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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의 신파극! 노무현이 국민통합형이라니!
글쓴이 : 趙甲濟/ 조갑제닷컴
지난 5년동안 김정숙에게 국민들이 질려버렸다. 그녀의 천박함으로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 이제 김건희! 아직도 많은 것들이 의문투성이다. 점쟁이 도사 우상숭배, 성형수술로 만화에서 나올 법한 인형같은, 세월의 경륜이 도무지 없어 보이는 무감정한 이상한 얼굴, 이력서 위조, 주식투자문제 등등 아직도 국민들은 그녀의 진실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문재인 주사파 정부가 아직도 여전히 뿌리내리고 있고, 그들은 사사건건 발목을 걸고 있는데, 왜 이렇게 조급한 것일까? 시간이 찰 때까지 소리없이 조용히 내조하면 안돼냐? 피곤하고 지친 국민들에게 또 짜증과 걱정을 주어야 할 것인가? 박근혜를 망쳐버린 간신배들이 윤석렬과 김건희 주변에 우글거리고 있고, 왠 낯익은 도사가 김건희를 부추기는 내용이 돌고 있다.
국민들의 정서를 너무 모른다. 정치인들에 대한 존경심도 기대도 이제 사라져버렸다. 나는 김건희의 김해방문과 대화내용을 보면서 또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조갑제선생의 이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이를 게제하는 바이다. 그래도 조선생은 ‘변호인’ 영화에 대한 윤석렬과 김건희의 사상적 조명외에는 아직은 발설에 인내하기로 했나보다.
김건희 여사가 권양숙 여사를 만난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노무현 변호사를 미화한 영화 '변호인'을 보고 감격,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신파조로 들리는데 실수이다. 남편의 수준을 보여주는 이런 이야기를 왜 털어놓았는지 모르겠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1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방문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김 여사는 이날 KTX 열차 편으로 경남 김해시 진영역으로 간 뒤, 미니버스로 환승해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봉하마을에 도착한 김 여사는 노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했다.
김 여사는 이어 권 여사가 머무는 사저를 방문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오후 3시부터 1시간 30분 가량 이어졌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이 좌천 인사로 힘들었던 시절 자신과 영화 ‘변호인’을 보며 눈물을 흘린 기억을 먼저 꺼냈다고 전했다. 김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너(윤 대통령)는 통합의 대통령이 돼라’고 말해주셨을 것 같다”며 “국민 통합을 강조하신 노 전 대통령을 모두가 좋아했다”고 말했다.
권 여사는 “몸이 불편해 (윤 대통령) 취임식에 가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정상의 자리는 평가받고 채찍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이 참으셔야 한다”고 했다. 이어 “현충원에서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의) 빗물을 닦아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윤 대통령) 뒤에서 조심스럽게 걷는 모습도 너무 잘 하셨다”고도 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통합형 지도자로 보는 것 같은데 분열형이었다. 그는 보수를 별놈이라고 공언, 이철승 선생으로부터 '상놈'이란 비판을 받았다.
김건희 여사가 권양숙 여사를 만난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노무현 변호사를 미화한 영화 '변호인'을 보고 감격,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신파조로 들리는데 실수이다. 남편의 수준을 보여주는 이런 이야기를 왜 털어놓았는지 모르겠다. 2014년 1월 국민행동본부의 성명서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반성이 없는 노무현 추종세력은, 敵의 핵무장을 도우려 동맹국과 싸운 利敵행위자를 聖者(성자)처럼 미화하기 위하여, 영화 ‘변호인’을 정치적 선동에 악용하고 있다. 이 영화는 노무현을 정의로운 사람으로 띄우기 위해 경찰, 검찰, 판사 등 국가 공권력을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로 매도, 국가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고 있다. 노무현이 변호한 사건이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공산주의 운동이었다는 것은 살아 있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다. 人權(인권) 변호사라는 이가, 대통령이 된 후로는 북한주민들의 인권참상은 외면하고, 아웅산 테러-대한항공 폭파-천안함 폭침의 主犯(주범)에게 굴종하였으며, 국민과 동맹관계를 분열시키더니 드디어 ‘악마의 변호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영화를 보고도 이런 데 의문을 갖지 않는 국민들이라면 민주시민의 자격이 없다. 敵이 핵미사일을 실전배치해도 방어망조차 못 만들게 하고, 핵우산을 제공하는 韓美(한미)연합사도 해체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그렇다고 방공호를 만들지도 않고 오로지 김정은의 善意(선의)나 요행수에 기대하며 살아가려는 일부 한국인들은 眞僞(진위)구분, 善惡(선악)분별, 彼我(피아)식별 능력을 상실, 일종의 ‘사망유희’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2007년 10월3일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였다(국정원 공개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중략) 나는 지난 5년 동안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의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측의 대변인 또는 변호인 노릇’을 하면서 北核폐기를 위해 애쓰는 동맹국과 싸워왔다는 말을 反국가단체 수괴 앞에서 보고하듯이, 또는 자랑하듯이 한 것이다. 여기서 ‘북측’이란 수령 지배 체제, 즉 김정일을 가리킨다. 김정일은 1974년의 육영수 여사 암살 사건, 1983년의 아웅산 테러, 1987년의 대한항공 폭파, 1997년의 이한영 암살, 2002년의 참수리호 격침, 2010년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지령자이다. 핵무기 개발, 강제수용소, 대기근으로 인한 떼죽음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反인류 전쟁범죄자이자 테러범이다. 수백만의 同族(동족)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마적 인간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악마의 대변인, 또는 변호인을 자임한 셈이다.
그런 노무현을 인권 변호사로 그린 영화 '변호인'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면 윤석열 당시 검사는 선동에 넘어갔다는 이야기이다. 김건희 여사가 전직 대통령 부인을 만나려면 순서가 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 부부, 감옥에서 고생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을 먼저 만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을 당선시킨 보수세력보다 반대한 좌파세력에 영합하고 있다. 그 결과는 5년 뒤에 정권을 좌파에 넘기는 것이 될지 모른다. 지지층을 배신한 정치인의 말로는 늘 비참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5월 "한국에서는 뻑하면 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라면서 보수에 대해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 다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27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변화의 시대, 새로운 리더십`이란 주제로 약 2시간 동안 진행한 특별강연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우리나라 복지예산 세금 재정의 재분배 효과를 보면 한심하다"며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에 대해 "보수는 힘 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 주자, 적자생존 철저히 적용하자, 약육강식이 우주섭리 아니냐는 쪽에 가깝다"고 말하고, 반면 진보는 `더불어 살자`라면서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만들어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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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조선 이상흔 기자의 당시 영화평
영화 <변호인>을 봤다. 영화의 배경이 된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였던 고영주 변호사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12월18일 개봉한 이 영화는 누적 관객 900만 명을 돌파했다. 필자는 변호인이 개봉되던 날 우연히 극장에 간 적이 있다. 다른 성인 영화는 모두 밤늦은 시간이나 자정이 넘은 시간대에 배치해 놓았다. <변호인> 외에 다른 영화를 사실상 선택할 수가 없어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 후에도 주말마다 극장에 가 보았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변호인’의 흥행 요인이 극장의 압도적인 시간 배정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영화는 첫머리에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허구임을 알려 드립니다’라고 자막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영화 감상평을 보면 대부분이 영화의 내용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실화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련 영화 평론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호의(好意) 일색이다.
하지만 필자가 변호인을 보고 나서 느낀 점은 이 영화가 다분히 선동적이고, 정치적이며,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는 이른바 ‘부림(釜林)사건’(부산의 학림사건. 영화에서는 ‘부동림’이라고 명칭을 바꿈)을 내세워 한 평범한 세무 변호사(송우석-송강호 분)가 ‘열혈 정의의 사도’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국가와 국가권력을 상징하는 경찰과 검찰은 한마디로 ‘절대악(惡)’으로 그려진다. 경찰과 검찰은 국가에 대한 충성을 내세우며 피의자들을 고문하고 인권을 짓밟는다. 영화에서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일제시대의 악질형사, 히틀러의 비밀경찰, 소련의 스탈린, 중동의 도살자인 이라크의 후세인보다도 더 사악하게 그려놓았다.
‘절대악’으로 그려진 대한민국의 경찰과 검찰
필자는 논리 전개가 치밀한 법정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주인공인 변호사나 검사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이는 것이 법정영화의 핵심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은 영화 속의 변호사나 검사와 같이 울고 웃으면서 정의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정의가 승리하면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불의(不義)가 승리하면 공분(公憤)하게 된다.
변호인을 보기 전 ‘그래도 명색이 흥행 1위 영화이고, 법정영화인데 다른 영화를 압도하는 논리전개가 있겠지’하는 생각을 가졌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글자그대로 ‘어이가 없다’는 느낌만 받았다.
<변호인> 필자가 생각했던 증거와 논리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런 법정 영화가 아니었다. 단순히 대한민국의 경찰과 검찰(혹은 국가)을 국가를 무자비한 폭력집단으로 설정한 후 이에 맞서는 노무현 혹은 친노(親盧) 세력을 정의의 사도로 포장하기 위한 목적이나 내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영화에서 절대선(善)으로 포장한 ‘정의의 사도’ 세력은 스스로 ‘폐족’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결코 아름다운 흔적만을 남겨 놓은 것이 아니다.
이념과 지역,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부자와 서민, 서울대와 기타대학, 배운 사람과 못배운 사람으로 나라를 사분오열(四分五裂) 했다는 민심의 심판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한동안 사라졌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이 영화는 도대체 왜 태어난 것일까?
1981년에 발생한 부림사건은 ‘공산국가 건설을 위한 의식화 교육’ 등의 혐의로 관련자들이 유죄를 받은 사건이다. 2009년 재심 판결에서도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사건의 핵심인 국가보안법 위반은 여전히 유죄인 상태다. 영화는 부림사건을 ‘부동림사건’이라고 살짝 명칭을 바꾼 후 경찰과 검사가 불법체포와 고문을 통해 일방적으로 조작한 사건으로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들에게 어마어마한 고문과 폭력이 동원된다.
하지만, 폭력이 잔인한 만큼 거기에 비례해서 국가가 부림사건을 조작해야 하는 설득력 있는 이유 같은 것은 없다. 아니, 사건의 실체 자체가 없다. 실체가 없는 사건을 그리면서 어마어마한 공권력의 폭력이 동원된다. 이런 설정을 관객에게 어떻게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할까?
영화에서 부림사건은 경찰 상사가 부하에게 “사건을 하나 만들어보라”는 지시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공감을 얻지 못하는 고문장면
이에따라 야학 교사인 대학생 ‘진우’군이 수업 중 경찰에 다짜고짜 체포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진우는 그저 순수한 열정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야학 교사일 뿐이다. 하지만 경찰은 그를 불법 연행해 무려 한 달간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온갖 고문을 가하기 시작한다. 고문에 못이긴 진우군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자술서를 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라고 했던가. 영화에서 당국은 이 사건이 ‘부산지역의 최대 반정부조직’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종일관 벌벌 떨며 자기가 왜 끌려왔는지도 모르는 순진한 학생을 경찰과 검찰이 달려들어 한 달이나 고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객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진우라는 학생은 부림사건의 다른 맴버들과도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독서토론회 모임의 회원 같은데, 단지 그 이유만으로 다짜고짜 매타작을 당한 후 부산지역 최대 반정부조직의 회원으로서 국가전복 활동을 했다는 자술서를 쓰게 한다.
이 부분에서 송강호가 주연했던 <효자동 이발사>의 한 장면이 겹친다. 효자동 이발사에서 안기부가 대통령 이발사의 어린 아들을 남산의 지하실로 끌고 가서 “접선한 간첩을 대라”며 고문받고 불구가 되는 장면이 있다. 소위 ‘독재정권’의 비도덕성을 부각하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어린 아이를 고문해서 불구로 만든다는 설정을 과연 어느 누가 사실로 받아들이며 공감을 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변호인>은 소위 ‘군사독재’ 시절의 억압적 사회 분위기나, 민주화에 대한 시대의 열망을 공감할 수 있도록 그려내지도 못하고 있다.
실체가 없는 사건을 조작으로 만들어 냈다고?
부림사건은 법원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유죄를 선고한 사건이다. 재심에서도 유죄를 그대로 인정받았다. 당연히 영화는 그들이 왜 무죄인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법리논쟁으로 관객을 설득하려고 시도해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영화에서 의도한 대로 부림사건은 경찰과 검찰이 무지막지한 고문으로 아무 죄도 없는 독서토론 모임 회원을 고문해서 빨갱이로 둔갑시켰다는 주장이 설득되기 때문이다.
실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고영주 변호사는 “부림사건 피의자들이 검사인 자신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설교’까지 했으며,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한테 조사를 받고 있지만, 나중에 공산주의 세상이 되면 검사님이 우리한테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고 변호사는 ‘피의자들이 전혀 주눅이 든 모습이 아니고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피력했기 때문에 고문을 당한 사람이라고는 상상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상반된 주장이 있고, 더구나 당시 재판을 맡은 법원은 부림사건의 피의자들이 제기한 가혹행위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영화에서는 법원의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경찰과 검찰이 이들을 고문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찰이나 검찰이 왜 이 순진무구한 학생들을 그렇게 집요하게 ‘빨갱이’로 만들려고 했는지, 또 피의자들이 진짜 주장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지를 법정영화답게 피의자들의 입이나, 변호인의 입을 통해 알렸어야 한다. 영하는 피의자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전혀 알리지 않음으로써 부림사건이 마치 실체가 없는 사건인 것처럼 교묘하게 가리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부림사건은 엄연히 실체 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들이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 공산주의 의식화 학습을 하였다고 명확히 판결하였다. 부림사건이 실체가 없는 사건이면 오늘날 일부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소위 ‘반독재 투쟁’이니 ‘민주화 운동’이라는 논리도 성립하지 않는다. 실체가 없는데 누구를 대상으로 투쟁하며, 민주화 운동을 할 수가 있었겠는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조롱
이처럼,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지 못한 상태에서 하루아침에 ‘열혈 인권변호사’로 탈바꿈한 주인공 송 변호사가 법정에서 고함을 지르며 “이 학생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판단은 도대체 누가 하는 것이냐”고 항변하는 모습은 보기 애처롭기까지 하다.
송 변호사는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증거는 고문에 의한 자술서밖에 없지 않으냐”고 하자 증인으로 나온 경찰이 “사상범이 물증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송 변호사가 다시 “학생과 시민이 책을 읽는 것이 국보법 위반이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자 경찰은 “그것은 내가 아니라 국가가 판단한다”고 주장하며 “입 닥쳐 이 빨갱이야!”라며 소리친다. 검찰과 한통속인 판사는 변호사를 보고 “한 번만 더 경거망동하면 퇴장이야” 라고 힐난한다.
이런 몰상식적이고 엉터리 같은 대화가 어떻게 법치국가의 법정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수가 있겠는가? 시나리오 작가가 법정재판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고 대사를 썼는지 의심스러워지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이 영화에서는 경찰과 검찰은 물론, 판사까지 죄다 한통 속으로 나오는데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조롱하자는 의도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설정이다. 1970~80년대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법조계에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법부 모독의 막가파식 설정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을 사안이 아니다.
실제 사건과 인물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사실과 논리, 객관성을 배제하면 ‘왜곡’과 ‘몰상식’, ‘선동’ 만 남을 뿐이다. 히틀러의 선전장관인 괴벨스는 영화를 통해 독일 국민이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키우게 하였고, 상당한 효과를 거둔 사실이 있다.
문화계를 장악한 좌파적 문화코드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의 흥행 영화를 관통하는 흐름 중의 하나는 좌파적 문화코드다. 흥행영화 감독들이 민노당에 가입한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 적도 있다. 여기에 CJ같은 대기업 배급사가 뒷받침하면서 좌파적 문화코드는 영화 산업의 주류문화로 자리잡아 왔다.
흥행에 성공한 대표적 좌파 코드 영화로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웰컴투동막골>란 영화를 들 수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6ㆍ25사변 중 국군과 북한 인민군의 과실을 양비론처럼 다루면서 국군이 재판도 없이 양민을 학살한 것을 일반적인 것처럼 그리고 있다. 또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부모 세대의 희생을 “이념이 뭔데 형제끼리 총부리를 겨누느냐”는 식으로 물타기를 하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실미도>는 국가가 살인자 무리로 군대를 만들어 활용하다가 필요 없을 때는 쓰레기 버리듯이 버리는 조폭 집단 보다 못한 것처럼 표현했다.
<웰컴투동막골> 전쟁 때 우리를 도와 5만명의 전사자를 낸 혈맹 미군을 마치 유토피아를 파괴한 침략군인 듯이 그리는 등 좌파적 역사관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영화들이 가치관이 덜 발달한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정의감을 심각하게 왜곡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영화 <변호인>에서도 경찰과 검찰은 국가권력으로 상징되며, 이들은 애국심을 내세우며 인권을 짓밟는 악마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심지어 고문 경찰은 상대를 폭행하는 와중에서도 애국가가 나오자 부동자세로 경례를 취하는 데, 굳이 이런 장면을 삽입한 의도를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관객으로 하여금 당신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애국가와 국가상징, 애국심이란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것을 교묘하게 역설하면서 국가의 권위를 희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변호인은 좌파적인 문화코드에 더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시대의 양심’으로 그리며 친노 세력들에게 반독재-인권투사라는 ‘그럴듯한’ 감투까지 씌워주고 있다.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노 세력들은 이 영화를 일제히 찬양하며 정치적 발판으로 삼기 위한 세결집을 시작했다.
사족(蛇足):
소위 인권변호사이자 서민이라고 내세우던 노무현 대통령은 요트를 소유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변호사가 요트를 구입한 이유에 대해 “올림픽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연습용 요트를 하나 구입했다”는 식으로 표현됐다. 그야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절대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외에는 낯이 간지러워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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