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말씀 : 마 24:14.
지난 월요일(26) 참으로 오랜만에 킹제임스 성경을 정경으로 믿는 목회자들의 작은 친교 모임이 경기도 용인에서 있었습니다. 용인에서 카센타를 운영하는 한 형제가 목회자들을 모시고 점심을 같이 하며 교제하고 싶다하여 지난 1월 이후 10개월 만에 10여명의 목회자들이 용인의 깊은 산속 도토리묵 전문식당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코로나 19로 인하여 모임을 갖지 못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니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덮으면서 모든 사람들의 생활패턴이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단일 교회로는 성도들의 수가 가장 많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한국에 있으며 가장 짧은 기간 동안 가장 큰 부흥을 이루어 낸 교회 역시 한국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회와 교인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건물들이 경매로 나온다는 안타까운 말을 들어왔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그 숫자가 부쩍 늘어났다고 아쉬워했습니다. 코로나19로 서비스업이나 식당이나 관광업계가 크나큰 타격을 입고 문을 닫은 사업자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같이 기독교계에도 큰 변화가 있습니다.
이제는 전같이 많은 수가 모여 모닥불을 지피듯이 교회를 성장시키거나 신앙을 키워나가는 시절은 지난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와 같이 삼천명, 오천명, 칠천명씩 모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가정에서 디모데를 길러 내듯, 우리들도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며 가족이나 개인의 믿음으로 주님 만날 준비를 해야 할 줄로 압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라면 개개인이 자기의 믿음으로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세상을 뒤덮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분명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악을 책망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실 때,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때마다 주님은 그들에게 악한 질병을 보내셔서 그들을 징벌하셨음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던 때와 같이 신정통치 시대는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을 창조하신 분께서 세상을 주관하심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온 세상의 악한 자들은 하나님께도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권력들에게도 거역하여 스스로 정죄를 받고 있습니다(롬13:1-2).
주님은 죄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사람들은 불법을 저지르면 죄로 여기지만 주님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하셨습니다. (요 16:8-9) 『그분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요,』하셨습니다. 주님과 그분의 제자들에 의해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졌지만 복음을 듣고도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주님을 믿지 않으므로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
약 2천년전에 기록된 성경은 이 세상 모든 곳에 복음이 전해졌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그 복음을 듣고 믿음을 고백한 사람들이나 교회의 모임도 많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복음을 듣고도 헛되이 믿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사실상 믿음의 구원을 고백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그들의 행위를 볼 때 과연 그가 구원 받았는지 의심 가는 교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고전 15:1-2) 『또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을 너희에게 밝히 알리노니 너희 역시 그 복음을 받았으며 또 그 가운데 서 있느니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것을 기억하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또한 그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헛되이 믿었는지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믿음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자신의 고백으로 그렇게 인정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말씀에 따르는 행위가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 했으므로 자칭 믿는 성도라는 사람들의 행위를 보아서 그 사람을 판단할 따름입니다.
(약 1:26)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신앙심이 있어 보이되 자기 혀를 제어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신앙 행위는 헛것이니라.』 했습니다. 지난주에도 예화를 든 것같이 교회의 집사라 불리는 사람들이 시장바닥에서 서로 욕설을 퍼부으며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누가 인정해 주겠습니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해도 주님을 영접한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그 안에 계시는데 그가 자기 혀를 제어하지 아니하고 욕을 하면 그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습니다.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면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오기(롬10:17) 때문입니다.
(약 2:14) 『내 형제들아, 사람이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행위가 없으면 그것이 무슨 유익을 주느냐?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 17) 이와 같이 믿음도 행위가 없으면 그것만으로는 죽은 것이니라.』 했습니다. 물론 마지막 때에는 땅에서 믿음을 볼 수 없겠고(눅18:8) 사람들이 선한 양심에서 떠나 믿음이 파선할 것입니다. (딤전 1:19) 『믿음과 선한 양심을 붙들라. 어떤 자들이 그것을 버리고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성경은 주님의 초림 때부터 세상의 마지막 때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마지막을 아주 짧은 어느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노아 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이나 소돔에 쏟아진 유황불 심판이나 대지진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주님의 초림 때부터 마지막이라 하셨으며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셔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고 복음을 전하셨으며 모든 사람들의 죄들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처음 오심이 마지막을 알리는 서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주님의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이 늦는다고 말하지만 주님은 아직도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심으로 오래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벧후 3:9)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하셨습니다.
대기 오염이나 기후 온난화나 각종 자연재해나 질병 등으로 사람들은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코로나19 팬더믹(pamdemic)도 마지막의 경종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주께서 말씀하시는 마지막 때는 아닙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날과 그 시각은 언제인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하나님의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십니다.
(막 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아들]도 알지 못하며 [아버지]만 아시느니라.』하셨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은 오직 아버지께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언제가 마지막 때입니까? 성경기록대로 주님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가 마지막 때입니다. 한마디로 지금이 마지막 때의 진행 중입니다. 주님 오신 2천 년 전부터 시작된 마지막은 점점 끝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마지막 때를 살펴보겠습니다.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면 끝이 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주님은 온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선포되고 나서야 끝내실 것입니다. (마 24:14) 『왕국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되기 위해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아무도 복음을 듣지 못하여 구원 받지 못했다는 원망을 할 수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현 시대에도 적용되지만 큰 환란 중에도 반복 적용될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사도 바울시대에 이미 세상 끝까지 이르러 모든 피조물들에게 선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하여 바울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기 생명의 최후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로마로 가기위하여 자기목숨을 내 놓은 사람입니다. 그의 열심은 주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다급하고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기록한 로마서를 보면 누구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믿었는지 로마에 있는 자들의 믿음이 이미 온 세상에 두루 전해 졌으므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롬 1:8) 『먼저 너희 모두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의 믿음이 온 세상에 두루 전하여졌기 때문이라.』 (your faith is spoken of throughout the whole world.) 복음은 누군가 전하는 자가 있어야 듣고 들어야 믿습니다. 그 누구도 복음을 듣기 전에는 주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그분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주님은 이미 바울보다 먼저 복음 선포 자를 로마에 보내셨습니다.
(롬 10:14-15) 『그런즉 그들이 자기들이 믿지 아니한 분을 어찌 부르리요? 자기들이 듣지 못한 분을 어찌 믿으리요? 선포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어지지 아니하였으면 그들이 어찌 선포하리요? 이것은 기록된바,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며 좋은 일들의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함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주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복음 선포자를 온 세상에 보내셔서 선포하게 하셨지만 복음을 듣는 자들이 모두 믿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하든 바울 당시에도 사람들이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서 복음은 온 땅과 세상 끝까지 퍼졌고, 선포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롬 10: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못하였느냐? 참으로 들었은즉, 그것들의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것들의 말들이 세상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their sound went into all the earth, and their words unto the ends of the world.) 복음이 세상 끝까지 이르러 선포되었지만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받아들이고 모두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듣든지 아니 듣든지 긴급히 선포하고(딤후4:2) 끊임없이 선포되어야합니다. 아직 선포되지 않은 곳이 있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도 믿지 않기 때문에 반복해서 복음을 계속 선포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골로새교회에 보낸 서신에도 보면 복음이 온 세상에 있다고 했습니다. (골 1:6)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있는 것 같이(as it is in all the world) 너희에게 이르렀으며 너희가 그것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 그 날부터 너희 안에서도 열매를 맺는 것 같이 열매를 맺는도다.』.........23) 『만일 너희가 믿음 안에 거하여 터를 다지고 정착해서 너희가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리하시리라. 그 복음이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창조물에게 선포되었으며(which was preached to every creature which is under heaven)나 바울은 그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노라.』
[복음이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창조물에게 선포된]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도 크나큰 복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사역자가 되어 소아시아 전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로마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했듯이 많은 선교사들에 의해 세계 각 지역에 끊임없이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각 나라의 선교사들은 복음이 미치지 못한 이국땅이나 오지에 복음을 전하러 간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누군가를 사용하셔서 복음이 세상에 선포되었으나 듣고도 믿는 자들이 없는 복음의 불모지를 찾아 다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보면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도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지옥에 가느냐?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개개인은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민족은 들었는데 믿지 않았고 믿지 않음으로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제발 복음을 듣지 못했거나 듣지 않은 사람을 염려하지 말고 지금 듣는 당신이나 믿고 구원 받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민족에 복음이 전파된 역사는 알게 모르게 다양하고 많습니다.
1, 한국기독교 근대사의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감리교 선교사나 언더우드 장로교 선교사 정도는 알고 있으나 그들보다 훨씬 먼저 와서 복음을 전한 자들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기록들이 많지 않아 대중에게 알려진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지금으로부터 135년 전인 1884년 미국 감리회 해외선교부의 한국선교 결정에 따라 1885년 4월 2일 한국에 입국하여 한국선교회 및 배재학당을 설립했습니다. 1887년 한국 선교부 감리사로 있으면서 학교와 병원 등에 복음전도의 여러 사업을 맡았습니다. 같은 해 10월 29일 서울에 벧엘예배당(지금의 정동제일교회)을 설립했으며 1888년에는 교파를 초월하여 H. G. 언더우드, G. H. 존스 등과 함께 지방을 순회하면서 전도활동을 벌였습니다. 1890년 한국성교서회(韓國聖敎書會)를 창설하여 1892년 회장 직을 맡는 등 성서번역사업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1902년(광무 6)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자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군산 앞바다에서 그가 탄 배와 일본 상선이 충돌하여 익사했습니다. 그의 큰아들은 배재학교 교장을, 큰딸은 이화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같은 해 즉 1884년 7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임명에 따라 이듬해 감리교 목사인 H. G. 아펜젤러와 함께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1886년 한국 최초의 고아학교(고아원)를 설립했는데 이 학교가 경신학교의 전신입니다.
그는 1887년 9월 새문안교회를 설립했고, 1889년 한국예수교성교서회를 창설하여 문서를 통한 선교실무를 관장했으며 〈한국어문법〉을 편찬·간행했습니다. 1897년 〈그리스도 신문〉을 창간하고 1900년에는 기독교청년회를 조직하고, 1915년 경신학교에 대학부를 설치하여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에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밖에 세브란스 의학교, 피어선 성경학원, 평양 장로교신학교 등의 설립에 주도 역할을 했으며, 성서번역사업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여 한국 최초로 찬송가를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에 의하여 한국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보다 훨씬 먼저 이 땅에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나 언더우드 선교사보다 50년 먼저 한국에 온 선교사가 있는데 그가 바로 구츨라프 선교사입니다.
2, 지금으로부터 188년 전 그는 네델란드 출신으로 인도와 태국과 중국에 복음을 전하고 1832년(순조 32년) 7월 17일,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아침 로드 암허스트호 배를 타고 백령도에 닻을 내렸다가,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려 충청도의 원산도(元山島)로 접근해 왔습니다. 구츨라프 선교사는 중국에서 사역하던 모리슨에게서 받은 한문 성경을 한국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는 40일간 체류하면서 다량의 한문 성경을 이 땅에 전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순조 대왕에게 성경 두 권을 헌상하였습니다. 이렇게 한문성경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전해졌습니다.
3, 그러나 구츨라프 선교사보다 성경이 먼저 이 땅에 전해졌으니 지금으로부터 204년 전 바로 충남 서천의 마량진 포구에 영국 함선이 들어온 것입니다. 1816년 9월 4일과 5일(음 7월18일과 19일), 영국의 함선 Alceste호(함장 Murry Maxwell)와 Lyra호(함장 Basil Hall)가 비인현 마량진 앞 갈곶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미 마량진 성경 최초도래지를 방문하여 그 때 전해진 성경의 진본이라 할 수 있는 1611년판 킹제임스 성경을 견학했습니다. 이는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선교사보다 먼저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역사는 204년 전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주님의 부활 승천하신 직후 주님의 열두제자 중 의심 많은 제자로 불리는 도마가 이 땅에 복음을 전했다는 역사적인 증언과 증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기독교문화원의 주장에 따르면 “사도 도마, 그가 가야국을 기독교국가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한국기독교문화원(총재 주남석 목사, 원장 유명재 목사)은 지난 3월 8일 경기도 수원시 소재 기성 세한교회(주진 목사)에서 한국사도도마성지순례선교회 회장 조국현 박사를 강사로 ‘도마선교 유적지’세미나를 개최했다고 합니다.
한국기독교문화원(원장 유명재 목사)는 조국현 박사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오랫동안 사도 도마 선교일정에 대해서 연구한 인물로써 대구세계엑스포 이사장, 도마 박물관 자료실 운영자, 영남외국어대학 학술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한국사도 도마성지순례선교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조국현 박사는 “김해, 대구 지역에 도마 선교 유적지가 많다며, 불교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했습니다. 인도에서 복음전도자로 활동하던 사도 도마는 바다 실크로드를 통해 한반도(가야국)에 왔고 42년간 전도하다 순교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4,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전 1978년 전 AD42년 3월 15일
역사는 History로 그분 즉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의 탄생을 기원으로 합니다. 우리는 그 기원이 서양으로부터 왔다하여 서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무어라합니까? 단군이 세웠다하여 단기라고 합니다. 아무튼 예수님의 탄생을 기원1년으로 본다면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신 년도는 33년입니다.
사도 도마가 김수로왕에게 침례를 줬고 AD42년 3월 15일(음력, 부활절) 가야국이 기독교 국가로 세워졌다. 고 했으며 또 가야국 곳곳에 사도 도마의 흔적이 있는데 사도 도마는 직업이 목수이자 대장장이였고 이를 통해 선교를 했다. 고 전합니다. 이때 사도 도마가 와서 제철소 26개를 만들고 당시 김수로왕과 인도 공주인 허왕후의 중매를 서기도 했으며, 사도 도마가 한국의 역사적인 인물이라 생각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증거가 국립김해박물관에 가락국이 건국 된 해는 AD 42년으로 이 때, 사도 도마가 우리민족에게 왔다고 전합니다. 또 황남대총 하나의 무덤에서 58,441점의 유물이 출토 되었는데 이 중 이스라엘 헤브론에서 대롱불기로 만들어진 1세기 로만글라스(보물 624호)는 사도 도마가 가지고 온 성찬기 유리잔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고분의 부곽에서 출토되는 유물이 많았는데 불상이나 불교의 유물은 한 점도 없고, 도질토기로 된 성찬기가 많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증거”라고 전했습니다. 지금 진해 김수로왕릉 사적지에 도마가 조각한 오병이어를 나타내는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들은 가야국이 망하면서 김수로왕의 신앙에 관한 자료나 사도도마의 역사적인 자료들이 충분하지 않지만 그 어떤 자료나 증거물보다도 믿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성경말씀입니다. 주님의 열두 사도들 보다 조금 뒤지기는 하지만 바울은 당시에 이미 [복음이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창조물에게 선포된](골1:23) 기록을 믿는 것입니다. (which was preached to every creature which is under heaven) 바울의 기록은 과거 완료형으로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직후부터 계속해서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그리하셨겠지만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의 결실로 인하여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 앞에는 주님의 부르심이 있고 세상에는 주의 날이요, 하나님의 날인 심판의 날이 있을 뿐입니다. 주를 믿지 않고 구원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주의 날이 크고 두려운 날입니다. (욜 2:31)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그러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들에게는 크고 두려운 날이 아니라 크고 주목할 만한 날입니다. 동일한 날인데 심판 당하는 자들과 심판 받는 것을 구경하는 자들의 입장은 완전히 다릅니다. (행 2:20) 『저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불이 난 건물이나 당한 사람들은 두렵고 슬프지만 불구경하는 사람들은 마음이야 안타깝지만 주목할 뿐입니다.
구원 받은 자들은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이르는 줄을 압니다. 그러므로 그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살전 5:2)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이르는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 도둑같이 주의 날이 이르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면서 주님 맞을 준비를 해나가는 것입니다.
주의 날을 모르거나 믿지 않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자들에게는 갑자기 이릅니다. 마치 예고 없이 몰래 들어오는 밤도둑같이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 주의 날과 하나님의 날을 같은 문맥에서 사용함으로 같은 말임을 알게 됩니다.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서두르라. 그 날에 하늘들이 불이 붙어 해체되고 원소들도 뜨거운 열로 녹으려니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하늘로 불러 장차 이 땅에 임하게 될 마지막 심판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을 하늘로 불러 세상에 임할 큰 환란을 미리 보여 주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교회가 환란을 통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성경에서 영적으로는 사도 요한을 주님이 사랑하는 교회로 지칭합니다. 그렇다면 요한을 환란 전에 하늘로 불러 가셨다는 것은 교회가 환란 전에 하늘로 들려 간다는 뜻입니다.
(계 1:10) 『내가 [주]의 날에 성령 안에 있을 때에 내 뒤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는데』 교회를 예표하는 요한은 주의 날에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고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 받았습니까? 여러분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상경기록을 기록된 대로 믿습니까? 이 땅 이 민족에게 복음을 주신 것은 100년전도 200년전도 아닌 예수님 당시인 기원원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하고 믿어야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이 세상은 이미 마지막 때가 임했고 하루하루가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시대라는 것을 전합니다. (마 24:14) 『왕국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되기 위해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셨습니다. 모든 민족 중에 우리민족도 포함되어있고 서두에서 살펴본 바로 열두사도중 하나로 도마가 이 땅의 가야시대에 복음을 전했다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들었고 또 바울의 기록들로 인하여 이미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 졌음을 볼진대 지금이 곧 마지막 때라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때가 점점 더 가까워지면 자연재해나 질병들은 물론 믿는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고 이단들이 극성을 부릴 것입니다. 마귀는 제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므로 더욱 세상을 괴롭힐 것입니다. 이 때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딤전 4:1-5)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에 주의를 기울이리라 하시는데 2) 이들은 위선으로 거짓말을 하며 자기 양심을 뜨거운 인두로 지진 자들이라. 3) 이들이 혼인을 금하고 음식물을 삼가라고 명령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사 진리를 믿고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게 하셨느니라. 4)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은 선하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거부할 것이 하나도 없나니 5)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히 구별되었느니라.』
거룩히 구별된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벧전 1:5) 『너희는 마지막 때에 드러내려고 예비된 구원에 이르도록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