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합당’ 직전 깨질 뻔했다…YS, 대통령 앞서 “내가 총재” (89)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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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회담 하루 전인 1990년 1월 21일은 일요일이었다.
오후부터 폭설이 쏟아져 서울 거리는 온통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이날 저녁 민주정의당(민정당)·통일민주당(민주당)·신민주공화당(공화당)은 각각 소속 의원 모임을 소집해 22일 3당 합당 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평화민주당(평민당)을 포함한 여야 4당이 난리가 났다.
합당의 소문과 추측은 있었지만 극비리에 진행된 탓에 모두들 허를 찔린 심정이었다. 그동안 노태우 대통령은 공화당·민주당과 각기 다른 라인을 통해 양당 합당 논의를 진행해 왔다. 청와대와 민정당의 박철언 정무장관·박준병 당 사무총장은 민주당의 황병태 정책위의장·김덕룡 의원과 협상했고, 홍성철 대통령 비서실장·민정당 박 사무총장은 우리 당(공화당) 김용환 정책위의장과 접촉했다. 두 개의 채널은 따로 움직였으며 서로 차단됐다.
1990년 1월 22일 저녁 청와대 대접견실에서 김종필(JP) 공화당 총재(오른쪽)와 김영삼(YS) 민주당 총재(왼쪽)가 배석한 가운데 노태우 대통령이 3당 합당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세 사람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아홉 시간 동안 오찬·만찬을 겸한 마라톤 회동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YS는 “총재는 내가 맡고 노 대통령은 명예총재, 김종필 총재는 최고위원을 맡자”고 했지만 JP의 만류로 고집을 꺾었다. 중앙포토
나는 진작부터 노 대통령이 민주당과 접촉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같은 날 3당 동시 합당을 선언하리라는 점은 까맣게 몰랐다. 나중에 보니 김영삼(YS) 총재도 민정·민주 양당 합당으로만 알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불쾌함이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이 아니라도 어차피 닥칠 일이라면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는 ‘이것 또한 대한민국이 걸어가야 할 명운(命運)이로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밤 ‘이거 안 되겠다. 합당을 깨야겠구나’ 하는 일이 또 발생했다. 김용환 의장이 청구동 집을 찾아와 청와대의 입장이라며 내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당초 3당은 청와대에서 내일 오전 10시에 노태우·김영삼·김종필 동시 3자회동을 하고 합당 선언을 하려고 했는데 YS가 ‘3자회동은 안 된다. 노태우·YS 양자회동을 먼저 해야 한다’고 완강히 요구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총재님은 오후 2시에 세 사람이 함께 만나자고 합니다.” 김 의장은 이를 통보해 온 박준병 민정당 사무총장에게 항의했지만 박 총장은 YS의 눈치를 보느라 “양해를 바란다”는 말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