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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場에 나갔던 아버지가 죽자 파란 눈의 앳된 소년은 이 세상에 덩그라니 홀로 남겨졌다.
그에겐 하늘이 무너진 거였고 땅이 꺼진 거였다.
하루 아침에 소년은 고아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보태 장례를 치렀다.
땅을 파고 아버지를 묻었다.
간단한 장례절차가 끝나자 마을사람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하나둘씩 언덕을 내려갔다.
모두가 떠나고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무덤 곁을 떠나갔다.
소년보다 더 앳된 어느 소녀와 그 소녀의 엄마였다.
얼마쯤 가다가 소녀는 언덕 위에 피어난 들꽃 한 송이를 꺾었다.
예쁘고 고운 붉은색 꽃이었다.
그리고 가던 발길을 돌려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그 꽃을 슬픔에 잠겨 아무 말도 잇지 못한 채 닭똥 같은 눈물만 흘리고 있던 소년에게 건네주었다.
따뜻함이 묻어났다.
少年과 少女는 잠싯동안 애틋한 눈빛을 교환했을 뿐 둘은 아무런 말도 나누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구릉 곳곳엔 진한 슬픔이 차디 찬 서리처럼 짙게 내려깔리고 있었다.
소년에겐 하늘이 무너진 거였다.
바로 '天崩'이었다.
아버지를 척박한 땅에 묻고 소년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던 날,
소녀가 건넸던 그 야생화 한 송이는 강력한 '복선'이 되어 내 가슴을 때렸다.
비록 어린 나이에 불과했지만, 소녀가 건네준 그 꽃은 소년의 가슴을 그대로 관통해 버린 운명같은 '매개'일 거라 생각했다.
지우려고 노력해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 같은 숙명이요, 둘 사이의 인생과 삶을 예견하는 단초같은 암시였다.
"저 한 송이 꽃은 소년의 골수에 사무치고, 영혼에 새겼지겠구나"
나는 속으로 獨白처럼 뇌까렸다.
무수한 세월이 유수처럼 흘렀다.
장례를 마친 뒤 마을을 떠났던 소년은 어느새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다부진 신체, 야생마의 갈기 같이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 파랗고 깊은 두 눈,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그만의 아우라,
그는 훤칠하고 멋진 장정으로 변해 있었다.
그 사내의 이름은 '윌리엄 월레스'였다.
그가 단기필마로 다시 마을에 나타났을 때 오래 전에 앳된 꼬마였던 소녀도 어느새 현숙한 숙녀로 성장해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 때 소년에게 꽃을 건네주었던 바로 그 사람, 그 숙녀의 이름은 '머론 맥클랜너프'였다.
둘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둘만의 시간에, 둘만의 장소에서 '머론'을 만난 '윌리엄'은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보자기였다.
보자기를 펼치자 그 안엔 아주 오래 전, 소녀가 주었던 한 송이 야생화가 들어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책갈피 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꽃.
그 꽃이 '윌리엄'에겐 바로 '머론'의 체온과 감성이었다.
잘 마른 채로 그대로 굳어버린 '드라이 플라워'였다.
예쁘고 고결했다.
둘 사이를 이어준 강력한 사랑의 징표였다.
"한 순간도 당신을 잊어본 적이 없었어"
사내의 고백은 진심이었다.
수많은 세월 동안 남자가 고이 간직했던 꽃.
그리고 멋진 사내가 들려준 진솔한 고백 한 마디.
'머론'은 숨을 쉴 수 없었다.
까무룩 자지러지듯 '윌리엄'의 품 속에 쓰러졌다.
가슴 먹먹한 감동이었다.
태어나서 이런 느낌이나 정감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눈가엔 어느새 이슬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사랑이 찾아왔다.
온 천하가 새봄 같았다.
세상이 어찌 이리도 예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들은 행복했다.
결혼하여 가정도 이루고 싶었다.
당연했다.
서로를 죽도록 사랑했으니까.
그러나 현실은 암울하고 냉혹했다.
13-14세기 중세유럽.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변방에 속했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서로를 적대시하며 가열차게 맞서고 있었다.
1296년,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를 침공하여 대부분의 영토를 평정했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본디 험준한 산악지역에서 나고 자란 '스코틀랜드인들'은 태생적으로 용맹했고 好戰的이었다.
게다가 자유분방한 기개를 갖고 있었다.
절대로 '잉글랜드'의 바람대로 무릎을 꿇은 채 순종할 족속이 아니었다.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는 북부 사람들의 시원적인 기질과 끈질긴 항거의 스피릿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미 1284년에 정복을 끝내고 통합을 선언했던 '웨일즈'와는 현저하게 다른, '스코틀랜드'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가 있다는 것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못했다.
'에드워드'는 '스코틀랜드'에서의 상황과 판세를 잘못 짚고 있었다.
상대를 쳐 완벽하게 복속시키려는 '잉글랜드'와 끝까지 저항하며 독자적인 왕국건설을 갈망했던 '스코틀랜드'.
둘은 한배를 탈 수 없었다.
상극이었고 견원지간이었다.
민족도 달랐다.
북부는 '켈트족'이었고, 남부는 '앵글로족'과 '색슨족'이 주류였다.
북부의 현실은 '잉글랜드' 침공 이후로 늘 춥고 어두웠다.
여전히 남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온갖 폭정과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봄'은 아직도 멀고 험난한 단어였다.
북부가 항쟁하면 할수록 잉글랜드의 탄압과 핍박은 날이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갔다.
그 학정의 바로미터가 바로 악명높은 '프리마 녹테'(Primae Noctis)였다.
농노나 평민의 딸들이 결혼을 할 때면 신부는 자신의 '처녀성'을 영주에게 먼저 바쳐야 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가장 야만적이고 더러운 인권말살의 표본이었다.
일명 '初夜權'이었다.
'프리마 녹테'는 '잉글랜드'가 자행했던 폭정의 극치였다.
바야흐로 목숨 건 항거와 쟁투의 물꼬가 예서제서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양국의 정세는 늘 살얼음판이었다.
툰드라보다 더 거칠고 차가운 형국이었다.
'윌리엄'은 자신의 여자를 '프리마 녹테'의 희생양으로 보낼 순 없었다.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언정 저들의 일방적인 폭거에 순응할 순 없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내 여자의 고귀한 순결과 온전함에 반하는, 그 어떤 조치에도 몸을 던져 강력하게 막아내리라 다짐했다.
'머론'의 눈에 비탄의 눈물이 단 한 방울이라도 흐르지 않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윌리엄'과 '머론'은 교회의 사제를 모시고 깊은 숲 속에서 단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사람이라곤 딱 세 명뿐이었다.
하늘과 땅이 그 結婚式을 지켜보았고, 산천이 두 사람을 축복했다.
그러나 그들의 꿈결같은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악날한 '프리마 녹테'를 피하기 위해 비밀리에 결혼식을 치른 것은 잘한 일이었지만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차에 일이 있어 마을에 나갔던 예쁜 '머론'에게 '잉글랜드' 병사가 흑심을 품고 달려들었다.
겁탈이었다.
그러나 '머론'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 과정에서 병사에게 상처를 입히고 머론은 현장을 빠져나와 달아났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어느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었다.
'머론'은 곧 붙잡혔고 형틀에 묶이게 되었다.
'머론'이 비밀리에 결혼한 사실까지 밝혀지자 잉글랜드군 지휘관은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예리한 단검으로 머론의 목을 단숨에 베버렸다.
여지없었다.
무자비한 처형이었다.
'윌리엄'은 自盡했다.
눈이 돌아갔다.
파리 눈꼽만큼이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거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천붕'을 겪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슬픔과 충격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처참한 주검.
모든 것이 사라졌다.
'풍비박산'이었다.
자신도, 세상도, 한순간에 끝모를 나락으로 떨어졌다.
급전직하였다.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폭발한 '윌리엄'은 그 주변에 있던 '잉글랜드' 군인들을 보이는 대로 모조리 척살했다.
완벽한 궤멸이었다.
그랬다.
'잉글랜드'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과 반란의 뜨거운 횃불이 '윌리엄'으로부터 그렇게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학정과 폭력에 몸서리쳤던 민중들이 그가 치켜세운 깃발 아래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자신의 가족들과 고장을 사수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힘과 함성이 시간이 흐를수록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윌리엄'은 그 대오의 맨 앞에 서서 '스코틀랜드'를 이끌었다.
힘을 규합하고 전열을 재정비했다.
'잉글랜드'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양 진영의 가혹한 운명의 시계추는 재깍재깍 빠르게 치닫고 있었다.
그 대척점에 '스털링'이 있었다.
'복속'과 '독립'은 애시당초 공존할 수 없는 단어였다.
그랬던 만큼 피튀기는 격돌과 목숨 건 챙투는 어느 쪽도 피해 갈 수 없는 마지막 背水陣이었다.
백척간두의 낭떠러지였다.
국운이 걸린 전투가 될 터였다.
1297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와 '스코틀랜드'의 영웅 '윌림엄 월레스(Willam Wallace)'는 '스털링'(Stirling)에서 맞붙었다.
'웨일즈'까지 손아귀에 넣었던(1284년) '잉글랜드'는 상대적으로 부강한 나라였다.
그에 비해 척박한 북부 산악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있던 '스코틀랜드'는 사람들은 자유분방하고 용감했으나 물자와 산업은 한참 낙후되어 있었다.
그랬던 까닭에 북부는, 창설과 훈련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騎兵隊를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기병대'과 '보병대'의 대결은 늘 결말이 뻔했다.
오늘날로 친다면 장갑차와 소총수가 싸우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애시당초 비교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윌리엄'에겐 비장의 무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울창한 북부 산림지대에서 답을 찾았다.
"이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곧게 뻗은 나무들을 활용하자".
그것이 '윌리엄'이 선택한 작전의 핵심이었다.
나무들을 자르고 깎아 뾰족한 장창을 만들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궁즉통'이었다.
개전이 되자마자 '잉글랜드'의 궁병들이 먼저 활을 쏘기 시작했다.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은 화살들이 마치 우박처럼 쏟아졌다.
궁병들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방패로 막아낼 수 있었다.
그 다음엔 정예화된 '잉글랜드'의 기병대가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들어왔다.
가속도가 붙은 채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기병대가 북부군의 코 앞까지 왔을 때,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윌리엄'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땅바닥에 놓여 있던 장창들을 기병대를 향해 일제히 45도로 치켜세웠다.
신의 한수요 천금같은 병법이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장창은 돈도 들지 않는 무기였다.
'잉글랜드'의 기병대는 허를 찔렸다.
장창 앞에 대오가 급격하게 무너졌다.
무수한 말들이 죽거나 쓰러졌다.
말이 없는 기병대는 그야말로 秋風落葉에 지나지 않았다.
기병대를 제압하자 마지막으로 보병들의 백병전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전장은 살육의 강으로 돌변했다.
보병간의 전세는 막상막하였으나 병사들의 '사기'와 '저돌성'은 북부가 한 수 위였다.
거친 산악지대에서 나고 자란 '스코틀랜드'의 병사들은 태생적으로 무식할 정도로 용맹했다.
'스털링 전투'는 '스코틀랜드'의 대승으로 끝났다.
무엇보다도 총사령관이었던 '윌리엄의 리더십'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참패한 '에드워드 1세'는 이를 갈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며느리이자 프랑스 공주였던 '이자벨'을 특사로 파견했다.
계략에 의한 '화친정책'이었다.
시간을 벌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면서 북부의 귀족들을 회유하여 '윌리엄'에 등을 돌리도록 간계를 꾸몄다.
'윌리엄'을 만난 '이자벨 공주'.
'이자벨'에게 '윌리엄'은 한낱 반란군의 지도자에 불과했다.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의 진정성, 신실함, 용기와 매너에 급격한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늘 빈정거리며 나약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배우자, '에드워드 2세'와는 백팔십 도 다른 인물이었다.
새롭고 자꾸만 마음에 끌렸다.
절제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野生馬같은 호방함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끝내 '이자벨 공주'는 이 멋진 야성의 사내를 흠모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을 의지적으로 제어하려 노력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살다보면 인력으로 안 되는 일도 많았다.
그에 대한 생각을 떨치려 애쓰면 애쓸수록 공주의 가슴 속 깊이 파고드는 사모의 정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자벨'이 '윌리엄'을 만나 유화책을 펼친 뒤로 양국간의 긴장은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그러는 사이 '에드워드 1세'는 군비를 재정비했고 '스코틀랜드' 귀족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철저한 공작이었다.
그의 계략이 효력을 발휘했다.
두번째로 맞붙은 '폴커크 전투'(The Battle of Falkirk)에서 '스코틀랜드'는 대패했다.
'잉글랜드'에 회유당한 귀족들이 약속을 어긴 채 '윌리엄'을 철저하게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정치'와 '권력'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숨가쁘게 돌아가는 '배반의 눈동자'였다.
북부군의 전략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스코틀랜드' 병사들의 무수한 주검들이 벌겋게 들판을 메워갔다.
속수무책이었다.
신념과 약조보다는 자신의 잇속과 기득권 유지에 천착하는 귀족들을 철썩같이 믿었던 참담한 댓가였다.
그 댓가는 혹독했고 뼈 아팠다.
그의 순수함이 인간적인 매력이었고, 리더로서의 커다란 장점이었으나 전쟁은 전쟁일 뿐이었다.
냉혹했다.
정치적인 처세에 길들여진 귀족들을 믿었던 댓가는 대지를 흥건하게 적셨던 병사들의 핏물과 처절한 패퇴로 돌아왔다.
1298년의 일이었다.
'윌리엄'은 철저한 복수를 다짐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세를 규합한 '스코틀랜드 군'은 배신했던 영지들을 차례로 쳐서 제압했다.
'에드워드'에 충성했던 '城主'의 머리통을 잘라 '런던'으로 보내기도 했다.
용호상박하는 어지러운 정세.
잉글랜드 국왕은 '이자벨'을 다시 한번 특사로 파견했다.
완악한 '에드워드'의 또다른 계책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의 '윌리엄' 예방은 '이자벨'도 마음 속으로 애타게 갈구했던 일이었다.
그녀는 일인자하 만인지상의 절대권력을 갖고 있었고 好衣好食하며 부족함 없이 살았다.
하지만 그녀도 완전할 순 없었다.
'이자벨'은 늘 외로웠다.
구중심처에서 어디 한 군데라도 마음을 둘 데가 없었다.
쓸쓸하고 힘겨웠다.
둘의 대면은 더이상의 外交나 安保에 대한 의제가 아니었다.
절실한 그리움이자 가슴 뛰는 설렘이었다.
뜨거운 호흡과 끈적한 눈빛이 가감 없이 교차됐다.
'이자벨'은 마음속으로 '윌리엄'을 흠모하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과 갈구함으로 빚어낸 연두빛 사랑이 바로 이런 느낌이었을까.
'머론'을 먼저 보낸 뒤로 여인을 멀리했던 '윌리엄'도 '이자벨'의 지순한 연정이 싫지 않았다.
둘은 깊고 뜨거운 밤을 보냈다.
환희였고 열락이었다.
온 육신과 영혼을 다 끄집어 내 마음껏 욕망하고 싶었던 불타는 밤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잉글랜드'의 특사가 아니어도 좋았고, '스코틀랜드'의 사령관이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영겁의 생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절실하고 애틋했던 최후의 밤이었다.
'이자벨'이 런던으로 돌아 간 뒤 다시 위장된 평화가 찾아온 듯했다.
그러는 새 '에드워드'와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긴밀하게 내통하며 '윌리엄' 제거에 대한 술책들을 협의했다.
순수하고 대범했던 '윌리엄'은 끝내 귀족들의 달콤한 계략에 빠져 붙잡히고 말았다.
사람을 잘 믿었던 '윌리엄'의 限界였다.
싸움에 임할 때의 전략은 누구보다도 뛰어났으나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교활한 '수싸움'엔 태생적으로 기민하지 못했고 간교하지 못했다.
사람들을 믿었다가 전투에서 참패한 적도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패배'가 아니라 '죽음'이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채로 뜨거운 선혈을 사방으로 흩뿌리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기요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 지는 '기요틴'이었다.
이윽고 그는 런던으로 압송되어 철창 안에 갇혔다.
갈기가 낱낱이 뽑히고 날카로운 발톱들이 허망하게 잘려나간 형국이었다.
한때는 광활한 사바나를 용맹하게 호령했던 금수의 제왕이 이제는 병들고 쇠락해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숫사자의 모습과 동일했다.
'아자벨'은 자신의 시아버지이자 '잉글랜드'의 국왕인 '에드워드 1세'에게 '윌리엄'의 구명을 눈물로 호소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듯한 국왕은 며느리의 애끓는 간청을 매몰차게 일축했다.
'이자벨'에겐 가슴 벅찬 사랑과 흠모의 대상이었으나, '에드워드'에겐 '잉글랜드'를 턱 밑까지 위협했던 반란군의 수괴일 뿐이었다.
'에드워드'의 명령은 곧 국가의 판단이요 결정이었다.
"수많은 군중들이 모인 장소에서 반란자의 참혹한 최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라"
처참한 참수를 피할 수 없었다.
깊은 밤, 형장에 갇힌 '윌리엄'을 찾아 간 '이자벨'.
쇠사슬에 묶인 채 죽음을 기다리는 연인을 보자마자 소리없이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윌리엄, 제발 에드워드에게 자비(mercy)를 구하세요. 제발요..."
"그것만이 당신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이자벨은 계속해서 mercy, mercy, mercy란 단어를 주문처럼 이어갔다.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절박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윌리엄'을 향한 '이자벨'의 가슴을 저미는 눈물과 애끓는 당부.
그것은 그를 향한 진실한 사랑의 발로였다.
애닲고 절절했다.
관객들도 함께 울었다.
통곡은 아니었다.
마치 살을 에는 듯한 침묵의 오열이었다.
그러면서 '이자벨'은 마지막으로 고통없이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작은 약병 하나를 '윌리엄'에게 내밀었다.
'윌리엄'은 '이자벨'의 그 갸륵한 마음을 헤아렸던 까닭에 아무 말 없이 그 약을 마셨다.
하지만 그녀가 돌아가자 이내 뱉어버렸다.
닥쳐올 극한의 공포와 처절한 고통조차도 그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나는 '스코틀랜드'의 아들이다"
자신에게 수도 없이 주문을 걸었다.
죽음의 장막이 목전에 드리워졌지만 눈꼽만큼이라도 비굴하거나 적들의 칼날 앞에서 저열하게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심장이 살아서 박동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코틀랜드' 軍團의 리더로서 웅혼한 기개와 자긍심을 꼿꼿하게 견지하고 싶었다.
'윌리엄'에겐 'mercy'가 아니라 'freedom'이 절실했다.
그 '프리덤'을 위해 목숨걸고 싸웠고 자신의 전부를 내던졌던 필생의 삶이었다.
'이자벨'이 병석에 누워있는 '에드워드 1세'를 찾아갔다.
더이상의 구명과 자비에 대한 애원조차도 그 앞에선 이미 언어의 낭비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자벨'은 생명의 불꽃이 조금씩 꺼져가는 국왕의 귀에 대고 나즈막하게 속삭였다.
"에드워드, 늙고 병든 당신은 곧 죽을 거예요"
"나약해 빠진 당신의 아들도 왕위를 굳건하게 보전하진 못할 겁니다. 한평생 위대한 '잉글랜드'를 외치며 앞만보고 달려왔던 당신과 당신 가문의 血統도 이제는 끝났어요. 내 몸 속엔 당신 아들의 핏줄이 아니라 '윌리엄'의 고귀한 生命이 자라고 있으니까요"
'프리마 녹테'로 뭇 여성들의 人權을 무참하게 유린했고 영혼의 숨통을 짓밟았던 '에드워드 1세'.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그는 특히 여성들을 무시했고 천대했다.
그에게 여성이란 존재는 상황타개나 계략을 위해 부려먹다가 목적을 달성하면 용도폐기해 버려도 상관없는, 남자들의 대체재나 보조재쯤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천박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여자가, 아니 자신의 며느리가, 한평생을 제왕으로 살아 온 자신의 지엄한 일생을, 그것도 임종 직전에 확실한 한 방으로 질식시켜버리고 격침시켜 버리다니, 그것은 죽으면서도 눈을 감을 수 없었던 뼈아픈 비수였다.
심장이 터지고 골수가 쪼개지는 메가톤급 충격이었다.
가장 확실한 복수였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통쾌한 대반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가 보다.
'웨일즈'와 '스코틀랜드'까지 완벽하게 복속시켜 자신의 재위기간 내에 '그레이트 브리튼'을 건설하고 싶었던 '에드워드'의 야망도 무상한 세월 앞에선 한낱 一場春夢에 지나지 않았다.
형틀에 결박된 '윌리엄'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온갖 고문을 감내하고 있었다.
극한의 고통속에서도 그는 끝까지 '머시'를 입에 담지 않았다.
목이 잘려 나가기 직전.
환상이었을까.
군중속에서 '머론'을 보았다.
꿈엔들 한순간이라도 잊고 지낼 수 없었던 소중한 자신의 여자였다.
환영일지라도 좋았다.
둘은 곧 하늘에서 만나게 될 터였다.
'머론'을 보자 그래도 위안이 됐다.
사랑하는 자신의 여인을 빨리 만나고 싶어서였는지 이내 마음에 平安이 밀려왔다.
절박한 순간에 '머론'이 나타났던 건 역시 사랑의 힘일 거라 믿었다.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었던 영원한 사랑이었다.
刑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는지를 물었다.
'윌리엄'은 젖먹던 힘까지 토해냈다.
지축을 뒤흔드는 강력한 사자후였다.
단말마같은 외침이었다.
그것은 '自由'였고 인간의 '尊嚴'이었다.
"프 ~~~ 리 ~~~ 덤"
거룩한 최후의 외침이 광야로 울려퍼짐과 동시에 형 집행관 머리 위로 들어올려졌던 크고 무시무시한 도끼가 순식간에 '윌리엄'을 가격했다.
뜨거운 피가 사방으로 솟구쳤다.
결혼식 때 '머론'은 사랑의 징표로 자신의 남자에게 손수건을 주었다.
'스코틀랜드'의 영웅이자 불세출의 장수였던 '윌리엄'이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그 손수건이 그의 손아귀에서 풀려나 나풀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1305년 어느 날.
백주의 따가운 태양만이 그 손수건 위로 애닲게 쏟아지고 있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는 숱한 피의 댓가였다는 것을,
그리고 수백년 동안 무수한 주검과 희생으로 불을 밝혀 온 찬란한 횃불이었다는 것을,
이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작품으로 뜨겁게 웅변하고 있었다.
이 영화가 나온지 벌써 2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금까지 대여섯 번쯤 보았는데 접할 때마다 색다른 감격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
주연을 맡았던 '멜 깁슨'은 혈통적으로 '스코틀랜드' 인의 피가 흐르는 사내다.
그가 감독과 제작까지 맡았던 걸작이었다.
장장 3시간에 걸쳐 '템즈강'의 잔잔한 물결처럼 유장하게 흐르는 大敍事詩같은 불후의 명작이다.
운명같은 만남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채 한 남자를 몹시도 사랑했던 여리지만 강한 여인, '이자벨 공주역'의 '소피 마르소',
집요하고 완악했지만 죽는 순간까지 '그레이트 브리튼'을 꿈꾸며 일로매진했던 '에드워드 1세역'의 '패트릭 맥고한',
영원한 윌리엄의 연인으로서 지고지순한 절개와 청순한 사랑을 보여주었던 스코틀랜드의 현숙한 숙녀, '머론역'의 '캐서린 매코맥'까지 출연자들의 연기는 단연 발군이었다.
3천명의 엑스트라, 6천여 벌의 의상제작 그리고 그 당시 금액으로는 어마어마했던 8천만불의 제작비에 최고의 유명 배우들까지
완벽한 '콘티'와 '케미'를 선보였던 나무랄 데 없는 보석같은 작품이었다.
개봉했던 이듬해인 1996년 제6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 촬영, 분장, 효과 및 사운드 편집, 작품 등 여러 부분에서 상을 휩쓸었던 것도 당연하고 공정한 평가라 생각했다.
英雄은 떠났지만 '스코틀랜드' 인들의 사기와 저항은 식을 줄을 몰랐다.
아니 더욱 강렬하게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다.
'윌리엄'의 장렬한 주검에 대한 복수의 마음도 지대했다.
'윌리엄'이 하늘로 떠난지 9년 뒤인 1314년.
'배녹번 전투'에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를 완벽하게 격침시켰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도 희구했던 '獨立'을 쟁취했다.
(실제적인 독립승인은 '에드워드 1세'의 손자인 '에드워드 3세'에 의해 이루어짐, 1328년)
한국의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이듯 영국의 '스털링'도 자유를 향한 '항쟁의 메카'였다.
특히 '스코틀랜드인'들에게는 매우 각별한 땅으로 남아 있다.
독립문서에 서명한 후에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수 세기 동안에 지속적으로 격돌했다.
아주 오래된 원환과 반목이 양국 사이엔 뼛속까지 남아 있었다.
1603년.
두 나라의 王家가 통합적인 왕의 옹립을 합의할 때까지 서로는 사안마다 혹독한 쟁투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좀처럼 지워지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舊怨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2016년 6월.
'영국'은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우려했던 'Brexit'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영국'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목숨걸고 싸웠던 것처럼 현재도 그 속성과 기질은 변하지 않았다.
'메이' 영국 총리와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마치13-14세기 때의 '에드워드 1세'와 '윌리엄 월레스'의 분신이라도 된 것처럼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며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금년 6월의 국민투표에서 '잉글랜드'는 '브렉시트'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는 'EU 잔류'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여전히 물과 기름이었다.
그 때와 현재가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양 진영을 이끌고 있는 두 주역들이 모두 '여성들'이란 점일 것이다.
'메이'와 '스터전'은 여걸 중의 여걸이었다.
이대로 갈등이 깊어진다면 英연방의 해체까지 언급되는 지경이다.
그렇잖아도 2014년도에 '스코틀랜드'의 '分離獨立'을 위한 국민투표가 한 차례 있었다.
그땐 반대가 십 몇 프로 많아 봉합되었지만 '브렉시트' 이후엔 상황이 확 달라졌다.
독립 찬성론자들이 훨씬 많아졌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英연방은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그리고 '스코틀랜드', 이렇게 4개 국가가 합쳐진 연합국가였다.
그래서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에 따로 국대를 내보내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만약 영연방이 해체된디면 '잉글랜드'는 현재 '영국' 전체 면적의 약 50% 정도로 쪼그라들게 된다.
맨처음 '스코틀랜드'가 분리 독립할 것이고, 그 다음에 '웨일스'와 '북아일랜드'가 뒤따를 것으로 보여진다.
복잡하고 난해한 세계 각국의 상황들과 정책들로 인해 미래를 예측하는 건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과거를 알면 현재가 보이고, 미래의 추론도 어느 정도는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영화나 뮤지컬 그리고 소설 등 각종 예술작품들이 세상에 나오면 세인들의 논쟁이 항상 뜨겁다.
事實인지 아닌지, 史實이냐 아니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프리마 녹테'도 실제로 행해졌던 인권말살의 작태였는지, '결혼세'를 강압적으로 부과하기 위한 세금수탈 정책의 일환이었는지,
여전히 설들이 많다.
이 글은 역사적 보고서의 관점에서 쓴 건 아니다.
내 가슴 속에 남아있는 명작들 중 하나인 '브레이브 하트'를 꽤 여러 번 감상하고 나서 작성한 개인의 후기일 뿐이다.
금년 여름, 영국에서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투표가 가결되어 전세계가 충격에 빠진 적이 있었다.
'EU 탈퇴'와 英연방 간의 심각한 '갈등'을 보면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프리마 녹테'를 모티브로 하는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매개 삼아 수백 년 간 지속되었던 '브리튼섬'의 역사적 관계와 그들간의 원한에 얽힌 스토리텔링을 서술해 본 것이다.
歷史는 쉼없이 돌고 돈다.
언젠가 나는 꼭 '스털링'에 가보고 싶다.
그곳에 가면 '윌리엄'의 자유와 존엄을 향한 확고한 그의 신념을 현장의 느낌과 현장의 호흡으로 다시 한번 내 나름대로 재구성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윌리엄'이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당신에게서 삶과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의미이고 가치인가"라고.
정답은 없다.
그것은 어차피 각자의 몫일 테니까.
글을 마친다.
내 마음 속 위대한 영웅인 'Willam Wallace'에게 다시 한번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심심한 '오마주'를 보낸다.
지금으로부터 712년 전에 그는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목숨과도 바꾸지 않은 채 끝까지 붙들었던 인간에 대한 '존엄'과 '자유'를 나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으며, 실생활에서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지를 다시 한번 뒤돌아 보게 된다.
'행동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 소망을 담아 겸허하게 기도하는 밤이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2016년 10월 28일.
심야에 쓰다.