과 긴 슬픔 속에 갇혀 있다.
*문학적 특징을 살펴보면, 사회적 신분으로는 작가가 주인이고 하인들이 종이지만, 가족의 유무라는 정서적 측면에서는 종들이 훨씬 풍족하고 작가가 가장 빈곤한 상태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유배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따라온 하인들의 원망과 탄식을 귀담아듣고, 그들을 달래주는 작가의 따뜻하고 시선이 돋보인다. 그리고 특징은 정형화된 시조나 당시(唐詩)의 틀에서 벗어나, 구절의 길이가 자유로운 장단구(長短句) 형식을 취하여 격앙되고 슬픈 감정의 흐름을 날것 그대로 담아냈다.
*아무튼 이 장단구(長短句)는 조선후기 문신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죽천집(竹泉集) 권2(卷之二) 시(詩)편에 실려있으며, <본문(本文)> 1장(章)의 압운자는 ‘途’, ‘俱’, ‘孤’ 자(字)이고 운목은 ‘虞’ 자(字)이다. 그리고 2장(章)의 압운자는 ‘中’, ‘同’, ‘叢’ 자(字)이고 운목은 ‘東’ 자(字)이다. 1장(章)과 2장(章) 공히 8,7,7,7,7 자(字), 5구(句) 총36자(字)로 짜여져 있다.
● 「유배지에서 장단구(長短句) 두 장(章)을 짓다.(作長短句二章)」 / 김진규(金鎭圭)
<서문(序文)> 남쪽으로 오면서 노비 한 쌍(一奴一婢)을 데려왔는데 그들의 자식들도 따랐다. 유랑하며 머무는 중에도 골육이 함께 단란하게 모여 사는 것이 부러워, 장단구(長短句) 두 장(章)을 짓는다.(南來携一奴一婢 其子女亦從 羨其流寓之中 骨肉能團聚 作長短句二章)
<본문(本文)> **「장단구(長短句) 두 장을 짓다.(作長短句二章)」**
嗟汝奴莫怨來遠途 슬프다, 너희 종아! 멀리 왔다고 원망하지 마라.
同居不失夫婦樂 함께 살며 부부의 즐거움을 잃지 않았고,
眼前亦有兒女俱 눈앞에는 아이들도 함께 있지 않느냐.
何似吾生最窮獨 어찌 내 인생의 사무치는 외로운 처지와 같겠는가.
離妻別子一身孤 아내와 헤어지고 자식과 이별하여 이 몸 홀로 외롭구나.
嗟爾僮休歎滯島中 슬프다, 너 아이야! 섬에 갇혔다고 탄식하지 마라.
眠食常在爺孃側 잠자고 먹는 것을 늘 부모님 곁에서 하고,
言笑更與弟妹同 말하고 웃는 것을 동생들과 함께하니
絶勝汝主長悲苦 너희 주인(저자)이 겪는 긴 비탄보다 훨씬 낫구나.
戀母思兄百憂叢 어머니가 그립고 형님이 생각나 온갖 근심만 쌓여간다.
○ [한문 문체 사(詞)] 사(詞)는 운문(韻文)의 한 형식(形式)으로, 당(唐) 중엽에 민간에서 발생해 송(宋)대에 가장 번성했던 문학 양식이다. 또한 운문(韻文)인 사(詞)는 중국 근세에 유행하던 서정시를 통칭하는 용어로서, 한문(漢文) · 당시(唐詩) · 송사(宋詞) · 원곡(元曲) 등으로 불린다. 민간 가요의 가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매구(每句)의 자수가 전편에 걸쳐 일정한 것을 원칙으로 하는 제언체(齊言體)의 시(詩)와는 달리, 장단(長短)이 일정치 않아 별칭으로 ‘장단구(長短句)’라 부르기도 하며, 초기에는 가창할 수 있었던 근체시의 변형이라고 여겨 ‘시여(詩餘)’라고 부르기도 했고 전사(塡詞) 악부(樂府) 등의 별칭도 있다. 그러나 송나라에서 가장 유행하여서 송사(宋詞)라고 불린다. 원 · 명에 이르러서는 쇠퇴하였다가 청대에 이르러 다시 유행하였다. 본래 악곡의 가사로 불리던 것이었으므로 곡자사(曲子詞)라고 불리었으나, 점차 사(詞)라고 약칭하게 되었다. 사는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를 창작할 때 일정하게 정해진 악보인 사조(詞調)에 가사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지어져서, 사를 짓는 것을 두고 가사를 소리에 맞추어 메운다는 뜻의 ‘전사(塡詞)’, 혹은 ‘의성(依聲)’이라 했다.
사(詞)는 시(詩)와는 달리 음악과 긴밀한 관계였으므로 유희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 따라서 그 내용도 술, 여색, 애정, 희롱에 대한 것이 많았고,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특성이 강해 깊고 섬세한 내면을 완곡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문사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한 장르였지만, 당나라 말엽에 이르러 문인들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송대에는 공전(空前)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이로부터 사(詞)가 대량으로 창작됨에 따라 염정적(艶情的)이고 개인적인 신세타령에서 벗어나 시국에 대한 개탄이나 국가의 흥망성세 등까지도 읊게 되어 점차 시와 비슷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