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사태(톈안먼 사건, 1989년 6월 4일)는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주화 시위와 그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경 진압을 의미합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치적 개혁 요구
당시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정치적 자유는 여전히 제한적이었습니다. 특히, 많은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언론의 자유 확대와 부정부패 척결을 요구하며 민주화 운동을 벌였습니다.
2. 경제적 불만
개혁·개방 정책 이후 중국 경제가 성장했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컸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서민층의 불만이 커졌습니다. 특히, 대학 졸업생들은 취업난을 겪으며 경제적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3. 후야오방(胡耀邦)의 사망
후야오방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정치인이었고,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내 보수 세력의 압박으로 실각했고, 1989년 4월 15일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 정부의 강경 대응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중국 정부는 시위대를 '반혁명 세력'으로 규정하고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6월 3일~4일 밤사이 군대와 탱크를 동원해 강제 진압을 감행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5. 소련 및 동유럽 민주화 물결
1980년대 후반, 소련과 동유럽에서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중국의 민주화 운동도 영향을 받았으며, 학생들과 시민들이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천안문 사태는 중국 정부가 무력으로 민주화 시위를 진압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으며, 이후 중국 내에서 정치적 탄압이 더욱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