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나라 19회.jpg
우천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보물창고’ 조선왕조실록(상)
호랑이와 코끼리
‘기록의 나라’ 대한민국의 세계기록유산 16건에 대한 연재기사를 모두 읽으셨나요? 기사를 읽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면 글쓴이로서는 큰 기쁨이겠습니다. 이번에는 ‘이야기의 보물창고’라 일컬어지는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재미있고 교훈적인 이야기 몇 개를 2회에 걸쳐 펼쳐 보이겠습니다.
알겠지만,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임금의 472년 동안의 역사를 연월일순서에 따라 기록한 역사문헌입니다. 글자수가 4700만자나 되니, 참으로 방대한 규모이지요. 이 실록에는 왕을 중심으로 정치와 군사, 사회, 문화 등 전반이 기록돼 있지요. 얼마 전 서울대공원에서 한반도 순수혈통인 백두산호랑이가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는 반가운 기사가 어느 신문에 ‘호호호호’라는 제목으로 실렸더군요. 지금은 국제멸종위기 1급의 동물이지만,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 한국고전종합DB에서 주제어 ‘호랑이’를 검색해 보면, 조선왕조실록에 모두 808건의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지금은 상상이 안되지만, 인왕산과 북악산에 백두산호랑이가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호랑이를 잡는 특수부대인 ‘착호갑사’가 있었겠습니까?
-창덕궁에 출몰하는 호랑이를 꼭 잡도록 전교하다. -선조40년(1607) 7월 18일
-인왕산 호랑이가 나타났다. -인조4년(1626) 12월 17일
-공릉․순릉에서 호랑이 3마리를 잡다. -영조33년(1757) 10월 16일
-호랑이가 궁 밖에서 병졸을 물어가다. -정조1년(1777) 9월 19일
구한말 때까지 자주 출몰하던 백두산호랑이가 자취를 감춘 것은 영화 <대호(大虎)>에서 보듯이, 아무래도 일제강점기때 조선총독부의 무자비한 호랑이사냥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아프리카의 거대한 초식동물인 코끼리는 언제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까요? 실록을 찾아보면 37건의 기사가 보입니다.
일본국왕이 우리나라에 없는 코끼리를 바치니 사복시에서 기르게 하다.
-태종11년(1411) 2월 22일
전 공조전서 이우가 놀리다가 화난 코끼리에 밟혀 죽다.
-태종12년(1412) 12월 10일
코끼기를 전라도 해도에 두도록 명하다. -태종13(1413) 11월 5일
충청도 관찰사가 “공주에서 코끼리를 기르던 종이 코끼리에 치여 죽었다. 하루 쌀 2말, 콩 1말씩을 먹으니 1년에 쌀이 48섬, 콩이 24섬이다. 화를 내면 사람을 해치니 이익이 없고 되레 해가 되니, 바다 섬가운데 있는 목장에 내놓으소서”라고 계를 하다. 임금이 선지하기를 “물과 풀이 좋은 곳을 가려서 이를 내어놓고,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 하였다. -세종3년(1421) 3월 14일
“뭐 저런 추한 몰골이 있냐”며 비웃는 공조전서를 밟아 죽인 죄로 섬으로 귀양간 코끼리가 먹지도 않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린다는 상소 를 보고, 임금은 육지에서 3도관찰사(전라․충청․경상)가 돌아가며 기르게 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이 ‘제발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던 기록을 코끼리 사육이야기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엄청난 식성과 큰 덩치 때문에 두고두고 ‘골칫덩어리’였던 것같습니다. 하편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쓸 것은 쓴다는 사관들의 이야기입니다.
우천(愚泉) 최영록<한국고전번역원 홍보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