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즐거움
2)교화의 즐거움
이제 『법화경』에서 세존이 중생들을 설법의 소리로 교화하면서 기뻐하고, 환희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살펴보겠다. 다음은 제2 「방편품」의 내용이다.
나는 지금 기쁘고 두려움이 없어 여러 보살 가운데에서 방편을 버리고 곧바로 다만 무상도를 설하노라. 보살들은 이 법 듣고 의심 그물 다 버렸으니, 천이백 아라한들도 다 성불하리라. 3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의식대로 나도 지금 이와 같아, 무분별법을 설하노라.
위의 내용을 보면, 첫 구절에 세존의 기쁨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세존의 기쁨은 중생들에게 무상도를 설법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환희이다.
이에 대해 천태대사는 중생이 대승(大乘)의 이익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위의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하여 설명한다.
옛날에는 근기가 둔하고 지혜가 작아, 설한다고 해도 그 법을 비방하여 악도에 떨어질까 두려우므로 설할 때가 되지 못했던 것이나. 지금은 근기가 뛰어나고 뜻이 크니, 듣기만 하면 반드시 신해(信解)할 것이 기대되므로 세존이 기뻐하셨다. … 중략 … 무분별법을 설한다고 한 것은 제불께서 현실(現實)하신 일에 동조한 것으로 진실은 언어도단의 경지라 이것에 어찌 설법의 방식이 있겠는가. 또 방편과 진실은 본래 분별 이 없지만, 둔근소지(鈍根小智)인 자를 위해 방편과 진실을 분별해 설하시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제 오입(悟入)한다면 1승과 3승은 다르지 않을 것이고, 곧 부처님께서는 3승·1승에 분별없는 법을 설하시는 줄 알 수 있다. 제불이 모두 그러시니 어찌 석존만이 그렇겠느냐는 뜻이다.
위의 내용에 따르면, 세존은 중생이 근기가 성숙하여 세존의 설법을 듣기만 해도 믿고 이해할 것이기 때문에 기뻐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분별법을 설한다고 한 것은 '현실(現實)' 즉, 개권현실(開權顯實)의 '현실'에 해당된다.
또, '오입(悟入)' 즉, 깨달아 들어오면 3승과 1승은 다르지 않을 것이고, 붓다는 3승과 1승에게 분별없는 법을 설한다고 한다. 여기서 세존은 무분별법의 설법으로 중생을 교화할 수 있게 되어 즐거워한다.
다음은 제3 「비유품」 화택의 비유이다. 여기서 장자는 붓다를 의미하고, 아들들은 중생을 의미한다. 아래 내용은 화택에서 벗어난 아들들을 보고 장자가 기뻐하는 장면이다.
그 때, 장자는 모든 아들이 무사히 나와 다 네거리 길 가운데 맨땅에 앉아 있어 다시 장애가 없음을 보고, 마음이 태연해져 기쁨이 넘쳤느니라.
나는 이제 즐겁도다. 여러 아들을 낳아 기르기 매우 어렵거늘, 어리석고 소견 없어 위험한 집에 들어가니, 독벌레와 무서운 도깨비들이 있는데다가 큰불이 사면에서 타오르건마는, 아들들은 놀이에만 정신 팔려 내 이를 구하여 환난에서 벗어나게 했노라. 사람들이여, 그러므로 나는 지금 즐겁도다.
위의 내용은 장자의 환희의 노래이다. 장자는 아들들이 불타는 집에서 무사히 나와 다시 장애가 없음을 보고 기쁨에 넘쳐 즐거워한다.
그리고 위의 인용문 중 첫째 인용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의 『법화문구』 내용을 인용한다.
네 갈래의 길은 바로 4제를 비유한 것이라 보는 것이 옳다. 4제의 관이 다름을 일러 네 갈래의 길이라 함이고, 4제가 똑같이 만나 진실을 보는 것은 네거리와 같다. 그리고 비록 견혹이 제거되기는 했어도 사유함이 아직 있으면 맨땅이라 할 수 없으니, 3계의 사혹이 다함을 일러 맨땅이라 하고, 과에 머물러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니 앉았다고 한 것이고, 견사 때문에 제한받음이 없으므로 마음 놓인다하고 멸도를 얻어 안온하다는 생각을 일으켰으므로 환희하다고 말한 것이다.
위의 내용에 따르면, 네 갈래의 길은 4제(四諦)를 비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3계의 사혹이 모두 멸함을 맨땅이라하고, 과(果)에 머물러 있기에 앉았다고 한다. 또, 견사혹이 제거되어 장애가 없으며, 멸도를 얻어 안온하기에 환희하다고 한다.
다음은 『법화경』의 홍경(弘經)에 대한 제불(諸佛)의 환희에 대한 내용이다. 제11 「견보탑품」에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모든 선남자여, 내가 멸도한 후에 누가 이 경을 받아 지녀 독송하겠느냐. 지금 부처님 앞에서 스스로 맹세의 말을 하라. 이 경은 지니기 어려우니, 만약 잠깐이라도 지닌다면, 내가 곧 환희하고 제불 또한 그러하니라. 이 같은 사람은 제불께서 칭탄하시는 바이니라. 이는 곧 용맹이며 정진이며, 그 이름이 지계이며, 두타를 행하는 이이니, 곧 빨리 위없는 불도를 얻으리라.
위의 내용은 수지하기 어려운 『법화경』을 능히 수지하고 독송하면 세존과 제불(諸佛)이 모두 환희하고 이와 같은 행을 하는 사람은 제불이 찬탄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세존과 제불은 중생이 『법화경』을 수지하고 독송하는 것에 환희한다.
『법화경』의 5종법사수행인 수지(受持)·독(讀)·송(誦)·서사(書寫)·해설(解說)은 모두 소리와 관련된다. 여기서 수지, 독, 송은 『법화경』의 내용 또는 뜻을 믿고 염하며 내용을 보고 잊지 않는 것이며, 서사와 해설은 서사하고 남에게 전하는 것이다. 위의 내용에서는 중생들의 수지와 독송의 행에 세존과 제불은 환희하고 찬탄한다.
다음은 제15 「종지용출품」의 내용으로 여기서 세존은 안락(安樂)의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모든 선남자야, 여래는 안락하여 조그마한 병도 조그마한 괴로움도 없으며, 모든 중생도 제도하기 쉬운지라, 피로함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은 세세 이래로 항상 나의 교화를 받았고, 또 과거 모든 부처님을 공경, 존중하여 모든 선근을 심었기 때문이니라. 이 모든 중생이 처음 나의 몸을 보고 나의 설법을 듣고는 곧 바로 모두 믿어 받아서 여래 지혜에 들어갔느니라. 먼저 수행하여 소승을 배운 이는 제외되느니라. 이런 사람들도 내가 지금 이 경을 듣게 하여 불혜에 들도록 하느니라.
위의 내용은 안락과 이도(易度)가 서로 의존해 성취되는 것을 나타낸다. 제도하기 쉽기 때문에 안락하고, 안락하기 때문에 제도하기 쉬운 것이다. 또, 이도에는 둘이 있는데, 첫째 근기가 뛰어나고 덕이 두터운 중생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세세 이래 항상 대승의 교화를 받아왔기에 처음 세존의 몸을 보자 곧 화엄의 가르침을 받아 여래해(如來海)에 들 수 있었고, 둘째 근기가 둔하고 덕이 박한 경우인데, 세세 이래 대승의 교화를 받은 것이 없으므로 이들은 돈교(頓敎)를 열어 점교(漸敎)를 설하였다. 삼장·방등·반야로 가르치고 나서 『법화경』을 들어 불혜(佛慧)에 들게 하는 것이다. 이 둘은 혜오(慧悟)에 있어서는 같다.
여기서 세존의 안락은 중생교화와 관계되고 있다. 중생을 교화하기 쉬우므로 안락하고, 또 세존이 안락하기 때문에 중생의 교화 또한 쉬운 것이다.
또, 돈기(頓機)와 점기(漸機)가 근기의 차이가 있지만 세존의 입장에서 점기에게는 방편법을 쓰기 때문에 교화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한 돈기와 점기가 근기의 차이를 보이지만, 지혜를 깨닫는데 있어서는 같다. 그리고 교화에 있어서 소리는 전달의 매체가 되기에 세존의 안락은 소리와 관련을 갖는다.
다음은 제21 「여래신력품」에서 세존이 기뻐하며 노래하는 부분이다.
모든 부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이신지라, 대신통에 머무르시고 중생을 즐겁게 하기 위해 한량없는 신력을 나타내시느니라. 혀는 범천에 이르고, 몸에서는 수없는 광명을 놓으시니, 불도 구하는 이를 위해 이런 희유한 일을 나타내시느니라. 여러 부처님의 기침 소리와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시방국토에 두루 울려 땅이 모두 6종으로 진동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에 이 경을 받아 지닌 까닭으로 모든 부처님 기뻐하시어 한량없는 신통력 나타시네. 이 경을 유촉하고자 받아 지니는 이를 찬미하시되, 한량없는 겁 동안 설할지라도 다하니 못하리라. 이 사람의 공덕은 가이없고 끝이 없어서 시방의 허공 같아 끝을 모르리라.
위의 내용을 보면, 불멸후(佛滅後) 중생이 『법화경』을 지닌 까닭으로 제불이 환희하고, 신력(神力)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법화경』을 유촉하기 위해 받아 지니는 이를 찬탄하며, 이 사람의 공덕이 한량없다고 설하고 있다.
『법화경』을 받아 지니는 것(受持)은 믿고(信) 념(念)하는 것이다. 붓다는 『법화경』을 수지(受持)하는 이에 대해 기뻐하고 있다. 이것은 중생이 진리의 소리를 믿고 마음에 두고 생각하기에 환희하는 것이다. 다음의 내용도 제21 「여래신력품」의 내용이다.
능히 이 경을 지니는 이는 나와 나의 분신불과 멸도하신 다보불과 모두를 기쁘게 하는 것이며, 시방의 현재불과 아울러 과거불과 미래불께도 또한 친견하고 공양하여 기쁘게 함이 되느니라.
위의 내용을 보면, 『법화경』을 지니는 이를 찬탄하며, 이것은 세존과 세존의 분신불과 다보불 모두를 기쁘게 하는 것이며, 3세제불(三世諸佛)을 친견하고 공양하여 기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이라고 설하며, 『법화경』의 수지(受持)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도 붓다의 환희는 중생이 진리의 소리를 받아 지니는 것에 환희를 하는 중생교화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법화경』에서 음과 악의 연구/ 김민정 금강대학교 대학원불교학과 불교학전공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