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나무Chinese Juniper , 香木 , イブキ伊吹
분류학명
코끝을 스치는 향긋한 내음은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데 빠질 수 없다. 그래서 수백 가지의 향수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향은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 가까이에 있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시바의 여왕은 기원전 10세기 즈음 솔로몬 왕을 방문하여 그의 지혜를 시험해본다. 그의 박식함에 감탄한 여왕은 금은보화와 향료를 선물했으며, 솔로몬은 보내준 백단으로 향목(香木) 궁전을 지었다고 한다.
왕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향이 일반화된 것은 종교의식에서 향을 피우면서부터다. 불교나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의 발상지는 대체로 아열대 지방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종교 행사에는 찌든 옷에서 풍기는 땀 냄새가 가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냄새를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 향 피우기가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차츰 향은 부정(不淨)을 없애고 정신을 맑게 함으로써 천지신명과 연결하는 통로라고 생각하여 종교의식에 빠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처음 향 피우는 풍습이 들어온 것은 6세기 초 중국의 양나라를 통해서였다. 《삼국유사》에 보면 양나라 사신단이 향을 가지고 왔는데, 그 이름도 쓰임새도 몰랐다. 이에 두루 물어보게 하였더니 묵호자(墨胡子)1) 가 말했다. “이것은 향이란 것입니다. 태우면 강한 향기가 나는데, 신성한 곳까지 두루 미칩니다. 원하는 바를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후 불교가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의식에 향이 사용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향의 재료는 향나무뿐이었다.
향나무는 태워서 향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발향이라 하여 부인들의 속옷 위에 늘어뜨리는 장신구, 점치는 도구, 염주 알 등에까지 널리 쓰였다. 그 외에도 나무 자체로는 고급 조각재, 가구재, 불상, 관재 등으로 애용되었다. 최근 알려진 해인사의 비로자나불은 신라시대에 만든 불상으로 밝혀졌는데, 이것 역시 향나무로 만들었다.
향나무는 소나무처럼 햇빛을 좋아하는 나무다. 아울러서 육신은 쓰임이 많다 보니 산속의 향나무는 남아날 리가 없었다. 우리가 흔히 만나는 굵은 향나무는 모두 심은 나무다. 다만 울릉도 절벽에 붙어 자라는 향나무들은 수천 년을 이어온 그들만의 자연 자람 터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의 혼란기를 거치는 동안 자연산 향나무는 거의 없어졌고, 울릉도의 향나무만이 천연기념물 48호와 49호로 지정되어 절벽에만 겨우 몇 그루가 남아 있을 뿐이다. 울릉도 민예품으로 팔리는 향나무는 북미에서 수입한 시다(cedar)란 나무가 대부분이다. 식물학적으로는 측백나무 종류이나 향기와 외관은 전문가들도 쉽게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향나무와 비슷하다.
향나무는 늘푸른 바늘잎 큰나무로서 굵기가 한 아름이 훌쩍 넘는다. 잎은 어릴 때는 짧고 끝이 날카로운 바늘잎이 대부분이며, 손바닥에 가시가 박힐 정도로 단단하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나면 바늘잎 이외에 찌르지 않는 비늘잎이 함께 생긴다.
나무 속살은 붉은빛이 도는 보라색이므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옛 문헌에는 흔히 자단(紫檀)으로 기록되어 있다. 향나무의 날카로운 바늘잎이 아예 처음부터 생기지 않고 비늘잎만 달리게 개량한 가이스까향나무를 정원수로 가장 널리 심는다. 그 외에 정원의 가장자리에 회양목처럼 많이 심으며 전체가 둥근 모양인 옥향, 아예 누워서 자라는 눈향나무, 우물가에 주로 심는 뚝향나무, 미국에서 수입한 연필향나무는 모두 향나무와 한 식구다.
향나무 이야기에 침향과 매향을 빠뜨릴 수 없다. 세계적으로 최고급 향은 침향(沈香)으로 대표된다. 동남아시아의 아열대 지방이 원산인 침향나무를 베어서 땅속에 묻고 썩혀서 수지만 얻거나 줄기에 상처를 내어 흘러내린 수지를 수집한다. 이 수지를 침향이라 하며, 의복에 스며들게 하거나 태워서 향기를 내게 했다. 이 수지는 귀한 약으로도 이용된다. 그러나 수입품인 침향은 값이 비싸고 귀하여 귀족들만 제한적으로 겨우 쓸 수 있었다. 일반 백성들은 향기뿐만 아니라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침향을 갖고 싶어 했다. 이들은 수백 수천 년 동안 향나무를 오래 땅에 묻어두면 침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해안에 향나무를 묻어두는 매향(埋香)을 했다. 미륵사상과도 연계된 이 행사를 하고 매향비를 세운 곳이 전국에 여러 군데 있다. 그러나 아직 실물 매향을 찾은 경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