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선축원行禪祝願에 대한 설명 – 4
지난 시간에 이어서
행선축원行禪祝願에 대한 설명 이어 보겠습니다.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본디 반 푼 어치의 이익도 없다
[終日數他寶, 自無半錢分]“
하화중생원下化衆生願
깨달음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중생제도입니다.
결국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도
궁국에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중생이 성불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하화중생을 통해서도 상구보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중생제도를 위한 보살행이 상구보리를 위한
훌륭한 수행법이기 때문입니다.
보리도를 구하는 것은
결국 중생제도를 의한 것이고,
중생제도를 하다 보면 보리도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방세계무불현十方世界無不現
“시방세계에 곳곳마다 몸을 나투어”
시방은
동, 서, 남, 북, 동남, 서남, 서북, 동북, 상, 하의
열 가지 방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공간적으로 ‘모든 곳’이라는 의미가 되겠지요.
모든 세계네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다.
모든 세계에 나타난다는 것이요.
보령중생입무위普令衆生入無爲
“널리 중생들을 무위에 들게 하겠습니다.”
많은 중생들을 무위에 들게 하겠다는 겁니다.
무위란 것은,
열반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중생들을 열반으로 이끌겠다는 것입니다.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제 이름을 듣는 사람은 삼악도를 면하고”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저를 보는 사람은 해탈을 얻게 하겠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삼악도를 면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자, 눈을 감아보십시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법정스님!
훌륭한 스님,
맑고 향기로운 스님,
이 시대의 진정한 수행자!
달라이라마!
관세음보살의 화신.
어떻습니까?
눈을 떠보십시오.
기분이 좋아지셨습니까?
옛날에 경봉 스님이 통도사 극락암에 계셨습니다.
그때 경봉 스님은 생불生佛로 추앙받고 계셨습니다.
어느 불자가 스님을 찾아가서 친견했는데
스님 앞에서 몇 시간을 울었답니다.
스님의 속가 딸이라도 된 거냐고요?
아닙니다.
처음 본 보살이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만남 이후로,
그렇게 울고 난 이후로 가슴에 있던 한이,
가슴에 있던 응어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승은 그 말을 믿습니다.
그럴 수 있거든요.
경봉 정석(鏡峰靖錫 1892-1982) 스님을 처음 친견했을 때
마치 감전된 것처럼 온몸이 찌릿찌릿했었습니다.
수행력이 커지면 그 이름을 듣거나
그 이름을 듣거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충격과 같은 감동을 받습니다.
자신이 수행을 잘해 가고 있는지 아닌지
스스로 판별하는 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지 물어보는 겁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면
그는 수행이 잘되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면
기분이 나빠지고 피하고 싶어 한다면
그는 수행을 잘못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들 만났을 때
어려워하고 피한다면 스스로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틀림없이 인생을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 하나 말해 볼까요?
요즘 스마트폰 벨소리 올 때
생각하면서 받을까 말까?
혹은 아예 받지 않는 님들 보셨을 겁니다.
그렇게 폰 조차도 가려가면서 받는 사람은
필시 죄의식에 걸려 있거나 혹은 현실 도피하는 사람일 겁니다.
그런 분은 틀림없이 인생을 실패하고 계신 겁니다.
스님이 수행을 하면
그 스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지고
그 스님을 만나면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데 있음을 반드시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여시교화항사겁如是敎化恒沙劫
“이렇게 영겁 동안 교화하여”
이렇게 교화하라如是敎化.
어떻게 교화하는가.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용맹지를 갖추고
비로자나 부처님의 큰 깨달음과
문수보살의 대지혜와
보현보살의 실천행과
지장보살의 수많은 몸과
관음보살의 변화신을 갖추어서
시방세계 곳곳에 나타나서
중생들을 ㅇ려반에 들게 하라는 겁니다.
필경무불급중생畢竟無佛及衆生
“마침내 부처님도 없고 중생도 없게 하겠습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교화하면
마침내 모두가 성불해서 중생이 없습니다.
부처라는 게 중생이 있기 때문에
비교해서 부처인데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자는 겁니다.
하화중생원下化衆生願
“시방세계에 곳곳마다 몸을 나투어
널리 중생들을 열반에 들게 하겠습니다.
제 이름을 듣는 사람은 지옥에 가지 않고
저를 보는 사람은 해탈을 얻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영겁 동안 교화하여
부처님도 없고 중생도 없게 하겠습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내일 더 어이 보겠습니다.
오늘의 따끈따끈한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2022년 05월 13일 오전 06:24분에
창녕군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雲月野人 진각 합장
[출처] 행선축원行禪祝願에 대한 설명 – 4|작성자 도반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