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여정
새벽 3시에 서울 집 출발.
조반을 차내 김밥식으로 해결하고
거제도 포로수용소 관람 후
통영에서 점심식사.
해저터널과 충무교를 거닌 후 여수행.
돌산대교 건너 향일암에 오르고
회 만찬을 즐긴 후 해수찜질방 1박.
바닷가에서 라면으로 아침 식사.
남원 광한루 거쳐
진안에서 점심식사후 마이산 탑사 관광.
무주와 김천을 연결하는 삼도봉터널 지나
김천시 부항면 월곡리에서 내가 이탈한 후
자정이 되어 출발점에 도착했다니까.
무리한 주마간산의 번개여행이었다.
아무리 반나절 생활권이도록 도로망이 잘 깔려 있어서 가능하다
해도 3부부중 하나만 제외된 경로팀이 강행한 이 여정을 이렇게
밖엔 표현할 수 없겠다.
한 때 내 작은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로 4반세기 이상 마치
내 집 집사처럼 내 일을 돌봐 주는 두 부부가 모처럼 원했기에
뿌리칠 수 없었다.
여행이라면 최소한 수삼박하며 여유작작해야 하겠지만 생업을
도외시할 사정이 아니라 1박 2일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딱 정한 여정이 아니고 대략 방향만 잡고 떠났기에
코오스에 융통성이 다분하며 비록 늙었다 하나 3명의 베테랑
운전자를 확보한 차량이라 짧은 일정이지만 효률의 극대화가
가능했다는 점이라 할까.
거제도 포로수용소
부지런한 새가 먹이를 많이 먹는다.
우리는 그런 새에 해당하는가.
서울에서 어둠을 뚫고 달려간 우리가 포로수용소 관람을 마친
시각에 비로소 관광객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으니까.
관광용으로 재구성해 놓았을 뿐이며 반세기 이상 지난 세월에도
불구하고 체험한 당시의 참상이 되살아나는 듯 몸서리치려 했다.
그런데 입장료가 경로 무료가 아니고 할인이다.
이 것은 내 일관된 주장이다.
전방위적 대폭 할인이 경로에 합리적이고 인격적이라고.
그런데도 거제시는 외눈 세계의 양눈일까.
생소한 느낌이니 말이다.
한려수도 통영
통영여객선터미널 앞, 서호시장 분소식당의 점심은 만장일치된
일미였다.
쑤기미(삼식)라는 추어(醜魚)로 끓인 매운탕 맛이 어찌나 담박
한지 오래도록 회자될 것 같다.
들를 경우를 대비(對備)해 이 곳 출신 산지기님의 안내를 받아
둔 것은 참 잘 한 준비성이다.
하긴 딴 식당이나 다른 음식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으니 대비
(對比)가 불가능한 점도 있긴 하지만.
지근의 해저터널과 터널 대체용 충무교도 거닐었다.
우리나라 유일의 이 터널은 일제의 작품이다.
누수현상이 심해 터널 위로 다리를 건설했단다.
한 때 충무로 개명된 적이 있던 통영은 임난때 한산도 대첩으로
유명하기도 하거니와 통영팔경을 자랑하고 한려수도 국립해상
공원은 청정해역이다.
돌산대교여, 악연은 그만...
우리의 무대는 300리 한려수도 다른 끝자락 여수로 옮겨졌다.
여수는 2.012년 엑스포 유치를 위한 적공의 흔적이 역력하다.
돌산대교를 건너 향일암을 향해 달리다가 쑥을 캐는 망중한을
잠시 갖기도 했다.
향일암(向日庵)은 한자의 뜻대로다.
우리나라의 4대 관음기도도량(낙산사 홍연암, 강화도 보문암,
남해 금산 보리암과 더불어)중 하나로 신비스런 데가 많다.
오르기를 모두 포기해서 유감이었다.
푸짐한 민어회 만찬과 해수찜질방이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고
새 날의 즐거운 진행을 보장해 줄 것이라 믿어지는 밤이었다.
그러나 라면 끓여 아침을 먹고 다시 돌산대교를 통과할 때는
간절한 염원이 있었다.
"돌산대교여, 그대와의 악연은 이제 그만 끝내자"는.
나는 전에 이 다리를 두 번 다녀 갔다.
그런데 처음 함께 건넌 내 가장 사랑하던 친구를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야만 했다.
한 세월이 간 후 남은 사랑하는 친구와 이 다리를 또 건넜는데
그도 나를 두고 앞서 갔다.
이들이 모두 암으로 갔는데 공교롭게도 지금 내 일행중에는
암 수술을 받은지 오래되지 않은 이가 있으니 말이다.
여수땅은 애당초 밟고 싶지 않았으나 모두가 원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으나 빨리 떠나고 싶었다.
벌떼가든과 마이산
어제는 고속도로를 통과할 때 백두대간과 낙남정맥의 일부가
눈에 들어왔는데 이 아침엔 스틱사건(백두대간 58회 글 참조)의
호남정맥 송치터널을 통과하고 돼지농장 트럭에 편승했던 길을
(백두대간 57번 글 참조)달리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전북으로 올라와 성춘향의 남원 광한루 방문을 원하는 이들의
소원이 풀린 후 진안 벌떼가든(백두대간 79, 80회 글 참조)으로
가서 미리 통화한 대로 차려진 오골계 식탁을 즐겼다.
손종일 가족의 정성을 함께 먹을 수 있어 금상첨화였는데 반해
그의 부인이 그 새 큰 병을 앓고 아직도 완쾌되지 않았단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바라던 아들의 결혼으로 곧 손자까지
보게 되니까 호사다마인가.
빨리 회복되어 후덕한 인심을 모든 이에게 더욱 베풀기를 빌며
마이산으로 향했다.
아무리 갈 길이 바빠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단다.
보고 또 봐도 신비스런 석탑들이다.
사람의 능력의 한계를 가늠할 수 없게 하는 작품들이다.
부항에서 이탈하다
오지중 오지였던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이 사통팔달의 도로망
덕에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는 거침 없이 달려 무주의 라제통문과 부항령 삼도봉터널을
통과해 경북 김천땅 부항면으로 갔다.
부항면 월곡리 해인산장 진입점에서 나는 이탈해야 했다.
백두대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사실 귀로를 이 코오스로 한 것은 전적으로 나를 위해서 였다.
라제통문은 지금은 무주땅 설천과 무풍의 면계지만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기 때문에 양국명의 끝자를 딴 이름이다.
오늘날엔 백두대간 삼도봉터널이 전북과 경북을 가르고 있으나
그 당시에는 무주군 무풍면이 신라땅이었던 것.
부항면과 무풍면을 넘나들던 부항령 고갯길 자국이 아직껏 남아
있으며 그래선지 부항인과 무풍인들은 도를 달리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동질감을 느낀단다.
여행은 요술장이
내가 대간 종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린 그들 부부는
뒷풀이 점심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1박 2일 동안 1.800km여를 달렸다는 그들 부부는 여독 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활력이 넘쳐난단다.
그렇다.
여행은 요술장이다.
나이나 성, 신분을 불문하고.
그들은 이 요술장이의 최면요법에 걸려 든 것이다.
동심으로 회귀된 듯 즐겁기만 하던 그들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
체질화 된 이 늙은 나그네도 매번 새롭거늘 수년간 이런 기회를
가져보기는 고사하고 맨날 병과 싸우느라 지친 부부가 아닌가.
이런 빠듯한 기회나마 종종 가짐으로서 소위 샘솟는 엔돌핀이
치유력을 강화해 그들이 보다 건강해질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들과 함께 하리라.
거제도 포로수용소 / 관광지에 흔히 있는 촬영용 - 실물 얼굴이 우리 일행
거제도 포로수용소 / 노천WC - 재구성한 대소변 장면
해저터널 위 충무교에서 바라본 통영항변 / 고공 크레인들이 바쁜 뜻은?
충무교 위의 주운전자 황대성 / film도 없는 카메라는 폼으로 가지고 왔는가.
남해 제일의 관음기도도량 금오산 향일암
원효대사의 수도도량이었다는 향일암 관음전
돌산 바닷가 / 나그네들이 조반 준비중
광한루
오작교
벌떼가든
상.하 / 마이산 탑사
첫댓글 통영에서의 점심(쑤기미탕)이 마음에 드셨다니 감사합니다. 저도 4월28일 통영에 갔었는데 시간이 없어 들러질 못했습니다.
와~~~~~~~~~~~~~대단한체력입니다
수선혜님께는 足脫不及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